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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구 트레이드의 역사, 선수 인생과 팀을 바꾸다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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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9 (수)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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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2018.12.19 (수) 08:41

                           

한국배구 트레이드의 역사, 선수 인생과 팀을 바꾸다



시즌 개막이후 구단간 굵직한 트레이드가 잦아졌다. KB손해보험과 삼성화재가 이강원과 김정호를 맞바꾼데 이어 우리카드와 한국전력도 최홍석과 노재욱을 1대1 트레이드했다. 주전급 선수로 리그 판도에 영향을 미칠만한 변수로 주목받았다.  



 



프로스포츠에서 트레이드는 복잡한 이해관계의 산물이다. 선수의 앞길을 열어주는 대승적 차원과 구단 운영의 묘를 찾기위한 현실적 이유가 맞물려야 한다. 활발한 선수 이동은 전력 평준화의 밑거름이 될 수 있고, 지켜보는 팬들에게도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수 있는 것 또한 트레이드의 순기능이다. 한국 배구역사 속 트레이드를 찾아가보자. 



 



한국배구 트레이드의 역사, 선수 인생과 팀을 바꾸다



 



 



남자부 최초 트레이드는 현금 트레이드



 



1994년 남자실업배구에서 트레이드가 이뤄졌다. LG화재(現 KB손해보험)가 미들블로커가 강했던 현대자동차서비스(現 현대캐피탈)의 중앙 자원인 김동천을 3,500만 원을 주고 데려온 것이다. 당시 약점인 중앙을 보강한 LG화재는 1995년 한국배구 슈퍼리그에서 준우승을 거뒀다. LG화재는 1996년 아포짓 스파이커 윤상용을 고려증권에 내주고 미들블로커 이재욱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하기도 했다.  



 



한국배구 트레이드의 역사, 선수 인생과 팀을 바꾸다



사진: 방신봉은 V-리그 출범 이후 첫 트레이드의 주인공이었다. 



 



프로 출범 이후 이루어진 첫 트레이드 주인공은 당시 현대캐피탈 소속이던 미들블로커 방신봉이다. 전통의 블로킹 명가인 현대캐피탈에는 방신봉 이외에도 윤봉우, 이선규, 하경민 등 걸출한 중앙 자원들이 즐비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장 축에 속하게 된 방신봉의 출전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여러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2005시즌 직후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1억 2,000만 원에 LG화재로 이적했다. 트레이드 이후 방신봉은 최고 활약을 보여주면서 현대캐피탈의 미들블로커들을 제치고 2006~2007 V-리그에서 블로킹 1위를 차지했다.



 



 



대형 신인의 등용문, 막힌 혈을 뚫어준 트레이드



 



2000년대 이후 한국 남자배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이름이 있다. 거포 이경수와 토종 아포짓의 자존심 문성민이다. 두 선수는 공통적으로 트레이드를 통해 입단한 경우에 속한다. 대형 신인의 리그 데뷔가 답보 상태에 빠진 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 트레이드를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이경수 파동’은 신인 영입 과정이 자유계약에서 드래프트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당시에는 드래프트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단들이 웃돈을 얹어서 대어급 신인 선수를 경쟁적으로 영입했다. LG화재는 2002년 한양대와 협의 끝에 대어 이경수를 스카우트하는데 성공했다. 영입 비용만 16억 원이 들어갔다. 드래프트에 참가한 다른 구단들의 반발은 당연했다. 특히 당시 드래프트 1순위 지명이 유력했던 대한항공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결국 법정 소송까지 이어지면서 사태는 장기국면에 접어들었다. 결국 ‘이경수 파동’은 LG화재가 이경수를 데려가는 대신 2005년 신인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내어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신인 지명권이 트레이드 내용에 포함된 최초의 케이스다. 대한항공은 넘겨받은 1순위 지명권으로 신영수를 지명했다.



 



문성민은 해외 진출 이후 복귀 과정에서 트레이드 된 사례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국가대표로 선발되면서 두각을 드러낸 문성민은 2007 월드리그에서 막강한 공격력과 서브를 보여주면서 사실상 드래프트 1순위를 예약했다. 실제로 2008~2009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KEPCO 45(現 한국전력)의 지명을 받았다.  



