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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MLB+] NL에도 지명타자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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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6 (화) 09:00

                           
-NL 지명타자 제도 도입에 구단주 회의 측이 긍정적인 반응 보여
-타석에서 무용지물이 되어가는 투수들
-선수 보호 측면에서 지명타자 제도가 갖는 유용성
-이제는 NL에도 지명타자 제도가 도입되어야 할 때
 
[이현우의 MLB+] NL에도 지명타자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

 
[엠스플뉴스]
 
2015년 신임 메이저리그 사무국장으로 부임한 롭 만프레드는 "공격력 증대를 위한 방안 가운데 하나로 내셔널리그(NL)에 지명타자 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NL 지명타자 도입에 대한 논쟁은 거의 매해 나오는 떡밥이다. 지난 수년간 떡밥이 던져질 때면 언론과 팬, 그리고 현장은 항상 각자의 입장을 늘어놓다가 결국 흐지부지 끝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2018년 6월 16일(한국시간) 드디어 이 지루한 논쟁에 방점을 찍을 수 있을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취임 3년 차를 맞이한 만프레드는 현지 매체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NL 지명타자 도입에 대한 구단주 회의의 여론이 조금씩 (긍정적인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논쟁 초창기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선수노조와는 달리, NL 구단주 측은 지명타자 제도 도입에 대해 오랫동안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명타자 제도 도입은 구단 총 연봉의 증가를 불러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칫 오랜 팬들의 이탈을 촉발시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1월 구단주 회의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의장 데이브 몽고메리가 한 말을 떠올려보자.
 
이날 몽고메리는 "진정한 야구를 계속 지켜나가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어느덧 반세기 전에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한 아메리칸리그(AL)의 팬이라면 다소 황당하게 느껴질 법한 발언이지만, 실제로 NL의 오랜 팬 가운데 몽고메리 의장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전통주의자들에게 야구는 '그라운드 위에 있는 9명이 모두 공격과 수비에 참여하는 경기'다.
 
[이현우의 MLB+] NL에도 지명타자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

 
따라서 이들이 바라보는 지명타자는 '수비에 참여하지 않는 반쪽짜리 선수'다. 한편, 전통주의자들은 "투수 타격이 주는 의외성과 대타 기용, 더블 스위치 등 감독의 전략 싸움 등 투수가 타석에 들어섬으로써 즐길 수 있는 NL만의 재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소소한 재미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제는 NL에도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할 때가 됐다.
 
1. 타석에서 무용지물이 되어가는 NL 투수들
 
[이현우의 MLB+] NL에도 지명타자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

 
NL에도 지명타자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첫 번째 이유는 NL 투수들이 타석에서 무용지물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오타니 쇼헤이, 매디슨 범가너 같은 투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정말 특수한 사례다. 올 시즌 투수들의 타격성적 합계는 타율 .109 출루율 .141 장타율 .137. 메이저리그 평균은 타율 .245 출루율 .317 장타율 .406이다.
 
한마디로 말해 몇몇 특수 사례를 제외하면 투수 타석은 '자동 아웃'이라고 보면 된다. 전통주의자들이 말하는 '초창기 야구'는 이러지 않았다. 1871년 투수의 wRC+(조정 득점창출력)는 89로 평균(100)에 근접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AL이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한 1973시즌 투수들의 wRC+는 이미 6으로 떨어져 있었고, 올해는 -27에 달한다. 
 
이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낮은 수치다. 초창기 야구에서 투수는 타자들이 공을 잘 맞힐 수 있도록 공을 던져주는 수비 포지션이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투수들에겐 공을 잘 던지는 것 못지않게 공을 잘 치는 능력이 요구됐다. 하지만 삼진아웃이 생기고, 타자를 아웃시키는 것이 제1의 목표로 바뀌면서 투수들은 투구 기술을 연마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당연히 투수들의 타격성적은 점차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종의 분업화다. 이런 현상은 야구가 발전하면 할수록 더 강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요즘 투수 타석은 '내셔널리그만의 색다른 재미'라기 보단 오히려 경기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타석에 들어선 투수가 부상을 당하는 일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2. 선수 보호 측면에서 지명타자의 유용성
 
