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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한의 골든크로스] ‘OB 어린이팬’ 아버지 “제 아들이 베어스맨이 됐습니다”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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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1 (화) 08:00

                           
1982년 OB 베어스 '원년 어린이 팬' 전병문 씨는 이제 나이가 들어 중년의 아버지가 됐다. 어린 시절 야구를 보며 자라고, 젊어서는 야구와 함께 청춘을 불살랐던 그에게 '중년의 야구'는 오랜 친구이자 젊은 날의 초상이다. 그런 전 씨를 야구는 외면하지 않았다.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베어스에 아들이 입단하는 영광을 선물한 것이다.
 
[김근한의 골든크로스] ‘OB 어린이팬’ 아버지 “제 아들이 베어스맨이 됐습니다”

 
[엠스플뉴스]
 
자신이 응원하던 팀에 자기 아들이 선수로 입단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쉽지 않아 보이는 이 가정이 현실이 됐다. 주인공은 부천고 투수 전창민의 아버지 전병문 씨다. 
 
두산 베어스는 9월 10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19 KBO 신인 2차 드래프트'에서 전창민을 1라운드 9순위로 지명했다. 전창민은 186cm의 큰 키에 140km/h 중반대 속구와 스플리터를 구사하는 유망주다.
 
충암고 입학 때만 해도 포수로 뛴 전창민은 2학년 때 부천고로 전학하고서 투수로 전향해 급성장했다. 투수뿐 아니라 타자로도 재능이 뛰어나단 게 프로 스카우트들의 평가다. 두산은 제구력에 다소 약점이 있어도 투수로서 폭발적인 잠재력을 지닌 전창민을 과감하게 1라운더로 선택했다.
 
‘OB 어린이팬’ 아버지, 아들이 ‘베어스맨’ 되는 꿈을 이루다
 
[김근한의 골든크로스] ‘OB 어린이팬’ 아버지 “제 아들이 베어스맨이 됐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OB 베어스 원년 어린이 팬이 됐습니다. 아직도 어릴 적에 받은 OB 브로마이드가 있어요. 구천서, 김광림 등 예전 선수들이 떠오르네요. 베어스의 모든 우승을 직접 지켜봤어요. 아무래도 타이론 우즈와 김동주가 뛰던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얌전하게 응원하지만, 그땐 저도 혈기왕성했던 시절이라, 포스트 시즌 티켓을 구하려고 구장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어요(웃음).
 
두산 유니폼을 입은 아들을 옆에 두고 ‘원년 베어스 팬’ 전병문 씨는 쉴 새 없이 예전 추억을 쏟아냈다. 전 씨는 아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야구를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들이 2남 1녀 중 장남이에요. 이 녀석이 태어나기 전부터 '크면 야구를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웃음). 아들이 어릴 때 키가 큰 편이 아니라서 항상 일찍 재우고 좋은 것만 먹였습니다. 좀 커서는 두산 경기를 같이 보러 다녔죠. 아들이 초교 3학년부터 야구를 시작했는데 당시 포지션이 포수였어요. 그 통에 아들이 양의지 선수를 가장 좋아했습니다(웃음).” 전 씨의 말이다.
 
사진 촬영으로 다소 헝클어진 유니폼을 다시 고쳐 입은 전창민도 아버지의 추억 여행에 동참했다. 
 
아버지를 따라 어릴 적부터 잠실구장으로 야구를 보러 갔어요. 아주 어릴 땐 기억이 안 나는데 초교 고학년부턴 기억이 나요. 저도 자연스럽게 두산 팬이 됐죠. 마침 학교에서 포수를 맡아 양의지 선배님이 제 우상이 됐어요. 이제 두산에 지명됐으니 양의지 선배님과 함께 공을 주고받는 상상을 해보려고 합니다(웃음).“ 전창민의 얘기다.
 
베어스 원년 팬에게 하늘이 내려준 선물
 
[김근한의 골든크로스] ‘OB 어린이팬’ 아버지 “제 아들이 베어스맨이 됐습니다”

 
신인 드래프트 전까지 아버지와 아들은 두산 유니폼을 입으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1라운드 9순위 지명권을 쥔 두산의 선택 역시 안개 속이었다. 
 
어젯밤에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꿈을 꾸지 못했어요. 아들이 두산 유니폼을 입으리라곤 상상조차 못 했습니다. ‘설마 두산이 1라운드에서 뽑겠어’ 했죠. 그런데 지명회의장에서 아들 이름이 나오는 거예요. 소름이 돋았습니다. 베어스 원년 팬에게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 아닐까 싶어요(웃음). 아들의 지명 순간을 떠올리며 아버지 전병문 씨의 입가에 지문만 한 작은 미소가 그려졌다.
 
전창민도 두산 지명을 예상치 못한 건 마찬가지였다. 다소 충혈된 눈이었지만, 전창민은 "울지 않았다"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가끔 두산 유니폼을 입는 상상을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현실이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호명되는 순간 얼떨떨했어요. 예상치 못한 높은 순위에서 절 선택해주신 두산 구단에 정말 감사드려요. 두산이 올 시즌 리그 1위인 강팀인데 정말 열심히 해서 꼭 살아남고 싶습니다. 항상 두산 팬들의 기억에 남으면서 팀에 보탬이 되는 투수가 되고 싶어요. 
 
“아들아, 프로 가면 팬들께 사인 잘해드려라”
 
[김근한의 골든크로스] ‘OB 어린이팬’ 아버지 “제 아들이 베어스맨이 됐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다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서 인성이 바른 투수’로 성장하길 원한다.
 
아들이 학교 다닐 때 몇 번이나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했었어요. 그럼에도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영광이 찾아왔다고 봅니다. 이제부터가 진짜 여정이라고 생각해요. 힘든 정글 속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다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잘 버텼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인성이 좋은 투수가 됐으면 해요. 내년에 아들이 양의지 선수와 함께 공을 주고받는 상상을 저도 지금부터 해보려고 합니다(웃음). 
 
전병문 씨는 들뜬 아들에게 프로 가면 팬들께 사인 잘해주는 선수가 돼야 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걱정이 무엇인지 잘 아는 듯 “지금껏 절 잘 키워주신 부모님께 정말 감사드린다"며 "부모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실력과 팬 서비스 모두에서 두산 팬들의 뇌리에 오랫동안 남는 투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전창민은 인터뷰가 끝난 뒤 지금도 믿기지 않는단 듯 연방 손으로 두산 유니폼을 쓸어내렸다. 이 장면을 보기 위해 아버지는 19년을 가슴을 쓸어내리며 살아왔을지 모른다. 아들이 잠실구장 마운드에 오르는 날, 아버지는 37년 전 OB 베어스 어린이 팬의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김근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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