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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훈의 골프산책] 역전패당하고도 스타덤 오른 한상희 "내 꿈은 이제 시작"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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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5 (화) 05:26

                           


[권훈의 골프산책] 역전패당하고도 스타덤 오른 한상희 "내 꿈은 이제 시작"







[권훈의 골프산책] 역전패당하고도 스타덤 오른 한상희 내 꿈은 이제 시작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 "골프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천번도 넘게 했죠.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지난 23일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비씨카드·한경 레이디스컵에서 한상희(29)는 7위를 차지했지만, 우승자 조정민(25) 부럽지 않은 주목을 받았다.

한상희는 3라운드까지 신들린 샷으로 3타차 선두를 달렸으나 최종일에는 5타를 잃어 7타차 역전패의 쓴맛을 봤다.

하지만 10년 동안 바닥만 헤맸던 무명 선수의 뜻밖의 선두권 질주는 나흘 동안 골프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큰 키와 긴 팔다리에 겅중겅중 뛰다시피 걷는 모습도 새로웠고 어색하고 불편한 자세로도 홀에 쏙쏙 빨려 들어가는 신기한 퍼트도 화제가 됐다.

경기가 끝난 뒤 한상희는 난생처음 팬들에 둘러싸여 사인 요청 공세를 받았다. 처참한 실패를 겪었지만, 표정은 더없이 밝았다.

꿈처럼 지나간 나흘 동안 대회를 마친 한상희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얻은 게 너무나 많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가장 큰 수확은 무엇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조금이나마 얻은 것"이라고 그는 밝혔다.

"천번도 넘게 골프를 그만두고 싶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아직은 더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절대 그만두지 말라는 계시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 골프 선수로서 한상희의 삶은 그동안 실패와 좌절뿐이었다.

골프 입문부터 그랬다. 남보다 한참 늦은 중학교 3학년 때 골프채를 쥔 한상희는 주니어 시절에 한상희는 어디 내놓을만한 성적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뜀박질을 좋아해서 육상과 테니스를 했지만, 대회에 나간 적은 없다. 우연히 골프 연습장에서 골프채를 휘둘러봤다. 그 손맛이 짜릿했다. 그때부터 골프 선수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6개월 동안 레슨을 받은 한상희는 골프 선수가 됐지만 이후 거의 독학으로 골프를 연마했다. 기본기가 탄탄할 리 없으니 나가는 대회마다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2009년 프로가 됐지만 2부투어를 벗어나는 데 5년이나 걸렸다.

잠재력을 인정받아 2부투어에 뛰면서도 대기업인 한화 로고를 3년이나 달았지만, KLPGA투어 시드전을 볼 때마다 낙방의 연속이었다.

한화 골프단 김상균 단장은 "스윙 스피드가 굉장히 빨랐다. 비거리는 장타로 소문난 박성현과 맞먹었고 아이언샷 스핀도 어마어마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2014년 어렵사리 입성한 KLPGA투어도 실패로 점철됐다. 매년 시드를 잃고, 다시 따기를 반복했다.

2104년 상금랭킹 65위, 2016년 상금랭킹 103위, 2017년 상금랭킹 91위.지난해 상금랭킹 81위가 지난 4개 시즌 KLPGA투어에서 거둔 성적이다. 2015년에는 시드를 회복하지 못해 2부투어에서 뛰어야 했다.

한상희는 "욕심과 실력의 갭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고 했다.

올해도 비씨카드·한경 레이디스컵에 앞서 6개 대회에서 딱 한번 컷을 통과했다. 그나마 꼴찌나 다름없는 57위였다.

가장 큰 문제는 퍼트였다.

"바람이 엄청나게 부는 가운데 시드전을 치렀는데 치는 샷마다 홀 3m 옆에 붙을 세울 만큼 샷이 기가 막혔다. 그런데 거기서 매번 3퍼트를 했다. 미치는 줄 알았다"

퍼트가 얼마나 안 됐던지 한상희는 입스에 빠지고 말았다. 그린에 볼을 올려놓고 걸어가는 동안 "숨이 막히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길 빌 뿐이었다"고 할 정도였다.

퍼트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안 해본 짓이 없다"고 말했다. 그립도 수십번 바꿔봤고 퍼트 자세는 이 세상에 있는 건 다 해봤다.

"하루에 10시간씩 퍼트 연습만 했다. 그런데도 전혀 나아지질 않더라.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니 더 괴로웠다"고 그는 고통스러웠던 나날을 회상했다.

밝고 쾌활한 성격도 변했다.

"골프가 안 되니 우울증이 생겼다. 공황장애까지 왔다"는 그는 "경기 나갈 때마다, 연습 라운드마다 내 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천번도 더 들었다"고 밝혔다.