 



그러나 드래프트 직전 독일 분데스리가 1부 리그 소속의 VfB ZF 프리드리히스하펜으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고 합류하게 되면서 KEPCO 45의 입장이 난감해졌다. 그 사이 문성민은 독일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터키리그 할크방크로 이적, 맹활약을 펼치며 재계약까지 하게 됐다.  



 



한국배구 트레이드의 역사, 선수 인생과 팀을 바꾸다사진: 문성민 파동은 한동안 배구계를 시끄럽게 했다.



 



그러나 2009~2010시즌 종료 이후 현대캐피탈은 주포 박철우가 FA를 통해 삼성화재로 이적하면서 새로운 주포를 찾아야 했고, KEPCO 45와 협상을 통해 문성민을 받는 대신 미들블로커 하경민과 윙스파이커 임시형을 내주는 1대2 트레이드를 진행하게 된다. 역시 다른 구단의 격렬한 반발이 이어졌고, 결국 문성민에게는 1천만 원의 벌금과 함께 1라운드 출전 금지라는 징계가 내려지며 사태는 일단락 되었다. 



 



 



트레이드의 산 증인, 황동일의 방랑기



 



황동일은 남자 선수 중에서 트레이드를 통해 가장 많이 팀을 옮긴 선수다. 미들블로커 전진용 역시 트레이드를 통해 네 가지 유니폼(삼성화재, 대한항공, 한국전력, KB손해보험)을 입었지만, 황동일 만큼 임팩트를 남긴 트레이드는 아니었다. 그만큼 이적할 때마다 관계자와 미디어의 관심을 독점한 황동일이다.



 



왼손을 쓰는 장신 세터라는 점에서 데뷔 전부터 높은 기대를 받은 황동일은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4순위로 우리캐피탈(現 우리카드)에 입단한 직후 LIG손해보험(現 KB손해보험)으로 트레이드 되었다. 당시 우리캐피탈은 창단 직후 팀 내 베테랑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LIG손해보험은 주포 이경수를 살려줄 만한 세터를 원했다.  



 



이러한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우리캐피탈의 세터 황동일과 LIG손해보험의 베테랑 세터 이동엽, 윙스파이커 손석범과 안준찬이 포함된 1대3의 대형 트레이드가 성사되었다. 트레이드 직후부터 주전을 꿰찬 황동일은 그 해 남자부 신인왕까지 거머쥐면서 화려한 프로 데뷔 시즌을 보냈다.



 



황동일은 그러나 이후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결국 주전경쟁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결국 LIG손해보험은 2011~2012시즌을 앞두고 대한항공으로부터 세터 김영래, 윙스파이커 조성철을 받고 황동일을 내주는 1대2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대한항공에는 이미 걸출한 세터 한선수가 있었기 때문에 황동일은 주로 백업으로 코트를 밟았다. 2013년 11월 한선수가 입대하면서 주전 세터로 나서는 듯 했으나 고질적인 세트 불안정으로 꾸준히 출장하지 못했다. 결국 대한항공에서도 자리 잡지 못한 황동일은 또 다시 트레이드 대상이 되고 말았다.



 



2014~2015시즌 도중 대한항공의 세터 황동일과 윙스파이커 류윤식, 삼성화재의 세터 강민웅과 미들블로커 전진용이 포함된 2대2 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함께 이적한 류윤식은 이적 후 주전으로 나섰지만, 황동일은 새로 이적한 팀에서도 백업 역할을 맡았다. 급기야 아포짓 스파이커로 경기에 나서기도 했지만,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군 입대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삼성화재의 세터로서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활약 중이다. 한국 남자 배구에서 보기 드문 저니맨이다. 



 



 



2010년대 트레이드를 주도한 현대캐피탈



 



현대캐피탈은 2010년대에 트레이드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팀이다. 문성민을 영입한 이후로도 다각적인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 구축에 집중했다. 2010년에는 송병일과 이철규를 보내고, 우리캐피탈로부터 2011~2012시즌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과 현금을 받는 트레이드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이철규가 돌연 은퇴를 선언하면서 지명권 대신 박주형을 받아오는 해프닝도 있었다.



