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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 추적] ‘17년 잠실야구장 노예’ 서울시는 알고 있었다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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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5 (목) 16:22

                           


 
-17년 착취 피해자 A씨는 공포에 떨고 있다
-서울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 박영준 소장 “A씨 존재 자체를 몰랐다.”
-잠실종합운동장 관계자들 “몇 년 전 사업소에서 A씨 내보내려 했다.”
-무관심·방치로 발생한 잠실 한복판 현대판 노예 사건, 책임은 누가 지나
 
[엠스플뉴스]
 
“바로 옆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니 정말 충격입니다.”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관계자가 '엠스플뉴스에게 한 말이다. 그는 ‘17년 잠실운동장 착취’ 사건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관계자는 “평소 그분 얼굴은 가끔 봐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그런 환경에서 일하고 계실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는 3월 12일 현대판 노예 사건인 ‘17년 잠실운동장 착취’ 사건을 조사했다. 피해자의 근무 경위와 임금 체납, 인권침해 여부 등을 조사한 인권센터는 경찰에 수사 의뢰한 것으로 확인됐다. 
 
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60대 남성 피해자 A씨는 2001년부터 17년 동안 잠실야구장 옆에 있는 적환장(분리수거장)에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매일 18시간 이상씩 근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적장애가 있는 A씨는 그간 버려진 빵을 주워 먹고, 열악한 임시 컨테이너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A씨는 사업소나 잠실야구장 소속으로 정식 고용되지 않은 채 쓰레기 분리수거 업무를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주위의 무관심 속에 A씨는 한해 200만 명 이상이 찾아오는 화려한 불빛의 잠실야구장에서 무려 17년간 착취의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인권센터는 "A씨를 한 쉼터에서 보호 중"이라고 밝혔다. 
 
센터 관계자는 “A씨는 '17년 동안 잠실운동장 부지 밖을 나간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경찰서를 방문했을 때도 '이런 동네는 처음 와 본다'고 하셨다. 무연고자는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가족이라면 17년 동안 A씨를 그렇게 방치하지 않았을 거다. 성인 장애인이시고, 부모님이 계시는 것도 아니기에 법적으로 보호자가 없다고 봐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센터 측에 따르면 A씨를 고용한 것으로 알려진 민간 고물상 업자 B씨는 센터를 직접 방문해 이번 사건을 해명했다. 
 
B씨는 '잠실야구장 청소 용역업체와 분리수거 처리 계약을 맺고서 업무를 진행했다'며 '임금은 A씨의 가족을 통해 지급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센터 관계자는 “A씨가 B씨와 만나는 걸 두려워한다. 우선 B씨가 가해자로 추정되기에 두 사람간의 접촉은 피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업소 박영준 소장의 해명 “우린 A씨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잠실운동장 한복판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17년 야구장 착취’ 사건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 걸까. 우선 잠실야구장 1루 측 바깥에 위치한 적환장은 서울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가 소유한 부지다. 사업소가 적환장을 관리·감독하는 책임까지 맡았다고 봐야 한다는 게 법조인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엠스플뉴스’가 3월 12일 찾아간 해당 적환장 대문 앞엔 사업소장 이름으로 붙여진 경고판이 부착돼 있었다. A씨가 없기에 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지만, 재차 적환장을 찾았을 땐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센터 측의 수사 의뢰를 받은 송파구 경찰 관계자가 사업소 관계자들과 함께 현장 조사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한 치의 은폐나 숨기는 게 있어선 안 된다. 사업소 측은 있는 그대로를 다 밝히고, 경찰 수사에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경찰의 현장 조사엔 사업소 박영준 소장도 함께했다. ‘엠스플뉴스’는 사업소를 대표하는 박 소장의 해명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우선 박 소장은 A씨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강조했다. 박 소장은 “적환장에서 이런 착취 사건이 벌어졌는지 정말 몰랐다. 경찰 조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안다. 정확한 조사 결과가 나오는 게 중요하다. 일단 적환장을 관리·감독 해야 할 우리 사업소가 그런 사실을 몰랐단 잘못은 인정한다”며 고갤 숙였다.
 
