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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 기획] ‘밑 빠진 독’ 천안야구장에 수십억 혈세 추가 투입 논란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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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7 (화) 10:00

수정 2

수정일 2018.07.17 (화) 10:07

                           
| 충청남도 천안시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시민 혈세 780억 원을 쏟아부은 야구장이 흉물이 된 것도 모자라, 해마다 수십억 원의 추가 예산이 야구장 개보수 비용으로 투입될 예정이다. 


 


[엠스플 기획] ‘밑 빠진 독’ 천안야구장에 수십억 혈세 추가 투입 논란


 


[엠스플뉴스]


 


몇 해 전 한 대학 축제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되자, MC를 맡은 코미디언이 학생들을 향해 외쳤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등록금이 터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부모님이 피땀 흘려 벌어온 돈이 마구 터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충청남도 천안 시민들도 삼룡동 천안야구장 근처를 지날 때마다 비슷한 생각이 들지 않을까. “여러분! 피땀 흘려 낸 소중한 혈세가 야구장에서 줄줄 새고 있습니다!”라고 말이다. ‘780억 원짜리 저주’로 충남 지역의 대표적인 흉물 취급을 받는 ‘천안야구장’에 천안시가 해마다 수십억의 혈세를 추가 투입할 예정이라 논란이 되고 있다.


 


천안시 체육교육과 관계자는 엠스플뉴스와 통화에서 천안야구장을 순차적으로 정비하는 게 구본영 시장의 뜻이라며 올해 12억 원을 투입해 천안야구장을 개보수할 예정이다. 올해 이후에도 지속해서 야구장을 정비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천안시는 야구장 건립에 이미 천문학적 혈세를 쏟아 부었다. 2013년 11월 ‘완공’하는데 들어간 시 예산이 무려 780억 원. 이 가운데 토지보상비만 540억 원에 달할 정도라 ‘세금 낭비’의 대표적 사례란 지적을 받았다. 성무용 전 시장(당시 새누리당)은 야구장 건립 과정의 업무상 배임 혐의가 적용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 중이다.


 


천안시 관계자는 “780억 원을 전부 사용한 게 아니다. 실제 쓰인 건 620억 정도”라고 주장했지만, 문제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시민 혈세가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낭비됐고, 그 결과로 야구장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괴 시설’이 탄생했단 게 문제의 본질이다. 


 


‘12억 원 들여 인조잔디 등 공사’ 계획,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엠스플 기획] ‘밑 빠진 독’ 천안야구장에 수십억 혈세 추가 투입 논란


 


그렇다면 천안시는 예산 12억 원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예정일까. 천안시 관계자는 진입로 미포장 구간을 포장하고, LED 전광판을 설치할 예정이다. 더그아웃 시설도 개선하고 야구장 가운데 1면에 인조잔디를 깔 예정이라며 “이미 천안 시설관리공단이 계약을 마친 상태”라고 밝혔다.


 


야구계에선 천안시의 계획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지적한다. 현재의 ‘천안야구장’에 인조잔디를 깔거나 부분 보수를 하는 식으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단 지적이 나온다. 특히 현재 그라운드 위에 그대로 인조잔디를 깔겠다는 천안시의 계획에 대해서도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란 비판이 많다. 


 


야구장 건설 전문가인 모 프로구단 관계자는 “천안시에서 야구장 배수공사를 마쳤다고 주장하는데, 직하배수가 아닌 표면배수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천안시는 2016년 6억 원을 투입해 야구장 5개 면에 배수공사를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관계자는 “표면배수는 그라운드 표면에 경사를 만들고, 경기장 가장자리에 배수로를 두르는 방식”이라며 “보통 야구장이 아닌 학교 운동장 같은 데나 사용하는 방식”이라 지적했다. 비 온 뒤 천안야구장 그라운드 곳곳에는 크고 작은 물길이 생겼다. 이는 표면배수를 한 운동장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엠스플 기획] ‘밑 빠진 독’ 천안야구장에 수십억 혈세 추가 투입 논란


 


인조잔디를 깔려면 표면배수가 아닌 직하배수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천안야구장은 애초에 그라운드 설계가 잘못된 데다 표면배수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그라운드를 파내고 다시 공사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 추가적인 예산 비용이 불가피하다. 


