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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국가대표팀의 영원한 캡틴 양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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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8 (월) 07:00

                           

[매거진] 국가대표팀의 영원한 캡틴 양동근



[점프볼=편집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딱 10년! 현대모비스의 심장 양동근은 프로무대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그 시간만큼 대한민국 남자농구 국가대표의 심장으로도 활약했다. 대표팀 주장이 가장 잘 어울리는 양동근이 태극마크를 품고 달리고 또 달렸던 10년을 되짚었다.

△ 국가대표 양동근의 시작과 끝

양동근이 1군 성인대표팀에 처음 뽑힌 건 2006년이었다. 2005-2006시즌 정규리그 우승과 함께 MVP에 선정되는 등 한참 주가가 오를 무렵이었다. 당시 월드바스켓볼챌린지(WBC)에서 대표팀 데뷔전을 치른 뒤 도하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김민수(서울 SK)는 “TV에서 보던 더 크고 더 잘 하는 NBA 선수들과 부딪히는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며 대표팀 경력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로 WBC를 꼽았다. 양동근은 첫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WBC에서 너무 강한 상대를 만나 “아무것도 못했던 대회”로 여긴다. 이어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남자농구 역사상 처음으로 5위에 그쳐 메달을 따지 못했다.

양동근은 2007년 일본 도쿠시마에서 열린 FIBA 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3위로 명예회복을 했지만, 2009년 중국 텐진에서 열린 같은 대회에서는 역대 최악인 7위까지 맛봤다. 남자농구 대표팀의 추락의 끝을 경험한 양동근은 도약의 중심에 섰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이었다. 당시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맡은 이 대표팀은 미국 전지훈련뿐 아니라 NBA 명장 래니 윌킨스까지 고문으로 영입해 대회를 대비했다. 양동근이 주요 국제대회에서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한 대회이기도 하다. 결승에서 중국에게 71-77로 아쉽게 패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KGC인삼공사를 우승으로 이끌고 2012년 런던올림픽 최종 예선 대표팀 감독을 맡은 이상범 감독은 대표팀을 소집하기도 전에 양동근을 주장으로 임명했다. DB 이상범 감독은 “에이스인데다 책임감이 강하다. 못할 때나 잘할 때나 표정이 똑같아서 선수들을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있다”며 양동근을 주장으로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양동근은 이때부터 대표팀 붙박이 주장을 맡았다. 2013년 필리핀에서 열린 FIBA-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는 유재학 감독과 다시 손발을 맞추며 16년 만의 농구월드컵 진출을 이루었다. 기세를 몰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이란을 꺾고 금메달의 영광까지 안았다.

‘국가대표’ 양동근의 마지막 대회는 2015년 중국 창사에서 열린 FIBA-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대회다. 대표팀은 중국과 예선에서 크게 앞서다 경기 막판 역전패 했다. 잡을 수 있는 경기를 놓친 대표팀은 이후 일정이 꼬였고, 중국은 역전승 이후 승승장구했다. 대표팀은 결국 6위에 머물렀다. 최연길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우리가 중국을 꺾었다면 중국이 우승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성적도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며 “양동근 선수는 그럼에도 아시아에서 최고 가드라는 걸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Q. 넓은 의미로 성인대표팀에 처음 뽑힌 건 2001년 일본에서 열린 동아시아대회였습니다.

성인대표팀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상무 형들과 대학선발 선수가 섞여서 나갔던 걸로 기억해요. (황)성인이 형, (손)규완이 형 등 상무 형들이 있었어요. 그 때 유니버시아드 대표팀 때문에 선수들 몇 명이 바뀌었을 거예요. 전 청소년 대표를 한 번도 안 한 게 아니라 못했어요. 그래서 대학 1학년 때 (2000년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아영맨선수권대회(20세 이하)에서 처음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어요.

