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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으로 보는 원팀맨 그리고 프랜차이즈 스타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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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6 (일) 01:49

                           

대한항공으로 보는 원팀맨 그리고 프랜차이즈 스타



프로스포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팀간 선수 이동을 보장하는 제도다. 선수들은 FA(자유계약선수)제도와 트레이드를 통해 팀을 옮기곤 한다. ‘프로는 돈’, ‘프로는 성적’이라는 인식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지금,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혹은 우승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 새 소속팀을 찾아 떠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반면 원팀맨은 오직 한 클럽에서 현역 생활을 보낸 선수를 의미한다. 비록 한국프로배구의 역사가 다른 프로스포츠에 비해 짧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원팀맨으로 팀과 함께 역사를 써내려가는 선수들이 있다. <더스파이크>는 유독 원팀맨이 많은 대한항공의 팀 문화와 프랜차이즈 스타의 역사를 알아보기로 했다.

 

대한항공으로 보는 원팀맨 그리고 프랜차이즈 스타

사진 : 현대캐피탈 시절 박철우와 KB손해보험 시절 김요한

 

이적 자유로운 프로세계에서 눈길끄는 원팀맨

여자부보다 3년 늦게 FA(자유계약선수) 제도가 생긴 남자부에서 2010년 1호 FA 이동 선수가 탄생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박철우(삼성화재)다. 지금은 박철우와 삼성화재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지만, 박철우는 원래 현대캐피탈 출신이었다. 반대로 현대캐피탈의 주장이자 프랜차이즈 스타 문성민은 2008년 한국전력의 지명을 받은 뒤 독일리그를 거쳐 2010년 트레이드를 통해 현대캐피탈의 유니폼을 입었다.

프로팀에 입단한 선수들은 대졸 기준 다섯 시즌, 고졸 기준 여섯 시즌을 치른 뒤에 FA 자격을 얻게 된다(매 시즌 출장 경기가 정규리그 전체경기의 25% 이상일 경우, 1시즌 경과로 인정한다). 처음 FA 계약을 한 뒤에는 세 시즌에 한 번씩 FA 자격이 새로 주어진다.

FA제도가 시행된 후 프랜차이즈 스타들의 이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현대캐피탈의 철벽방패였던 이선규는 삼성화재를 거쳐 KB손해보험으로, 한국전력의 상징과도 같았던 전광인은 현대캐피탈로 향했다.

KB손해보험은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김요한과 이강원을 각각 2017년과 2018년 트레이드 카드로 사용했다. 우리카드 역시 2018년 트레이드로 최홍석을 떠나보냈다. 여자부에 비해 선수 이동이 적었던 남자부에서도 FA와 트레이드로 주전급 혹은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의 이동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럼에도 대한항공은 FA를 통해 팀을 떠난 선수가 단 한 명뿐이었다. 2015년 트레이드로 영입한 최석기(한국전력)가 지난 5월 FA 자격을 취득해 친정팀 한국전력으로 돌아갔다. FA 영입 역시 올해가 처음이었다. 최석기가 빠져나간 자리를 김규민으로 메웠다.

 

대한항공으로 보는 원팀맨 그리고 프랜차이즈 스타

사진 : 2010~2011시즌 대한항공. 사진 속 7명 중 5명은 아직도 대한항공에 있다.

 

변함없는 신뢰 그리고 동행

운동선수가 같은 팀으로 입단해 같은 팀에서 은퇴하는 일은 프로화 이전 당연한 수순이었다.

삼성맨, 현대맨같은 수식어도 그래서 붙었다. 이적이 자유로운 프로세계에서 대한항공은 유독 프랜차이즈 스타의 이동이 적은 팀이다. 대한항공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신영수(은퇴 후 프런트 전환), 김학민, 한선수 등 팀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들과 함께하고 있다. 2007년 한선수와 함께 대한항공에 입단한 진상헌 역시 1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현재 대한항공에서 코치직을 맡고 있는 최부식 코치는 실업리그 시절이던 2000년부터 은퇴 후 코치직을 맡고 있는 지금까지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오직 대한항공에만 있었다.

