한국의 전쟁의 신으로 불리운 남자
2015년 07월 12일 11시 35분에 베스트로 선정 되었습니다.♡
몇가지 일화 추가합니다.조훈현이 어렸을때(아마도
초등학교 입학 전) 집에 무슨 사고를 치고 도망가고
엄마가 혼내려고 쫓아오는 상황인데 조훈현 어린이가
도망가면서 옷을 하나씩 벗어서 옆으로 던졌다고.
엄마는 그 옷을 주으며 쫓아오느라 속도가 늦어져 결국 놓쳤다고.조훈현 9단의 스승인 세고에 겐사쿠 9단은 평생 제자를 3명밖에 안받았다고 하네요.
그것도 한,중,일 1명씩 제자를 뒀다더군요.
조훈현이 마지막 제자였는데 진짜 애제자였데요.
근데 한국인이므로 군대가야해서 귀국해버리는 바람에 애제자를 잃은 충격으로 자살했다 하네요.
동시대 조치훈 9단은 군대 안가고 일본에 남았는데 80년대 일본바둑계를 쓸고다녀서 정부에서 특별사면해줬답니다.조훈현9단이 아마추어 30여명과 동시에 대결을 한적이 있다고해요
조훈현9단이 테이블을 옮겨다니며 한번씩 두는데 어떤사람이 몰래 흑돌하나 더 올려놨더니
조훈현9단이 자리에 돌아와 바로 그 흑돌을 손으로 툭 쳐내며 "이게 왜 여깄어" 하시면서 한수 또 두시고 지나가셨다고1972년 3월 조훈현은 병역문제로 귀국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 8월 공군에 입대했다. 스승 세고에는 하늘이 무너진 듯 낙심천만했다. 한국 병무청에 직접 병역연기 탄원서를 내는 등 백방으로 손을 썼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제자가 떠난 한 달 뒤(4월) 그의 오랜 벗 노벨문학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가 가스를 마시고 자살했다. 세고에 나이 여든셋. 그는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7월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두 통의 유서를 남겼다. 한 통은 가족에게 ‘노구로 더이상 신세지기 싫어 먼저 떠나고자한다’는 내용. 또 한 통은 친구, 후배들에게 ‘조훈현을 꼭 다시 데려와 대성시켜 주기 바란다’는 간절한 부탁.
“스승의 죽음을 듣고 한동안 머릿속이 하얗고 멍했다. 그분은 대들보에 목을 매단 게 아니라 앉아서 스스로 자신의 목을 졸라 돌아가셨다고 했다. 역사상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한다. 사람이라면 ‘열이면 열 스스로 손을 놓아버린다’는 것이다. 그만큼 스승은 대꼬챙이 같은 분이셨다. 친구 가와바타의 자살도 영향을 끼쳤겠지만, 아마도 나의 귀국이 90%쯤 원인제공을 하지 않았을까 느낀다.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더구나 그 몇 달 뒤에 내가 강아지 때부터 키웠던 아키다견 벵케이가 밥을 안 먹고 비실거리다가 죽었다고 한다. 그 이야길 듣고 나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스승의 죽음에도 나오지 않았던 눈물이 나왔다. 내가 떠나는 날 낮게 낑낑대며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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