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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 인터뷰] 장정석 “어린 선수가 한번 못했다고 빼면 영원히 못하는 선수 된다”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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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9 (수) 10:05

                           
-올 시즌 리그 3위, 플레이오프 5차전 명승부 펼친 히어로즈 장정석 감독
-‘리더십’ 재평가에 “전부 코치와 선수, 구단이 잘한 덕분”
-“어린 선수들은 시간이 필요. 한번 못했다고 빼면 영원히 못하는 선수 된다”
-온화한 표정 속에 숨겨둔 승부욕 “올 시즌 우승 목표로 시작, 내년에도 목표는 같다”
 
[엠스플 인터뷰] 장정석 “어린 선수가 한번 못했다고 빼면 영원히 못하는 선수 된다”

 
[엠스플뉴스]
 
시대가 야구 감독에게 요구하는 ‘상’이 달라졌다. 모든 걸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는, ‘나를 따르라’ 유형 감독의 시대는 지났다. '소통 불가'의 독불장군식 지도자는 더는 야구판에 발붙일 곳이 없는 시대다. 이제는 소통과 협력에 능한 지도자가 대세다. 
 
2018 KBO리그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넥센 히어로즈 대 SK 와이번스 경기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시리즈는 리그에서 가장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두 감독의 맞대결로 펼쳐졌다. 
 
장정석 감독과 트레이 힐만 감독이 이끈 두 팀은 5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치며 잠시 야구장을 떠났던 팬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넥센은 마지막 순간에 아쉽게 고개를 떨궜지만, 장 감독은 고생한 선수들 하나하나를 안아주면서 감사를 전했다.
 
돌아보면 히어로즈의 2018시즌은 다사다난 그 자체였다. 우승을 목표로 야심 차게 출발했지만 주전 선수의 줄부상과 각종 불상사가 잇따르며 하루하루가 위기의 연속이었다. 특히 주전 포수와 마무리 투수의 이탈 때는 장 감독 스스로 ‘시즌이 끝나는 줄 알았다’고 할 만큼 타격이 컸다.
 
하지만 장 감독은 빠르게 마음을 다잡고, 선수단 분위기를 수습했다. 잇단 위기 속에서도 넥센은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하고, 베테랑 선수들이 힘을 내며 상위권을 유지했다. 밖에서 위기가 찾아오면 안에서는 더 강하게 똘똘 뭉쳐 위기를 이겨냈다.
 
시즌 중 넥센을 취재하며 장 감독을 볼 때마다 놀라웠다. 구단 안팎의 온갖 사건에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언제나 평정을 유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분명 그도 사람인 만큼 속은 부글부글 끓었을 게다. 그러나 타 들어가는 속마음을 겉으로는 조금도 티 내지 않았다.  ‘평소대로’ 선수들을 이끌었다. 
 
장 감독은 “다 코치와 선수들 덕분”이라 했지만, 장 감독의 안정적인 리더십이야말로 넥센이 흔들리지 않고 상위권을 질주한 큰 원동력이었다. 
 
“다 끝난 뒤 심정? 선수들에게 감동, 한명 한명 안아줬어요”
 
[엠스플 인터뷰] 장정석 “어린 선수가 한번 못했다고 빼면 영원히 못하는 선수 된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야구가 없는 겨울, 잘 보내고 계십니까.
 
매일 시상식이 있다 보니 쉴 틈이 없네요. (웃음) 틈틈이 내년 시즌 구상도 하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시즌 끝나고 인터뷰할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다른데요. 얼굴이 훨씬 좋아지셨습니다.
 
감독 얼굴이 요맘때 좋아야지 또 언제 좋겠어요. (웃음) 감독이란 자리는 결과로 말하는 자리잖아요. 제 얼굴이 좋아 보였다면, 선수들이 잘해준 덕분에 시즌을 기분 좋게 마무리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불과 일 년 사이에 장정석 감독을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혹시 히어로즈 팬 사이에서 요즘 감독님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시나요.
 
(긴장된 얼굴로) 글쎄요.
 
갓장석, 빛장석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웃음)
 
(눈을 크게 뜨며) 솔직히, 처음 듣습니다. 
 
그만큼 2018시즌 감독님과 히어로즈 선수들이 팬들에게 멋진 야구를 보여줬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응원해주시는 팬들께 그저 감사할 뿐이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프런트 직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감독이라는 자리가 사실 생각한 대로 되는 게 많지가 않거든요. 생각대로만 되면 어려울 게 없겠지만, 계속해서 변수가 생기고 이런저런 어려운 일들이 찾아옵니다. 옆에서 도와준 분들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웠을지 몰라요.
 
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시는군요.
 
