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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투어 Diary⑤] 인천, ‘국가대표’ 김주성이 최고가 되었던 곳

일병 new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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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8 (목) 13:11

                           

 



[은퇴투어 Diary⑤] 인천, ‘국가대표’ 김주성이 최고가 되었던 곳



[점프볼=김용호 기자] 김주성(38, 205cm)의 은퇴투어 일정이 어느새 절반을 넘어섰다. 다섯 번째 은퇴투어로 그가 찾아온 곳은 인천. 그는 이곳에서 ‘국가대표’라는 자격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기억을 되새기며 또 하나의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원주 DB는 지난 7일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와의 5라운드 맞대결에서 80-93으로 패배하며 시즌 3번째 2연패에 빠졌다. 팀은 패배했지만 김주성은 이날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추억하며 값진 시간을 가졌다. 그의 다섯 번째 은퇴투어, 과연 김주성의 마지막 인천행은 어땠을지 함께 되돌아보자.




[은퇴투어 Diary⑤] 인천, ‘국가대표’ 김주성이 최고가 되었던 곳



▶GAME STORY : 김주성의 시간 조절, DB의 잔여시즌 과제


 


이날 경기에 앞서 이상범 감독은 앞으로 김주성의 출전 시간을 더 줄여나갈 것을 예고했다. 이 감독은 “(김)주성이가 무릎에 노화현상이 왔다. 시즌 시작하기 전에 3라운드까지 버틸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버틴 것을 보니 정말 고맙다. 이제 10분 미만으로 시간을 조절할 것이기 때문에 3쿼터에 쓰기가 힘들 것이다”라며 구체적인 내용까지 밝혔던 상태.


 


이 감독의 말대로 김주성은 이날 4쿼터 7분 13초를 남기고 처음으로 코트에 모습을 드러냈다. DB는 김주성의 합류로 추격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4쿼터 후반 경기의 분위기는 좀처럼 뒤집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김주성은 경기 2분 28초를 남기고 벤치로 물러났다. 이날 김주성은 4분 45초를 뛰는 동안 1점 2리바운드를 기록했다. 3점슛 시도는 없었다. 


 


한편 김주성은 이번 시즌 후배들의 맹활약을 지켜보면서 “이제 내가 없어도 되겠다”라는 말로 팀원들을 다독여왔다. 다음 시즌에는 김주성이 정말 팀에 남지 않는다. 남은 11경기에서 어떻게 새로운 팀을 꾸려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숙제를 안겼던 은퇴투어 경기였다. 




[은퇴투어 Diary⑤] 인천, ‘국가대표’ 김주성이 최고가 되었던 곳



 



▶전자랜드‘s PRESENT : 인천에서 완전체가 된 사인볼


 


전자랜드는 이날 경기 시작에 앞서 김주성의 은퇴투어를 축하하기 위한 기념식을 열었다. 기념식의 시작을 알리는 헌정 영상에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동료들(김종규, 이종현, 조성민, 오세근, 양동근, 박찬희)의 응원 메시지에 이어 전자랜드 주장 정영삼의 인사도 담겨있었다.


 


정영삼이 먼저 팀을 대표에 김주성에게 당시 아시안게임 영광의 순간이 담긴 기념 액자를 전달했다. 이후 박찬희가 전달한 선물은 김주성의 가슴을 울리는 특별한 것이었다. 바로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이란과의 결승전에 사용되었던 공인구. 하지만 그저 경기에 사용되었던 공인구가 아니었다. 전자랜드 구단은 이 공인구에 유재학 감독을 비롯해 당시 코칭스탭과 선수들의 사인을 모두 받아왔다. 


 


동료들의 소중한 사인이 담긴 공인구를 건네받은 김주성은 본인의 사인을 즉석에서 새겨 넣으면서 비로소 선물을 완전체로 만들었다. 모든 기념식 식순을 마친 김주성은 “인천은 아시안게임 덕분에 더욱 특별한 곳이다. 원정팀 선수에게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전자랜드 구단과 오늘도 경기장을 찾아 응원해주시는 팬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저희 팀뿐만 아니라 전자랜드도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며 소감을 전했다.




[은퇴투어 Diary⑤] 인천, ‘국가대표’ 김주성이 최고가 되었던 곳



▶LEGEND’s MEMORY : ‘국가대표 김주성’, 전무후무한 2개의 AG 금메달


 


‘원주 동부’ 김주성은 지난 2015년 1월 6일 이곳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대기록 하나를 추가했다. 바로 정규리그 통산 3,830번째 리바운드를 잡아내며 당시 이 부문 공동 2위였던 조니 맥도웰(3,829개)을 제치고 단독 2위로 올라선 것. 김주성은 자신이 리바운드로 잡아낸 그 당시의 공인구에 사인을 하며 역사적인 순간을 간직했다.


 


하지만 그에게 인천이라는 곳은 ‘국가대표’로서의 추억이 더욱 진하게 남아있었다. 바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이어 2014년 인천에서도 우승을 차지, 한국 프로농구 선수 최초로 2개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영광스러운 업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7일 전자랜드와의 경기에 앞서 만났던 김주성은 이때를 회상하며 “정말 특별한 추억이다. 앞으로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나 혼자 가지고 있는 기록이지 않나. 더욱이 마지막 대표팀 생활이었기 때문에 더 의미가 깊었던 추억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예상보다 더 뜨겁게 팬들의 환호를 불러일으켰다. 객관적으로 더 강팀이라 평가됐던 상대를 모두 물리치며 홈에서 정상에 올랐기 때문. 


 


김주성도 많이 힘들긴 했었다는 솔직한 모습을 보이면서 “강팀을 워낙 많이 만났다. 하지만 한국에서 하는 대회였기 때문에 일단 결승을 꼭 가고 싶었다. 그런데 결승에서 우리가 중요할 때 많이 졌었던 이란을 만났고, 설욕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지 않았나라고 생각한다”며 당시 결승전을 회상했다.


 







 

[은퇴투어 Diary⑤] 인천, ‘국가대표’ 김주성이 최고가 되었던 곳



대표팀이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우승 세레모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팀원들이 김주성을 위해 헹가래를 쳤던 순간이다. 이에 김주성은 “정말 좋았다. 후배들이 내가 마지막 대표팀인걸 알고 배웅을 잘 해준 것 같다(웃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동료들을 향해 다시 한 번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국가대표’ 김주성은 항상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그에게 국가대표의 의미를 묻자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갔던 곳이다. 아프던 아프지 않던 불리면 무조건 가야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항상 대표팀에 가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성적을 내고 이기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허무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가슴에 태극마크가 있었기 때문에 더 투지 있게 싸웠던 것 같다”며 진심이 담긴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한편 그의 소속팀에서도 최근 또 한 명의 국가대표 후배가 나왔다. 김주성은 새로운 도전을 앞둔 두경민에게 “배우고 오겠다는 건 아닌 것 같다. 잘하고 와야 한다(웃음). 잘해서 이기고 오길 바란다. 나라를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팀을 만나더라도 투지 있게 뛰어서 이기고 왔으면 좋겠다”며 응원의 한 마디를 전했다.


 


# 사진_점프볼 DB(한필상, 문복주, 홍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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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소위 호날두샷짱빵

2018.02.08 13:18:46

얼굴보소 폭삭 늙었네

병장 대충놀자

2018.02.08 13:28:18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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