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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 특집] “아프니까 가족이다”, 원 씨네 ‘삼부자’의 야구 이야기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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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1 (금) 18:01

                           
-야구로 더욱더 단단해진 원민구, 원태진, 원태인 삼부자
-'야구와 가족애로 이겨낸 아픈 가족사' 
-원태인 "내년엔 가족들에게 신인상으로 보답할 것"
 
[엠스플 특집] “아프니까 가족이다”, 원 씨네 ‘삼부자’의 야구 이야기

 
[엠스플뉴스]
 
“모두 가족 덕분입니다.”
 
‘2019 신인 1차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지명을 받은 경북고 원태인. 식장에 선 그의 첫 마디는 ‘가족’이었다. 19세 학생 선수에겐 흔치 않은 말이었다.   
 
원태인의 아버지는 대구 협성 경복중 원민구 감독이다. 실업 야구 소속으로 제일 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은퇴 후엔 경복중을 맡아 22년째 학생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현 삼성 라이온즈 김상수, 구자욱 등이 그의 제자다. 지역 야구계에선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지도자로 통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원태인의 형 원태진도 프로 야구 선수였다. SK 와이번스에 지명됐지만, 부상으로 이른 시기에 유니폼을 벗었다. 현재는 경복중 메인 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이정도면 '야구인 가족'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삼부자의 야구 인연은 순탄치 않았다. 겉보기엔 화려했지만, 그 속엔 아픔과 상처가 공존했다. 그때마다 야구는 삼부자의 큰 힘이었다. 위기를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한 삼부자의 야구 이야기를 들었다.  
 
원민구 감독 "편애? 공정함은 내 야구의 마지막 자존심"
 
[엠스플 특집] “아프니까 가족이다”, 원 씨네 ‘삼부자’의 야구 이야기

 
요즘 원민구 감독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큰 아들(원태진)에 이어 막내 아들(원태인)까지 프로 입단의 꿈을 이뤘기 때문이다. 수많은 제자를 프로에 보냈음에도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큰 걱정 하나 덜었다. 큰 아들도 프로에 갔고, 이젠 막내까지 자기 자릴 찾았다. 이 정도면 행복한 아버지 아닐까(웃음). 요즘엔 말과 행동에 더욱 신경 쓰고 있다. 최근엔 집에서도 사소한 말 한마디까지 조심하는 편이다. 두 아들 모두 어엿한 야구인아닌가. 이제부턴 같은 야구인으로서 존중해주고 싶다.” 원 감독의 말이다. 
 
공교롭게도 두 아들 모두 원 감독의 지도를 거쳤다. 그때마다 아버지란 이름표를 잠시 숨겼다. 철저히 지도자로서 두 아들을 대했다. 
 
“운동장에선 철저히 감독이었다. 두 아들에게 모질면 더 모질었지 덜하진 않았다. 집에선 내 아들이지만, 운동장에선 한 명의 선수다. 주변에선 편애니 특혜니 하는 소릴 한다. 내 야구에 편애란 없다. 그것은 내 자존심이다. 그 기준을 지켰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엠스플 특집] “아프니까 가족이다”, 원 씨네 ‘삼부자’의 야구 이야기

 
‘야구 선수 키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야구 지도자로선 여러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원 감독 역시 말 못할 고충이 많았다고 했다. 
 
“정말 답답했다. 지금까지 아이들을 키우면서 학교 감독 한 번 찾아간 적이 없다. 당시 아마추어 지도자 대부분이 내 후배들이었다. 내가 찾아가면 아무래도 부담 아니었겠나. 학부모 회의 역시 회비만 보냈다. 나라고 하고 싶은 말이 왜 없었겠나. 말을 아낀 이유는 같은 지도자이자 학부모로서, 그들을 배려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추억 아닌 추억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간 두 아들에게 피해가 갈까 마음 놓고 술 한 잔 기울이지 못했다. 천하의 원 감독도 아이들 앞에선 평범한 가장이었다. 
 
원 감독은 “아이들이 야구를 선택했을 때 내심 걱정이 많았다. 그런 까닭에 스스로 더욱 절제하고 조심했다. 다행히 크면서 말썽 한 번 부리지 않았고, 성공 여부를 떠나 건강하게 자라줬다. 그건 아버지로서 제일 큰 행복”이라며 미소 지었다.   
 
루머(Rumor)
 
[엠스플 특집] “아프니까 가족이다”, 원 씨네 ‘삼부자’의 야구 이야기

 
영광 뒤엔 어둠이 존재한다. 원민구 감독 역시 그랬다. 아픔이 많았다. 두 아들을 향햔 음해성 소문엔 가슴이 내려앉는 듯했다. 특히 큰 아들 원태진 씨를 경복중 코치 자리에 앉혔을 때, 역풍이 불었다. 
 
