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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과 가장의 책임감, 문성민이 말하다

일병 news1

조회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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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4 (토) 14:22

                           



어느덧 한국나이 33세. 노장이란 수식어가 붙어도 실력과 인기는 식을줄 모른다. 천안 유관순체육관에 배구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팬 사랑을 거의 독차지하는 이 남자. 천안을 넘어 전국구 배구스타가 되어 V-리그를 흔들고 있는 현대캐피탈 주장 문성민이다.

2008년 독일로 진출했던 문성민이 터키를 거쳐 한국리그로 돌아온지도 벌써 8년 세월이 흘렀다. 문성민은 그 사이 영광의 순간을 여러차례 경험했다. 2015~2016시즌 정규리그 우승, 2016~2017시즌 챔피언전 우승과 함께 두차례 정규리그 MVP도 지냈다.

이미 많은 것을 이뤄낸 문성민은 올 시즌에도 현대캐피탈 주장을 맡아 통합우승을 향해 달리고 있다.

세월이 가도 변함없는 슈퍼스타 문성민. 그를 지탱케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들여다보고 싶었다.

 

주장과 가장의 책임감, 문성민이 말하다

‘오 마이 캡틴!’ 주장이라는 이름으로

#내가_주장이라니 #이제는_캡틴_그_자체

원래 나서길 좋아하고, 보스기질이 넘치는 성격은 아니었다. 스스로도 “전혀 아니에요”라고 말할 만큼. 그러나 2015~2016시즌을 앞두고 새롭게 현대캐피탈 지휘봉을 잡은 최태웅 감독은 문성민에게 주장이라는 책임감을 부여했다. “새 시즌 주장은 문성민”이라는 최 감독의 말에 그저 “네”라고 대답했을 뿐이다.

그 역시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팀의 중심으로서 코트에서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확실히 무게감이 달랐다. 그저 득점만 많이 올리면 되는 역할을 넘어서야 했다. “주장을 맡으면서 많이 변했어요. 어떻게 보면 사람이 됐죠(웃음). 그 전까지는 제 생각대로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한 번 더 생각하고 또 한 번 더 생각해요. 운동할 때도 선배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강해졌죠.”

그의 성격 뿐만은 아니다. 최태웅 감독 부임 이후 현대캐피탈은 전과는 다른 팀으로 변모했다. 앞서 정규리그에서 5위라는 참혹한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던 그들은 2015~2016시즌 정규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린 데 이어 2016~2017시즌 10년 만에 다시 정상에 섰다.

우승이 확정되자 문성민은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그간 마음고생을 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한국에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화려하게 돌아온 면이 없지 않아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제 스스로 부담감이 컸던 것 같아요. 사람들 기대치도 있고요. 그러다보니 결정적인 순간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지난 시즌만 한정해도 1차전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요. 힘들기도 했지만 선수들과 즐겁게 뛰어다녔던 시간들을 보상받았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던 것 같아요.”

최태웅 감독을 만나면서 그의 배구 인생도 달라졌다. “팀적으로는 선수들이 코트에서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어요. 제 개인적으로도 표정이 많이 밝아졌고요. 그리고 주장이 되다보니 후배들을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경기에서 지면 어떻게 팀 분위기를 끌어올릴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해요. 제 개인보다는 팀을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에게 다소 짓궂은 질문 하나를 던졌다. 주장으로서 자신에게 점수를 매겨본다면?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이내 “매일 고민해요”라고 입을 뗀 후 “시즌을 치를수록 어린 선수들이 많이 올라오잖아요. 그래서 그 선수들의 생각과 성향을 알아야 해요. 점수를 매기기보다는 계속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계속 배워나가는 중이예요.”

주장과 가장의 책임감, 문성민이 말하다

#내_친구_영석이 #후배들도_고마워 #너희가_있어_좋다

시즌 초 11연승을 내달리며 삼성화재가 세간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동안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던 현대캐피탈은 1월 1일 선두를 탈환한 뒤 독주를 이어갔고 결국 정규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궁금했다. 현대캐피탈이 잘나가는 이유는 뭘까. 그 숨겨진 힘이 알고 싶었다. “첫 번째는 긍정의 힘인 것 같아요. 그리고 코칭스태프들이 선수들이 배구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뒤에서 정말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잘해주고 있어요. 저희 숙소 진짜 좋잖아요. 우리는 배구만 하면 돼요. 감독님도 이 시설을 잘 이용하시기 때문에 선수들은 거기에 맞게 잘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훈련내용이 경기력으로 나오고 있어서 선수들도 경기 때 더 자신감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모든 것들이 잘 맞아떨어져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것 같아요.”

