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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 기획] ‘780억 원의 저주’ 천안야구장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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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0 (화) 11:00

                           
-천안 시민 혈세 780억 원 투입한 천안야구장
-KBO 야구장 백서에도 빠진 '문제 야구장'
-잡초와 진흙탕에 주차장 시설조차 없다@
-야구장 건립 주도한 전 시장 재판 진행중, 8월경 선고 나온다  
 
[엠스플 기획] ‘780억 원의 저주’ 천안야구장

 
[엠스플뉴스]
 
이름은 야구장이지만, 실체는 야구장이 아니다. 마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르네 마그리트식 말장난처럼 들릴지 몰라도, 엄연한 사실이다. 충청남도 천안시엔 이름만 야구장일 뿐 야구장이 아닌 야구장이 존재한다.
 
‘천안야구장(정식 명칭 천안생활체육야구장)’은 KBO가 해마다 발행하는 ‘전국야구장백서’에 실리지 않았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홈페이지의 ‘전국야구장 소개’란에도 제외됐다. 인근의 천안시 독립야구장, 아산시 시민공원 야구장 등이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과 달리 정식 야구장으로 인정받지 못한 셈이다.
 
‘천안야구장’ 간판 근처에 기자를 내려준 택시기사는 ‘여기가 정말 야구장 맞냐’고 물었다. “780억짜리 야구장이라고 한다”는 답을 들은 기사는 택시 문이 닫히는 순간 혼잣말처럼 말했다. “도둑놈의 XX들”이라고. 골수 한화팬 택시기사가 보기에도 ‘천안야구장’은 도저히 야구장으로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야구장 부지에 도착한 순간 첫인상은 ‘황량함’이었다. 천안 말망산과 천안대로, 선문대학교 캠퍼스 사이 드넓은 땅에 ‘야구장’이라 주장하는 공간 4면과 ‘리틀야구장’이라고 주장하는 공간 1면이 펼쳐져 있었다. 생명체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금부터 편의를 위해 이 시설을 가리킬 때 작은따옴표를 붙여 ‘야구장’이라 부르기로 한다. 
 
천안야구장, 그곳엔 잡초와 진흙탕, 그리고 무덤이 있었다
 
[엠스플 기획] ‘780억 원의 저주’ 천안야구장

 
기자는 7월 9일 오후 ‘야구장’을 찾았다. 이날 오후까지 천안엔 비가 내렸다. ‘야구장’ 곳곳이 물웅덩이로 가득했다. 야구장 쪽으로 이동하려 걸음을 내디뎠다. 발이 푹푹 꺼지면서 진흙 속에 신발이 파묻혔다. 순간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함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구장을 관리하는 직원은 ‘수로 덮개를 밟고 이동하라’는 친절한 조언을 건넸다.
 
‘천안야구장’은 천안시 시설관리공단이 관리 주체다. 파견 나온 2명의 직원이 시설 관리와 운영을 맡는다. 몇 해 전엔 직원 1명과 사회복무요원 1명이 관리를 맡았다. 두 명의 직원은 다 녹슨 컨테이너에서 일했다. 변색된 컨테이너가 마치 OCN 자체제작 드라마 속 풍경처럼 보였다.
 
컨테이너는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특성을 갖는다. 컨테이너 외부에 에어컨 실외기는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데서 근무할 수 있냐’고 묻자, 직원은 어색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엠스플 기획] ‘780억 원의 저주’ 천안야구장

 
야구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대자연’의 풍경이 펼쳐졌다. 여기서 자연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야생 상태를 말할 때의 자연이다. 야구장 펜스 밖이 온통 잡초와 정체모를 식물로 가득했다. 멋대로 자란 잡초는 건성으로 세운 펜스 아래를 따라 야구장 안쪽까지 침투해 있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외야를 잔디 비슷한 초록색으로 덮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A구장 뒤편엔 누군가의 ‘무덤’도 보였다. 야구장 공사를 하면서 미처 정리하지 못했거나, 섣불리 무덤을 이전하면 야구장이 저주받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들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이 구장에서 야간경기를 치르긴 어려울 듯하다. 어차피 조명시설이 없어 해가 진 뒤엔 야구를 할 수 없을 테지만.
 
[엠스플 기획] ‘780억 원의 저주’ 천안야구장

 
정기적으로 잡초 제거 작업을 합니다. 저희 둘이서 잡초를 뽑아내는 데 꼬박 사흘 정도가 걸려요. 천안 시설관리공단 직원이 말했다. 야구장 넓이로 봐선 군부대 하나를 동원해야 할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규모의 일이 아니다. 어차피 잡초는 뽑아도 금방 다시 자란다. 동네 놀이터에 쓰일 흙을 덮어놨으니 당연한 일이다.
 
