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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조원규의 시원한 籠談] 국가대표 상비군에 대한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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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1 (수) 17:22

                           

[매거진][조원규의 시원한 籠談] 국가대표 상비군에 대한 잡담



[점프볼=조원규 칼럼니스트] 2018년 5월 18일 인천도원체육관. 제41회 이상백배 한일 대학농구경기대회의 첫 경기가 열렸습니다. 작년 성적은 남녀 모두 3전 전패. 그 부담감 때문인지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의 표정은 비장했습니다. 결과는 여자대표팀 패배. 남자대표팀 승리. 남자대표팀은 38점차의 완승입니다. 패배했지만 여자대표팀도 선전했다는 평가입니다. 김상준 남자대표팀 감독과 국선경 여자대표팀 감독은 한 목소리로 상비군 제도가 도움이 됐다고 언급했습니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번 이상백배에서 가장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은 상비군 제도다. 고무적이다. 이런 기회를 통해 선수들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됐길 바란다. 승패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또한 이번 대회를 준비한 모든 선수들에게 개인적인 발전을 기대하고 있다.”

 

김상준 감독의 대회 전 인터뷰입니다. 감독의 기대처럼 선수들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조직력도 좋아졌다는 평가입니다. 작년까지 대표팀은 2~3일 합동훈련이 전부였습니다. 조직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올해는 3월부터 매주 주말 호흡을 맞췄습니다. 한국의 타이트한 수비에 일본은 당황했습니다. 공격에서도 약속된 플레이를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결과도 좋았습니다. 남자는 2연승으로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했고, 여자 역시 승리는 없었지만 작년보다 끈질긴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상비군이 무엇이기에 ‘고무적’이라는 표현까지 했을까요? 과거의 대표팀 선발 방식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상비군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면서 미래와의 대화를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상비군(常備軍), Standing army

상비군은 군사용어입니다.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항상 준비되어 있는 군대가 되겠네요. 항상 준비되어 있는 군대는 정규군입니다. 평소에도 집단생활을 하고 엄격한 교육과 훈련을 받으므로 단결심과 충성심이 강합니다. 전술과 무기도 비정규군에 비해 월등합니다. 제대 후에는 예비전력이 될 수 있는 것도 상비군의 장점입니다.

 

스포츠의 국가대표 상비군은 군대의 그것과 많이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는 국가가 상시적으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국가에서 급여를 지급하지도 않습니다. 훈련비를 지급하는 경우가 있지만, 군인의 월급과는 개념이 다릅니다. 엄격한 교육과 훈련 못지않게, 자발적인 경쟁이 전투력을 높이는 동인이 됩니다.

 

비슷한 점도 있습니다. 항상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군대처럼 365일 관리하지는 않지만, 정기적인 혹은 비정기적인 소집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기술과 조직력을 끌어올립니다. 부상이나 컨디션 저하 등의 이유로 전력에 차질을 빚을 경우에 예비전력으로 그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상비군은 엔트리보다 많은 수의 선수를 선발하고 훈련시킵니다. 그래서 새로 대표팀에 합류하는 선수들일지라도 팀 전술에 녹아드는 것이 빠릅니다.

 

스포츠에서 상비군 운용을 하는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는 국제 대회에서 경쟁력 있는 선수들을 발굴, 육성하는 것입니다. 아직 검증이 부족한 유망주들을 테스트하는 것이죠. 그들이 기술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느 정도의 능력과 잠재력이 있는지 점검하면서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대표팀도 함께 준비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상비군은 어린 유망주들에게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자국 최고의 선수들 옆에서 기술과 정신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와이 레너드는 “상비군 제도는 저 같은 어린 선수들에게 정말 좋은 기회죠. 여기 있는 선수들로부터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합니다. 이 위대한 선수들과의 경쟁을 통해 제 기량을 더욱 키울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로스터가 확정되기 전 미국 대표팀에게 하루의 휴식이 주어졌고, 이때 자신과 더불어 유이하게 연습 코트로 향한 코비 브라이언트를 보며 케빈 듀란트는 “엄청난 동기부여가 됐다”고 얘기했다죠.

