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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헌의 브러시백] 돌아온 해커에게 마산은 '약속의 땅'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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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3 (월) 16:22

                           
| 지난해까지 NC 다이노스 외국인 에이스로 활약한 에릭 해커가 8개월 만에 창원 마산야구장에 돌아왔다. 이번엔 NC 유니폼이 아닌 버건디 유니폼을 입고, 홈팀 더그아웃 대신 원정 더그아웃에 모습을 드러냈다.
 
[배지헌의 브러시백] 돌아온 해커에게 마산은 '약속의 땅'

 
[엠스플뉴스]
 
창원 마산야구장은 에릭 해커가 야구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다.
 
마산에 오기 전까지 해커는 ‘저니맨’이었다. 좀처럼 한 팀에서 오래 머물 기회를 얻지 못했다. 2002년 뉴욕 양키스 입단 이후 2009년까지 8년간 루키리그, 하위싱글 A, 싱글 A, 더블 A 등 온갖 리그를 들락거렸다. 8년 가운데 2년은 팔꿈치 부상 탓에 통째로 날렸다.
 
빅리그 데뷔는 2009년 시즌 중 트레이드로 이적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유니폼을 입고 이뤘다. 그해 메이저와 마이너를 오간 해커는 이듬해 다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이적해 1년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냈다. 2011년엔 미네소타 트윈스 소속으로 빅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갔고, 2012년 다시 자이언츠로 옮겨 빅리그와 마이너 사이 연옥 같은 공간에 머물렀다.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한 뒤, 해커가 한 팀 소속으로 5년 이상 활약한 건 KBO리그 NC 다이노스가 처음이다.
 
마산야구장에서 보낸 5년은 해커에게 행운과 기쁨, 즐거움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2013년 처음 마산 땅을 밟은 해커는 2017년까지 꾸준하게 에이스 투수로 활약했다. 마산에 온 뒤 첫 딸 칼리를 얻었고, 첫 포스트시즌과 첫 올스타전과 첫 한국시리즈를 경험했다. 
 
그 어떤 야구장보다 많은 승리를 거둔 구장이 바로 마산야구장이다. 미래가 불확실한 마이너리거였던 그를 ‘100만 달러의 사나이’로 만들어준 곳도 마산이다. NC 팬들은 그를 영웅으로 찬양했다. 야구선수로서 해커가 거둔 모든 성공은 마산야구장에서 완성됐다. 해커에게 마산이 특별한 장소인 이유다. 
 
마산야구장은 제가 5년 동안 생활한 곳입니다. 마치 내 집 같은 느낌이에요. 다시 방문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거의 8개월 만에 마산야구장 원정 더그아웃에서 만난 해커가 들려준 말이다.
 
“마산, 좋은 기억이 정말 많은 곳. 다시 오게 되어 기쁘다”
 
[배지헌의 브러시백] 돌아온 해커에게 마산은 '약속의 땅'

 
해커는 올 시즌을 앞두고 NC 다이노스와 재계약을 맺지 못했다. 더 강력한 외국인 에이스를 데려오라는 현장의 요구에 해커와 마산의 5년 인연이 끝났다. 해커는 미국에 머물며 개인 훈련을 소화하며, 새로운 둥지를 찾았다. 
 
NC와 관계는 끝났지만, 해커의 시선은 여전히 KBO리그를 향했다. 해커는 SNS를 통해 자신의 훈련 영상과 일상을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며 ‘구직 활동’에 나섰다. ‘칼리요정’의 사진이나 습작으로 그린 잭슨 폴록 풍 페인팅을 공개하는 팬서비스도 잊지 않았다.
 
해커의 오랜 노력은 마침내 응답을 얻었다. 6월 에스밀 로저스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외국인 투수 한 자리가 빈 넥센 히어로즈가 해커에게 손을 내밀었다. 계약조건은 30만 달러. 지난해 받은 몸값(100만 달러)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지만, 다시 KBO리그 구장에 설 수 있단 것만으로 해커에겐 충분했다. 
 
해커와 친정 NC의 조우는 생각보다 빨리 이뤄졌다. 7월 8일, 새 홈구장 고척스카이돔에서 NC를 만난 해커는 5이닝 무실점 호투로 친정팀에 곤경을 안겼다. 비록 팀은 타선 불발로 1-2로 패하긴 했지만, 8개월 공백이 무색할 만큼 해커는 여전한 구위와 제구력, 경기운영 능력을 선보였다. 
 
마산 방문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넥센은 7월 20일부터 22일까지 NC를 상대하러 창원 마산야구장을 방문했다. 해커는 흰 유니폼 대신 버건디 유니폼을 입고, 홈 더그아웃 대신 원정 더그아웃에 나타났다. 첫 날부터 넥센 더그아웃은 해커의 ‘마산 지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만날 사람이 많다보니, 첫날 요청한 인터뷰를 다음날로 미뤄야 할 정도였다.
 
“마산 하면 좋은 기억이 참 많은 곳입니다. 이곳의 팬들에게도 좋은 기억이 많아요. 사람들과 다시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해커가 말했다.
 
