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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충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해관계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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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2 (토) 18:00

                           

[매거진] ‘충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해관계만 있을 뿐



[점프볼=김윤호 칼럼니스트] 한 팀에 헌신하는 선수를 점점 더 찾기 어렵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로열티, 즉 충성심이 사라졌다고도 하고 의리가 사라졌다고도 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 얘기는 틀렸다. 처음부터 충성도 없고, 의리도 없었다. 이해관계에 따른 사업상 관계만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눈을 가린 허상부터 걷어낼 필요가 있다.

지난 7월 19일에 카와이 레너드와 더마 드로잔의 유니폼이 바뀌었다. 카와이 레너드는 7년 간 몸담았던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탈출했고, 더마 드로잔은 9년 간 몸담았던 토론토 랩터스에서 사실상 쫓겨났다. 두 사람이 각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 오랫동안 남을 거라는 팬들의 기대는 현실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 충성의 허상

사람들이 마이클 조던에 대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조던도 알고 보면 시카고 불스를 여러 번 떠나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시카고 불스에서 우승반지를 끼고도 바로 떠나려 한 적도 있었다. 실제로 1996년 여름에 조던은 로스엔젤레스에서 장기간 체류하였고, 그 기간동안 LA 레이커스의 수뇌부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사만 확실했다면, 1996-1997시즌에 그의 유니폼이 바뀔 수 있었다. 샤킬 오닐과 함께 뛰는 조던이 현실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랬던 조던이 시카고 잔류를 택한 이유는 단 하나, 연봉 때문이다. 다급해진 제리 크라우스 단장이 연 평균 3,000만 달러의 파격적 대우를 보장한 것이다. 참고로 1995-1996시즌의 조던의 연봉은 385만 달러에 불과했다. 당시의 물가 수준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연봉은 퍼포먼스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조던이 시카고를 떠나려 한 이유 중의 하나가 적은 연봉이었다. 소위 ‘노예 계약’으로 뛰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구단의 박한 대우에 스스로 지친 셈이다.

겉으로만 보면 조던은 시카고 불스 왕조를 굳게 지킨 의리의 화신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지만, 속사정을 보면 그의 잔류 과정은 결국 철저히 이득과 손실을 따진 결정이었다. 크라우스 단장이 특급 대우를 보장하지 않았다면, 조던은 언제든 시카고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봐야 한다. 결국 프랜차이저(franchiser)라는 개념은 선수 측과 구단 측 사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때 가능하다. 한쪽의 일방적인 ‘충성’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

비단 조던만의 얘기가 아니다. 드웨인 웨이드는 마이애미 히트에 10년 넘게 몸담았고 세 번이나 팀의 파이널 우승을 이끌었지만, 정작 구단 프론트는 2016년 여름에 그와의 재계약을 망설였다. 이미 팀의 주전 센터였던 하산 화이트사이드와의 대형 계약이 진행된 상태에서 전력 강화, 체질 개선 등의 성과를 달성하려면, 웨이드에 대한 연봉 대우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웨이드 측에서 요구한 금액은 2,000만 달러 수준이었지만, 마이애미 프론트는 그 금액도 부담스러워했다. 웨이드는 이러한 구단의 태도에 실망한 나머지, 구단에 대한 충성을 자조하는 글을 소셜 미디어에 올리기까지 했다. 13년간의 헌신이 수포로 돌아갔으니, 허탈감이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매거진] ‘충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해관계만 있을 뿐

드로잔의 감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구단에서는 7월초까지도 드로잔을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할 일은 없을 거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레너드가 트레이드 시장에 나오자 태도가 바뀌더니, 드로잔을 순식간에 샌안토니오로 넘겼다. 토론토에서 피와 땀으로 보낸 9년의 시간은 아무런 보상없이 사라졌다. 마사이 유지리 단장은 오해가 있었다며 뒤늦게 사과했지만, 드로잔은 아직 사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 프랜차이저는 낭만이 아니다

이렇게 구단은 선수에 대한 대우를 꺼리고, 심지어는 한순간에 다른 구단으로 팔아넘기기도 한다. 선수에 대한 태도가 손바닥 뒤집듯이 수시로 바뀐다. 그런데도 팬들은 한 팀에 계속 머무르라며 무언의 압력을 넣는다. 구단은 태도가 바뀌는데, 선수의 태도는 변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이보다 더 확실한 이기주의가 있는가?

선수 본인도 모르는 트레이드가 일어나기도 하고, 선수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방출이 수시로 일어나는 곳이 NBA이다. 정규시즌은 10월말부터 시작하지만, 구단 프론트는 7월부터 이미 새로운 시즌 시작이다. 구단에게는 매년 7~8월이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시간이며, 이는 선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커리어를 좌우할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다. 그래서 선수들이 대거 팀을 옮기기도 한다. 한 팀에 끝까지 머물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슈퍼스타들은 이러한 변동에 더 민감하다. 주가가 한번 오르면 끝없이 오르지만, 한번 떨어지면 급격히 떨어지는 게 스타의 숙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FA 계약 하나가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어느 팀으로 가야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을 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입장에서, 팬들의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팬들이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계약 조건을 꼼꼼히 따지게 된다.

