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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MLB+] 오클랜드의 약진, '머니볼 3기' 시작될까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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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2 (목) 16:22

                           
[이현우의 MLB+] 오클랜드의 약진, '머니볼 3기' 시작될까

 
[엠스플뉴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빌리 빈 부사장은 메이저리그 현역 프런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사다. 오클랜드는 2002시즌 시작 전 주축 선수들이 대거 이탈했음에도 불구하고, 20연승(당시 기준 역대 4위)을 포함해 103승을 거뒀다. 2002년 오클랜드의 연봉 총액은 3978만 달러였다. 반면, 같은 승수를 거둔 뉴욕 양키스의 연봉 총액은 1억 2550만 달러였다. 즉, 오클랜드는 양키스의 1/3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비슷한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비결은 당시로선 생소한 개념인 '세이버메트릭스(야구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를 이용해, 시장에서 저평가 받고 있는 선수를 영입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 마이클 루이스는 2003년 <머니볼>을 발간했다. (약간은 과장과 왜곡이 가해지긴 했지만) '머리를 써서' 부자 구단을 이긴 가난한 구단의 단장 빌리 빈의 스토리는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다. <머니볼>은 경영학 부문 베스트셀러가 됐고, 2011년에는 영화화되기까지 했다.
 
이를 통해 빌리 빈은 유능한 단장의 대명사가 됐다. 그리고 그는 그런 명성을 누릴 자격이 있었다. 2006년 이후 잠시 침체기를 겪던 오클랜드를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강팀으로 재도약시켰기 때문이다. 이때를 가리켜 머니볼 오클랜드 2기라고 지칭하는 이도 있었을 정도다. 문제는, 얼마 못 가 오클랜드의 성적이 다시 추락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빌리 빈에겐 "한물갔다"는 평가가 따라붙었다.
 
이해 못 할 반응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빌리 빈은 조시 도날드슨 트레이드를 포함해 무리수를 던지는 경우가 많았다. 오클랜드 같은 돈 없는 팀은 트레이드 실수 몇 번만으로도 수년간 나락에 떨어질 수 있다. 실제로 2014시즌을 마치고 도날드슨을 트레이드한 오클랜드는 이후 3년 연속으로 지구꼴찌에 머물렀다. 더욱 심각한 점은 3년간의 리빌딩에도 불구하고 2018시즌에도 지구 꼴찌가 유력하단 평가를 받을 만큼 반등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이현우의 MLB+] 오클랜드의 약진, '머니볼 3기' 시작될까

 
그런 오클랜드가 달라졌다. 오클랜드는 12일(한국시간) 현재 52승 41패를 기록 중이다. 비록 AL 서부지구에선 3위에 머물러있지만, 현재 오클랜드가 기록 중인 승률 55.4%는 AL 중부지구 1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승률 54.9%)보다 높은 수치다. 현재까지 지구 2위이자, AL 와일드카드 2위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승차는 5.5경기. 시즌 종료까지 아직 69경기가 남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역전을 노려볼 수 있을 만한 차이다.
 
그렇다면 오클랜드는 어떻게 단 한 시즌 만에 강팀으로 도약할 수 있었을까?
 
'분산 투자'로 일낸다
 
[이현우의 MLB+] 오클랜드의 약진, '머니볼 3기' 시작될까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겉보기로는 현재 오클랜드의 선수 구성이 빌리 빈 이하 오클랜드 수뇌진이 구상했던 계획에서 많이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오클랜드는 션 마네아를 필두로 한 선발 로테이션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마네아를 제외한 나머지 영건들(다니엘 멩덴, 앤드류 트릭스, 케빈 그레이브먼, 폴 블랙번, 자렐 코튼 등)이 집단으로 부상을 당하면서 빌리 빈의 원대한 구상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에이스 머네아와 크리스 배싯, 프랭키 몬타스가 버텨주곤 있지만, 오클랜드는 나머지 두 자리를 어쩔 수 없이 베테랑 저니맨급 자원인 에드윈 잭슨과 브랫 앤더슨으로 메우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타선으로 시선을 돌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오클랜드는 올해도 제 몫을 다해주고 있는 크리스 데이비스와 제드 라우리를 필두로 타율은 낮지만, 3할 중반대의 출루율과 함께 20-30홈런을 기록할 수 있는 타자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역시 3루수 맷 채프먼과 1루수 맷 올슨 듀오다. 이들은 해당 포지션에서 평균 이상의 장타력과 함께 최고 수준의 수비력을 갖춘 재원으로, 표면적인 성적보단 WAR(대체선수 대비 기여승수) 같은 세이버메트릭스 지표로 봤을 때 더욱 돋보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편,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함께하기 위해 팀에 합류한 스티븐 피스코티도 지난 5월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와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2018년 오클랜드의 타선에는 과거 머니볼 1기(미겔 테하다, 에릭 차베스), 2기(조시 도날드슨)와는 달리 MVP급 선수는 없지만, 이처럼 풀타임 WAR 2~4승을 기록할 수 있는 선수들이 즐비하다. 이런 타선 구성은 오클랜드와 같은 스몰마켓 팀에게 이상적인 방식이다. 오클랜드는 MVP급 활약을 펼치는 선수가 원하는 연봉을 맞춰줄 만한 재정 형편이 안 된다.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핵심 선수를 떠나보내면 최소 3-4년간은 암흑기에 빠졌다.
 