한상희는 그러나 끝내 골프를 접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주변에는 '너는 언젠가 잠재력을 발휘할 날이 온다'며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하시는 분이 너무 많았다. 그만 두고 싶을 때마다 말리는 바람에 반신반의하면서 10년을 계속했다"

한상희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말한 사람은 부친 한창수(60)씨다. 한 씨는 딸을 골프 선수로 키우려고 한때 골프 연습장을 차려 운영했고 필리핀 전지훈련 때 딸이 혼자 라운드를 도는 게 안쓰러워 좋아하지도 않는 골프를 억지로 배울 만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했다.

부친 한 씨는 한상희가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캐디로 나섰다.

한상희는 "10년 동안 프로로 뛰면서 상금 수입이 다해서 2억원 남짓이다. 적자 인생도 그런 적자 인생도 없다"면서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해주신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일찌감치 그만뒀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훈의 골프산책] 역전패당하고도 스타덤 오른 한상희 내 꿈은 이제 시작



한상희는 지난해부터 퍼트 부진에서 조금씩 벗어날 조짐을 보였다.

이번 대회에서 눈길을 끈 괴상한 퍼트 자세 덕을 봤다. 양발을 모으고, 양팔꿈치를 날개처럼 펼치고, 어깨를 움츠린 채 공을 때리는 한상희의 퍼트는 보는 사람도 불편할 만큼 이상하다.

"하다 하다 안돼서 내가 고안한 자세다. 퍼트 스트로크 때 손목을 고정하는 게 가장 큰 과제였는데 이 자세로는 손목이 딱 고정됐다"

친구이자 스윙 코치인 코리안투어 선수 김민수(29)는 "자세가 불편해야 입스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상희도 "자세가 불편하니까 딴 생각을 않게 된다"고 맞장구를 쳤다.

퍼팅 전문 코치인 최종환 원장은 "다양한 시도를 하며 결국 기존 틀에서 벗어나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괴상한 '한상희 표' 퍼트 자세는 5년이나 됐지만 정착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찾아다닌 코치마다 "그런 자세로는 절대 좋은 퍼트를 못 한다"고 뜯어말린 때문이다.

한상희는 "우스꽝스럽다고들 하지만 이제 누가 뭐래도 그 자세로 퍼트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이 퍼트 자세를 '괜찮다'고 말해준 사람은 친구 김민수 뿐이었다"고 덧붙였다.

한상희는 비씨카드·한경 레이디스컵에서 평균 28개의 퍼트를 기록했다. 한 번도 30개 이내로 들지 못했던 한상희에게는 놀랄만한 사건이다. 나흘 평균 타수는 69.75타. 정상급 선수가 부럽지 않았다. 최종일 77타를 쳤지만 앞서 1∼3라운드는 사흘 연속 60대 타수를 적어냈다. 3라운드 연속 60대 타수는 난생처음이다.

한상희는 "3라운드 대회였다면 우승"이라고 멋쩍게 웃었다.

비씨카드·한경 레이디스컵은 한상희에게 어떤 의미일까.

한상희는 "끝이 없이 긴 어두운 터널을 걷고 있는데 저 멀리 조그만 빛이 보인 느낌"이라고 말했다.

놀라운 성과를 낸 퍼트도 퍼트지만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잠재력이 조금씩 꿈틀거리는 것 같다"는 한상희는 "원래 부정적인 생각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편인데 이번 대회로 더는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라던 나에 대한 의구심이 많이 걷혔다"고 밝혔다.

"샷이나 퍼트나 힘들이지 않고 툭툭 쳐내면 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팍 왔다. 3라운드까지는 골프가 이렇게 쉽구나 하는 조금은 건방진 생각까지 했다. 그만큼 그동안 골프를 어렵게 여겼고 힘들게 쳤다"

"사실 마지막 날 그렇게 긴장하지도 않았다. 한번 경험이 있어서일까 싶다"는 한상희는 "한 번 더 우승조에서 경기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 날 18번 홀에서 짜릿한 버디를 잡고 경기를 마감한 한상희는 "그 버디가 내게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다. 전날 거기서 트리플보기를 했다. 그걸 갚아준 것 같고 답답했던 경기에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라 나도 모르게 격한 버디 세리머니를 했다"고 설명했다.

"갤러리가 많은 곳에서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해낸 건 이제 더는 새가슴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한상희는 "무대 체질로 바뀌나 보다"라며 깔깔 웃었다.

한국 나이로 서른살인 한상희는 "골프가 안돼서 그만두고 싶었을 뿐이니 나이가 많아서 그만둬야겠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언제까지나 골프 선수로 뛰고 싶다"면서 "이제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 끝까지 살아남겠다"고 다짐했다.

23일 격전을 치른 뒤에도 이튿날 새벽 4시에 친구들과 골프를 쳤다는 한상희는 "내 꿈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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