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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MLB+] 커쇼는 어떻게 부진을 설욕할 수 있었나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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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8 (목) 21:00

                           
[이현우의 MLB+] 커쇼는 어떻게 부진을 설욕할 수 있었나

 
[엠스플뉴스]
 
일반적으로 야구 선수의 이름 앞에 '가을'이란 수식어가 붙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다. 한국 야구팬들에게 '가을'이란 포스트시즌과 동의어다. 따라서 '가을 XX'란 별명에는 '포스트시즌에 강한 선수'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가을이라는 수식어가 종종 반대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가을 커쇼는 진리"란 표현이 그 대표적인 예다. '가을 커쇼'란 한국 메이저리그 팬들이 포스트시즌만 되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는 LA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를 비꼬는 별명이다. 실제로 18일(이하 한국시간) 전까지 커쇼는 포스트시즌에서 8승 8패 1세이브 133.0이닝 평균자책점 4.26을 기록하고 있었다.
 
평범한 투수였다면 크게 비난받지 않았을 성적이다. 하지만 그 성적이 정규시즌 통산 기록인 153승 69패 2096.1이닝 평균자책점 2.39을 기록한 선수가 거둔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한때 '현존하는 지구 최고의 선발 투수'라고 불리기도 했던 커쇼가 가을만 되면 메이저리그 팬들 사이에서 '새가슴 투수'의 대명사가 됐던 이유다.
 
 
지난 13일에 있었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NLCS) 1차전 결과는 이런 인식을 굳히게 된 계기가 됐다. 커쇼는 3.0이닝 6피안타(1피홈런) 5실점(4자책점)으로 무너지며, NLCS 1차전 패배의 원흉이 됐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18일 NLCS 5차전에 등판한 커쇼가 7이닝 3피안타 1실점 9탈삼진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끈 것이다.
 
그렇다면 커쇼가 1차전에서의 부진을 설욕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패스트볼 승부를 고집하지 않고 슬라이더를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다
 
[이현우의 MLB+] 커쇼는 어떻게 부진을 설욕할 수 있었나

 
NLCS 1차전과 5차전에서 커쇼가 가장 달라진 점은 바로 볼배합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1차전 커쇼는 전체 투구수 74구 가운데 34구(45.9%)를 패스트볼로 던졌다. 그런데 5차전에서 커쇼는 7회까지 98구를 던지는 동안 패스트볼을 32구(32.7%)밖에 던지지 않았다. 그 대신 슬라이더의 비율을 45구(45.9%)까지 높였다. 이는 패스트볼보다 13구나 많은 수치다.
 
이런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커쇼의 패스트볼이 더이상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올 시즌 커쇼는 평균 90.9마일(146.3km/h)로 데뷔 이후 가장 느린 패스트볼 평균 구속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커쇼의 정규시즌 패스트볼 피안타율은 .293 피장타율은 .507에 달했다. 그러면서 커쇼의 패스트볼 구종가치(Pitch Value) 역시 2009년 이후 처음으로 -값을 기록했다.
 
지난 10년간 커쇼는 패스트볼 구종 가치에서 정확히 200점을 기록했다. 이는 현역 선수를 통틀어 압도적인 1위이자, 자신이 던지는 세 가지 구종 중에서도 가장 높은 값이다. 즉, 패스트볼은 지난 10년간 커쇼가 에이스로 군림할 수 있게 해준 최대 무기였다는 얘기다. 놀라운 점이 있다면 이런 패스트볼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올해도 1선발급 성적을 거뒀다는 것이다.
 
올 시즌 커쇼는 지난 일곱 시즌에 비하면 부진했지만, 9승 5패 161.1이닝 평균자책점 2.73으로 여전히 웬만한 팀의 에이스보다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그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볼배합의 변화가 있었다.
 
[이현우의 MLB+] 커쇼는 어떻게 부진을 설욕할 수 있었나

 
지난 8월 20일 필자는 [이현우의 MLB+] 커쇼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란 칼럼을 통해 "커쇼는 최근 7경기 가운데 6경기에서 패스트볼보다 슬라이더를 더 높은 비율로 던졌다. 지난해 패스트볼보다 슬라이더를 더 많이 던진 경기가 2경기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놀라운 변화다"라고 쓴 적이 있다.
 