 



2012년에는 윙스파이커 주상용과 세터 이효동을 LIG손해보험으로 보내는 대신, 윙스파이커 임동규와 리베로 정성민을 받아오는 2대2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임동규는 현대캐피탈 이적후  2012~2013시즌 수비상을 수상했고, 2016년 은퇴이후 현대캐피탈의 코치를 맡고 있다.



 



2014년에는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우리카드 소속으로 상무에 입대한 신영석을 영입했다. 신영석은 2008~2009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지명되어 줄곧 블로킹과 속공에서 발군의 기량을 보여주던 미들블로커였다. 구단 운영이 어려워진 우리카드가 주전선수를 현금으로 바꿔서 자금을 확보하고자 했고, 현대캐피탈이 이 빈틈을 파고 든 것이다.  



 



논란이 된 이 트레이드는 공시되기까지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법원 판결 이후 이적이 확정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현대캐피탈에 합류한 신영석은 2017~2018시즌 정규리그 MVP까지 수상하면서 국내 최고의 미들블로커로 자리매김했다.



 



한국배구 트레이드의 역사, 선수 인생과 팀을 바꾸다



사진: 신영석과 노재욱은 현대캐피탈이 시도한 트레이드와 연관이 있는 선수들이다. 



 



2015년에는 전환점이 될 만한 트레이드가 있었다. 베테랑 세터 권영민을 LIG손해보험에 내주는 대신, 유망주 세터 노재욱과 윙스파이커 정영호를 받는 1대2 트레이드를 실시했다. 당시에는 주전급 세터를 내주면서도 검증되지 않은 자원을 받아왔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노재욱이 기대 이상 성장하면서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이 트레이드는 현대캐피탈의 팀컬러인 스피드 배구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이후에도 현대캐피탈은 꾸준히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 다변화를 꾀했다. 큰 틀은 팀 내 입지가 좁아진 즉시 전력감 선수들을 다른 팀으로 보내주면서 유망주를 확보하는 시도였다. 2016년에는 미들블로커 윤봉우를 한국전력으로 보내고 우상조를, 미들블로커 진성태를 대한항공으로 보내는 대신 고졸 윙스파이커 허수봉을 영입했다.



 



2017년에는 신인 드래프트 지명권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진행했다. 리베로 정성민과 미들블로커 우상조, 조근호를 각각 대한항공과 우리카드로 보내는 대신 2라운드 지명권을 두 장 더 확보했다. 이 지명권을 통해 김지한, 함형진을 영입하면서 팀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미수에 그친 대형 트레이드



 



남자부에서는 트레이드를 추진했다가 무산된 경우가 많다. 2007~2008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인하대와 한양대 출신 신인들이 주목을 받았다. 인하대의 전관왕을 이끈 김요한과 유광우는 물론 한양대의 진상헌, 박종영, 한선수 등은 프로 지명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선발 순서였다. 50%의 확률을 가진 LIG손해보험이 무난하게 1순위로 김요한을 지명한 후, 35%의 확률을 가진 대한항공을 제치고 확률 15%였던 삼성화재가 2순위 지명권을 가져가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대한항공이 지명하겠다고 공언했던 유광우를 삼성화재가 지명하자, 대한항공은 1라운드에서 진상헌을 지명한 후 2라운드에서 한선수를 지명하게 된 것이다.  



 



이후 유광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대한항공은 진상헌과 한선수를 내주고 유광우를 받아오는 2대1 트레이드를 제안했으나 삼성화재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이 트레이드가 성사되었다면, 혹은 신인 드래프트 결과가 달랐다면 한국 배구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2014~2015시즌 중에는 충격적인 트레이드 기사가 들려왔다. 한국전력의 윙스파이커 서재덕과 현대캐피탈의 세터 권영민, 윙스파이커 박주형을 맞바꾸는 1대2의 임대 트레이드 소식이었다. 잔여 시즌에 한정된 임대 트레이드였지만, 한국전력에서 서재덕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때문에 내부 반발이 끊이지 않았고 다른 구단에서도 규정 위반이라는 이의를 제기했다. 이미 트레이드가 공시된 상황에서 선수들은 상대 구단으로 이동하여 경기 출전 준비를 마쳤지만, 규정 해석상의 문제점이 인정되면서 결국 트레이드 공시가 철회되었다.



