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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MLB+] 회전수가 많다고 좋은 공일까?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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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1 (화) 20:05

                           
[이현우의 MLB+] 회전수가 많다고 좋은 공일까?

 
[엠스플뉴스]
 
"투수 A의 패스트볼은 투수 B의 패스트볼에 비해 구속은 느리지만 회전수가 많으므로 더 위력적인 공이다."
 
구장에 설치한 레이더를 통해 한 메이저리그 투수가 던진 공이 홈플레이트에 도달하기까지 몇 바퀴를 도는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스탯캐스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미디어를 통해 종종 접할 수 있는 표현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완벽하게 잘못된 사실을 전달하고 있다. 왜냐하면, 단순 회전수와 구위 사이에는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2016년 야구통계사이트 <베이스볼프로펙터스> 제프 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포심 패스트볼을 비롯한 7개 구종의 스윙 스트라이크 비율과 회전수의 상관관계는 -0.07에서 -0.06 사이에 형성된다. 이를 해석하자면 회전수와 구위 사이에는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거나, 오히려 미약하게나마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얘기가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단순 회전수'의 많고 적음보다는 '구속'이나 제구, '무브먼트(movement, 움직임) 그리고 디셉션(deception, 숨김동작) 등이 구위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편, 전체 회전수가 같더라도 '유효 회전수(useful spin)'가 많은 공이 무브먼트가 크다.
 
이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야구 공의 회전이 모두 다 같은 회전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유효 회전수와 자이로 회전 그리고 회전축
 
[이현우의 MLB+] 회전수가 많다고 좋은 공일까?

 
투수가 던진 공의 회전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바로 유효 회전과 자이로 회전이다. 유효회전(effective spin)이란 공의 회전축이 진행방향과 수직을 이루는 회전으로 공의 무브먼트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반면, 자이로 회전(gyro spin)이란 공의 회전축이 진행방향과 평행을 이루는 회전으로 자이로 회전은 공의 무브먼트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즉, 전체 회전수가 같을 때 유효 회전수가 많을수록 무브먼트가 크다는 것이다(*단, 투구 정보 시스템에서 쓰는 무브먼트란 개념은 우리 눈에 보이는 공의 움직임과는 다소 다른 개념이다. 이에 대해선 후술할 예정이다). 이를 간편화하기 위해 일리노이 주립대 물리 교수 앨런 네이선은 회전 효율(spin efficiency, 유효 회전수를 전체 회전수로 나눈 값)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그런데 회전 효율이 좋은 공(=유효 회전수가 많은 공)이 반드시 위력적이냐면 또 그렇지도 않다. 왜냐하면, 각 구종별로 위력적이기 위해 요구되는 움직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위력적인 포심 패스트볼은 일반적으로 종 무브먼트가 크다고 알려져있다. 한편, 포심 패스트볼의 종 무브먼트는 마그누스 효과에 의해서 얻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그누스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지표면과 회전축이 수평을 이룬 상태에서 강하게 백스핀을 걸면 된다. 즉, 다른 조건이 같다면 회전축이 수평에 가까울수록 위력적인 포심 패스트볼이 될 '확률이 높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회전수와 무브먼트에 한정된 이야기일 뿐이다. 팔각도와 패스트볼 구위의 상관관계는 후술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같은 패스트볼이더라도 투심 패스트볼의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투심 패스트볼은 가라앉는 움직임과 같은 손 타자의 몸쪽으로 붙는 움직임이 클수록 위력적인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횡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선 회전축이 살짝 기울어져 있는 편이 유리하며, 가라앉는 듯한 움직임을 위해선 오히려 회전수가 적은 편이 좋다. 
 
[이현우의 MLB+] 회전수가 많다고 좋은 공일까?

 
이런 상황에서 포심 패스트볼을 주로 던지는 아롤디스 채프먼과 투심 패스트볼을 주로 던지는 조던 힉스의 패스트볼 구위를 비교하는 지표로 단순 회전수를 쓰는 것이 적절할까? 재미있는 주제이긴 하지만,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다(덧붙이자면 MLB 전체 포심 패스트볼의 평균 회전수는 분당 2265회, 투심 패스트볼의 평균 회전수는 2135회다). 
 