이 글의 핵심은 '커쇼가 느려진 패스트볼 구속과는 달리, 여전히 88.2마일(141.9km/h)로 빠른 구속을 유지하고 있는 고속 슬라이더를 마치 다른 투수들의 커터처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커쇼의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의 구속 차이는 2.7마일(4.4km/h)로 MLB 평균 패스트볼과 커터의 구속 차이인 7.2km/h보다 오히려 적다.
 
올 시즌 후반기 커쇼는 자신의 슬라이더가 지닌 이런 특성을 활용해 1. 슬라이더를 위력이 떨어진 패스트볼을 대신해 카운트를 잡거나 땅볼을 유도하는 용도와 2. 기존 방식대로 2스트라이크 이후 헛스윙을 유도하는 용도로 써먹으며 재미를 봤다.
 
과연 커쇼는 '큰 경기에 약한 투수'란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현우의 MLB+] 커쇼는 어떻게 부진을 설욕할 수 있었나

 
이런 커쇼의 새로운 투구 전략은 NLDS 2차전 등판에서도 이어졌다. 그러나 지난 NLCS 1차전에서는 달랐다. 이날 커쇼는 유난히 패스트볼을 통한 승부에 집착했다. 하지만 커쇼의 패스트볼 구위는 정규시즌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중요한 순간마다 안타를 허용했다. 실제로 지난 NLCS 1차전에서 커쇼가 득점을 허용했던 순간 던졌던 공은 모두 패스트볼이었다.
 
그리고 시즌 후반기에 선보였던 투구 전략으로 돌아간 NLCS 3차전에서는 다시 7이닝 1실점으로 호투를 펼친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첫째, 커쇼는 더이상 예전처럼 강력한 패스트볼의 구위를 바탕으로 윽박지르는 방식으로는 호투를 펼치기 힘들다. 타선의 수준이 높고, 상대 투수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이뤄지는 포스트시즌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둘째, 하지만 정규시즌 성적과 NLDS 2차전, NLCS 5차전에서의 호투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 위력을 잃지 않은 슬라이더를 중심으로 볼배합을 한다면 커쇼는 예전처럼 압도적인 NO.1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에이스급 성적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다(관련 기사: [이현우의 MLB+] 메일백: 커쇼는 왜 가을만 되면 약해질까?)
 
한편, 과거 큰 경기에서의 부진이 단조로운 볼배합에서 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어쩌면 투구 전략의 변경은 커쇼를 '큰 경기에 약한 투수'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게 해줄지도 모른다.
 
2018 클레이튼 커쇼의 구종별 성적
 
[패스트볼] 229타수 67피안타(11피홈런) 35탈삼진 피안타율 .293 피장타율 .507
[슬라이더] 316타수 59피안타(6피홈런) 89탈삼진 피안타율 .187 피장타율 .291
[커브] 101타수 19피안타(0피홈런) 34탈삼진 피안타율 .188 피장타율 .218
 
물론 여전히 걱정되는 바도 없진 않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역시 건강이다. 최근 3년간 그를 괴롭힌 허리 부상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는 이상 커쇼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커터처럼도 쓰고 있지만 그가 던지는 구종은 결국 커터가 아닌 슬라이더다. 늘어난 고속 슬라이더의 비율 역시 커쇼의 건강을 걱정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2010년 미국 스포츠 의학연구소(ASMI)에 따르면 편견과는 달리, 모든 구종 가운데 가장 투수의 팔꿈치 인대에 많은 충격을 주는 것은 패스트볼이다. 이 연구 결과를 신뢰한다면 올 시즌 패스트볼 비중을 낮추고 슬라이더 비중을 높인 커쇼의 선택은 오히려 롱런을 위한 밑거름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더이상 커쇼는 '현존하는 지구 최고의 선발 투수'가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왕좌에서 내려온 올해, 그는 2013년 이후 가장 좋은 포스트시즌 성적을 기록 중이다. 과연 커쇼는 다저스에서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올해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 수 있을까? 이를 기반으로 팀과의 계약을 연장하며 다저스의 전설로 남을 수 있을까?
 
남은 포스트시즌 경기에서도 오늘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커쇼는 마침내 커리어 내내 그를 쫓아다녔던 '새가슴'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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