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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MLB+] 투수 운용의 혁신, '오프너'란 무엇인가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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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화) 21:22

                           
[이현우의 MLB+] 투수 운용의 혁신, '오프너'란 무엇인가

 
[엠스플뉴스]
 
지난 5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 위치한 에인절스타디움에선 매우 진귀한 장면이 연출됐다. 탬파베이 레이스의 불펜 투수인 세르지오 로모(35)가 선발 투수로 등판한 것이다. 로모는 이날 전까지 통산 588경기를 모두 불펜 투수로서 등판했던 투수다. 따라서 단순히 로모가 선발 등판을 한 것만으로도 화제가 될만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진짜로 놀랄만한 점은 따로 있다. 20일 선발 등판한 로모가 이튿날인 21일에도 선발 투수로서 등판한 것이다. 전날 선발 등판해서 1이닝 이상 투구한 투수가 다음 날 다시 등판한 사례는 1980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투수 스티브 맥카티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당연하게도 이 일은 많은 메이저리그 팬들로부터 관심을 모았다.
 
탬파베이는 2018시즌을 앞두고 고정적으로 로테이션을 소화하는 선발 투수를 4명으로 줄이는 대신 5인 선발 로테이션 하에서 5선발이 맡았어야 할 1경기를 불펜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름하여 불펜 데이(Bullpen Day, 고정 선발을 두지 않고 불펜 총력전을 벌이는 것)다. 그러나 탬파베이는 개막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전략을 수정해야 했다.
 
[이현우의 MLB+] 투수 운용의 혁신, '오프너'란 무엇인가

 
왜냐하면, 선발 투수들의 집단 부상으로 인해 4인 선발 로테이션을 꾸리는 것조차 힘든 상황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전문 불펜 투수를 팀의 첫 번째 투수로 등판시켜 1회를 막아낸 다음 긴 이닝을 소화해줄 수 있는 투수를 투입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 후 채 한 시즌도 지나지 않아 이런 전략은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 잡았다. 
 
오프너(Opener)란 이러한 새로운 투수 교체 전략에서 팀의 첫 번째 이닝을 책임지는 투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메이저리그 팀들은 왜 오프너를 쓸까?
 
[이현우의 MLB+] 투수 운용의 혁신, '오프너'란 무엇인가

 
오프너를 활용한 전략이 유행하고 있는 이유는 올해 탬파베이의 성적이 그 효용성을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탬파베이는 올 시즌 시작 전 재정상의 문제로 주축 타자였던 에반 롱고리아, 코리 디커슨, 로건 모리슨, 스티븐 수자와 주축 투수였던 알렉스 콥, 제이크 오도리지를 떠나보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90승 72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는데, 그 비결은 올 시즌 팀 평균자책점 3.73(AL 2위)를 기록한 투수진에서 찾을 수 있다. 
 
탬파베이가 빈약한 투수 로스터의 깊이로도 이렇듯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 '오프너 전략' 덕분이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다 보니 시즌 말미에 이르러선 거의 대부분의 팀이 너도나도 오프너 전략을 구사하기에 바빴다. 이는 당장 이번 포스트시즌만 봐도 알 수 있다. 오클랜드는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결정전(ALWC)에서 오프너 전략을 구사했다.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NLCS)를 치르고 있는 밀워키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NLDS) 1차전에서 우완 불펜 브랜든 우드러프를 낸 밀워키는 3.0이닝 무실점으로 호투를 펼친 우드러프의 호투에 힘입어 시리즈 첫 승을 가져갔다. 그러나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우완 불펜 리암 헨드릭스를 기용한 오클랜드는 헨드릭스가 선취점을 허용하면서 경기 내내 끌려가다가 7:2로 피했다. 사실 이러한 실패는 대부분 오프너 전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데서 비롯됐다.
 
2017년 메이저리그 선발 투수의 타순 바퀴별 성적
 
한 경기에서 첫 번째 상대 시: .728
한 경기에서 두 번째 상대 시: .782
한 경기에서 세 번째 상대 시: .805
 
앞서 언급했듯이 탬파베이가 오프너 전략을 구사한 가장 큰 원인은 근본적으로 팀에 믿을 수 있는 선발 투수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 내적으로는 최근 들어 타순이 돌면 돌수록 선발투수의 성적이 급격히 나빠지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실제로 <베이스볼레퍼런스>에 따르면 지난해 선발 투수가 상대 타순을 처음 상대했을 때 피OPS는 .728이었다. 그러나 두 바퀴에선 피OPS가 .782, 세 바퀴에선 .805로 급격히 늘어났다.
 
이에 따라 선발 투수의 평균 이닝이 지속적으로 줄어들면서 2018시즌 메이저리그 각 팀은 경기당 4.25명의 투수를 기용했다. 이는 단연 역사상 가장 많은 경기당 투수 교체 횟수다. 이렇듯 경기당 평균 3명 이상 불펜 투수를 기용하는 상황이라면 그 가운데 1명은 1회을 낸다고 해서 손해 볼 게 없다. 왜냐하면, 1회는 가장 많은 득점(2018시즌: 2657점)이 나오는 이닝이며, 1회 리드를 가져간 팀의 승률이 69.7%에 달할 정도로 선취점의 중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프너로는 어떤 투수를 써야 할까?
 
[이현우의 MLB+] 투수 운용의 혁신, '오프너'란 무엇인가

 
선취점의 중요성이 높은 만큼 오프너는 아무나 맡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ALWC에서 오프너로 헨드릭스를 기용한 오클랜드의 운용은 경솔했다. 헨드릭스는 올 시즌 성적이 0승 1패 24.0이닝 평균자책 4.13에 그쳤으며, 특히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이 .333에 달했다. 한마디로 말해, 1~4번 타자 가운데 3명(앤드류 맥커친, 애런 저지, 지안카를로 스탠튼)이 우타자로 채워진 양키스를 상대로 오프너를 맡을 선수가 아니었다.
 