그리고 이는 단지 포심 패스트볼과 투심 패스트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구종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우선 커브볼로 예를 들어보자. 정통 커브볼은 백스핀을 걸어서 공을 덜 가라앉게 만들수록 위력적인 포심 패스트볼과는 반대로 탑스핀을 걸어서 공을 '더' 가라앉게 만드는 구종이다. 따라서 정통 커브볼 역시 회전축이 수평에 가까울수록 위력적이란 점에선 같다.
 
그러나 커브볼의 종류는 정통 커브볼만 있는게 아니다. 예를 들어 코리 클루버의 커브볼은 종적인 움직임 못지 않게 슬라이더처럼 바깥쪽으로 휘어지는 움직임이 공의 위력을 더해준다. 그런데 이런 커브볼의 횡 무브먼트를 만들기 위해선 회전축이 기울어져 있어야 하며, 그러면 횡 회전(side spin)과 함께 무브먼트에는 불필요한 자이로 회전도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패스트볼 뿐만 아니라, 커브볼의 경우에도 회전수 또는 유효 회전수가 많을수록 구위가 좋다는 말은 잘못됐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다면 회전수가 많을수록 구위가 좋다는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오히려 회전수가 적을수록 위력적인 구종도 많다는 것이다.
 
유효 회전수가 적을수록 위력적인 구종들
 
[이현우의 MLB+] 회전수가 많다고 좋은 공일까?

 
제구라는 요소를 빼고 단순히 한 구종의 구위만 놓고 비교했을 때 야구에서 가장 위력적인 단일 구종은 무엇일까?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람이 꼽는 구종은 '너클볼'일 것이다. 너클볼의 특징은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이다. 그런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공의 회전을 거의 없애 버려야 하는데, 그래서 너클볼러들은 공의 회전을 죽이기 위해 공을 손가락 끝으로 밀어서 던진다.
 
회전수가 많은 공이 위력적일 것이란 편견과는 반대로 단일 구종으로서 가장 위력적인 구종이 회전이 거의 없는 너클볼이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게다가 야구에서 회전수가 적을수록 위력적인 구종은 비단 너클볼뿐만이 아니다. 스플리터(포크볼) 계열 역시 손가락을 벌리는 행위를 통해 의도적으로 유효 회전수를 억제하는 대표적인 구종들이다.
 
이런 (회전수를 억제하는) 메커니즘으로 인해 스플리터(포크볼)는 패스트볼보다 상대적으로 더 떨어지게 되며, 패스트볼에 익숙해진 타자(와 시청자)의 눈에는 마치 공이 갑자기 가라앉는 것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스플리터 계열의 구종 역시 유효 회전수가 적을수록 위력적이다. 그리고 이는 체인지업의 원리와도 상당부분 맞닿는 부분이 있다.
 
한편, 횡적인 움직임을 강조하는 슬라이더와 커터 계열의 회전수 역시 흥미롭다. 회전축이 공의 전진 방향과 수직을 이루는 다른 구종들과는 달리, 슬라이더(커터 포함) 계열의 구종은 공의 회전축이 앞쪽을 향하기 때문에 포수의 미트에 도달하기 전까지 마치 총알이나, 럭비공과 유사한 회전을 하게 된다. 이를 가리켜 자이로 회전이라고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이로 회전이란 공의 회전축이 진행방향과 평행을 이루는 회전으로 이에 따라 공의 무브먼트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투구 정보 시스템에서 쓰는 무브먼트 0이란 말은 실생활에서 쓰는 움직임이 없다는 말과는 다르다. 종 무브먼트 0, 횡 무브먼트 0은 '공에 공기저항에 의한 효과가 없이 중력팩터만 작용했을 때'의 탄착점을 말한다.
 
[이현우의 MLB+] 회전수가 많다고 좋은 공일까?

 
반대로 종 무브먼트 10인치라는 말은 '공기저항에 의한 효과가 없이 중력팩터만 작용했을 때'보다 10인치 더 높은 위치에 탄착점이 형성됐다는 뜻이다. 이는 실제로 공이 10인치 솟아올랐다는 것과는 다르다. 그보단 무브먼트 0인 공보다 10인치 덜 가라앉는다는 개념에 가깝다. 예를 들어 우리 눈에 종 무브먼트 +9인치(MLB 평균) 패스트볼의 궤적은 직선에 가깝게 느껴진다.
 
반면, 종 무브먼트가 9인치보다 큰 패스트볼은 떠오르는듯한 느낌을 받으며 슬라이더는 종 무브먼트가 +값임에도 불구하고 육안으로는 가라앉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우리 눈이 투수들의 평균적인 패스트볼 무브먼트에 익숙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마찬가지로 슬라이더(커터)의 바깥쪽으로 휘어지는 듯한 움직임 역시 패스트볼과의 횡 무브먼트 차이에 의해 극대화된다. 
 