여기에 동갑내기 미들블로커 신영석의 존재 역시 든든하다. 상무 제대 후 2015~2016시즌 후반 팀에 합류한 신영석은 올 시즌 자신의 기량을 활짝 꽃피우고 있다. 당초 현대캐피탈은 최민호의 군입대로 인해 중앙 공백이 예상됐다. 하지만 신영석의 존재감은 그 이상이다. 물이 올랐다고 해야 할까. 2라운드에서는 세트 당 1개가 넘는 블로킹을 기록하기도 했다. 신영석은 올 시즌 정규리그 블로킹 부문 1위(세트 당 0.855)에 우뚝 섰다.

문성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영석이랑 같은 팀인 것만으로도 큰 힘이 나요. 상대가 견제할 수밖에 없는 공격력을 가지고 있고 블로킹도 굉장히 좋잖아요. 신영석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팀 선수들이 든든하게, 자신감 있게 배구를 즐길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어 그는 고마움을 전했다. “제가 주장이다 보니 아무래도 운동을 할 때 모범적으로 하게 돼요. 그러면 영석이는 뒤쪽에서 선수들 멘탈을 많이 챙겨줘요. 그리고 선수들한테 블로킹이라든지 여러 면에서 많이 가르쳐주고요. 저를 많이 도와주죠. 굳이 말하자면 엄마와 아빠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자기 관리도 철저해요. 굉장히 부지런해요. 자기만의 주관도 뚜렷하고요. 여러모로 배우고 싶은 친구예요.”

후배 중에서는 칭찬을 해주고 싶은 선수가 있을까. 그러자 문성민은 두 윙스파이커 박주형과 송준호를 꼽았다. “두 선수 포지션이 힘들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 자리잖아요. 아마 우리 팀에서 두 선수가 가장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주형이하고 준호가 그 자리에서 잘 버텨주고 있어서 고마워요.”

또 한 명, 올해로 입단 2년차를 맞고 있는 차영석 역시 문성민을 흐뭇하게 했다. 사실 차영석이 이만큼 해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 시즌 단 한 경기에 나서 블로킹 1점이 전부였다. 하지만 올 시즌 훌쩍 성장한 모습으로 같은 팀 선수들과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문성민은 “작은 영석이가 민호의 빈 자리를 잘 메워주고 있어요. 그런 부분에서 참 고맙죠”라고 말했다.

주장과 가장의 책임감, 문성민이 말하다

#룸메이트에서_소속팀_감독까지 #최태웅_감독과의_끈질긴_인연(?)

문성민과 최태웅 감독의 인연은 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테랑 세터 최태웅과 경기대 재학 중이던 문성민은 2006년 천안에서 열린 아시아남자배구최강전에서 나란히 태극마크를 달았다. 특히 두 사람은 룸메이트로 지내며 돈독한 정을 쌓았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이제는 감독과 선수로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문성민에게 최태웅 감독은 어떤 사람인지 물었다. 그러자 “배구에 미친 사람”이라는 답이 금세 튀어 나왔다.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속된 말로 미쳐있다고 하죠? 그 말이 진짜 맞을 정도로 배구만 생각하세요. 감독님 방에 가면 모니터만 6대가 있어요. 그만큼 배구에 대한 열정이 넘치세요. 배구를 많이 보고, 연구하시죠.”

덧붙여 “긍정의 힘을 알고 계신 분이에요. 배구 뿐만 아니라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주려고 하세요. 그 덕분에 선수들도 긍정의 힘을 알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라고 말했다.

최태웅 감독은 코트에서 수많은 명언을 쏟아냈다. 승부처마다 나오는 최태웅 감독의 코멘트는 선수들에게 묘한 힘을 불어 넣었다. “우리는 발전하는 팀이지 잘하는 팀이 아니다”, “이제 너희가 경기를 책임져, 소신있게 해”, “우리는 10연승 팀, 자부심을 가져라” 등 선수들에게 깊이 와닿은 말을 남긴 바 있다.

특별히 문성민에게 각인 됐던 말이 있을까. 그러자 그는 “요즘은 감독님이 명언을 안 하세요”라며 “감독님이 우스갯소리로 ‘이제 다해서 할 얘기가 없다’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선수들은 재탕해도 모를 겁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라고 웃어 보였다.