 
 
지난 2015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에이스 애덤 웨인라이트는 타격 이후 1루로 달리다가 왼쪽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면서 시즌 아웃됐다. 이에 NL에 지명타자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자 매디슨 범가너는 "투수가 타격하다가 다친다고 지명타자를 도입한다면, 투구 도중에 다친다고 투수를 없애자고 할 건가?"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부상을 당한 웨인라이트 역시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전통적인 방식을 옹호했다. 하지만 이후의 결과를 우리는 알고 있다. 2014년 20승 9패 227.0이닝 평균자책 2.38을 기록했고, 2015년 2승 1패 28.0이닝 평균자책 1.61을 기록 중이던 웨인라이트는 부상 이후 두 시즌 동안 평균자책점이 4.81에 그치는 평범한 투수로 전락했다.
 
한편, 보스턴 레드삭스 너클볼러 스티븐 라이트가 대주자로 나섰다가 무릎 부상을 입고 시즌 아웃이 되는 일도 있었다. 현대 야구에서 투수는 타격 연습, 주루 연습을 거의 하지 않는다. 투구 연습을 하기에도 시간과 체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타격, 주루 도중에 부상을 입는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는 개인과 구단 차원을 넘어 리그에도 좋은 일이 아니다.
 
과연 전통을 수호하기 위해서란 이유로 부상 위험을 감수하고 어짜피 대부분은 자동 아웃에 가까운 투수를 타석에 내보내야 할까? 아니면 지명타자 자리에 수비는 못 하지만 타격은 잘하는 타자를 기용하거나, 주전 야수들의 체력 보존을 위해 지명타자 자리를 활용하는 것이 이득일까? 실용성만 따지자면 당연하게도 후자가 훨씬 합리적인 결정이 될 것이다.
 
3. NL 팬들은 DH 제도를 싫어한다는 것도 이제는 옛말
 
[이현우의 MLB+] NL에도 지명타자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

 
<야구의 역사>의 저자이자 <뉴욕 타임스> 기자이기도 했던 조지 벡시는 지명타자 제도에 대해 "야구의 아버지 알렉산더 카트라이트가 살아 돌아와서 지명타자를 본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필드에서 수비도 안 하면서 몇 회 만에 가끔 나와 방망이만 휘두르고 사라지는 저 주제넘은 인간은 뭐지?"라고 말했다(1939년생인 벡시는 브루클린 시절 다저스의 팬이었다).
 
지명타자 제도가 없던 시절부터 야구를 봐왔던 팬들이 과거에 지명타자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하지만 어느덧 지명타자 제도가 도입된 지도 어언 45년이 지났다. 뉴욕에서 태어나 메츠팬으로 자란 필자 역시 NL 제도가 친숙하다. 하지만 지명타자 제도가 없는 NL가 '진정한 야구'이고, 지명타자가 있는 AL 제도가 '시류에 편승하기 위한 편법'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명타자 제도가 있어도 똑같은 야구다. 1973년 AL에 지명타자가 도입될 당시에도 팬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실제로 경기를 본 이후 AL 팬들의 반응은 180도 달라졌고, 인터리그가 확대되면서 NL 구단도 지명타자가 있는 경기를 치르는 비율이 높아졌다. 지명타자를 두고 치르는 경기가 못 봐줄 정도였나,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상당 부분은) 지명타자가 있는 까닭에 AL 구단이 인터리그 성적이 오랫동안 더 좋았고, 그게 부러울 때가 많았다. 한편, 나이가 들어 수비력이 저하된 강타자가 NL를 떠나기 싫어 은퇴를 선택하거나, AL로 떠날 때 아쉬움을 느꼈던 경우도 많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NL의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은 선수 입장에선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이상의 세 가지 이유로 필자는 NL에도 지명타자 제도가 도입되는 것에 찬성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가 필자만은 아니다. 16일 MLB트레이드루머스가 1만 254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제 NL에도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할 때'에 투표한 비율은 50.3%로, 'NL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자'에 투표한 비율(49.7%)보다 앞섰다.
 
이는 3년 전 같은 설문조사 결과에 비해 약 10%p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이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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