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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섭의 하드아웃] ‘주자 득점시에만 인정’, 희생플라이 성립조건의 비밀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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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8 (화) 10:22

                           
야구는 ‘희생의 스포츠’다. ‘추상적 가치’인 희생이 기록으로 남는 까닭이다. 희생플라이, 희생번트처럼 ‘희생’이란 단어가 붙는 기록은 팀을 향한 헌신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이동섭의 하드아웃] ‘주자 득점시에만 인정’, 희생플라이 성립조건의 비밀

 
[엠스플뉴스]
 
타자가 친 공이 외야로 멀리 뻗는다. 3루 주자는 베이스를 밟고, 심호흡을 시작한다. 타자가 외야 깊숙이 때려낸 공에 주자는 전력 질주를 시작한다. 
 
주자가 무사히 홈을 밟으면, 더그아웃의 동료들이 박수와 환호로 득점을 축하한다. 동료들의 박수는 득점을 올린 주자와 외야 플라이를 쳐낸 타자를 향한다. 특히 뜬공을 때려낸 타자의 경우, 적재적소의 상황에 ‘팀 플레이’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는다. 
 
그리고 타자의 기록엔 희생 플라이(Sacrifice Fly)란 다섯 글자가 남는다. 
 
번트와 플라이… 똑같은 '희생'인데, 인정 조건은 다르다?
 
[이동섭의 하드아웃] ‘주자 득점시에만 인정’, 희생플라이 성립조건의 비밀

 
야구에서 ‘희생’은 ‘작전 수행 능력’을 의미한다. 팀이 필요한 상황에 희생할 줄 아는 타자의 가치는 상승한다. 
 
KBO리그 통산 최다 희생번트(229)를 기록한 롯데 자이언츠 김민재 코치와 통산 최다 희생플라이(90) 기록 보유자 LG 트윈스 박용택이 작전 수행 능력이 뛰어난 타자라고 평가받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두 타자의 기록을 살펴보면, 희생번트가 희생플라이보다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기록 성립 조건’에 차이가 있는 까닭이다. 
 
희생번트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주자를 다음 베이스로 진루시키려 번트를 대는 것. ‘앞서 출루한 주자가 진루한다’는 조건을 만족할 때 희생번트는 성립한다. 주자가 어느 베이스에 있건, 진루만 시키면 타자의 기록엔 희생번트가 추가된다. 
 
반면, 희생플라이가 성립되는 조건은 좀 더 까다롭다. 희생플라이의 사전적 정의에도 이 ‘까다로운 조건’은 그대로 명시돼 있다.
 
태그업으로 득점을 올릴 수 있도록 외야 깊은 곳으로 날려 보낸 뜬공.
 
희생플라이의 성립 조건은 ‘득점’이다. 깊숙한 뜬공으로 주자가 태그업을 하더라도, 득점을 올리지 못하면 희생플라이를 인정받지 못한다. 
 
번트와 플라이를 쳤을 때 희생을 인정받는 조건엔 큰 차이가 있다. 희생을 인정받는 데에도 온도 차가 존재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두 기록의 성립조건에 차이가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야구 기록원 A 씨 “희생플라이가 득점을 전제로 성립되는 이유?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야구 기록은 논리적이기보다 보수적”
 
[이동섭의 하드아웃] ‘주자 득점시에만 인정’, 희생플라이 성립조건의 비밀
 
‘희생플라이’는 야구 본토인 미국에서도 논란이 많았던 기록이다. 희생플라이는 1908년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처음 채택됐다. '번트'와 차별성을 갖는 희생 기록이 필요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희생플라이가 ‘정통 기록’으로 분류되는 데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08년 이후 MLB는 ‘희생 플라이’ 기록을 수차례 폐지한 뒤 다시 채택했다. 그리고 1954년. 희생플라이는 ‘야구의 일부’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희생플라이를 정식 기록으로 인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논리적 정당성 때문이었다. 
 
‘득점을 전제로만 인정되는 희생’엔 형평성 문제가 있었다. 1루, 2루 주자가 태그업으로 진루할 때 타자는 희생플라이를 인정받지 못한다. 같은 진루타인데, ‘희생’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 
 
‘희생’의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희생플라이를 정식 기록으로 인정한 배경이 궁금했다. 엠스플뉴스는 이 궁금증을 해결하려 야구 기록원 A 씨를 찾았다.
 
그런데, A 씨는 뜻밖의 대답을 내놨다. “원래부터 희생플라이는 득점을 전제로 한 기록”이란 말이었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통계의 스포츠’인 야구에서 기록 성립조건이 “원래 그렇다”는 건 아이러니한 대목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는 기자에게 기록원 A 씨는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나 역시 희생플라이 성립조건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여러 곳에 물어보니 돌아온 답은 같았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것이었다.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런 논리라면, 홈런도 ‘치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건가 싶었다(웃음). 외야 플라이로 주자를 진루시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루, 2루 주자가 진루하는 건 3루 주자 진루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알아봐도 정확한 답은 없더라. 야구 기록의 세계는 논리적이기보다 보수적이다. 따져보면, 논리적으로 얼토당토않은 기록도 많다(웃음). 하지만, 그게 야구다. 야구만의 규칙에 따라, 기록이 남는 것. 그게 야구의 매력 아니겠나. A 씨의 말이다. 
 
야구엔 야구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다. 그 규칙엔 모두를 만족시키는 논리가 결여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희생플라이 성립조건을 살펴봐도, '논리적 정통성'에 앞서 '전통'이 자리잡고 있었다. 
 
A 씨 말처럼 '논리적이지 않은 규칙 역시 야구의 매력'일 수 있다. 어쩌면, '희생의 형평성'보다 중요한 건 희생을 인정하는 '야구의 가치'에 있을지 모른다.
 
이동섭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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