이어 “솔직히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오글거리는 말도 많이 하셨죠(웃음). 예전에 ‘많은 사람들이 너희를 보기 위해 왔다’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그 때 저뿐만 아니라 선수들 모두 깨닫는 게 있었어요. 그 이후로 몸이 가벼워지면서 좋은 경기력이 나왔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지난 챔피언결정전에서 문성민과 최태웅 감독의 커피 타임이 화제였다. 최 감독은 챔피언 결정전을 치르면서 중압감을 느끼는 선수와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문성민도 그 중 한 사람. 커피를 마시면서 두 사람은 서로 속마음을 나눴다. 그 덕분이었을까.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9득점 공격 성공률 38.1%에 그쳤던 문성민은 2차전에서 35득점을 기록하며 에이스 귀환을 알렸다.

그에게 “요즘은 커피 타임 없죠?”라고 툭 한마디를 내던졌다. 그러자 문성민은 “그 이후로는 없어요. 아무래도 없어야 제가 잘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라고 웃었다.

 

주장과 가장의 책임감, 문성민이 말하다독일 찍고 터키 거쳐 V-리그 정상에 서기까지

#우연히_찾아온_해외진출  #남자도_김연경_같은_선수가_나오길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뛰어 노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높이뛰기 선수로 뽑혀 학교 대표로 참가했던 대회에서 2등을 차지했다. 그때 키도 큰 편이었다. 배구부 감독 눈에 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역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그렇게 문성민은 배구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경기대 재학 시절 이미 유명세를 탔다. 쟁쟁한 선배들 틈에서 당당히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실력은 두 말할 필요도 없었다. 여기에 얼굴까지 잘 생겼다. 소녀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그는 겸손했다. “대학교 때 경기대와 인하대가 라이벌 관계에 있기도 했고, 언론에 (김)요한(OK저축은행)이 형이랑 많이 노출된 부분이 있었죠. 그런데 경기대가 팬들한테 인기가 많았어요. 우리 팀 선수들 모두 인기가 좋았어요.”

문성민이 경기대 4학년에 재학중이던 2008년,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게 된다. 때는 2008 월드리그 대륙간 라운드 조별리그로 거술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 대표팀은 1승 11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문성민 만큼은 홀로 빛났다. 월드리그 12경기에서 284점을 얻어 득점 1위를 차지했다. 서브 득점도 25개로 세트 당 0.48개를 기록하며 서브 왕에 올랐다. 이탈리아, 쿠바 등 배구 강국의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아시아 선수로 득점과 서브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유럽 무대에서도 러브콜이 왔다. 독일 프리드리히스하펜에서도 영입 제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앞서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규정상 대학 졸업 예정 선수는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무조건 드래프트 대상이었다. 4학년이었던 문성민도 예외는 아니었다.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을 경우 국내로 돌아올 때 5년을 쉬어야 했다. 문성민은 휴학계를 제출하고 독일행 의사를 분명히 했지만, 추후 비슷한 사례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한국배구연맹(KOVO)의 판단으로 프리드리히스하펜에 입단하면서 동시에 드래프트에서도 KEPCO45(현 한국전력) 지명을 받았다.

배구협회가 드래프트를 피하는 편법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동의서 발급을 연기해 막판 진통을 겪기도 했지만 다행히 동의서 발급이 결정되면서 문성민은 이성희(전 KGC인삼공사 감독) 이후 10년 만에 독일리그에 진출한 선수가 됐다.

문성민도 잠시 그 때를 떠올렸다. “월드리그 때 몸이 좋았어요. 그 모습을 보고 해외 여러 리그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죠. 드래프트 제도가 있어서 해외로 나가는데 문제가 있을 수 있었지만 기회가 있을 때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무엇보다 당시 프리드리히스하펜 감독님이 안 되면 한국에 와서 이야기해보겠다는 말까지 하셨거든요. 정말 기회라고 생각해서 결심했었죠.”

쉽지는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문성민도 “외로웠다”는 말을 제일 먼저 했다. “다른 것보다 외로웠어요. 첫 외국 생활이었고 언어도 준비가 안 되어있었기 때문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스스로 챙겨야 하는 것들이 많았죠. 기본적으로 집하고 차는 제공돼요. 나머지는 선수들이 각자 알아서 해야 해요. 밥부터 청소, 빨래 다 요. 여기에 운동까지 하려니까 힘들었어요.”

그럼에도 그를 믿어준 감독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도 감독님께서 경기에 뛸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서 자신감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문성민은 독일 진출 2개월 만에 올스타전 남부 선발팀 아포짓 스파이커에 뽑히며 독일 팬들 마음까지도 사로잡았다.

물론 슬럼프도 있었다. 결장하는 경기도 있었다. 언어 장벽과 빠른 속도의 독일 배구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서 시즌 중반 이후 원 포인트 서버로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길어졌다.