 



 



여자부 트레이드 양축은 IBK기업은행과 KGC인삼공사



 



프로배구시대에서 가장 활발하게 트레이드에 참여한 여자부 구단은 KGC인삼공사와 IBK기업은행이다. 프로 원년인 2005년부터 올해까지 총 22건의 트레이드가 실시됐다. 그중 KGC인삼공사와 IBK기업은행이 아닌 구단끼리 진행한 트레이드는 6건에 불과하다. 그만큼 구단에 따라 트레이드를 대하는 온도차가 극심하다는 이야기다.  



 



 



프로배구 첫 트레이드는 이윤희-강민정



 



사실 프로배구 이전 첫 트레이드도 여자 실업팀에서 일어났다. 1990년 12월 1일 여자실업배구에서 처음으로 선수 맞교환의 개념이 나타났는데, 당시 한일합섬의 공격수 강애란과 노혜영이 후지필름의 세터 전영아와 트레이드 되었다. 이는 한국 배구계에서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첫 트레이드로 기록된다. 당시 한일합섬의 오한남 감독은 현재 대한민국배구협회 회장이고, 전영아 세터는 현재 프로 사상 두 번째 여성 심판으로 활약중이다.



 



그렇다면 프로배구 여자부 첫 트레이드는 누가 장식했을까. LG정유(現 GS칼텍스)의 아포짓 이윤희와 한국도로공사의 미들 자원인 강민정의 트레이드가 처음이다. 당시 LG정유는 이윤희 이외에도 신인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한 왼손 아포짓 스파이커인 나혜원 등이 있었고, 한국도로공사는 풍부한 중앙에 비해 측면 백업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양 팀은 각자 부족한 포지션을 메우기 위해 트레이드를 단행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인생을 바꾼 사인 & 트레이드



 



FA자격을 얻은 선수가 FA를 통해 이적하지 못했을 때, 원소속구단과 재계약을 한 뒤 바로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 하는 경우가 사인&트레이드다. 한국 배구 최초 사인&트레이드의 주인공은 바로 베테랑 세터 이효희다. 이효희는 1998년 실업리그 시절 KT&G(現 KGC인삼공사)에 입단하고도 2005년이 되어서야 주전 세터로 도약했고, 프로 원년인 2005시즌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한국배구 트레이드의 역사, 선수 인생과 팀을 바꾸다



사진: 한국 배구 최초 사인&트레이드 주인공인 이효희. 알고 보면 굴곡 많은 프로 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2007년 김사니가 한국도로공사에서 KT&G로 이적해오자 입지가 좁아졌고,  FA시장에서도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때 이영주의 은퇴로 세터 공백이 생긴 흥국생명이 이효희 영입 의사를 보냈다. KT&G는 마감 직전 이효희와 계약후 트레이드 형식으로 조건없이 이적시켰다. 이후 이효희는 안정적인 기량으로 흥국생명을 리그 정상권에 올려놓았다.



 



윙스파이커 한유미 역시 사인&트레이드로 현역생활을 연장한 케이스다. 프로 데뷔 이후 줄곧 현대건설 소속이었던 한유미는 2009~2010시즌 이후 두 번째 FA자격을 취득하면서 이탈리아 리그 진출을 타진했으나 실패하고 무적 신분으로 한 시즌을 쉬게 되었다. 그리고 2011년 복귀 의사를 밝혔으나 이미 현대건설은 흥국생명에서 이적해온 황연주와 양효진을 중심으로 팀을 정비한 터라 한유미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그 사이 KGC인삼공사가 한유미 영입을 희망하자, 한유미는 사인&트레이드 형식으로 KGC인삼공사로 이적했다. 멀티 플레이어로 거듭난 한유미는 KGC인삼공사의 2011~2012시즌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여자부만의 보상선수 트레이드 문화



 



