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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MLB+] 시프트 금지, 과연 헛소리일까?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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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7 (월) 21:05

                           
[이현우의 MLB+] 시프트 금지, 과연 헛소리일까?

 
[엠스플뉴스]
 
어떤 스포츠 종목이건 간에 발전을 위해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좋은 시도다. 새로운 팬이 잘 유입되지 않는 종목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2015년 미국 시청률 조사업체 <닐슨>은 MLB 경기 TV 시청자 가운데 55세 이상 비율이 50%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이는 1995년보다 거의 10%포인트 오른 수치다. 한술 더 떠 평균 시청 연령은 무려 만 53세에 이르렀다(2017년 기준 만 57세로 상승). 이는 프로 스포츠 종목으로선 사실상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당장은 문제가 안 된다. 얼마 전 메이저리그는 <폭스 스포츠>와 약 5조 원 규모의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그밖에도 최근 메이저리그는 중계권 계약을 통해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정규시즌 관중 수는 15년 만에 7000만 명 이하로 줄었으며, 월드시리즈 시청률 역시 8.3%로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팬층이 유입되지 않는다면 관중 수와 시청률 감소 현상은 점점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스포츠 중계사가 천문학적인 돈을 주고 중계권을 사들일 이유가 없어진다. 자연스럽게 메이저리거들의 몸값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럼 굳이 마이너리그에서 수년간 힘든 시간을 견디면서까지 메이저리그를 꿈꿀 이유가 사라진다. 
 
[이현우의 MLB+] 시프트 금지, 과연 헛소리일까?

 
그 후는 불 보듯 뻔하다. 점차 메이저리거를 꿈꾸는 스포츠 꿈나무가 줄어들고 경기력이 하락한다. 한번 이런 악순환에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젊은 팬층을 늘리기 위해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은 잘못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더 빨랐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시도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다.
 
얼마 전 메이저리그 구단주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임기 연장을 보장받은 롭 만프레드 메이저리그 사무국장은 지난 11월 기자 회견을 통해 "2019시즌 수비 시프트를 금지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비 시프트란 특정 타자의 타구 패턴을 분석해 타구가 가장 많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야수 수비 위치를 조정하는 전략을 말한다.
 
그렇다면 수비 시프트 금지는 과연 의미 있는 시도일까?
 
수비 시프트를 금지하려는 이유 그리고 반박들
 
 
 
우선 수비 시프트를 금지하는 것은 만프레드가 사무국장에 취임한 이후 가장 중점을 두고 밀어붙였던 사안인 '스피드업 규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스피드업 규정의 목표는 경기 중 불필요한 시간을 줄임으로써 야구를 보다 다이내믹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무국은 이를 위해 2015년 우선 타석에 선 타자들이 반드시 한발을 타석에 두도록 규정했고, 공수 교대 시간에 제한을 뒀다. 
 
수비 시프트 금지도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수비 시프트 제한을 하면 새로운 포메이션을 형성하기 위해 수비수가 이동하는 데 쓰이는 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 인포 솔루션스>에 따르면 올해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약 35,000개의 타구에 수비 시프트를 썼다. 이는 5년 전과 비교해 28,000회가 늘어난 수치다.
 
수비 시프트 제한은 이 과정에서 늘어난 수비 시간을 줄여보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수비 시프트를 제한함으로써 야구 경기에 미칠 영향은 그뿐이 아니다. 수비 시프트가 사라지면 인플레이된 타구가 안타가 되는 확률이 높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다소 수비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야구 경기를 더 다이내믹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전통으로 굳어져 가는 수비 시프트를 금지하겠다는 사무국의 아이디어는 처음 공개된 2015년부터 많은 전문가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 가운데 하나는 "늘어날 단타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디 애슬래틱> 제이슨 스타크는 시프트 금지를 통해 한 시즌 동안 늘어날 단타수를 약 500개로 예측했다.
 
이는 한 시즌에 각 팀당 약 17개씩 안타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당연히 이를 통해 늘어날 득점 역시 매우 적을 수밖에 없다. 
 
[이현우의 MLB+] 시프트 금지, 과연 헛소리일까?

 
한편, 지난 5년간 수비 시프트가 급격하게 늘어났음에도 BABIP(인플레이 된 공이 안타가 되는 비율)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는 점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를 근거로 2015년 CBS 스포츠의 조나 케리와 2018년 디 애슬레틱의 클리프 코코란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삼진이 늘어난 것이 인플레이 타구가 줄어든 진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격적인 야구를 위해선 수비 시프트를 금지하는 것보단 과거보다 넓어진 스트라이크 존을 손보는게 효율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다. 바로 스트라이크 존을 축소하는 것은 수비 시프트를 금지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야구라는 종목에 미칠 영향이 크다는 점이다.
 