문성민의 부진이 계속되자 신인드래프트에서 그를 1라운드 1순위로 지명한 KEPCO45 복귀설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면서 마음고생도 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을 견뎌냈고 2009년 5월 8일 열렸던 독일 분데스리가 배구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서브 2개 포함 13득점을 올리며 팀 우승에 일조했다. 이날 승리로 프리드리히스하펜은 챔피언결정전 3승 1패를 기록하며 5연패를 달성했다.

소속팀을 우승으로 이끈 문성민은 이후 또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리고 터키 할크방크로 이적을 확정했다. 

 

독일을 경험한 덕분일까. 터키에서 생활은 한 결 수월했다. “아무래도 독일에서 뛰면서 눈치가 생기다보니 터키에서는 선수들과 더 재밌게 지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터키 선수들은 정이 많아서 저한테 잘해주기도 했고요. 현지인 친구 할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기도 했어요.”

3년 전까지만 해도 가끔 안부를 주고받기도 했다. “3년 전까지는 가끔 메신저로 연락을 하기도 했어요. 영어는 안 되지만 번역기가 있잖아요.”

해외리그를 경험해 본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진지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요즘 친구들은 학교 수업을 듣기 때문에 저보다는 언어적인 부분에서 좀 더 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까 싶어요. 우선 언어만 되도 적응하는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리고 세계적인 선수들과 같이 뛰다보면 경기를 보는 눈도 많이 달라질 거고요. 만약 해외진출이라는 꿈을 가진 선수가 있다면 남자부도 김연경 선수처럼 성공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주장과 가장의 책임감, 문성민이 말하다

#자연스럽게_돌아온_한국 #그리고_7년간의 기다림

독일, 터키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문성민. 그의 다음 행선지는 바로 V-리그였다. 복귀 의사를 밝힌 것. “최종 목표는 이탈리아”라고 밝혀왔기에 아쉬움은 없었을까. “이탈리아가 최고 리그였던 만큼 해외에 나가 있을 때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어요. 그래서 당시 목표를 그렇게 세웠던 거였죠. 지금은 나이도 있고, 나가고 싶어도 못나가죠(웃음). 그런데 현대캐피탈에 와서 재밌는 배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팀에서 배구를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생각해요.”

해외에서 나름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쌓고 있던 그가 한국에 돌아오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자 그는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고 했다. “한국에 있는 에이전트 말로는 해외쪽 에이전트를 봐주던 친구가 세상을 떠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터키에서도 재계약 얘기가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오게 됐어요.”

문성민은 2010~2011시즌을 앞두고 한국전력과 트레이드를 통해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었다. 다만 드래프트 문제로 1라운드 출장 정지 징계는 감수해야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펄펄 날았다. 한 라운드를 뛰지 않았음에도 불구, 24경기 79세트를 소화하며 득점 부문 6위(416점)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선수 가운데 그보다 많은 득점을 올린 건 박준범(475점)이 유일했다.

국내로 돌아온 이후 문성민은 팬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았다. 매년 올스타로 선정되며 2013, 2016년 두 차례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2015~2016시즌에는 정규리그 우승과 MVP도 경험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시즌, 그토록 꿈꿔왔던 챔피언 자리에도 올라보았다. V-리그에서 뛴 지 일곱 번째 시즌 만이었다. 문성민은 우승이 확정된 순간 코트에 누워 한 동안 일어나지 못한 채 프로 데뷔 후 첫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많은 것이 함축된 눈물이었다. 너무나 오래 기다렸던 순간이기도 했다. 때로는 ‘문성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부담을 안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왜 문성민인지를 스스로 증명해보였다. 

그에게 물었다. “만약 이번에도 우승을 하게 된다면 문성민 선수의 눈물을 또 볼 수 있는 건가요?” “아무래도 나오지 않을까요? 올 시즌에 우승을 거두게 된다면 더 기쁠 것 같아요.” 문성민의 말이다.

주장과 가장의 책임감, 문성민이 말하다시호와 리호, 두 아이의 아빠가 되다

#좋은_아빠_될_수_있겠죠? #아내에게는_미안할_뿐

2015년 결혼에 골인한 문성민은 이듬해에 첫째 아들 시호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2018년 1월 16일에는 둘째아들 리호가 세상을 향해 힘찬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수많은 여성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꽃미남 선수에서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 그에게 힘을 주는 건 역시나 가족이었다. “아무래도 배구를 하는 데 있어 가족들이 큰 힘이 돼요. 아들도 두 명이나 있잖아요. 집에 가서 얼굴만 봐도 힐링이 됩니다.”