대한항공의 원팀맨 중 프랜차이즈 스타로 꼽히는 신영수, 김학민, 한선수의 공통점은 FA 자격을 얻고도 타 구단과 한 번도 협상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두 1차 협상 기간에 잔류를 택했다. 한국배구연맹(KOVO)이 정한 자유계약선수관리규정에 따르면, FA자격을 얻은 선수는 총 3번의 교섭 기회를 갖는다. 1차는 원소속 구단과, 2차는 타 구단과, 3차는 다시 원소속 구단과 교섭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시장에서 자신의 몸값을 확인하기도 전에 일찌감치 대한항공과 다시 손을 잡았다. 선수라면 한 번 쯤은 FA시장에 자신의 가치를 평가해 볼 법도 하지만, 이들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일사천리로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시즌 직후 은퇴하고 대한항공 사무국에서 제2의 배구인생을 살고 있는 신영수 과장을 통해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신영수 과장은 원팀맨이 많은 배경에 대해 팀 문화로 자리잡은 ‘자율’이라는 점을 들어 설명했다. 신 과장은 “대한항공은 훈련을 할 때나 생활을 할 때나 스스로 해야 할 부분만 잘 한다면 즐겁게 배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시설이나 환경이 운동하기 편한 곳이기 때문에 굳이 이적을 생각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지난 2016년 4월 박기원 감독 부임 이후 선수의 결혼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선수들에게 출퇴근을 허용했다. 프로배구사상 처음 시도한 파격적인 제도였다. 지난 시즌에는 경기 뒤 모기업 고위인사 방문 때 행해지던 코트 도열도 없앴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있기 전부터 대한한공의 분위기는 상당히 자율적이었다고 한다.

대한항공 임동혁이 <더스파이크> 11월호에 실렸던 ‘슬기로운 프로 생활은 이렇게’ 기사를 통해 언급한 내용도 같은 맥락이다. 임동혁은 당시 “운동할 때 각자가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스타일이다. 운동 외적으로도 개인적인 시간이 많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제 막 2년차에 접어든 임동혁이 이런 말을 할 정도면, 자율적인 분위기는 대한항공에서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전통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원팀 문화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훈련 때 진행되는 소통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라며 신영수 과장의 얘기에 힘을 실었다. “훈련할 때 정말 대화를 많이 한다. 대화 방식도 코칭스태프가 ‘이런 공이 오면 이런 식으로 때려야 한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공이 올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라고 선수의 의견을 물어본다. 감독님이 나서서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경기에서도 훈련에서 경험한 모습들이 나온다.”

또 한 가지 독특한 점은 경기에서 진 날 선수들을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것이다. 패배가 가장 마음 아픈 건 선수들이다. 숙소에서 우중충한 분위기로 머무는 대신,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하며 마음을 달래고 돌아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훈련에 몰입한다면 더욱 빨리 패배감을 지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시작된 문화다. 물론 패인을 분석하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것은 절대 잊지 않는다.

 

대한항공으로 보는 원팀맨 그리고 프랜차이즈 스타

V-리그 출범 당시만 해도 프로 네 팀(현대캐피탈, 삼성화재, LG화재, 대한항공)중 최약체로 꼽혔던 대한항공이지만, 시즌을 거듭할수록 단단해져 정규리그 우승 2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1회를 달성한 명문 팀으로 성장했다. 성적까지 뒷받침되자, 대한항공을 스스로 떠날 이유가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팀을 떠난 선수와 관계에서도 돈독함이 묻어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함께 하던 선수가 팀을 떠나더라도 대한항공을 좋은 곳으로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라며 “은퇴 후 코트가 아닌 다른 곳에 있더라도 꾸준히 안부를 묻고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게 쌓이면서 대한항공에 대한 평판이 긍정적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대한항공으로 보는 원팀맨 그리고 프랜차이즈 스타

 

대한항공 프랜차이즈 스타 계보는

대한항공의 첫 프랜차이즈 스타라면 단연 2005년 최초 신인드래프트 당시 전체 1순위로 호명됐던 신영수가 될 것이다. 신영수는 가장 오랜 기간 대한항공을 지켜온 산증인이자 대한항공이 처음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2006~2007시즌 외국인 선수 보비와 함께 대한항공을 강팀 반열에 올려놓은 인물이다.

2010~2011시즌, 대한항공이 처음 정규리그 최정상의 자리에 오를 때 한 쪽 날개를 책임진 것 또한 신영수다. 신영수는 당시 53.47%의 공격성공률로 25승 5패라는 독보적인 성적을 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군 복무 후 돌아온 2013~2014시즌에도 공격성공률 54.66%로 녹슬지 않은 실력을 뽐냈다.

 

대한항공으로 보는 원팀맨 그리고 프랜차이즈 스타

신영수 은퇴 후 대한항공의 맏형이 된 김학민은 대한항공 역사상 유일한 신인상 수상자다. 2006년 대한항공에 입단한 김학민은 V-리그 네 번째 시즌이자 대한항공이 첫 정규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던 2010~2011시즌에는 정규리그 MVP에 선정되는 영광도 누렸다.