박 소장은 가해자 B씨와 사업소 측이 서로 아는 관계임을 인정했으나, 직접적인 계약 관계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박 소장은 “우리 사업소가 A씨의 고용주로 알려진 B씨를 몰랐던 건 아니다. B씨의 전화번호도 알고, 실적 관련 보고도 받았다. 다만, B씨와 우리가 직접 적환장 관련 계약을 맺은 건 아니다. B씨도 '잠실야구장 관리본부가 위탁한 청소 용역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안다. 따라서 계약 관련 부분은 잠실야구장 쪽에 물어보는 게 맞다”는 말로 B씨와의 적환장 계약과 관련한 직접적인 책임 관계는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잠실종합운동장 관계자 "서울시 사업소가 A씨 존재를 몰랐다? 몇 년 전 서울시 사업소가 A씨 내보내려 했다."
 


 
서울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는 2001년부터 잠실야구장을 사용하는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에 야구장 관련 용역 청소 관련 업무를 위탁했다. LG와 두산이 함께 운영하는 '잠실야구장 관리본부'는 청소 용역 업체를 따로 선정해 야구장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사업소의 입장대로라면 서울시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잠실야구장 관리본부'가 깊은 관련이 있다. 과연 그럴까. 해당 사건을 잘 아는 한 잠실운동장 현장 관계자는 사업소의 이런 주장을 ‘꼼수’라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사업소가 적환장과 청소 용역 업체의 계약 관계를 강조하는 건 초점을 흐리는 행동이다. 중요한 건 A씨가 어떻게 그리고 왜 적환장에 들어왔는지다. 분리수거 된 쓰레기를 정리해서 적환장 앞까지 갖다 놓는 것까지가 용역 업체의 책임이다. 적환장은 사업소 부지다. 적환장을 관리하고 책임질 의무가 있는 것도 사업소다. 잠실야구장과 적환장 사이에 무슨 공식 계약 관계가 있는 것처럼 말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엠스플뉴스가 잠실야구장 측에 직접 문의한 결과 잠실야구장 관리본부는 "B씨나 적환장 모두 우리와 어떠한 공식 계약도 없다"며 “B씨의 전화 번호뿐만 아니라 이름도 모른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다른 잠실운동장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계약’이 아닌 ‘방치’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사업소 부지인 적환장에서 장애인이 17년간 방치된 채 학대받았다는 거다. 자신들의 부지에서 발생한 이 착취 사건을 관리 책임이 있는 사업소가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느냐. 지금 와서 복잡한 계약 관계를 들이대며 책임 공방에서 빠져나가려는 서울시와 사업소를 보면 '이분들이 정말 인권보호를 운운하던 분들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사업소가 예전부터 A씨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증언하는 이들도 있다.
 
잠실야구장 관계자는 “17년째 한 장소에서 계속 일했는데 사업소가 몰랐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몇 년 전에 사업소에서 A씨를 내보내려고 했고, 잠실야구장 측에서도 관련 건의를 사업소에 올린 것으로 안다"며 "사업소가 A씨의 존재를 알면서도 방치한 모든 책임을 질까 봐 A씨 자체를 몰랐다는 말로 관리 소홀의 책임까지만 인정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사업소의 무관심·방치가 만든 17년의 비극
 


 
취재 결과 사업소엔 적환장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주무관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엠스플뉴스’가사업소 관계자와 직접 통화하는 과정에서 과정에서 이 사실이 밝혀졌다.
 
엠스플뉴스가 '적환장 관리의 직접적인 책임자 유·무'를 묻자 사업소는 처음엔 “직원 몇 명이 다 함께 관리한다”라며 애매한 답변을 내놨다가 “C 주무관이 적환장 관리를 담당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사업소 홈페이지에 명시된 C 주무관의 업무 내용엔 '적환장 관리'가 적혀 있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책임을 져야 할 주체가 누구냐는 질문에 사업소 박영준 소장은 “당연히 적환장을 담당하는 주무관이 있다. 관련 사안을 다 파악 못 한 건 우리 사업소 잘못”이라면서도 “나도 그렇고 해당 주무관도 지난해 7월에 사업소로 와서 업무를 시작했다. 앞으로 적환장 관리 방법을 고민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겠다”란 말로 사업소가 어떤 책임을 질지에 대해선 명확한 대답은 피했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건 A씨다. 사업소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 A씨는 17년이라는 긴 세월을 잠실운동장 적환장이라는 감옥 안에 갇혀 살았다. 
 
경찰의 적환장 조사를 지켜본 잠실야구장 현장 관계자는 “다시는 이런 '현대판 노예'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서울시가 책임 관계를 명확히 파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철저하게 세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찰 조사가 끝나자 적환장의 철문은 다시 굳게 닫혀졌다. 진실을 회피하고, 은폐하려는 이들은 적환장의 철문이 계속 닫혀있길 바랄지 모른다.
 
김근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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