가장 행복한 기억 하나만 꼽아 달라고 하자, 해커는 첫 딸 칼리의 탄생을 언급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땐 아내와 저, 두 사람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2013년 칼리가 태어났고, 한 가족을 이루게 됐죠. 정말 멋진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해커의 아내 크리스틴과 딸 칼리는 해커만큼이나 마산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요즘도 ‘칼리요정’을 그리워하는 마산 팬들의 게시물이 종종 팬사이트에 올라올 정도다. NC 선수들도 해커 얘기가 나오면 ‘칼리는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넥센과 계약이 급박하게 이뤄진 탓에, 해커는 가족보다 먼저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크리스틴과 칼리, 막내아들 엘스턴은 월요일(23일)에 한국에 올 예정이다. 
 
“가족들 모두가 한국에 다시 오게 되어 한껏 고무되어 있습니다. 특히 칼리는 태어나서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잖아요. 그만큼 한국 생활을 편안하게 생각합니다.” 해커의 말이다. “물론 가족들은 한국보다는 저를 더 보고 싶어 하겠지만요.”
 
한국에 돌아온 해커 가족은 앞으로 마산이 아닌 서울에서 생활하게 된다. “서울 원정을 가본 적은 있지만 서울에서 사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앞으로 알아가야 할 게 많긴 하지만, 재밌는 경험이 될 것 같아요.” 벌써부터 해커의 SNS엔 서울의 맛집과 멋진 공간을 찍은 사진이 수시로 올라오고 있다. 사진 업데이트 속도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서울 생활에 적응해 가는 해커다.
 
서울 생활만큼, 새로운 팀 넥센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다. 해커는 “팀 구성원들의 개인 성격 차이는 있지만, 크게 보면 똑같은 야구팀이다. 야구하는 데 있어 큰 차이는 느끼지 못한다”며 “코칭스태프와 대화하고 팀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호흡을 맞추고 적응해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해커 “NC 상대 첫 승, 하늘이 정해준 것이라 생각한다”
 
[배지헌의 브러시백] 돌아온 해커에게 마산은 '약속의 땅'

 
확실히 마산은 해커에게 약속의 땅이다. 복귀 후 첫 세 차례 등판에서 해커는 들쭉날쭉한 투구내용을 보였다. 복귀전에선 4회까지 잘 던지다 5회 들어 대량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됐다. 세번째 등판인 LG 전에서도 5.2이닝 5실점으로 투구내용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22일 마산 선발등판은 달랐다. 이날 해커는 시즌 최다 6.1이닝을 던질 동안 단 3점만 내주는 호투로 복귀 후 첫 퀄리티 스타트를 작성했다. 5회까지 1-2로 끌려가던 넥센은 6회 동점을 만든 뒤 7회 2점을 더해 4-2로 역전, 해커의 승리투수 요건을 완성했고 불펜이 8, 9회를 실점 없이 막아내 6-3으로 승리를 거뒀다.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한 뒤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땅인 마산에서 복귀 후 첫 승리까지 챙긴 셈이다.
 
NC가 친정팀이긴 하지만 이제 전 넥센 소속이니까요. 새 소속팀인 넥센이 많이 이기게 하는 게 프로로서 당연한 자세라 생각합니다. 해커의 말이다. 공교롭게도 NC를 상대로 첫 승을 거뒀습니다. 하늘이 정해준 것이라 생각해요.
 
8개월간 실전 공백에도 불구하고 해커는 여전히 NC 에이스로 활약하던 시절 구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142.2km/h로 2014년(142.5km/h) 이후 최고 수준이다. 투심과 커터 등 변형패스트볼로 타자의 배트를 피해가는 영리한 피칭도 그대로다.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혼자 운동하는 동안에도 가능한 한 팀에 소속된 선수처럼 몸을 만들려 했어요. 타자를 세워놓고 라이브 피칭도 소화했고, 시즌을 치르고 있단 생각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복귀 준비를 했습니다.” 해커가 변함없이 뛰어난 투구를 할 수 있는 비결이다.
 
해커는 공백기 동안 자신의 KBO리그 복귀를 응원해준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팬이 없으면, 저도 없습니다. 팬들이 있기 때문에 제가 지금 여기서 야구를 할 수 있어요. 야구장에 가든, 거리에 나가든 팬들이 항상 반겨주고 잘 대해줘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해커는 고마운 마음을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표현했다. 경기 전 NC 구단이 팬서비스 차원에서 팬들의 운동장 출입을 허용하는 시간이 왔다. 34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에 다른 넥센 선수들은 일찌감치 라커룸으로 철수했지만, 해커는 혼자 남아 러닝 훈련을 소화했다. 그러다 운동장에 들어온 팬을 보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캐치볼을 주고 받았다.
 
조금 뒤, 아이스 커피를 사러 잠깐 운동장 밖에 나서자 구름 같은 팬들이 해커를 에워쌌다. 그 자리에서 즉석 팬사인회가 열렸다. ‘마프리카’라 불리는 마산의 여름 더위 정도는 해커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하기야 지난 5년 동안 수도 없이 겪어본 더위다. 마산 팬들이 쏟아내는 열정적인 애정 공세도, 해커에겐 너무나 익숙한 경험이다. 
 
배지헌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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