“원래 태진이는 야구를 계속하려 했다. 그때 큰 아들을 주저앉힌 게 바로 나다. 선수로선 경쟁력이 없다고 봤다. 하지만 지도자로선 능력이 보였다. 당시엔 중학교 코치 영입도 쉽지 않았다. 대우보단 고생이 큰 자리였다. 이왕 할 고생이라면 내 밑에서 제대로 시키잔 생각에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선택에 주변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온갖 이야기가 난무했다. 두 아들에겐 이내 ‘금수저’란 딱지가 붙었다.
 
나도 그 이야기를 들었다. 야구계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금수저? 정말 그랬다면 야구를 시키지도 않았을 거다. 외국이라도 보내서 떵떵거리고 살게 했지. 왜 이런 고생을 시키겠나(웃음). 두 아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라운드에선 단 한 번도 내 아들이라고 생각한 적 없다. 집에선 내 아들, 그라운드에선 한 팀의 선수로 철저하게 분리했다. 그건 내 소신이자 자존심이다. 그 자존심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당사자인 원 코치는 그때를 두고 “부담이 컸다. 내가 야구 선수로 성공한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큰 걱정은 아버지 명성에 먹칠할지도 모른단 것이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늦게까지 남아 학생선수들을 챙겼고, 야구 관련 서적을 읽었다.” 
 
그렇게 얼마 뒤, 주변 불신을 해소할 기회가 찾아왔다. 원 코치는 “지금 SK에 있는 서동민 선수와 전국 중등부 대회를 휩쓸며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덕분에 주변 시선도 어느 정도 해소됐다. 그런 아픔 때문인지 가족에 대한 마음도 더욱 커졌다”고 했다. 
 
원 코치에게 가장 아픈 말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말보단 가족들에게 미안함이 컸다. 아버지에겐 더 좋은 아들, 동생에겐 훌륭한 선배가 돼주지 못했으니까. '내가 야구를 더 잘했으면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 텐데'하는 자책감마저 들었다. 우리 집 야구 서열로 보면 내가 가장 낮다(웃음).”
 
그런 까닭에 동생에게 더욱 마음이 갔다. 동생 일이라면 모든 걸 제쳐놓고 달려갔다. 형의 0순위는 언제나 동생이다.   
 
아픔도, 시련도 갈라놓을 수 없었던 '형제애'
 
[엠스플 특집] “아프니까 가족이다”, 원 씨네 ‘삼부자’의 야구 이야기

 
두 형제의 나이 차는 15살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원태진 코치를 아버지로 착각하는 이가 많았을 정도다. 원 코치는 “(원)태인이가 어릴 때 미용실에 데리고 가면 ‘결혼을 일찍 하셨네요’하는 소릴 자주 들었다”며 껄껄 웃었다. 그만큼 동생을 알뜰살뜰 챙긴 형이었다. 
 
동생은 형을 따라 프로 야구 선수가 됐다. 이에 원 코치는 KBO리그(한국야구위원회)의 다양한 사례를 찾기 시작했다. 특히 조동화-조동찬 형제의 사례를 듣고 연구했다. 동생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다.   
 
“형제가 프로에서 모두 잘한 사례가 많지 않다. 다양한 사례를 연구하면서 동생에게 도움이 될 방법을 찾았다. SK 시절엔 (조)동화 형에게 조언을 자주 구했다.” 원 코치의 말이다.  
 
평소 동생과 많은 이야길 나눈단 원 코치. 중요한 경기가 있는 날이면 형제의 휴대전화엔 메신저 알림음이 끊이질 않는다. 이젠 이런 대화가 원태인에겐 중요한 루틴이 됐다. 원태인은 “형과 야구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을 안정시킨다”고 한다.
 
[엠스플 특집] “아프니까 가족이다”, 원 씨네 ‘삼부자’의 야구 이야기

 
원 코치는 올해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대회를 회상했다. 당시 경남고전에 등판한 원태인은 1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4실점한 뒤 마운드를 내려왔다. 정작 가슴을 졸인 건 원 코치였다. 경기를 보며 긴장한 까닭인지 온몸이 땀에 젖었다. 경기 후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동생이 행여 풀이라도 죽을까 걱정스러운 때문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야구부 버스 앞으로 가장 먼저 달려갔다. 동생이 혹시나 실망해 있을까봐 걱정이 되더라. 하지만, 동생은 오히려 태연했다. ‘고기가 먹고 싶다’며 되레 웃는게 아닌가. 멘탈이 정말 대단하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학생 선수 때 아버지 마음은 어땠을까’하고 말이다. 요즘 태인이 덕분에 아버지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고 있다.”    
 
원 코치는 동생이 부럽다. 야구선수로서 타고난 멘탈하며, 긍정적인 사고방식까지 배울 게 많은 동생이라고 했다. 
 