[이현우의 MLB+] 회전수가 많다고 좋은 공일까?

 
실제로 우투수들의 슬라이더 평균 횡 무브먼트는 2.5인치(6.35cm)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투수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횡 무브먼트인 -5.2인치(-13.2cm)에 익숙해진 타자(와 시청자)들의 눈에는 거의 7.7인치(19.6cm)만큼 휘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원리에 따라 *자이로볼은 좌우 상하 무브먼트가 0이지만, 화면상으로는 낙차가 큰 '종 슬라이더'처럼 보이게 된다.
 
만약 회전수 또는 유효 회전수가 구위에 영향을 미친다면 자이로볼을 포함한 슬라이더 계열 변화구는 배팅볼이나 다름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슬라이더는 때때로 회전수 또는 유효 회전수가 적은 편이 더 위력적일 수 있다.
 
회전수란 지표의 진정한 쓰임새
 
[이현우의 MLB+] 회전수가 많다고 좋은 공일까?

 
지금까지 우리는 유효 회전과 자이로 회전, 회전축과 각 구종별 특성 등을 통해 단순히 회전수의 많고 적음이 한 투수가 던지는 공의 구위를 결정짓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회전수'와 '무브먼트'에만 초점을 맞춘 얘기였을 뿐이라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구속'과 '제구'의 영역에 들어가면 얘기는 좀 더 복잡해진다.
 
앞서 필자는 마그누스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다른 조건이 같다면 회전축이 수평에 가까울수록 위력적인 포심 패스트볼이 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마치 마르코 에스트라다나 크리스 영, 노모 히데오처럼 극단적인 오버핸드로 던지는 것이 포심 패스트볼의 위력을 높일 수 있다는 말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극단적인 오버핸드 투구는 상체의 부자연스러운 기울어짐을 촉발시키는 데, 이로 인해 극단적인 오버핸드로 던지는 투수는 제구 불안에 시달리거나, 쓰리쿼터로 던질 때보다 구속이 떨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무리해서 오버핸드로 던지던 투수가 팔 높이를 낮춘 후 구속이 빨라지고 제구가 좋아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제임스 팩스턴이다.
 
시애틀 시절 2016시즌을 앞두고 트리플A로 강등된 팩스턴은 트리플A 투수코치 랜스 페인터의 권유를 받아 팔각도를 낮춘 후 투구폼이 부드러워지면서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종전 94.2마일(151.6km/h)에서 96.8마일(155.8km/h)까지 빨라졌고, 릴리스포인트(공을 놓는 지점)가 일정해지면서 제구력에서 큰 발전을 이뤘다.
 
이처럼 한 투수의 구위에는 회전수와 무브먼트뿐만 아니라, 구속과 제구 그리고 숨김동작 등을 비롯한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 요소만을 가지고 두 투수의 구위를 비교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며, 특히 회전수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효 회전수를 비롯한 지표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유효 회전수와 회전축을 비롯한 정보는 잘 활용한다면 구종을 개량하고 투구 전략을 새로 수립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트레버 바우어는 올 시즌을 앞두고 기존 슬라이더에 비해 느리지만 수평적인 움직임이 강한 슬라이더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초고속카메라를 이용한 슬로우모션 분석 등을 통해 새로운 그립을 찾아냈다.
 
그리고 새 슬라이더를 앞세워 바우어는 올해 12승 6패 175.1이닝 평균자책점 2.21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할 수 있었다. 한편,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회전수가 많은 콜린 맥휴의 커브를 살리기 위해 회전축을 교정하기도 했다. 이렇듯 데이터와 과학적인 장비를 통해 구종을 개량하고, 투구 전략을 새로 수립하는 과정을 가리켜 피치 디자인(pitch design)이라고 한다.
 
즉, 회전수와 회전축을 비롯한 새로운 정보들은 두 투수를 비교하는 데 있어선 적절하지 않지만, 한 투수의 발전을 위해서 쓰일 때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두 투수의 회전수를 놓고 누가 더 위력적인 공을 던지는 투수인지 비교하지 말자. 
 
어떤 숫자는 선수들을 비교할 때보단 선수가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도구로 쓰일 때 빛을 발하기도 한다.
 
이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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