 

연령대별 상비군 역시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비슷한 연령대의 가장 우수한 선수들과 훈련하면서 서로의 장점을 흡수합니다. 동기부여가 되고 정신적으로 강해집니다. 고려대 시절 강상재(전자랜드)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하네요. “다른 팀에 있으면 이승현, 이종현 같은 선수들과 많아야 일 년에 세 네 번 만나 경기하는 것이 전부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 선수들과 매일 훈련하면서 부딪힙니다. 이 선수들과 훈련하면서 배우는 것이 많아요.”

 

[매거진][조원규의 시원한 籠談] 국가대표 상비군에 대한 잡담 

한국농구와 상비군

정규군(=상비군) 운영의 가장 큰 과제는 예산입니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작년 우리나라 군인과 군무원의 인건비만 1조 2천억 원이 넘습니다. 예산의 과제는 스포츠도 다르지 않습니다. 훈련할 수 있는 시설을 확보해야 합니다. 감독을 비롯한 스텝의 인건비와 숙박과 식사 등 경비가 필요합니다. 프로 선수들의 경우 연봉을 지급하고 있는 구단과의 조율도 필수입니다. 국가대표팀의 성적을 위해 구단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중, 고, 대학 선수들이 대표팀 상비군을 만들어 합숙훈련을 하면서 기량을 높여야 한다. 기존 대표팀 선수들의 기량발전 폭은 작을 수밖에 없다. 상비군이 없으면 한국 농구는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2010년 유재학 감독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필요하다가 아닌, 없으면 암울하다 입니다. 특정 대회를 앞두고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대표팀으로는 선수들의 발전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관련한 논의는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2005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남자 대표팀은 중국에게 44점차 대패를 당하는 수모와 함께 4위에 그쳤습니다. 당시로는 역대 최악의 성적입니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5위로 밀렸고, 2009년 아시아선수권은 7위라는 역대 최악의 성적을 갱신했습니다. 이른바 ‘텐진 참사’입니다.

 

성적이 추락할 때마다 사후 약방문처럼 상비군 제도를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위에 언급한 예산의 문제가 있었고, 프로 구단들과 조율도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수월한 고등학생, 대학생 유망주들의 합숙훈련도 없었습니다. KBL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리그입니다. 리그를 종료하면 선수들의 체력은 방전됐고 대부분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립니다. 그 선수들이 태극마크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투혼을 불사르는 것이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대표팀의 모습이었습니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 상비군제도를 운영해 수시로 선수들의 몸 상태를 점검합니다. 그렇게 관리한 선수들 중 최상의 선수들을 조합해 대회에 출전합니다. 세계 최강 미국도 2006년부터 전임감독과 상비군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한 달 내외의 소집 훈련을 하고 출전하는 우리나라와 많이 다릅니다. 우리가 작년 이상백배에서 남녀 모두 3전 전패를 당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매거진][조원규의 시원한 籠談] 국가대표 상비군에 대한 잡담 

상비군? 소집훈련?

2002년, 미국은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6위에 그칩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은 앨런 아이버슨, 르브론 제임스, 팀 던컨 등이 합류했음에도 4강에서 아르헨티나에게 발목을 잡혔죠. 출중한 개인의 능력도 잘 짜여진 조직력 앞에서는 무력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전임감독과 상비군입니다. 조직력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표팀을 운용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상비군제도는 다수의 선수들을 테스트하고 그 중 가장 경쟁력 있는 선수들의 조합을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대표팀은 포지션별 랭킹 1, 2위 선수를 선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기가 많은 선수를 선발하는 것도 아닙니다. 꾸준한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는 선수, 수비가 약해도 폭발적인 득점력이 있는 선수, 득점력은 다소 부족하지만 수비와 허슬로 파이팅을 불어넣는 선수, 박스아웃과 스크린 등 궂은일을 해주는 선수 등 다양한 장점과 개성의 조합입니다. 그들이 실제로 훌륭한 시너지를 만들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상비군제도입니다.