“태인인 나와 정반대다. 식성부터 성격까지 같은 게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지금도 보고 싶고 너무 특별한 동생이다. 요즘 들어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된다. 그때마다 싫은 내색 없이 잘 따라와 준 동생이 너무 기특하다.”
 
원 코치는 요즘 동생에게 건넨 마음을 제자들에게도 나누고 있다. 좋은 형뿐만이 아니다.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것 또한 그의 목표다.    
 
“요즘 제자들에게 ‘너희가 태인이보다 더 잘돼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엔 학교 수업 비중이 높아져 훈련 시간이 매우 짧다. 그런 까닭에 많은 이야길 해주지 못해 늘 미안하다. 대신 비가 오거나 실내 훈련 땐 선수들에게 다양한 영상이나 나쁜 기사를 보여주며 함께 토론하고 충고한다. 훌륭한 선수 이전에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이다. 태인이에게도 늘 했던 이야기다.” 
 
'아픈 가족사', 야구로 이겨낸 삼부자 이야기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원태인의 어머니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직 어린 아들에게 어머니는 ‘훌륭한 야구 선수가 되어 주겠니’라고 부탁했다. 아들은 어머니의 당부를 잊지 않았다. 6월 24일. 1차 신인 드래프트 하루 전날. 아들은 어머니 산소를 찾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엄마,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켜봐도”
 
삼부자의 인생은 기구했다. 특히 막내 원태인에겐 조금 이른 시기에 아픔이 찾아왔다. 어머니와의 이별이 바로 그것이었다. 
 
원민구 감독은 “태인이 엄마가 폐암으로 고생이 많았다. 너무 갑작스러운 진단에 백방으로 용하단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손쓸 방법이 없었다”며 “당시엔 막내아들 걱정에 밤잠을 못 이뤘다. ‘이 녀석이 삐뚤어지면 어떻하지’하며 고민했다. 다행히 태인이가 아빠 마음을 안 것인지 고맙게도 내 걱정부터 하더라. 지금까지 두 아들을 키우면서 사고 한 번 없었다. 그 고마움은 평생 내 자랑거리”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틀린 말이 아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원태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조금 일찍 철이 들었다. 어리광을 부리고 싶을 때면 언제나 아버지와 형의 마음을 먼저 생각했다. 여태껏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제가 괜히 그런 이야길 꺼내면 모두 힘들잖아요. 그렇다고 엄마를 잊은 건 아니에요. 엄마는 항상 제 마음속에 모시고 있습니다. 경기 전에 엄마에게 항상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올해도 많이 도와주셨을 거예요.”   
 
[엠스플 특집] “아프니까 가족이다”, 원 씨네 ‘삼부자’의 야구 이야기

 
형에 대한 고마움도 빠뜨리지 않았다. “형은 제가 세상에서 가장 믿고 따르는 사람이에요. 제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형입니다. 많이 사랑하고 앞으로 두고두고 갚아 나갈겁니다.” 원태인의 진심이다. 
 
원태인에겐 언제나 가족이 우선이다. 이제 성인이 된다. 어른이 된 만큼 가족들을 더 챙기고 각오를 밝혔다. 
 
“프로 선수가 된 건 모두 가족들 덕분이에요. 제가 걱정돼 늘 아침밥을 함께 먹어주는 아버지. 때론 친구처럼, 선배처럼 챙겨주는 형. 그리고 절 걱정해주는 가족들. 정말 감사합니다. 그간 표현이 서툴러 말은 못했지만, 항상 고맙단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내년엔 더 열심히 할거에요. 꼭 신인상을 받아 가족들에게 선물하고 싶습니다.”
 
원민구 감독이 두 아들에게 전하는 편지
 
[엠스플 특집] “아프니까 가족이다”, 원 씨네 ‘삼부자’의 야구 이야기

 
(원)태진아. 그간 참 힘든 일이 많았지? 그때마다 늘 웃어주던 네가 생각나는구나. 어떤 시련이 찾아와도 매번 잘 견뎌줘 고맙고, 참 기특하다. 우리 아들. 그간 표현은 못 했지만, 직접 고맙단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해줬으면 좋겠다. 살아보니 성공이나 실패가 중요한 게 아니었어. 행복이야말로 우리 삶에 가장 큰 선물이더구나. 학생선수들에게도 늘 행복하자고 말한단다. 앞으로도 같은 야구인이자 가족으로서 함께 나아가자꾸나.
 
우리 막내 태인아. 올해 지명식 때가 생각나는구나. 삼성 유니폼을 입은 네 모습을 보면서 그간의 아픔과 감정들이 벅차올랐다. 네 말대로 정말 이제 시작이다. 좋은 선수가 되려 하지 말고 좋은 인간이 되길 바란다. 그것이 첫째다. 그리고 즐겨라. 야구 선수에게 가장 큰 행복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순간이다. 그라운드에서 야구 선수 원태인으로서 늘 행복하길 바란다. 
 
전수은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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