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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 야구인] ‘무쇠팔’ 최동원과 ‘다음 번’을 믿는 사람들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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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2 (월) 16:46

                           
최동원은 ‘하늘 그라운드’에서 뛰지만, 여전히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다음 번’을 믿으면서 올해도 ‘무쇠팔 최동원상’을 통해 고인이 된 레전드를 추억했다. 
 
[엠스플 야구인] ‘무쇠팔’ 최동원과 ‘다음 번’을 믿는 사람들

 
[엠스플뉴스]
 
# 2008년. 그는 ‘폐족’ 소릴 들었다. 누굴 만나도 “그 사람과 멀어지라”는 얘길 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됐심더”하고 고갤 저었다. 그처럼 ‘폐족 ’소릴 듣던 이들은 하나둘 사라졌지만, 그는 끝까지 남았다. 그리고 그해 열린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결과는 낙선.
 
상심한 그를 ‘그 사람’이 불렀다. 여기서 ‘그’는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그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낙선한 박재호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모두 나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박재호가 “아니”라고 하면 할수록 노 전 대통령은 더 미안해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노 전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 
 
재호 씨. 지금은 나 때문에 낙선했지만, 다음 번엔 저 때문에 당선될 겁니다. 용기를 잃지 마세요.
 
# 고 최동원.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레전드다. 그는 현역 시절 ‘최고의 선수’였지만, 한 번도 프로야구 1군 감독이 되지 못했다. 지금의 선수협 격인 ‘선수회’를 창설하려던 그에게 새겨진 주홍글씨가 원체 선명한 까닭이었을까. 어느 구단도 그를 ‘감독’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감독’ 기횔 준 이가 있다. 김인식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이다. 2006년 김 전 감독은 최동원에게 한화 2군 감독을 맡겼다. 김 전 감독은 “2군에서 좋은 선수를 육성하는 일 만큼 야구인으로서 긍지 넘치는 일도 없을 것”이라며 첫 감독 업무를 수행하는 최동원의 등을 두들겼다.
 
최동원은 열심히 했다. 이 기횔 잡고 싶었다. 하지만, 암이 그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최동원은 암 투병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김 전 감독 곁을 떠날 때 최동원은 이렇게 말했다.
 
감독님. 제가 꼭 감독님을 다시 보좌할 날이 올 겁니다. 그때까지 건강하십시오.
 
# 박재호가 낙선하고 1년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세상을 떠났다.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박재호는 낙선했다. 하지만, 박재호는 낙담하지 않았다. 낙담 대신 생전 노 전 대통령이 온몸으로 싸웠던 ‘지역주의의 벽’을 허무는데 시간과 열정을 바쳤다. 그렇게 하다 보면 노 전 대통령이 말한 ‘다음 번’이 꼭 올 것으로 믿었다. 
 
실제로 ‘다음 번’은 왔다. 박재호는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의 기쁨을 맛봤다. 2004년부터 12년 동안 줄곧 야당 후보로 출마해 ‘지역주의의 벽’과 싸웠던 그는 당선 되자마자 노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
 
그분 생각하니까 눈시울이 붉어지더라고요. 그분이 말씀하신 ‘다음 번’을 믿지 않았다면 이 순간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니…제가 그분이 말씀하신 ‘지역주의 벽’을 얼마나 잘 허물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분의 유업을 달성하는 게 제 목표인 것만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엠스플 야구인] ‘무쇠팔’ 최동원과 ‘다음 번’을 믿는 사람들

 
최동원은 돌아오지 못했다. 최동원은 생전 자신에게 유일하게 ‘감독’ 타이틀을 달아줬던 김인식 전 한화 감독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못했다. 투병 중일 때도 “감독님을 한번 잘 모셔야 하는데”하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하지만, 최동원은 김 감독과 다시 그라운드에 서지 못했다.
 
2011년 최동원은 향년 54세로 세상을 떠났다. 최동원이 떠난 뒤 김 전 감독은 “동원이가 날 살렸다”며 이렇게 회상했다.
 
“2004년일 거야. 예식장에서 잡채를 먹는데 엄청 짠 거야. 이상하다 싶었지. 그때 옆에 있던 동원이가 ‘감독님, 어서 병원에 가자’는 거야. 그땐 별 이상이 없는 줄 알았지. 그래 이틀인가 있다가 동원이 친구가 있는 병원에 갔어. 갔더니 ‘뇌경색인데 너무 늦게 오셨다’는 거야. 벌써 몸에 마비증세가 왔더라고. 그래도 돌아보면 동원이가 ‘빨리 병원 가시라’고 하고, 동원이 친구 병원에 간 덕분에 더 큰 일을 막을 수 있지 않았나 싶어. 동원이가 나한테 신세를 졌다고? 아니야. 내가 동원이한테 이미 신세를 졌던 거라고.”
 
김 전 감독이 부산에서 열리는 ‘무쇠팔 최동원상’ 시상식에 해마다 참석하는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최동원에게 큰 신세를 졌다고 믿는 까닭이다.
 
‘최동원상’이 무슨 상이야? 해마다 최고의 프로야구 투수를 뽑는 상 아니야. 이 상이 계속 유지되면 최동원에 대한 기억이 더 오래오래 지속될 거 아니겠냐고. 최동원을 모르는 사람들도 동원이를 기억하게 될 거고. 그럼 동원이도, 동원이 가족도, 동원이를 추억하는 팬들도 외롭지 않을 거 아니냐고.
 
[엠스플 야구인] ‘무쇠팔’ 최동원과 ‘다음 번’을 믿는 사람들

 
박재호는 올해부터 ‘최동원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았다. 최동원과의 인연이라곤 같은 학번, 같은 부산 출신이 전부다. 하지만, 그는 기념사업회 이사장직 제안이 왔을 때 단번에 수락했다. 정치적 이해관계는 안중에도 없었다. 기념사업회 이사장직은 정치적으로 뭔가를 도모할 수도, 얻을 수 있는 자리도 아니었다. 
 
그가 기념사업회 이사장이 된 이유는 하나였다. ‘최동원 정신’ 때문이었다.
 
최동원 정신이 뭡니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 아닙니까. 나보다 팀을 먼저 생각하는 정신 아닙니까. 슈퍼스타에 가려진 2군 선수들에게 시선을 돌려 ‘함께 앞으로 나가자’고 독려하는 정신 아닙니까. 전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게 최동원 정신이라고 봤습니다. 그 정신을 계승하고, 시간이 지나도 그 정신을 계속 후대에 전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018년 11월 11일 오전 11시 부산은행 강당에서 ‘제5회 무쇠팔 최동원상’ 시상식이 열렸다. 500명이 넘는 사람이 ‘최동원 정신’을 되새기려고 찾아왔다. 그곳엔 최동원이 눈을 감기 전까지 고마워했던 김인식 전 한화 감독도 있었다. 김 전 감독은 “다음 번에도 계속 시상식이 열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박재호와 김 전 감독은 ‘다음 번’의 기적을 믿고, 바라는 사람들이다. 최동원이 영원히 야구팬들의 머리와 마음에서 기억되려면 더 많은 사람이 ‘다음 번’을 염원하고, 기약해야 한다. ‘무쇠팔 최동원상’과 올해부터 시상한 ‘아마추어 투혼 최동원상’이 계속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다음 번'이 계속되면 전통이 되고, 역사가 될 것이다.
 
박찬웅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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