 

그래서 상비군 운영에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 중 필수는 전임감독입니다. 지도자마다 장점이 다릅니다. 선호하는 팀의 스타일과 전술, 선수가 다릅니다. 감독이 바뀌면 팀이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선수 선발의 기준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고, 선수들은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함께 모여 훈련할 수 있는 시간에 제약이 있다는 점도 전임감독이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감독은 선수들의 컨디션과 몸 상태를 꾸준히 점검해야 합니다. 부족한 부분에 대해 과제를 제시하고, 노력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전임감독이 아니면 해결이 어려운 부분입니다.

 

목표도 명확해야 합니다. 당장 성적을 만들기 위한 팀이 있고, 현재보다는 미래 준비에 초점을 맞추는 팀이 있습니다. 목적에 따라 선수 선발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성적을 위한 팀은 최상의 전력을 구축해야 합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팀은, 당장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가능성이 높은 선수를 보다 많이 선발해야 합니다. 목표와 방향이 명확하지 않으면 선수 선발에 항상 잡음이 따릅니다.

 

선수들의 처우 역시 중요합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상비군입니다. 식사, 숙박, 이동 등 모든 면에서 그에 걸맞은 대우가 필요합니다. 적정한 훈련비의 지급도 필수입니다. 자긍심을 갖고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피지컬 강화를 위한 전문 트레이너와 각종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스킬트레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선수들의 훈련을 도와야 합니다.

 

농구 대표팀 관련 우리에게 익숙한 기사는 ‘농구 대표팀 소집 훈련’입니다. 상비군과 소집 훈련은 위에 열거한 요소들에 의해 구분이 가능합니다. 이번 이상백배 대표팀은 상비군이었을까요? 보다 빠르게 소집 훈련을 한 것은 아닐까요? 전임감독이 아니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선수들을 모아 테스트하고 조직력을 끌어올린 것만으로도 의미는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 상비군을 연령대별 상비군으로 확대하는, 여건이 어렵다면 최소한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연결하는 협회의 노력이 과제로 남습니다.

 

늦었다고 진짜 늦은 것은 아닙니다.

자국의 정규병으로 된 근대적인 상비군이 나타난 것은 18세기라고 합니다. 유럽 각국의 군대가 완전히 현역병으로 된 상비군으로 편성된 것은 19세기라고 하죠. 한국보다 한 세기를 앞서 상비군을 편성했습니다. 한국이 상비군을 편성하고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미국 군사력평가기관 글로벌파이어(GFP)는 한국의 군사력을 세계 7위로 평가했다고 합니다. 세계 7위. 최강이 아니라고 비난하거나 폄하할 국민들이 있을까요? 2002 한일월드컵 4강은 전국을 붉은 빛으로 물들였습니다.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에 축구팬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세계의 벽이 높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16강도 참 많은 준비와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농구 대표팀 상비군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있었습니다. 공약사항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체계적인 상비군제도는 없었습니다. 아시아 무대의 경쟁도 이미 치열합니다. 호주와 뉴질랜드가 합류했습니다. 중동과 일본, 대만, 필리핀 등 준비 없이는 이길 수 없는 팀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팬들은 한국이 그 팀들과 아시아 8강을 위해 경쟁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세계무대에서 8강을 경쟁할 수 있는 준비를 원합니다.

 

내년에 농구 월드컵이 있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올림픽이 있습니다. 그 어느 대회도 진출이 쉽지 않습니다. 팬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다릴 수 있습니다. 세심한 농부의 손길 없이 달콤한 과실을 먹을 수 없기에, 지속적인 투자를 통한 한국농구의 국제경쟁력이 높아지기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상비군과 전임감독만으로 수확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상비군과 전임감독 없이는 기다림조차 부질없습니다.

 

# 사진_ 점프볼 DB(한필상,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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