 
 
이를 방지하고 지속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선 '분산 투자'를 할 필요가 있었다. 도날드슨 트레이드를 포함해 오클랜드는 A급 선수를 내주는 대가로 S급 유망주 1명보다는 그보다 못한 '여러 선수'를 받는 것을 선호했고, 이는 FA를 영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와 같은 시도는 많은 이로부터 '어중간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실제로 실패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수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오클랜드는 마침내 한 명에게 의존하지 않는 타선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반등 가능성 높은 불펜 자원을 조기에 선점하기
 
[이현우의 MLB+] 오클랜드의 약진, '머니볼 3기' 시작될까

 
한편, 오클랜드가 시행착오 끝에 과거의 실패사례를 극복한 것은 불펜 투수진에 대한 투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머니볼 1기, 2기 시절 오클랜드가 정규시즌에 뛰어난 성적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던 주된 원인은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다른 팀에 비해 불펜진이 허약했기 때문이다. 과거 오클랜드가 불펜진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이유는 빈약한 재정 형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강력한 불펜진을 바탕으로 2014-2015시즌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하기 전까지 세이버메트리션들 사이에서 불펜은 일종의 '사치품'으로 여겨졌다. 선발 투수진에 비해 훨씬 적은 이닝을 소화하는 불펜진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매일 경기에 출전하는 타선이나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선발진에 투자하는 게 이득이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런 과거 세이버메트리션들의 논리에는 한가지 맹점이 있었다.
 
바로 1. 포스트시즌이 되면 불펜의 소화 이닝이 선발 못지않게 늘어난다는 점과 2.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팀끼리의 맞대결은 접전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으며 그럴 땐 불펜진이 강한 팀이 더 유리하다는 점 때문이다. 모두가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불펜 투수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다음이었다. 하지만 오클랜드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했다. A급 불펜 투수와는 달리, B급 불펜 투수들의 몸값은 여전히 저평가받고 있다는 점이다.
 
오클랜드는 라이언 매드슨과 션 두리틀(재계약), 산티아고 카시야와 유스메이로 페팃 등 반등 가능성이 높은 불펜 자원을 조기에 선점했다. 그다음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를 트레이드해서 상대적으로 더 젊은 선수를 재수급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현 마무리 블레이크 트레이넨이다. 트레이넨은 5승 2패 23세이브 평균자책 0.98을 기록하며, 7승 1패 40.1이닝 평균자책 1.34을 기록 중인 루 트리비노와 함께 철벽 불펜진을 이루고 있다.
 
[이현우의 MLB+] 오클랜드의 약진, '머니볼 3기' 시작될까

 
강력한 타선과 불펜진, 여기에 더해 부상으로 이탈해있는 선발 투수들이 돌아와 준다면 오클랜드는 향후 수년간 포스트시즌 진출을 바라볼 수 있는 전력을 갖추게 된다. 이는 초창기 머니볼 때보다 더 이루기 힘든 업적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2003년 이후 각 구단들이 '머니볼'의 핵심 이론을 받아들이면서 새로 개척할만한 '블루오션'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클랜드와 빌리 빈은 또 다른 블루오션을 개척해가고 있다.
 
그것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이는 아무나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물갔다'는 지난 몇 년간의 평가와는 달리, 그때도 지금도 빌리 빈은 여전히 빌리 빈이었다.
 
이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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