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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 인터뷰] 아마야구 최장수 검표원 “동대문야구장 땐 오전부터 장사진이었죠”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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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4 (금) 10:22

                           
당신이 목동야구장을 찾는다면 우연히 마주칠 사람이 있다. 검표원 조성욱 씨다. 만약 당신이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야구장을 추억하고 싶다면 우연이 아니라 반드시 조 씨를 만나길 권한다. 그가 바로 '살아있는' 동대문야구장이기 때문이다. 
 
[엠스플 인터뷰] 아마야구 최장수 검표원 “동대문야구장 땐 오전부터 장사진이었죠”

 
[엠스플뉴스]
 
(음료수를 건네며) 취재하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서울 양천구 목동야구장에서 10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는 이가 있다. 검표원 조성욱(64) 씨다. 많은 아마추어 야구팬이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넬 만큼 조 씨는 이제 목동야구장에선 친숙한 존재다. 
 
조 씨가 야구장 검표원으로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한 건 2001년이다. 그땐 목동야구장이 아니라 동대문야구장이 주무대였다. 작은 회사에 근무하다가 허리를 다치면서 검표원 일을 하게 됐다. 
 
중학교 때 야구를 했어요. 졸업도 하기 전에 십자인대가 끊어져 야구를 포기해야 했죠. 그래도 직접 할 순 없어도 볼 순 있으니까, 학교 야구부 경기가 있는 날이면 빠짐없이 찾아가 응원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야구를 좋아했다니까요(웃음). 
 
조 씨의 고향은 전북 군산이다. 학창 시절도 군산에서 보냈다. 1972년 군산상고가 황금사자기대회에서 우승할 때도 그는 군산에 있었다.
 
"9회까지 군산상고가 부산고에 1대 4로 뒤지고 있었다고. 그런데 거짓말처럼 9회 대역전승을 거뒀어요. 그때만 해도 군산상고가 많이 알려진 팀이 아니었거든요. 다들 놀랐지. 나도 놀라고(웃음). 정말 명승부였어요. 그때 완전히 야구 매력에 빠졌죠."
 
“과거엔 고교야구 인기가 정말 대단했어요. 아침 9시에 시작하는 첫 경기 보려고 새벽부터 사람들이 몰려들 정도였으니까" 
 
[엠스플 인터뷰] 아마야구 최장수 검표원 “동대문야구장 땐 오전부터 장사진이었죠”



 
'역전의 묘미'를 맛본 조성욱 씨는 1975년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야구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당시 그가 맡은 업무가 매표였다. 
 
“과거엔 고교야구 인기가 정말 대단했어요. 아침 9시에 시작하는 첫 경기 보려고 새벽부터 사람들이 몰려들 정도였으니까요. 프로야구 인기보다 좋으면 좋았지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조 씨의 회상이다.
 
오랫동안 야구장에서 일한 덕분에 그는 한국야구를 이끄는 주역 모두를 현장에서 직접 지켜봤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다면 그게 누굴지 궁금했다. 조 씨는 한국프로야구 통산 최다 안타 기록자인 LG 트윈스 박용택을 꼽았다.
 
“동대문운동장 시절 고려대 박용택 인사성이 참 밝았어요. 지금도 절 보면 깍듯하게 인사합니다. 실력도 좋지만, 인성이 참 훌륭한 선수예요.”
 
KIA 타이거즈 안치홍과 양현종, 삼성 라이온스 한기주도 기억에 남는 선수들이다. 
 
“안치홍, 양현종, 한기주도 참 착했어요. 한기주는 정말 대단했는데. 고교 때 너무 혹사를 당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안치홍, 양현종은 지금도 정말 잘해주니까 대견할 따름이에요.”
 
아마야구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조 씨는 동대문야구장 시절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자 진한 아쉬움을 토해냈다.
 
“아직도 화가 나요. 동대문야구장이 없어지면서 우리나라 아마야구가 많이 어려워졌어요. 동대문야구장이 있을 땐 그나마 사람들이 아마야구 보러 많이 찾아왔는데. 시내 한복판에 있다 보니 지나가다가도 ‘오늘 야구하나?’하면서 들리곤 했죠. 여기(목동야구장)는 한번 오려면 큰 맘 먹고 와야 하는 곳이라, 관중도 학부모 아니면 동문이 대부분이에요.”
 
폭염보다 더 괴로운 취객 관중, "그래도 힘닿는데까지 해보고 싶네요."
 
[엠스플 인터뷰] 아마야구 최장수 검표원 “동대문야구장 땐 오전부터 장사진이었죠”
 
서울 미아리에 사는 조 씨는 아침 8시면 어김없이 목동야구장으로 출근한다. 퇴근은 밤 8시 이후다. 곧장 집에 가지 않으면 잠 잘 시간도 충분하지 않다. 
 
올해는 유난히 더운 날씨로 고생했다. 업무 특성상 대부분 구장 밖에 있어야 하기에 그의 주변엔 에어컨은 고사하고, 변변한 선풍기가 없을 때도 많다. 하지만, 더운 날씨보다 그를 더 괴롭히는 건 매너없는 관중이다. 특히나 표를 사지 않고, 무작정 야구장에 들어가려는 취객은 40도의 폭염만큼이나 그를 괴롭게 한다. 
 
그런데도 조 씨는 야구장 검표원 일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 아마야구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힘들어지는 게 사실이에요. 그래도 힘닿는데까지 해보고 싶어요. 아마야구가 예전처럼 살아난다면 없던 기력도 생길 것 같습니다(웃음).
 
우리에게 조 씨는 동대문야구장의 환영(幻影)이자 남아있는 흔적일지 모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신의 위치에서 야구를 위해 헌신하는 조성욱 씨께 경의를 표한다. 당신이 곧 야구입니다.
 
박재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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