사실이니까요. 솔직히 제가 한 게 없어요. 다 코치들이 잘해주고 선수들이 잘해준 덕분입니다. 
 
지나친 겸손입니다.
 
진심이에요. 물론 저도 옆에서 노력하고 열심히 했지만, 제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거든요. 특히 우리 허문회 수석의 역할이 컸어요.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허 수석이 옆에서 조언해주고, 대화 나누면서 같이 고민한 게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다른 코치들도 각자 맡은 파트에서 최선을 다해줬구요. 무엇보다 코치들도 코치들이지만 가장 고마운 건 베테랑 선수들이에요.
 
이 기회를 빌려 한 말씀 하시죠. 
 
우선 김민성 선수가 팀이 어려울 때 주장을 맡아서 잘 이끌어줘서 고맙구요. 최고참 이택근 선수나 박병호 선수가 부상으로 고생하면서도 잘 해줬습니다. 오주원 선수도 마찬가지구요. 사실 아프지 않은 선수가 없었는데, 고참들이 내색하지 않고 잘 이끌어주고 분위기를 만들어준 게 팀에 큰 도움이 됐어요. 그런 역할은 감독이나 코치가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게 너무 고마워요.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고 하지만, 충분히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도 있었습니다. 정말 솔직하게, 아쉬움은 없었나요. 
 
이미 인터뷰에서 괜찮다고 얘길 해놔서… (웃음) 선수들이 너무 멋있게 해줘서 후회 없다, 아쉬움 없다고 얘기했었죠. 그래도 아쉬움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죠. 조금은 남아 있죠. 기회라는 게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거니까요. 하지만 아쉬움보다는 앞으로에 대한 기쁨과 희망이 더 큽니다. 내년 시즌, 어쩌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한 밑거름이 된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모든 게 완전히 다 끝나고 난 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그보다 먼저, 플레이오프 5차전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제가 허문회 수석에게 그런 말을 했어요. ‘허 코치, 나 정말 올 시즌 후회가 없다. 그런데, 딱 박병호 타석까지만 갔으면 좋겠다. 그러면 병호가 안타를 못 치고 아웃당해도 올 시즌은 정말로 끝, 후회 없이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랬는데 거기서 홈런을 쳐버렸군요.
 
그러게요. 송성문이 안타를 치고, 서건창 2루 땅볼 때 끝났구나 했는데 거기서 실책이 나오는 바람에 박병호 타석까지 기회가 갔어요. 그리고 박병호가 자기 이름에 걸맞은 한 방을 날려줬구요. 어쨌든 그 경기에서 졌지만, 아쉬움은 없었습니다. 시원섭섭한 기분이었어요. 
 
‘시원섭섭하다’는 말만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무엇보다 우리 선수들에게 정말 큰 감동을 받았고, 선수들에게 너무 고마웠어요. 선수들을 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전체 미팅에선 선수들 한명 한명씩 안아주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그게 올 시즌 아마 세 번째 전체 미팅이었을 거에요.
 
장정석 감독은 시종일관 코치들과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엠스플 인터뷰] 장정석 “어린 선수가 한번 못했다고 빼면 영원히 못하는 선수 된다”

 
2018시즌 히어로즈 야구단은 시작부터 끝까지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부상자가 속출했고, 구단 안팎에서 이런저런 일이 터졌고, 주전 선수가 불미스러운 일로 이탈했습니다. 
 
그랬죠.
 
솔직히, 숱한 위기 중에서 언제가 가장 힘들었습니까.
 
정말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조상우와 박동원 사건 터졌을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때는 정말이지…(잠시 말을 멈추며)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사실 부상선수가 속출할 때만 해도, 약간의 데미지는 있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견뎠거든요. ‘우리 팀 뎁스가 나쁘지 않고, 선발진이 역할을 해주고 있으니까 충분히 해볼 만해’라고 잘 넘겼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 사건 터진 날에는, 왠지 올 시즌을 통째로 잃을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예.
 
정말 그때 며칠 동안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다행히 김재현 선수, 김상수 선수, 오주원 선수가 힘을 내면서 잘 버텨준 덕분에 위기를 넘겼고 마지막을 잘 장식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웬만한 팀이 몇 시즌 동안 겪을 위기를 한 시즌에 몰아서 겪으면서도, 선수들 앞에선 전혀 내색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람이니까 외풍이 불면 흔들리고 무너지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하잖아요. 도대체 어떻게 그 많은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과찬입니다. 음, 저는 만약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제가 즉각적으로 뭔가를 하고, 어떤 말을 한다면 그게 선수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를 생각하는 편이에요. 구단에 많은 일이 있었잖아요. 잘못한 점도 있었고, 부상도 있었고, 제가 부족한 점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제가 움직이고 지적하고 부산을 떤다면 오히려 선수들이 더 흔들리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렇군요.
 