오클랜드에는 루 트리비노(ERA 2.92), 션 켈리(ERA 2.94), 페르난도 로드니(ERA 3.36), 쥬리스 파밀리아(ERA 3.13), 블레이크 트레이넨(ERA 0.78) 등 헨드릭스보다 뛰어난 불펜 투수가 5명이 넘게 있었다. 오클랜드가 이들 가운데 한 명을 1회에 기용했더라면 게임의 양상은 크게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단, 그렇다고 해서 1회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해도 곤란하다. 마무리인 트레이넨을 1회에 내는 것은 반대로 커다란 낭비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인사이드 더 북>에 따르면 8~9회 세이브 상황의 중요도 지수(Game Leverage Index, 승리확률 변화를 기반으로 구해진 투수 등판시 중요도)는 약 평균 2.0점으로 1회 1.0점에 비해 두 배 이상 높다. 따라서 오프너를 기용할 때는 팀 내 가장 뛰어난 불펜 투수(ex. 마무리)와 두 번째로 뛰어난 불펜 투수(ex. 셋업맨)은 경기 후반 접전 상황을 위해 남겨놓고, 서너 번째로 뛰어난 불펜 투수 또는 상대 상위 타선의 특성에 맞는 투수를 올리는 게 효과적이다.
 
세르지오 로모의 20일 등판 성적
 
[좌타자] 피안타율 .236 피출루율 .309 피장타율 .372
[우타자] 피안타율 .195 피출루율 .239 피장타율 .332
 
1번 잭 코자트(우) - 삼진 
2번 마이크 트라웃(우) - 삼진
3번 저스틴 업튼(우) - 삼진
 
예를 들어 탬파베이가 에인절스전에서 로모를 오프너로 낸 것은 상대 에인절스의 상위 타선이 트라웃을 포함해 대부분 우타자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조건에서 통산 우타자를 상대로 피안타율 .195 피OPS가 .571에 불과한 로모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점을 보인다(반면, 로모는 좌타자를 상대로는 약점을 보인다). 한편, ALWC에서 이 조건에 부합하는 선수는 트리비노였고, 실제로 그 경기에서 트리비노는 3.0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사실 비단 ALWC뿐만 아니라, 이번 포스트시즌에서는 유독 메이저리그 감독들의 이해 못할 투수 기용 및 교체가 많았다(물론 일부 구단은 이런 트랜드와는 반대로 오히려 정규시즌보다 포스트시즌에서 선발 투수를 길게 쓰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런 팀들은 예외 없이 선발 투수진의 뎁스가 좋다). 왜 그럴까? 이는 메이저리그의 올 시즌이 불펜 야구의 흐름이 본격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과도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오프너 전략, 앞으로의 발전 방향은?
 
[이현우의 MLB+] 투수 운용의 혁신, '오프너'란 무엇인가

 
지금처럼 불펜 야구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불펜 3대장(켈빈 에레라, 웨이드 데이비스, 그렉 홀랜드)를 앞세워 2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던 2014-2015시즌부터 였다. 이후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는 거의 모든 팀들이 이전보다 불펜진을 강화하는데 많은 비용을 투자했다. 그러면서 2016년 겨울에는 마크 멜란슨(4년 6200만), 켄리 잰슨(5년 8000만), 아롤디스 채프먼(5년 8600만)이 역대 마무리 최고 계약을 연이어 경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메이저리그 팀들의 불펜 운영은 큰 틀에서 80년대 후반 토니 라 루사 감독이 정립한 라루사이즘(La Russaism: 5인 선발 로테이션, 마무리, 셋업맨, 좌완 스페셜리스트 등으로 구성된 현대야구의 투수 분업화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라 루사 감독이 이끌던 오클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이 라루사이즘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대략 10여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를 고려했을 때 오프너 전략이 정착하는 데에도 최소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편, 오프너라는 전략이 갖는 특수성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오프너를 쓰는 이유는 한 경기를 온전히 믿고 맡길 선발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발이 풍부한 구단(ex. 2018시즌 LA 다저스)에서는 굳이 쓸 이유가 없다. 또한, 오프너 전략은 선발을 기용할 때보다 불펜에 부담이 가해진다. 따라서 모든 경기에서 오프너를 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탬파베이 역시 에이스인 블레이크 스넬이 등판하는 날에는 오프너 전략을 쓰지 않는다).
 
4-5인 선발 로테이션과 불펜 데이, 오프너 비교
 
[4인 로테이션] 1-2-3-4-1
[5인 로테이션] 1-2-3-4-5
[불펜 데이] 1-2-(BD)-3-4
[오프너] 1-(OP)-2-(OP)-3
 
이에 따라 결국 오프너 전략이 완전히 정착되더라도 25인 로스터가 확대되지 않는 이상 기존 5인 선발 로테이션에서 3-4인 선발 로테이션+오프너 1-2경기 정도로 투수 운영 체계가 변하는 것이 한계일 확률이 높다. 그렇게 되면 1-3선발급 투수들의 몸값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며(오히려 가치가 높아질 수도 있다), 오프너 전략에 영향을 받는 투수는 기존 4-5선발급 투수로 제한될 것이다. 이들은 오프너에 이어 나오는 롱-릴리프로 보직이 변경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오프너란 새로운 보직이 등장한 것은 그 자체로 선발 투수란 보직이 갖는 중요성이 감소하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선 후속 글인 [이현우의 MLB+] 파괴되어가는 선발과 불펜의 경계선을 통해 좀 더 깊이 있게 다뤄볼 예정이다.
 
이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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