퀘스텍 시스템 도입의 실패가 알려준 교훈
 
[이현우의 MLB+] 시프트 금지, 과연 헛소리일까?

 
이에 대해선 이미 과거에 선례가 있었다. 바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제한적으로 퀘스텍 시스템(Questech system)을 도입했던 사례다. 퀘스텍 시스템이란 투수의 투구를 전파로 추적한 다음 이를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과 비교해 인사 고과에 반영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그 무렵 메이저리그 스트라이크 존은 지금과는 달리, 낮은 공이 스트라이크가 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심판들이 볼을 스트라이크로 선언해 인사 고과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매우 보수적으로 볼판정에 임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일부 선수들의 무분별한 금지약물 복용이 맞물리면서 당시 메이저리그에는 극단적인 타고투저 시대가 열렸다. 그런데 퀘스텍 시스템은 어디까지나 스트라이크 판정을 더 정확하게 하려는 취지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목적은 <스탯캐스트> 시대가 되면서 완벽하진 않지만 서서히 달성되가고 있다. 하지만 스트라이크 존을 아예 줄여버린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최근 3년간 메이저리그는 역사상 유례없을 정도로 홈런이 많이 나오고 있다(2016 역대 3위, 2017 역대 1위, 2018 역대 4위). 이런 상황에서 스트라이크 존마저 좁아진다면 어떨까?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매우 높은 확률로 과거 유례가 없었던 타고투저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사무국이 원하는 결과인지에 대해선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만프레드는 퀘스텍 시스템이 제한적으로 도입됐던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당시 커미셔너인 버드 셀릭을 보좌하는 위치에 있었고, 실무자로서 그 결과를 목격했다. 
 
따라서 공격적인 야구를 위해 스트라이크 존을 축소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스트라이크 존의 축소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현우의 MLB+] 시프트 금지, 과연 헛소리일까?

 
과거 퀘스텍 시스템 시대가 8년 만에 막을 내린 것은 심판 노조의 강한 저항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이를 경험한 바 있는 만프레드 이하 사무국은, 스트라이크 존을 건드리는 것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반면, 수비 시프트를 금지하는 일은 비록 득점 증가 효과는 미비할지라도 그에 따른 선수 노조의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한편, 득점 증가 효과가 미비하다는 것 역시 사무국의 입장에선 단점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득점 증가 효과가 미비한 만큼 시간 단축 효과는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수비 시프트 금지를 통한 득점 증가 효과가 미비하다는 것은 제도 도입의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받아들일 여지도 있다.
 
규정이 미칠 영향보다는 그 취지에 주목하자
 
[이현우의 MLB+] 시프트 금지, 과연 헛소리일까?

 
사실 지금까지 쓴 대부분 내용은 지난 2015년에 쓴 동명의 기사를 통해서도 다룬 바 있다. 필자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수비 시프트에 제한을 가할 수도 있다는 말이 논의 자체를 막아버릴 만큼 의미 없는 발언이거나, 조롱의 대상이 될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와 전통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검토해봐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역사와 전통이 깊은 종목일수록 규정을 수정했을 때의 반발은 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프로 스포츠 종목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규정을 조금씩 바꿔왔으며, 그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다. 예를 들어 NBA는 일리걸 디펜스(illegal defence 지역방어 금지 규정)을 거쳐 다시 지역 방어로 회귀했고, 3점 슛이 도입된 것도 40년이 지나지 않았다.
 
이는 메이저리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초창기 야구는 볼을 9개 얻어야 1루로 걸어 나갔고, 스트라이크 4개가 선언되어야 아웃이었다. 마운드의 높이는 1969년 전까지 통일되어 있지 않았고, 현재 세이브 규정은 1975년에야 도입됐으며, 규정상의 스트라이크 존도 수없이 변해왔다. 그에 비하면 수비 시프트를 금지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수비 시프트를 금지한다고 해서 야구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비 시프트 금지와 같은 시도가 아무런 의미가 없지는 않다. 사무국의 수비 시프트 금지 시도는 야구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또한, 규정이 도입되건 되지 않건 간에 이에 대한 논쟁이 생산적으로 흐른다면 적어도 야구가 젊은 연령대의 팬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더 나은 방법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편, 변화하는 시장에 대처하기 위해 고민하는 이런 메이저리그의 모습을 국내야구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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