남자부와 달리, 여자부에서는 보상선수를 활용한 트레이드가 활발했다. FA제도가 도입된 이후 남자부에 비해 선수 이동이 활발했고 보상선수 이동 역시 많았다. 가장 첫 사례로는 곽유화를 들 수 있다. 2011~2012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3순위로 한국도로공사에 입단한 곽유화는 팀 내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2013~2014시즌 종료 이후 한국도로공사가 기업은행 세터 이효희를 FA로 영입했고, 기업은행은 흥국생명 소속이었던 김사니를 FA로 영입하면서 보상 선수 연쇄 이동이 불가피해졌다. 이때 흥국생명은 김사니의 FA 보상선수로 신연경을 선택함과 동시에 보상금 대신 도로공사의 보상선수를 받기로 했고, 그 주인공이 곽유화가 되었다. 사실상 현금 트레이드 성격의 이적이었다.



 



2017~2018시즌을 앞두고 무려 5명의 선수가 FA를 통해 이적하면서 보상선수의 대대적인 이동 역시 불가피해졌다. 이 과정에서 보상선수 출혈을 막고자 하는 구단과 부족한 전력을 보강하려는 구단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두 건의 트레이드가 성사되었다.



 



첫 번째 트레이드는 보상선수 간 트레이드였다. GS칼텍스가 황민경의 보상선수로 현대건설의 한유미를, 현대건설은 염혜선의 보상선수로 IBK기업은행의 김유리를 지명한 상황에서, 중앙이 취약했던 GS칼텍스와 팀 전력 누수를 막고 싶었던 현대건설의 이해관계가 맞아 양 팀이 한유미와 김유리를 다시 맞바꾼 것이다. 이 결과 한유미는 친정팀 현대건설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낸 후 은퇴했고, 김유리는 현재 GS칼텍스의 주장을 맡고 있다.



 



두 번째 트레이드는 보상선수를 활용한 방식이다. 김해란이 이적하면서 KGC인삼공사는 리베로 자원이 필요했다. 서남원 감독은 보상선수로 리베로를 지명하기 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선수를 얻기 위해 한국도로공사와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인삼공사는 흥국생명의 유서연을 보상선수로 지명하고 임의탈퇴로 인해 한국도로공사 소속으로 묶여 있던 오지영과 사인&트레이드를 진행했다. 



 



 



프랜차이즈 스타도 예외 없는 트레이드의 세계



 



2015년 여자배구를 발칵 뒤집은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도로공사의 리베로 김해란과 KGC인삼공사의 리베로 임명옥을 맞바꾸는 트레이드였다. 김해란은 2014~2015시즌 올스타전에서 백어택을 시도한 후 착지하다가 무릎인대 파열로 시즌 아웃됐다. 그 여파로 인해 한국도로공사는 정규리그 우승을 하고도 챔피언결정전에서 무기력한 패배를 당했다. 김해란에게 향후 복귀에 대한 의문부호가 붙은 상황이었다.  



 



임명옥은 10년간 KGC인삼공사의 주전 리베로로 경기에 나서면서 수비상을 두 번 받았을 정도로 실력파 리베로다. 물론 김해란은 국가대표 경력이 화려했고, 국내 리그에서는 KGC인삼공사의 주전 리베로 임명옥 역시 수준급 선수였다.  두 선수는 이적 이후에도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사례로는 한송이가 있다. 한송이는 GS칼텍스 입단 이후 배구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다. 약점으로 지적받던 수비 능력도 향상됐고, 공격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면서 팀은 물론 국가대표팀에서도 키플레이어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리시빙 아포짓 스파이커 혹은 미들블로커 등으로 포지션 변경을 하면서 주전 경쟁에서 밀렸고, 팀에서 전력 외 자원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결국 3번째 FA 자격을 취득하고 GS칼텍스와 연봉 1억 5,000만 원에 재계약했으나, 곧바로 KGC인삼공사로 트레이드 되고 말았다.  



 



한송이 외에도 임대 중이었던 세터 시은미가 KGC인삼공사로 함께 이적했고, 윙스파이커 김진희와 미들블로커 문명화는 GS칼텍스로 이적했다. 한송이는 이적 후 본래 자리인 윙스파이커 포지션을 맡았고, 올시즌에는 아포짓 스파이커와 미들블로커 포지션까지 소화하고 있다.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가는 문



 



트레이드 대상이 되었다고 슬퍼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2012년 GS칼텍스와 IBK기업은행 간에 2대2 트레이드가 성사됐다. 신생팀 IBK기업은행은 팀의 중심을 잡아줄 베테랑이 필요했고, GS칼텍스는 젊은 세터가 필요했다.  