 


구단 관계자는 “인조잔디를 깔려면 먼저 유공관(구멍 뚫린 파이프)을 매설하고 그 위에 그물과 자갈, 모래를 순차적으로 깐 뒤 점토를 덮어야 한다. 잔디도 카펫 형태가 아닌 파일(pile)방식으로 깔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배수효과와 잔디로서 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일반적’인 과정을 거쳐 인조잔디를 까는 데는 야구장 한 명당 약 3억 원이 든다. 야구장 5면에 모두 설치하는 데는 15억 원이 든다. 천안시가 투입하려는 예산(12억 원)에 비하면 다소 큰 액수다. 하지만 현재 그라운드 위에 잔디만 덮는 식으로 공사해서 헛돈만 쓰는 것보단, 한번 할 때 ‘제대로’ 하는 편이 낫다는 게 전문가의 조언이다.


 


한화 야구단 유치, 야구장 건설? 그러라고 내는 세금이 아닐 텐데


 


[엠스플 기획] ‘밑 빠진 독’ 천안야구장에 수십억 혈세 추가 투입 논란


 


충남지역 한 야구 관계자는 “천안야구장은 근본적으로 잘못 만든 야구장”이라며 “땜질식으로 한두 군데 보완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를 거는 격”이라 비판했다. “물론 이미 지어놓은 구장인 만큼 유지와 관리는 필요하지만, 해마다 막대한 혈세를 투입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천안시가 야구장을 제대로 관리할 생각이 있다면 달랑 시설관리공단 직원 두 명만 보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일침을 날렸다.


 


천안 지역사회에선 야구장에 부당하게 쏟아부은 예산을 환수하고, 야구장 활용 방안을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례로 6·13 지방선거에서 천안시장 예비후보로 출마했던 김영수 당시 시의원은 천안야구장 활용 시민위원단을 구성해 시민들이 가장 바라는 형태로, 재정에 무리가 가지 않는 방법으로 천안야구장을 시민의 품에 돌려놔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반면 당선된 구본영 시장은 선거 당시 “한화가 충남과 천안의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해 야구 연고지를 천안으로 옮기거나, 홈 야구장을 천안으로 이전한다면 천안의 오룡경기장을 활용해 야구장을 건설, 제공할 용의가 있다”며 오히려 야구장 하나를 추가로 지을 수도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미 천안야구장에 예산 780억 원을 쏟아부은 천안시가 새로운 야구장, 그것도 프로 경기를 치를 만한 야구장을 새로 짓는 건 현실성이 떨어지는 얘기다. 한화 관계자도 “인구 140만 광역시를 두고 연고지를 옮길 이유가 있느냐”며 “언급할 가치를 못 느낀다”고 일축했다. 


 


이에 대해 천안시 관계자는 “시장님의 공약이 아니라 언론 상대로 나온 발언 가운데 하나”라며 의미를 축소했지만, 구 시장의 ‘한화 야구장 건설’ 발언은 엄연히 선거캠프에서 내놓은 보도자료에 포함된 내용이다. 소속 정당은 달라도, ‘시민 혈세’를 가볍게 여기고 스포츠를 선거 수단으로 동원한다는 점에선 전·현직 시장이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엠스플 기획] ‘밑 빠진 독’ 천안야구장에 수십억 혈세 추가 투입 논란


 


더 나쁜 건 시장이 바뀌고 시의회 구성이 바뀌어도, ‘780억 원짜리 야구장’ 탄생을 방치한 공무원들이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단 점이다. 야구장 건립은 전직 시장이 주도했지만, 일선에서 예산을 짜고 공사업체를 계약하고 실무를 진행한 건 ‘영혼 없는’ 천안시 공무원들이다. 


 


취재 과정에서 한 천안시 관계자는 “780억 원이 아니라 620억 원만 사용했다”며 “이미 지나간 야구장 문제를 왜 물고 늘어지느냐”고 항의했다. 잘못된 행정으로 시민 혈세를 탕진하고 전국적 망신을 자초한 데 대한 부끄러움이나 미안함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진짜 비극은, 이런 공무원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제2, 제3의 ‘천안야구장’이 언제 또 다시 생길지 모른다는 것이다. 천안야구장 기사가 나간 뒤 엠스플뉴스엔 천안시의 '1200억 원짜리 천안축구센터' '565억 원짜리 공원' 사업을 고발하는 메일이 쇄도했다. 분노한 천안 시민들의 목소리가 마치 대학 축제 무대의 코미디언처럼 들렸다.


 


"여러분! 여러분의 혈세가 엉뚱한 곳에서 줄줄 새고 있습니다!”란 외침 말이다.


 


배지헌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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