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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수술받고 일어선 노수광, 와이번스의 심장이 되다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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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2 (목) 08:27

                           


심장 수술받고 일어선 노수광, 와이번스의 심장이 되다

중학교 재학 당시 심장 문제로 수술대…아픔 딛고 우뚝

신고선수 꼬리표 떼며 '희망의 증거'로





심장 수술받고 일어선 노수광, 와이번스의 심장이 되다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의 주전 1번 타자 '노토바이' 노수광(29)은 아픈 심장을 갖고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작은 구멍이 있었는데 당시 의료 기술로는 치료하기가 힘들어 방치했다고 한다.

부모는 운동을 권유했다. 노수광은 대전 유천초등학교 3학년 때 축구로 운동을 시작했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야구로 전향했다.

고교 시절까지 야구선수 생활을 했던 아버지의 권유가 컸다.

노수광은 "당시엔 뛰는 게 마냥 좋았다"며 "심장 아픈 줄 모르고 즐겁게 뛰었다"고 말했다.

심장 문제가 드러난 건 청주중학교 1학년 때다.

노수광은 "당시 훈련을 하는데 갑자기 숨이 차서 다리가 풀리고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더라"고 말했다.

노수광은 병원 정밀 검진 결과 바로 심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소견을 받았다.

갈비뼈를 들어내는 대수술이었다. 다행히 수술 결과는 좋았다.

노수광은 "수술을 받을 때 그리 걱정이 되지 않더라. 한국의 의료기술이 많이 발전했다고 해서 편안하게 수술실로 들어갔다"며 웃었다.

그는 수술 후에도 야구를 계속했다. 그가 침대에 누워있던 기간은 고작 4개월뿐이었다.

노수광은 "갈비뼈가 붙은 뒤 곧바로 야구부에 복귀했다. 많이 뛰고 싶었다"고 말했다.

심장 수술 이력은 그의 열정과 의지를 꺾지 못했다.

노수광은 청주고에 진학해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무럭무럭 성장했다.

주력과 수비력은 또래 친구 중 적수가 없을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타격이 약간 아쉬웠다.

부족한 타격 실력 때문에 그는 프로 구단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노수광은 건국대에 진학한 뒤 다시 한번 프로행에 도전했다. 그러나 두 번째 도전도 실패로 끝났다.

그는 2013년 신인드래프트 대신 신고 선수(육성 선수)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심장 수술받고 일어선 노수광, 와이번스의 심장이 되다

프로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그는 2014년 단 한 경기에 출전했고, 2015년엔 10경기에 나와 타율 0.083의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됐다. 희망을 갖기 힘든 시기였다.

노수광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특히 함께 트레이드된 오준혁이 새 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모습을 보고 많은 자극을 받았다.

노수광은 "오준혁을 보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희망이 생기더라"고 말했다.

그는 프로 생활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밤잠을 설쳐가며 상대 투수들을 분석하고 연구했다.

절실함은 조금씩 결과로 표출됐다.

노수광은 2016년 77경기에서 타율 0.309, 12도루를 기록하며 주전 경쟁에서 살아남았고, 2017년엔 풀타임 출전해 타율 0.285, 16도루를 기록했다. 그는 어느덧 KIA 외야 자원의 미래가 됐다.

노수광은 2017년 포수가 필요했던 KIA의 팀 내 사정으로 4-4 트레이드를 통해 SK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비룡 군단의 톱타자로 지난 시즌 한국시리즈 우승에 힘을 보탰다. 올 시즌에도 꾸준히 고정 1번 타자로 맹활약 중이다.

심장 수술과 신고 선수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이룬 값진 결과다.

노수광은 "KIA로 이적한 첫해부터 뚜렷한 목표를 만들고 이를 향해 도전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며 "아직 난 완벽한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계속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는 모습으로 프로 생활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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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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