전체 미팅도 한 시즌 동안 두 세 번 한 게 전부에요. 제가 코치들과 얘기하면 각 파트 코치들이 선수들과 얘길 나눴고, 베테랑 선수들이 어린 선수들이 흔들리지 않게 잘 잡아줬습니다. 분위기를 다잡는 역할을 코치들과 베테랑 선수들이 정말 잘해줬습니다. 그 점에 대해 우리 코치들과 선수들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넥센을 보며 놀라웠던 건 주전 선수가 빠져나가면 그 자리에 어김없이 주전 못지않게 뛰어난 젊은 선수가 나타나곤 했다는 겁니다.
 
맞아요. 구단에서 선수를 잘 뽑아서 키워 올려준 덕분입니다. 우리 어린 선수들은 1군에 왔을 때 준비가 참 잘 돼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결국 그 선수들을 믿고 기용하는 건 현장 감독의 몫입니다. 어린 선수에게 기회를 준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어쨌든 팀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머지 선수들을 데리고 경기를 해야 합니다. 어린 선수들에겐 시간이 필요해요. 한번 못했다고 바로 빼버리면, 그 선수는 영원히 못 하는 선수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계속 기회를 줄 수도 없는 일이구요. 주어진 기회를 잡는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데, 우리 선수들은 기회가 주어지면 다들 너무나 알아서 잘 잡더라구요. 덕분에 제가 편했습니다. (웃음)
 
구단이 좋은 성적을 내려면 현장과 프런트의 호흡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히어로즈는 그런 면에서 가장 이상적인 현장과 프런트 관계를 보여주는 팀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맞습니다. 박준상 대표이사를 비롯해 구단 임원진들이 너무도 잘 움직여주시기 때문에 선수 뎁스부터 신인 드래프트, 트레이드까지 많은 면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박준상 대표이사와 시즌 중에 두세 차례 티타임을 갖고 얘길 나눴어요.
 
어떤 이야기를 하셨나요?
 
당시엔 구단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여러 가지로 힘든 시기였어요. 그런데도 박 대표께선 항상 제게 마음의 안정을 주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경기에만 집중하시면 된다’고 말씀해 주셨죠. 또 고참 선수들과도 이따금 만나서 차 한 잔씩 사주면서 ‘야구만 하면 된다, 구단 일은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주셨다고 합니다. 
 
장정석 감독의 다짐 “2018년 완성 못 한 스토리, 2019년에 이어간다”
 
[엠스플 인터뷰] 장정석 “어린 선수가 한번 못했다고 빼면 영원히 못하는 선수 된다”


결국 히어로즈 선수단이 보여준 투혼이 구단의 미래까지 바꾼 셈이 됐습니다. 히어로즈가 내년 시즌부터 키움증권이란 새 메인스폰서와 함께하게 됐는데요. 소식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저도 감독이기 이전에, 10년을 함께한 이 팀의 구성원으로서 구단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현장 선수단도 너무 잘 풀리고, 구단 일까지도 잘 해결이 된 덕분에 기분이 좋았죠. 시즌 끝나자마자 메인 스폰서가 발표 난 걸 보고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부터 넥센 히어로즈를 거쳐, 이제는 키움 히어로즈의 감독으로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히어로즈 처음 생길 때부터 ‘10년 안에는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프런트 일을 했습니다. 그 무언가가 뭘 뜻하는지는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웃음) 사실 2014년에 한 번 찬스가 있었고, 그 뒤에도 기회가 있었는데 아쉽게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제 11년째를 맞이하게 되는데, 다시 도전해야죠. 새 메인스폰서 기업과 ‘윈-윈’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게 준비할 겁니다.
 
올 시즌 히어로즈 야구를 지켜본 팬들은 벌써 내년 시즌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부담되지 않으세요?
 
사실 올 시즌을 앞두고 ‘우승’을 목표로 세웠고, 스프링캠프에서도 코치들과 선수들에게 분명하게 우승이 목표라고 얘기했습니다. 올 시즌 완성하지 못한 스토리는 내년 시즌에 이어가야죠. 그 스토리를 이어가서 2019년 한 해는 정말 멋있는 1년이 되게끔 하고 싶어요.
 
2019시즌에도 히어로즈의 목표는 똑같습니까.
 
예. 스프링캠프에 가면 저는 똑같이 얘기할 거에요. 우리의 목표는 우승이라고. 올 시즌 너무도 좋은 경험과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 시간들을 잊지 않고 2019시즌을 준비한다면 우리가 가진 목표에 가깝게 갈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목표는 크게 가질 수록 좋은 것 아닐까요? (웃음)
 
배지헌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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