[엠스플 기획] ‘780억 원의 저주’ 천안야구장
[엠스플 기획] ‘780억 원의 저주’ 천안야구장

 
‘야구장’ 더그아웃 주변과 베이스 주변은 물바다였다. 그라운드가 고르지 않아 곳곳에 물이 고였다. 물길이 만들어진 구역도 눈에 띄었다. 야구장에 발을 디딘 순간, 물컹한 느낌이 전해졌다. 그라운드 표면은 물론 안쪽까지 깊숙이 젖어 있었다. 
 
애초에 야구장을 지을 때 배수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탓이다. 햇볕을 받으면 구장 겉의 물은 마를지 몰라도, 그라운드 속이 마르는 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비가 온 다음날에는 하루 정도 야구장 사용이 어렵습니다.” 시설관리공단 관계자의 말이다. 하지만 천안 사회인야구팀을 대상으로 취재한 결과 2, 3일 정도는 정상적인 운동장 이용이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 
 
콘크리트 기둥, 낮은 마운드, 나무판자 파울라인... ‘이게 야구장이냐’
 
[엠스플 기획] ‘780억 원의 저주’ 천안야구장
[엠스플 기획] ‘780억 원의 저주’ 천안야구장

 
컨테이너상자와 진흙바닥, 잡초는 그렇다고 치자. 멀쩡한 야구장도 오래 방치하면 진흙탕과 잡초투성이가 될 수 있는 법이니까. ‘천안야구장’을 야구장이라 부를 수 없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야구장 규격을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야구장 모양’만 흉내내서 지은 구장이기 때문이다.
 
천안야구장 그물망은 철제 기둥이 아닌 콘크리트 기둥이 지탱한다. 파울폴도 콘크리트 기둥에 노란 페인트를 칠해 만들었다. 파울폴은 파울라인에서 한참 벗어난 엉뚱한 위치에 서 있다. 모르고 보면 파울폴이 아닌 전신주처럼 보일 정도다. 홈런성 타구가 나오면 비디오판독센터가 꽤 애를 먹게 생겼다. 
 
각종 흉물스런 ‘전신주’는 똑바로 세워지지도 않았다. 피사의 사탑처럼 여기저기 기울어 있었다. 양쪽에서 끌어당기는 장력을 이기지 못한 탓이다. 기울어진 ‘전신주’를 지탱하기 위해, 야구장 바깥에 또 다른 전신주를 세워서 연결해 놓았다. 만약 저 전신주마저 기울어지면, 그땐 길 건너 선문대학교 건물과 야구장 기둥을 연결해야 할지도 모른다. 
 
[엠스플 기획] ‘780억 원의 저주’ 천안야구장

 
일반적인 야구장은 파울라인을 마그네샤(백회가루)로 그린다. 천안야구장엔 그런 게 없다. 파울라인이 있어야 할 자리엔 긴 나무판이 ‘나 파울라인이야’ 하듯 깔려 있다. 나무판 아래로 틈새가 생겨, 그 아래로 개울처럼 물이 흘렀다. 순간 파울타구를 잡으러 달려가던 선수가 파울라인에 발이 걸려 넘어진 뒤, 콘크리트 기둥과 충돌하는 광경을 떠올렸다. 
 
마운드가 어디 있는지 한참 찾았다. 그라운드보다 10인치(25.4cm) 높은 곳에 무덤처럼 솟아 있어야 마운드다. 천안야구장엔 마운드가 보이지 않았다. 마운드가 있어야 할 자리에 가까이 다가가, 투수판 비슷한 게 설치된 걸 확인한 뒤에야 그게 마운드인 걸 알았다. 
 
마운드 높이는 그라운드보다 10cm 정도 높아 보였다. 흙도 그라운드와 똑같은 흙을 사용했다. 마운드가 말 그대로 ‘투수들의 무덤’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진짜 마운드는 야구장 뒤편에 있는 무덤인지도 모른다. 
 
[엠스플 기획] ‘780억 원의 저주’ 천안야구장
[엠스플 기획] ‘780억 원의 저주’ 천안야구장

 
조명탑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새들이 집을 지어놓은 안내방송용 스피커만 덩그라니 서있다. 전광판도 볼카운트, 아웃카운트 표시 기능이 전부다. 탈의실도, 주차장도 없다. 수도꼭지를 찾으려 한참 헤매다 거대한 물탱크를 발견했다. 몇 해전 수도꼭지가 하나 뿐이란 언론보도가 나간 뒤 마련한 대안이다. 이것은 야구장이 아니다.
 
