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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MLB+] '불운왕' 디그롬과 2018 NL 사이영상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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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3 (금) 17:44

                           
[이현우의 MLB+] '불운왕' 디그롬과 2018 NL 사이영상

 
[엠스플뉴스]
 
전반기까지 123.1이닝 149탈삼진 평균자책 1.68을 기록 중인 선발 투수의 승수는?
 
정답은 5승이다. 
 
제이콥 디그롬(30·뉴욕 메츠)은 올스타전을 앞둔 13일(한국시간)을 기준으로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 가운데 유일하게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기 동안 쌓은 승수는 5승밖에 되지 않는다. 
 
2018시즌 디그롬의 각종 지표 및 순위
 
평균자책 1.68 (NL 1위)
이닝 123.1 (NL 2위)
탈삼진 149개 (NL 2위)
WHIP 0.97 (NL 2위)
FIP 2.30 (NL 1위)
fWAR 4.4승 (NL 1위)
bWAR 6.0승 (NL 1위)
승수 5승 (NL 공동 53위)
 
특히 5월 24일부터 7월 12일까지로 범위를 좁혀서 등판일지를 살펴보면 더욱 처참하다. 해당 기간 디그롬은 10경기에 나서 72.0이닝을 15실점(13자책) 80탈삼진 평균자책점 1.63으로 상대 타선을 틀어막았다. 같은 기간 디그롬이 거둔 승수는 단 1승. 나머지 경기에선 모두 패하거나, 승패 없이 물러났다. 디그롬이 마운드에 머물렀을 때를 기준으로 메츠 타선의 경기당 평균 득점지원이 1.60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디그롬의 최근 10경기 등판 일지
 
[7월 12일] 8이닝 무실점 7K (노디시전)
[7월 07일] 8이닝 1자책 8K (노디시전)
[7월 01일] 6이닝 3자책 8K (패전)
[6월 24일] 6이닝 3자책 6K (패전)
[6월 19일] 8이닝 1자책 7K (승리)
[6월 14일] 7이닝 1자책 7K (패전)
[6월 08일] 8이닝 2자책 8K (노디시전)
[6월 02일] 7이닝 1자책 13K (노디시전)
[5월 29일] 7이닝 1자책 8K (노디시전)
[5월 24일] 7이닝 무실점 8K (노디시전)
 
그렇다면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디그롬은 대체 몇 번째로 불운한 것일까? 메이저리그 통계 사이트인 <베이스볼 레퍼런스>를 통해 확인해보자.
 
[이현우의 MLB+] '불운왕' 디그롬과 2018 NL 사이영상

 
라이브볼 시대 100이닝 이상 투구+1점대 평균자책을 유지한 채 전반기를 마친 선수는 26명이 있었다. 그중 5승 이하를 기록한 투수는 디그롬이 유일하다. 같은 기간 나머지 25명의 투수들은 최대 17승 최소 8승을 거뒀다. 한편, 1910년 이후 전반기를 100이닝 이상+5승 이하로 끝마친 투수 중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는 빌 스틴(1914년 ERA 2.06)이었다.
 
디그롬은 104년 묵은 기록을 평균자책점 -0.38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경신했다. 한마디로 말해 올해 전반기까지 디그롬의 불운은 가히 메이저리그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최고의 페이스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디그롬의 성적은 선발 투수의 기량을 평가함에 있어 승수란 지표를 통한 비교가 얼마나 무의미한 지를 말해준다.
 
디그롬, 역대 최소 승수 사이영상 받을 수 있을까?
 
[이현우의 MLB+] '불운왕' 디그롬과 2018 NL 사이영상

 
불운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지만, 사실 승수를 제외한 다른 지표에서 디그롬은 메이저리그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전반기까지 디그롬이 기록한 평균자책점 1.68은 메이저리그에 지명타자 제도가 도입된 1974년 이후 44년간 3번째로 낮은 수치다. 첫 번째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투수 시즌이라고 평가 받는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2000시즌(평균자책점 1.44)
 
그리고 2위가 '닥터 K' 드와이트 구든의 1985시즌(평균자책점 1.6766)이다. 같은 팀 소속 선후배인 디그롬과 구든의 격차는 약 0.0017점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페이스를 유지한 채 시즌을 끝마칠 수만 있다면 평균자책점만 놓고 봤을 때, 디그롬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세 손가락 안에 꼽힐만한 투수 시즌을 보내게 된다. 
 
문제는, 그럼에도 일각에선 '승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디그롬의 전반기 활약이 폄하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단적인 예가 디그롬의 사이영 수상 가능성에 대한 반응이다. 현지와 국내 전문가 및 커뮤니티 일부는 디그롬이 2018 NL 사이영상을 받는 것에 있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재 페이스대로라면 시즌이 끝날 때까지 '10승' 달성조차 미지수란 이유에서다.
 
2000 페드로 마르티네스
[전반기] 9승 3패 106.0이닝 140탈삼진 평균자책 1.44
[최종] 18승 6패 217.0이닝 313탈삼진 평균자책 1.74
 
1985 드와이트 구든 
[전반기] 13승 3패 155.2이닝 153탈삼진 평균자책 1.68
[최종] 24승 4패 276.2이닝 268탈삼진 평균자책 1.53
 
2018 제이콥 디그롬
[전반기] 5승 4패 123.1이닝 149탈삼진 평균자책 1.68
[최종] ???
 
흥미로운 점은 승수가 투수 평가 지표로서 적절치 않다는 데 동의하는 이들 중에서도 사이영상 투표에서 만큼은 '10승' 미만 투수의 수상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10승과 9승의 차이는, 11승과 10승의 차이와 마찬가지로 1승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십진법에 익숙한 우리는 같은 1승 차이더라도 전자의 차이를 더 크게 느낀다. 전형적인 십진법의 함정이다. 
 
우리는 앞서 등판일지를 통해 디그롬의 투구 내용을 살펴봤다. 진지하게 9이닝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탓이라거나, 평소에 팀원들에게 갈비를 사주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아니라면, 10경기 동안 1승 4패에 그친 책임이 디그롬이 아닌, 10경기 동안 16점(심지어 그중에서 6점은 1경기에서 나왔다)밖에 지원해주지 못한 타선에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 팀 성적이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MVP와는 달리, 사이영상은 철저히 개인성적에 의거해 뽑혀왔다. 이를 고려했을 때, 다른 지표(이닝 및 탈삼진 등)도 아니고 승수가 십진법 기준 '두 자릿수'에 못 미칠 것 같다는 논리로 디그롬이 사이영 후보에서 배제되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특히 세이버메트릭스가 발전한 현대에 이르러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지난해까지 선발 투수의 사이영상 시즌 가운데 가장 낮은 승수는 페르난도 발렌수엘라(1981년 13승 7패 평균자책점 2.48)와 펠릭스 에르난데스(2010년 13승 12패 평균자책점 2.27)가 기록한 13승이었다. 하지만 점차 투수 분업화가 진행되어감에 따라, 최근 들어 에이스급 투수의 평균 승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과연 디그롬은 역대 최초로 10승 미만으로 사이영을 수상한 선발 투수가 될 수 있을까. 남은 시즌 동안 지금의 페이스를 이어갈 수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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