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내가쓰는이력서] (27) ‘한스타’ 꿈꾸는 한준혁 “단신가드들의 롤 모델 되고파”

일병 news1

조회 1,201

추천 0

2018.11.20 (화) 13:25

                           

[내가쓰는이력서] (27) ‘한스타’ 꿈꾸는 한준혁 “단신가드들의 롤 모델 되고파”



[점프볼=강현지 기자] 2018년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하는 ‘예비 프로’가 쓰는 취업이력서. 27편의 주인공은 46명의 드래프티 중 최단신 일반인 참가자 한준혁(21, 170.6cm)이다. 46명 중 최단신에 꼽히지만, 농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한 번의 방황으로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그와 만나 농구 이야기과 더불어 프로진출을 향한 당찬 포부를 전해왔다.

 

Q. 일반인 참가자 중에서는 주목받은 선수가 아닌가 싶은데요. 기분은 어떤가요?

언제 제가 이런 이슈를 받아볼까 싶어요. 즐기고 있어요(웃음).

 

Q. 내가쓰는이력서의 가장 첫 번째 질문인데요. 농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아버지를 따라 우연찮게 간 농구장에서 김승현 선수에게 반했죠.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선수들이 김승현 선수가 공을 잡으면 환호성을 보내는데 멋있더라고요. 아, 저희 아버지도 어렸을 때 운동을 하려고 했는데, 못하셨데요. ‘아들을 낳으면 운동시켜야지’하셨다는데, 야구는 공이 무서워서 못하겠고, 축구는 발재간이 없더라고요. 하하. 결국 농구였죠.

 

Q. 오른손잡이였던 한준혁이 김승현을 따라 왼손잡이가 되려고 했던 것 또한 유명한 일화에요. 미래의 김승현, 이상민으로 주목받기도 했어요.

농구를 배우기 시작할 때 코치님이 슛을 던져보라면서 공을 주셨는데, 저는 좋아하는 선수 슛폼을 따라 했어요. 김승현 선수처럼 왼손으로 던진 거죠. 그때부터 왼손으로 던지는 슛을 알려주셨는데, 코치님도 저도 잘못된 건지 몰랐던 거예요. 그러다 보니 대학 때까지 왼손으로 슛을 던졌죠. 밥을 먹거나 글을 쓰거나 하는 건 다 오른손이에요. 슛만 왼손이었죠.

 

Q. 지금도 왼손으로 슛을 던지나요?

지금은 오른손으로 바꿨어요. 동국대를 나오면서 제 평가가 ‘슛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왼손잡이 이점이 많다고 생각해서 고집했는데, 우연찮게 기사를 통해 현대모비스가 슛감을 찾기 위해 야구공으로 훈련을 한다는 걸 봤어요. 저도 동국대 야구부 선수들이랑 캐치볼을 하는데, 왼손으로 하니깐 제구가 하나도 안 되더라고요. 오른손으로 하니 기가 막혔고요. 회의감이 들어 그때부터 오른손 슛을 연습했어요.

 

[내가쓰는이력서] (27) ‘한스타’ 꿈꾸는 한준혁 “단신가드들의 롤 모델 되고파” 

Q. 용산중, 용산고 때부터 지금까지 한준혁에 대한 평가는 비슷한 것 같아요. 신장은 작지만, 코트 위에서 뿜어내는 에너지는 대단하잖아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상주중에서 뛰었어요. 각 팀에 한 명씩 있는 빠르고, 공 다룰 줄 알고, 키 작은 선수에 불과했죠. 그러다 중학교 3학년을 앞두고 훈련을 엄청 열심히 했는데, 그해 첫 경기에서 트리플더블(27득점 11리바운드 11스틸)을 한 거에요. 기사에서는 중고농구최초(2012년 연맹회장기)라고 알려졌죠. 그때부터 제 이름을 알리면서 여러 고등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죠.

 

Q. 용산고에서 쟁쟁한 선수들과 경쟁하고, 같이 뛰다 보면 느낀 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되돌아보면 건방졌던 것 같아요(웃음). 정말 지방과는 달리 잘하는 선수들이 많더라고요. 그때 제 동기가 이윤수, 권혁준, 이진석, 이재우, 김성민, 임기웅까지 이렇게 7명이었어요. 키가 작고 슛이 없어 팔굽혀펴기를 하루에 100개씩 하고, 박규훈 선생님께 수비를 배웠죠. 강점을 가지고, 약점을 보완하려 했어요. 드리블 치면서 공은 절대 안 뺏기려고 했어요. 2학년 때는 주전으로 뛰면서 2년 동안 우승 두 번, 준우승만 7번 정도 한 것 같아요.

