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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MLB+] 류현진과 '피처빌리티(pitchability)'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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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6 (목) 21:22

                           
[이현우의 MLB+] 류현진과 '피처빌리티(pitchability)'

 
[엠스플뉴스]
 
류현진(31·LA 다저스)이 105일 만의 복귀전에서 눈부신 투구를 펼쳤다.
 
류현진은 16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동안 3피안타 무볼넷 6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8회 초 팀의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한 케일럽 퍼거슨이 동점을 허용하는 바람에 승리 투수는 되지 못했지만, 류현진이 선발로서 제 몫을 다했다는 사실엔 이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큰 우려를 모았던 패스트볼 구속은 최고 92.6마일(149.0km/h)까지 찍혔고, 오랜 공백 후에 흔히 찾아오기 마련인 체력적인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류현진의 진짜 대단한 점은 따로 있다. 바로 긴 공백 속에서도 '투구 감각'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현우의 MLB+] 류현진과 '피처빌리티(pitchability)'

 
류현진은 16일 경기에서 포심 패스트볼, 투심 패스트볼, 컷 패스트볼(커터), 스파이크 커브, 슬로우 커브, 체인지업을 효과적으로 섞어 던졌다. 놀라운 점은 여섯 구종을 모두 일정 수준 이상 제구했다는 것이다. 
 
류현진이 투수로서 지닌 최대 장점은 바로 이런 '피처빌리티(pitchability)'다.
 
피처빌리티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켰던 류현진의 복귀전 호투
 
 
 
피처빌리티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선수를 평가할 때 흔히 쓰는 용어다. 보통은 '구종 배합 능력' 등으로 의역되지만, 실상은 좀 더 복잡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에 대해 2013년 야구 통계사이트 <베이스볼프로펙터스>의 케빈 골드스타인은 한 야구팬이 "피처빌리티가 구체적으로 어떤 능력을 말합니까?"라고 묻자 10가지 항목으로 답한 바 있다.
 
1. 어떤 공을 던질지 예측할 수 없도록 만드는 능력
2. 타자 또는 심판의 특성에 따라 볼 배합을 다르게 가져가는 능력
3. 최고의 타자를 상대로도 볼넷을 내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
4. 최소한의 투구로 볼 카운트를 유리하게 만드는 능력
5. 한 구종을 스트라이크 존을 분할해서 제구할 수 있는 능력
6. 상황에 맞는 완급 조절 능력
7. 딜리버리(투구폼)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능력
8. 와인드업을 할 때만큼 셋업모션에서도 잘 던지는 능력
9. 짧은 투구 간격
10. 모든 구종을 원하는 위치에 가깝게 던질 수 있는 능력
 
16일 류현진의 복귀전이 위 열 가지 항목에 모두 부합하는 사례다. 먼저 이날 류현진은 패스트볼과 커터, 커브볼과 체인지업을 골고루 섞어 던졌다(표1). 또한, 구심이 우타자의 바깥쪽 코스에 후한 판정을 내린다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백도어성 커터를 그곳으로 집중시켰다(영상1). 그뿐만 아니라 오늘 경기에서만큼은 단 하나의 볼넷도 내주지 않았다.
 
[이현우의 MLB+] 류현진과 '피처빌리티(pitchability)'

 
한편, 1회를 마치고 제구가 잡힌 뒤로는 빠른 승부를 통해 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가면서 12타자 연속 아웃카운트를 잡았다. 이날 류현진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90.4마일(145.5km/h)로 MLB 좌완 투수 평균(91.9마일)에 못 미쳤지만, 커터 포함 최저 85.4마일(137.4km/h) 최고 92.6마일(149.0km/h)로 완급 조절을 함으로써 타자들의 체감 구속을 높였다.
 
심지어 류현진은 커브볼 역시 기존의 슬로우 커브(카운트 잡는 용도)와 올 시즌부터 던지기 시작한 스파이크 커브(결정구 용도)로 나누어 던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류현진에게 남은 숙제: '건강을 유지하는 것'
 
[이현우의 MLB+] 류현진과 '피처빌리티(pitchability)'

 
 
이런 류현진의 피처빌리티는 구종별 투구 위치 분포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경기에서 류현진은 패스트볼과 나머지 구종을 위/아래로 구분 지어 던짐으로써 패스트볼의 위력을 극대화했다(그림1). 경기 초반엔 커브와 커터를 낮게 던진 다음 패스트볼을 높게 던져 헛스윙을 유도하다가, 경기 중반엔 반대로 패스트볼로 시선을 끈 다음 커터를 낮게 제구해서 재미를 봤다.
 
사실 이런 높낮이를 이용한 투구에, 앞서 언급한 완급 조절이 더해진 결과 올 시즌 류현진의 포심 패스트볼은 41타수 3피안타 10탈삼진 피안타율 0.073을 기록 중이다. 이는 지난해 류현진의 포심 피안타율이 .362에 달했으며, 지난해보다 오히려 평균 구속은 하락(90.4→90.3마일)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 전에 알아둬야 할 점이 있다. 피처빌리티는 결코 '만능열쇠'가 아니다. 아마추어 투수를 평가할 때 프로 스카우트들이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구속과 구위다. 피처빌리티에 대한 관찰은 스피드건을 통해 구속을 측정한 뒤 향후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최소한의 구위를 갖춘 투수임이 밝혀진 다음에야 행해진다. 이는 류현진에게도 해당하는 얘기다.
 
류현진의 평균 구속은 지난해가 더 높았지만, 경기별 최고 구속은 단연 올해가 더 높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난해까지 류현진은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 강하게 던져서 상대적으로 평균 구속이 높았다면, 올해의 류현진은 더 강하게 던질 수 있음에도 완급 조절하고 있기 때문에 지난해 대비 평균 구속이 낮게 측정되고 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이현우의 MLB+] 류현진과 '피처빌리티(pitchability)'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있다면 어깨 부상 전에도 이후에도 패스트볼 구속이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수 있는 최소 기준(대략 평균 90마일 이상)'을 넘어가는 날의 류현진은, 어떤 팀이라도 쉽사리 공략할 수 없는 투구를 펼친다는 것이다. 이는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도 손에 꼽힐 수준의 피처빌리티를 갖춘 선수라는 데에서 기인하는 현상이다.
 
오늘 류현진은 최상의 투구 내용을 통해 이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제 류현진에게 남은 건 지금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단순히 선발 로테이션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을 넘어, 수술 이전을 뛰어넘는 활약을 펼치는 것도 불가능한 목표만은 아니다.
 
이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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