 



한국배구 트레이드의 역사, 선수 인생과 팀을 바꾸다



사진: 김해란(왼쪽)과 남지연은 여자부 트레이드를 주도한 KGC인삼공사, IBK기업은행을 거쳐간 선수들이다. 



 



그 결과 GS칼텍스의 리베로 남지연과 미들블로커 김언혜가 IBK기업은행으로, IBK기업은행의 세터 이나연과 윙스파이커 김지수는 GS칼텍스로 옮겼다. 트레이드 이후 남지연은 IBK기업은행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이나연은 주전급 세터로 성장하면서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2016년 IBK기업은행은 KGC인삼공사에 미들블로커 유희옥을 주고 유미라를 받는 1대1 트레이드, 그리고 한국도로공사에 윙스파이커 최은지와 전새얀을 주고 윙스파이커 김미연과 세터 이고은을 받아오는 2대2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IBK기업은행에서 이적한 유희옥은 KGC인삼공사의 중앙을 지키고 있고, 전새얀 역시 백업 자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최은지도 미완의 시간을 지나 FA를 통해 KGC인삼공사로 이적해서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김미연은 FA를 통해 흥국생명으로 이적했다. 이고은 역시 주전급 세터로 성장하면서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올시즌을 앞두고선 IBK기업은행의 이고은과 GS칼텍스의 이나연이 유니폼을 갈아입는 1대1 트레이드가 단행되어 눈길을 끌었다.



 



2017년 진행된 IBK기업은행과 KGC인삼공사의 3대2 트레이드 역시 선수들의 선수 생명을 연장시켜준 대표적인 트레이드다. IBK기업은행의 윙스파이커 채선아, 고민지와 세터 이솔아가 KGC인삼공사의 윙스파이커 최수빈, 박세윤과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IBK기업은행에서 수비에 치중했던 채선아는 KGC인삼공사에서 못 다한 공격의 한을 풀고 있고, KGC인삼공사에서 과감한 공격을 시도했던 최수빈은 이적 후 리베로로 출전할 정도로 수비에 집중하고 있다. 



 



 



신인 지명권, 또 다른 카드로 자리 잡다



 



여자부 역시 신인 지명권을 활용한 트레이드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처음 신인 지명권이 포함된 트레이드는 2013~2014시즌을 앞두고 이루어졌다. 한국도로공사의 세터 이재은과 미들블로커 이보람을 KGC인삼공사의 세터 차희선과 1라운드 신인 지명권과 맞바꾼 것이다. 당시 KGC인삼공사는 1순위 지명 확률이 50%였지만 추첨 결과 2순위 지명권을 받게 되었고, 한국도로공사는 고예림을 지명했다. 고예림은 데뷔 시즌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면서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유독 신인 지명권이 포함된 트레이드가 많이 이루어졌다. 2018~2019 신인 드래프트의 경우 즉시 전력감의 신인들이 다수 참여했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두고 트레이드를 진행한 것이다. 특히 유망주 수급이 절실했던 KGC인삼공사가 적극적으로 상위 신인 지명권을 모았다. IBK기업은행으로부터 리베로 노란과 2라운드 신인 지명권을 받아오는 대신 임의탈퇴 상태였던 윙스파이커 백목화와 리베로 박상미, 3라운드 신인 지명권을 내줬다.  



 



그리고 한국도로공사로부터 세터 하효림과 2라운드 신인 지명권을 받아오고 세터 김혜원과 윙스파이커 우수민을 보내는 트레이드도 실시했다. 그 결과 KGC인삼공사는 2라운드 1순위와 2순위 지명권을 얻어 왼손 아포짓 스파이커 유망주인 이예솔과 나현수를 데려가면서 전력 다변화에 성공했다.



 



 



 



글/ 강효상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1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2018-12-18   서영욱([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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