야구장은 아니지만 야구장처럼 쓰인다. 평일엔 단국대학교 야구부가 훈련장으로 쓴다. 단국대와 천안 시설관리공단이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무료이용 권리를 받았다. 단국대는 이 야구장 비슷한 것이 생기기 전까지 마땅한 야구장이 없어 훈련에 애를 먹었다. 
 
단국대 김경호 감독은 “사실 좋은 시설이 아닌 건 분명하다”면서도 “이 야구장이라도 있으니까 우리로선 감지덕지다. 야구장 가운데 D 야구장을 선수들이 꾸준히 관리하고, 청소해서 잘 사용하고 있다. 사회인야구팀들도 다들 D구장을 사용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천안에서 사회인야구를 하는 이들도 비슷한 얘길 들려줬다. 한 야구 동호인은 “천안에 사회인야구팀이 원체 많아서, 주말엔 야구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이 구장이라도 있어서 그나마 야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평일엔 단국대가, 주말엔 사회인 팀이 사용해서 야구장이 비는 시간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천안야구장’ 주도한 전 천안시장 재판, 8월 1심 선고 예정
 
[엠스플 기획] ‘780억 원의 저주’ 천안야구장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디냐’. 이는 ‘천안야구장’ 건립을 주도한 성무용 전 천안시장이 내세운 논리다. 성 전 시장은 야구장 조성 과정에서 천안시에 손해(업무상배임)를 끼치고 지인으로부터 1억 원의 정치자금(정치자금법 위반)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천안야구장’ 비리 의혹은 주일원 당시 천안시의원과 천안아산경실련이 처음 문제를 제기했고, 각종 언론 보도가 쏟아지면서 지역사회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이후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이 수사에 착수해 성 전 시장을 재판에 넘겼다. 
 
성 전 시장은 2002년 시장선거 출마 당시 야구장 건립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당시 성 전 시장은 국비와 도비 포함 총 1,300억 원을 야구장 예산으로 책정했다. 그러나 행정자치부에서 ‘부적정’ 판정을 내려 국비 지원 길이 막히자 전액 시 예산으로 건립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여기서 나온 예산이 780억 원이다. 야구장이 완공된 2013년 당시 천안시 1년 예산은 1조 2천억 원이었다.
 
[엠스플 기획] ‘780억 원의 저주’ 천안야구장

 
문제는 780억 원의 예산이 제대로 사용됐는지 여부다. ‘천안야구장’과 좋은 비교대상이 있다. 부산 기장군 기장현대차드림볼파크다. 이 야구장은 1개 메인구장과 2개 보조구장, 1면의 공원야구장까지 총 4면의 구장으로 구성됐다. 야구장 4면 모두 잔디를 깔았고 관중석과 더그아웃, 주차장과 편의시설도 훌륭하다. 사회인야구는 물론 아마추어 야구팀들도 애용하는 시설이다.
 
기장에 야구장을 짓는데 들어간 총 사업비는 340억 원이다. ‘천안야구장’의 절반도 되지 않는 예산이다. 프로 경기가 열리는 울산문수야구장도 450억, 포항야구장도 317억이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맨땅과 잡초에 야구장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천안야구장’을 짓는데 780억 원 예산이 투입됐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야구장 지을 돈을 엉뚱한 곳에 쓴 게 아니냔 의혹이 커진 배경이다.
 
실제 ‘천안야구장’ 예산의 대부분은 토지보상비로 쓰였다. 무려 540억 원이 토지보상비로 쓰였고 이 가운데 200억 원 가량은 천안 지역 유지 원 모씨에게 돌아갔다. 원 모씨는 ‘천안야구장’ 부지 바로 옆에서 오랫동안 운영된 파이프제조업체 대표다. 이 업체는 천안야구장이 완공된 뒤 사옥을 이전해 지금은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에서 운영하고 있다. 
 
[엠스플 기획] ‘780억 원의 저주’ 천안야구장

 
성 전 시장은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했다. 천안 시민들을 위해 한 일이고 천안시에 손해를 끼친 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또 원래 예산 780억 원 가운데 실제 집행한 예산은 520억 원 정도라며, 나머지 예산을 예정대로 집행하지 않은 현 천안시장에게 책임을 돌렸다.
 
천안시 관계자는 “성 전 시장의 1심 재판이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이라 했다. 1심에서 검찰이 실형을 구형했고, 8월 중에 선고가 나올 예정이라 전했다. 대전지검 천안지청은 엠스플뉴스의 문의에 답변을 거부했다. 야구장 아닌 야구장을 둘러싼 논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배지헌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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