 

※ 수상이력

- 2015년 춘계연맹전 남고부 어시스트상

 

Q. 동국대로 진학해서 6개월 만에 포기선언을 했어요. 고민도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떤 생각을 했고, 왜 그렇게 결정하게 됐나요.

농구를 좋아해서 정말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슛에 대한 회의감이 들면서 ‘처음부터 잘못됐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프로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다가온거에요. 팀 내 불화설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회의감이 더 컸어요.

 

Q. 이후로는 영남대로 가서 학생으로 돌아갔죠?

그만두고 양정고에서 스킬 트레이닝을 가르치다가 체육교육학과를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서울대를 알아봤는데, 특기자전형을 살펴보니 4등급을 2개만 받으면 입학할 수 있더라고요.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능시험 두 달을 앞두고 학원으로 찾아갔죠. 버릴 건 버리고, 할 수 있는 건 하면서 전략적으로 공부를 했어요. 서울대는 떨어졌는데, 대신 영남대 체육학부에 합격했어요. 1학년 때 60명 중에 6등 안에만 들면 교직 이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죽기살기로 했죠.

 

[내가쓰는이력서] (27) ‘한스타’ 꿈꾸는 한준혁 “단신가드들의 롤 모델 되고파” 

Q. 3x3 대회에는 어떻게 나오게 됐나요?

처음에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상주여중에 김태희 부장님이 그런 케이스시더라고요. 수원대 입학을 한 후 그만두시고 영남대 체육학부에 입학하셔서 현재는 교직에 계세요. 많은 도움을 주셨죠. 수업에서도 맨 앞자리에 앉으면서 공부를 했는데, 2학기 때 3x3 붐이 일어났어요. 코리아투어 대구 예선이 영남대에서 열렸거든요. 우승하면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도 출전일 수 있다고 해서 혹했죠. 그래서 상주에 있는 형들과 팀을 꾸려서 나갔는데, 우승했어요. 그러다가 대회를 치르는 동안 규정이 23세 이하만 출전 가능하다고 바뀌었고, 박스타(박민수), 방덕원 형과 안 붙게 되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런데 갑자기 KBL 윈즈(안영준, 양홍석, 김낙현, 박인태가 꾸린 KBL 3x3 대표팀)가 나타난 거죠.

 

Q. 목표로 한 교직이수는 어떻게 됐어요(웃음).

1학기 중간고사 때는 5등을 했어요. 2학기 때는 농구랄 하다 보니 14등으로 떨어졌죠. ‘큰일 났다’하던 찰나에 마술같이 ‘합격’ 통보를 받았어요. 저처럼 다 같이 기말고사 공부를 안 한 거죠(웃음). 6등으로 교직 이수를 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하.

 

Q. 농구부를 나와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이 많을 것 같아요. 어떤 걸 얻었나요?

생각하는 방식이 바뀐 것 같아요. 어렸을 땐 ‘농구를 관두면 뭐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지금 살펴보면 할 수 있는게 너무 많아졌어요. 그래서 KBL 국내 신인선수 드래프트에도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남들 시선을 덜 신경 쓰게 됐죠.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어요.

 

Q. 아무래도 졸업예정자 선수들보다 더 많은 걸 보여줘야 할 것 같은데, 한준혁의 가장 큰 장점은 뭔가요?

신장이 단점이지만,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코트 안에서 가장 빠른 선수가 되려고 했어요. 절대 공을 안 뺏기려고 드리블 연습을 많이 했고요. 장신 가드들을 상대해야 하니 압박하는 수비를 강점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내가쓰는이력서] (27) ‘한스타’ 꿈꾸는 한준혁 “단신가드들의 롤 모델 되고파”

Q. 한준혁의 최종 목표가 뭔가요?

하고 싶은게 많았는데, 지금은 프로선수가 되고 단신 가드들의 롤 모델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나중에는 박스타가 아닌 한스타로 이름 알릴 날이 오지 않을까요?

 

# 사진_ 점프볼 DB(한필상, 유용우 기자)



  2018-11-20   강현지([email protected])

저작권자 ⓒ 점프볼.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신고를 접수하시겠습니까?

이전 10 페이지다음 10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