아빠가 되고 나서 책임감도 부쩍 늘었다. 문성민은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고민을 많이 한다고 했다. “아이가 있다 보니 행동 하나 하나에도 조심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생각을 많이 해요. 제가 집에 자주 가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아내가 애기를 혼내기라도 하면 저는 왜 혼내냐고 말하게 되더라고요. 고민이 많아요.” 아이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문성민은 선수가 아닌 아빠였다.

V-리그, 더 나아가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지만 과연 아이들은 아빠가 배구선수라는 것을 알까. 그러자 문성민은 “배구선수라는 것을 아는 지는 잘 모르겠어요”라며 “TV에 배구가 나오거나 공만 보면 무조건 ‘아빠, 아빠’해요. 요즘에는 서브 치는 것도 따라 해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이렇게 조그만 애가 이런 걸 어떻게 알까 신기해요”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 집에 갔을 때였어요.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아이가 맨발로 뛰어나와 안기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라고 전했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시즌이 한창 중이었지만 문성민은 최태웅 감독의 배려로 둘째 아들 탯줄을 직접 자를 수 있었다. 둘째는 첫째 때와 느낌이 또 달랐단다. “첫 째는 첫째다 보니 와닿는 게 컸죠. 솔직히 둘째는 그것보다는 덜했어요. 그런데 막상 탯줄을 자르는 순간에는 가슴이 뛰기 시작하더라고요. 첫째 때보다도 기쁨이 두 배는 된 것 같아요.”

다만 아내에게는 미안함이 크다. “지금 굉장히 힘든 시기에요. 조리원에서 나와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두 시간마다 깨서 모유 수유를 하고 있어요. 통화를 하거나 집에 가면 거의 좀비처럼 있어요. 너무 미안하죠. 만약 저한테 애를 보라고 한다면 저는 차라리 배구를 한다고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집에 가는 날이면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집에 가면 아이랑 많이 놀아주려고 해요. 평소에는 장인어른께서 잘 놀아줘서 장인어른만 찾는데 제가 집에 오면 장인어른은 쳐다도 안 봐요. 그러면 장인어른이 굉장히 섭섭해 하시기는 하지만(웃음) 그래도 아빠라고 저를 따르는 걸 보면 뿌듯해요.”

주장과 가장의 책임감, 문성민이 말하다Epilogue 언젠가 배구공을 손에 내려놓는 날이 오겠죠? 

#목표는_즐겁게_배구하기 #후회없이_밝게_자신있게

처음 배구공을 손에 든 이후로 어느새 2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이 겪었다. 그런 그가 잊지 못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2008년 월드리그? 아니면 독일 진출? 혹은 우승의 순간? 그러나 예상은 철저하게 빗나갔다. 다소 허무하기까지 하다 해야 할까. “매 시즌 많은 경기를 치르잖아요. 이기고 지고에 따라 업다운이 심한 편이라 지난 경기는 잊는 것 같아요. 크게 기억에 남는 경기는 없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바꿔 보았다. 그렇다면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을까. 그는 “중학교 때는 운동하는 친구들에 비해 키가 작은 편이었어요. 그 때 잠깐 고비가 왔어요. 부모님 얘기를 들어봐도 운동을 그만 시켜야 하나 고민하셨다고 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문성민 말을 들어보면 키가 늦게 큰 편이라고. “중학교 3학년 때 180cm가 안됐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올라갈 때 190cm가까이 컸죠. 같이 배구하던 친구들도 다 놀랐어요.”

수술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 2013년 월드리그 일본과 경기에서 왼쪽 무릎 인대가 파열되며 수술대에 올랐던 문성민은 2017년 부상 부위를 고정했던 핀이 헐거워져 다시 수술을 받았다. 그는 “지금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수술하고 복귀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라고 떠올렸다. 

올해 한국 나이로 33살이 된 문성민. 이제는 배구를 할 날이 한 날보다 적을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아직은 먼 이야기지만 훗날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을까. “그냥 코트장에서 아이처럼 신나게 뛰어다니는 선수였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그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일 힘든 바람이기도 했다. “배구를 하는 동안은 즐겁게 배구를 했으면 해요. 후회없이, 즐겁게, 밝게 뛰어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글/ 정고은 기자  

사진/ 유용우 기자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3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2018-03-23   정고은([email protected])

저작권자 ⓒ 더스파이크.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1

소위 호날두샷짱빵

2018.03.24 14:22:55

강동원 느낌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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