[매거진] ‘충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해관계만 있을 뿐

팬들은 그러한 선수들의 행태를 보고, 돈만 쫓는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런데 직업을 가진 사람이 돈을 쫓는 게 잘못되었는가? 내가 일한만큼 돈을 받고, 돈을 받은만큼 일하는 게 직업 세계의 이치이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너무 강해서 이직하지 않는 게 아니다. 누군가가 이직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 회사가 본인이 원하는 조건에 잘 맞기 때문이다. 덕 노비츠키가 20여년간 댈러스 매버릭스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구단에 대한 애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만큼 마크 큐반 구단주와 도니 넬슨 단장이 대우해줬기에 가능한 일이다.

설사 선수가 구단에게 조건 없는 애정을 가진다고 해도, 구단의 애정이 지속되리라는 법은 없다. 내가 아무리 이 회사가 좋아서 계속 다닌다고 한들, 회사 입장에서 내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해고한다. 구단의 입장에서 아니다 싶으면 모든 걸 뒤집기 마련이다. 십수년의 헌신이 온전히 보상으로 돌아오지는 않으며, 때로는 큰 상처로 돌아오기도 한다. 웨이드와 드로잔의 상처가 클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팬들은 여전히 프랜차이저라는 허상의 개념만 쫓는다.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고 커리어가 손상되더라도 팀을 위해 남는 것을 미덕이자 낭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90년대 스타들은 낭만을 버리지 않았다고 과거를 미화한다. 그 시절의 현실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스카티 피펜이 좋은 예가 되겠다. 피펜은 1998년에 휴스턴 로케츠로 이적할 때까지 시카고 불스에서 줄곧 뛰었다. 그 기간 피펜의 연봉은 연 평균 300만 달러에 불과해, 염가 계약의 사례로도 꼽힌다. 피펜이 시카고라는 연고지를 사랑해서 그랬을까? 그렇지 않다. 연봉 계약 도장 한 번 잘못 찍어서 꼼짝없이 시카고에서 뛸 수밖에 없었다.

피펜은 1991년 여름에 시카고와 재계약했다. 연봉 300만 달러, 계약 기간은 7년이었다. 직전 시즌 피펜의 연봉이 76만 달러였다는 점, 구단은 그를 롤 플레이어라고 생각했던 점, 피펜에 대한 주목도가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 제리 라인스도프 구단주의 구두쇠 성향 때문에 300만 달러의 연봉은 양 측 모두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합의점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 7년 간 올스타에 6회 선정되고 7년 내내 올 NBA 디펜시브 팀에 선정되며 피펜의 가치가 더 올라갔다.

만일 그 시절에 피펜이 옵트 아웃 조항을 삽입하였다면 피펜은 대폭 인상된 연봉으로 재계약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피펜의 계약서에는 그런 옵션 조항이 없었고, 조던이 1998년에 은퇴를 선언할 때까지 연봉 300만 달러에 묶이고 말았다. 결국 시카고 구단 측에서 의도한 노예 계약이었던 셈이다. 참고로 피펜이 시카고에서 11시즌간 받은 연봉보다 워싱턴과 포틀랜드에서 5시즌간 받은 연봉이 훨씬 많다.

90년대에는 이러한 계약 때문에 선수가 발이 묶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계약 성사 당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계약은 대개 선수의 발목을 잡았다. 트레이드가 아니면 쉽게 팀을 옮길 수도 없었다. 선수가 원치 않게 발이 묶인 계약이 구단에 대한 충성으로 포장된 것이다. 이는 낭만으로 볼거리가 되지 못한다.

[매거진] ‘충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해관계만 있을 뿐

▲ 모든 건 이해관계

어디까지나 선수와 구단 간의 계약은 동등한 입장에서의 계약이다. 지주와 소작농 간의 일방적인 윽박지름이 아니다. 서로 간의 이해관계를 고려한 평등 계약이다. 따라서 어느 한 쪽이 충성 맹세를 할 이유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이해관계가 기울어지는 순간, 계약은 계약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가 프랜차이저라고 부르는 선수들은 계약 조건과 구단과의 이해관계가 시기적절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한 팀에 오래 머무를 수 있었다. 절대 꿈속의 낭만을 쫓은 적도 없고, 군인처럼 충성을 한 적도 없다. 그저 자신의 조건에 맞는 직장에 계속 머물렀을 뿐이다. 그러다가 이해관계가 어긋나면 팀을 떠나게 된다. 직장에 흔히 일어나는 이직의 모습이다.

르브론 제임스가 LA 레이커스로 이적한 것도, 드마커스 커즌스가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를 고른 것도 결국은 다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선택이자 계약이다. 토론토가 드로잔2과 이별한 것도 결국 구단의 선택이다. 부정한 수단이 개입한 게 아니라면, 그러한 선택을 굳이 팬들이 비난할 이유도 없고, 비난이 정당화되지도 않는다. 프로의 세계는 비즈니스이며, 비즈니스는 의리로 하는 일이 아니다.

# 사진_나이키 제공

# 본 기사는 2018년 8월호 점프볼에 게재되었던 내용입니다. 



  2018-09-22   김윤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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