김학민은 독보적인 체공력으로 ‘김라면’이라는 독특한 별명을 갖고 있다. 한 번 점프하면 라면을 끓여 먹고도 남을 시간동안 내려오지 않는다는 의미의 별명이다. 김학민은 신영수와 함께 대한항공의 기반을 다지면서 총 6번의 라운드 MVP를 수상했다. 대한항공이 서서히 힘을 길러온 데에는 신영수와 김학민의 탄탄한 공격력이 밑받침됐다.

 

대한항공으로 보는 원팀맨 그리고 프랜차이즈 스타

대한항공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끈 한선수다. 한선수는 2007년 2라운드 2순위로 대한항공에 입단한 뒤 백업 세터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한선수의 앞에는 김영래(현 한국도로공사 코치), 김영석 등 베테랑 세터 두 명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7~2008시즌 후반, 김영래와 김영석이 모두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자 한선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기대보다 빠르게 프로 무대에 적응한 한선수는 프로 2년차부터 주전 자리를 꿰찬 뒤 대한항공의 주장, V-리그 연봉킹으로 자리매김했다. 대한항공이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했던 2017~2018시즌에는 챔피언결정전 MVP에 선정되었다.

한선수의 뒤를 잇는 대한항공의 프랜차이즈 스타 계보는 정지석, 곽승석이 이어가고 있다. 2013년 V-리그에 입성한 ‘1호’ 고졸 드래프티였던 정지석은 매 시즌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며 대한항공의 붙박이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시즌 처음으로 라운드 MVP에 선정된 정지석은 매 시즌 전 미디어데이 때마다 다른 팀 감독의 러브콜을 유발하는 인기스타가 됐다. 시원한 공격만큼이나 수비에서도 독보적인 활약을 펼치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을 소화하면 생애 첫 FA 자격을 얻게 되는 정지석은 이 사실을 의식하기라도 한 듯 미친 듯한 경기력으로 대한항공의 고공행진을 이끌고 있다.

2010년 1라운드 4순위로 대한항공에 입단한 곽승석 역시 공수에서 알토란같은 활약을 펼치며 어엿한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잡았다.

2007년 입단한 진상헌, 2011년 입단한 심홍석도 변함없이 대한항공 코트를 지키는 선수로 꼽힌다. 프로출범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대한항공의 대표적 원팀맨으로 김종민 한국도로공사 감독을 들 수 있다. 김 감독은 1996년 선수로 시작해 코치와 감독까지 20년간 대한항공을 지켰다.  

김 감독은 평소 “TV를 보면서 응원하는 팀”이라고 대한항공에 남다른 애정을 표시하고 있다.

 

원팀맨 그리고 프랜차이즈 스타의 의미

일각에서는 선수의 이동이 많아야 리그를 보는 재미가 더욱 풍성해진다고 말한다. 매 시즌 같은 선수들이 팀을 이뤄 경기를 한다면 늘 비슷한 전술과 경기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 일리 있는 말이다. 또한 약 반년이라는 긴 비시즌 동안 선수의 이적은 큰 화젯거리가 되기도 한다. 시즌이 끝나고 누가 FA 자격을 얻는지, 어느 팀이 탐내고 있는지, 새로운 선수를 영입한 팀이 다음 시즌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 예측하는 것도 리그를 즐기는 하나의 재미 요소가 된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변하는 대로, 유지되는 것은 유지되는 대로 각자의 의미가 있다. 나날이 발전하고 변화하는 도시의 삶을 즐기면서도 때때로 옛것이 그리워지는 이유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원팀맨의 의미는 단순히 한 팀에서만 뛰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늘 같은 자리를 지키면서 서서히 팀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팀만의 고유한 특색인 ‘팀컬러’를 만들어가는 역할을 한다. 삼성화재는 그로저(독일)나 가빈(캐나다)이 없어도 믿음직한 대포가 있는 팀이고, 현대캐피탈은 이선규(KB손해보험)나 윤봉우(우리카드)가 없어도 탄탄한 중앙을 자랑하는 팀이다. 한 번 만든 팀컬러는 쉽게 바뀌지도, 지워지지도 않는다. 정체성 확립이 중요한 이유다.

대한항공은 줄곧 ‘날개자원이 풍부한 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그저 날개 공격수의 숫자가 많아서만은 아니다. 신영수를 시작으로 김학민을 거쳐 정지석으로 이어지는 토종 에이스가 있고 장광균(현 대한항공 코치), 곽승석 등 탄탄한 수비로 뒤를 받치는 선수가 있었기에 만들어진 인식이다. 팀컬러는 결코 한 시즌, 한 선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역사가 모여 전통을 만들고, 미래를 그려나가는 바탕이 된다.

글/ 이현지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1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2018-12-15   이현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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