Q. 2006년 제대로 된 성인 국가대표팀에 뽑혔는데요. 그 때는 소감이 남달랐을 거 같아요.

뭐가 뭔지 모를 때였어요. 그냥 좋았죠(웃음). 아마 정규리그에서 우승하고 챔프전에서 삼성에게 4전 전패한 다음에 국가대표로 뽑혔어요.

Q. 검색을 해보니까 WBC 이전에 스탄코비치컵에서 손발을 맞춘 걸로 나오더라고요. 이게 성인대표팀 첫 공식대회인가요?

그 대회는 아마 취소되었을 걸요. 시리아에서 열린 대회였는데, 인천공항까지 가서 기다리고 있을 때 입국허가가 안 나서 비행기를 못 타고 다시 돌아왔어요. 내전이 있어서 위험하다고 대회가 취소되었는지, 우리만 안 갔는지 아무튼 참가하지 않았어요(시리아농구연맹이 중동지역 정치적 상황 때문에 대회를 취소함).

Q. 국가대표로 첫 대회였던 WBC에서 미국이란 세계 최강의 팀과 맞붙었어요. 국가대표팀에서 만났던 최강의 팀이기도 하고요.

그렇죠(웃음). 현재 대부분 NBA 주역인 선수들이 세대교체 명분으로 나와서 뛰었을 때니까요. 조금 출전했는데 벽이에요, 벽! 같이 뛰면서 ‘엄청 나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뭐 어떻게 해볼 게 없었어요. 손만 들고 있는데 (패스) 줄 곳도 없고, 돌파할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고. 제가 해보고자 하는 동작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어요. 경기 때 ‘이거 해봐야지’, ‘저거 해봐야지’라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요.

Q.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5위에 머문 뒤 2007년 일본 도쿠시마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어요. 어떤 부분이 달라졌던 건가요?

도하 아시안게임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저희는 중국과 결승에서 붙을 거라 예상했어요. 그런데 막상 대회에 가보니 중동 팀들 전력이 갑자기 좋아졌더라고요. 귀화 선수들도 있었어요. 그에 대한 전체적인 준비가 부족했던 거 같아요. 그때 경험 덕분에 2007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성적이 달랐죠. 저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세대교체를 한다고 (강)병현이, (차)재영이, (김)민수 등 대학 선수들이 들어왔어요. 세대교체를 하면서 경험을 많이 쌓았다고 생각합니다.

Q. 이때까지 국가대표에서 김승현 선수와 손발을 맞췄습니다. 당시 김승현 선수는 “양동근이 나보다 잘 한다. 매치업이 힘든 선수”라고 했었는데, 상대 선수가 아닌 동료로서 김승현은 어땠나요?

너무 편하죠. 슛 쏘기 편하게 패스를 주고, 원하는 방향과 원하는 타이밍에 패스가 오니까요. 승현이 형과 운동했던 형들은 편했을 거예요. 다만 팀으로 봤을 때, 승현이 형과 제가 같이 뛰면 높이가 너무 낮았어요.

Q. 2008년 베이징올림픽 최종 예선에서는 발목 수술 때문에 대표팀에 뽑히지 않았어요. 그리고 2009년 중국 진천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역대 최악의 성적인 7위에 머물렀습니다. 그때 부진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뭐가 문제였을까요? 사람들은 준비가 부족했다고 했을 거예요. 중동이 그렇게 강한데 중동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다고 했을 것이고요. 그런데 국제대회는 일단 분위기예요. 프로농구처럼 54경기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1~2경기만 져도 조가 바뀌어버려요. 이겨야 할 경기는 이겨야 하는데, 그런 경기를 지면 강한 상대가 속한 조에 편성이 되죠. 그러다 한 순간 5-8위전으로 바로 떨어지거든요. 그런 부분이 단기전과 장기전의 차이인 거 같아요. 분위기 싸움에서 졌다고 보는 거죠.

[매거진] 국가대표팀의 영원한 캡틴 양동근

Q.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땄는데요. 준비 과정이 미국 전지훈련까지 다녀  오는 등 그 이전과 많이 달랐어요.

손발을 맞출 수 있는 시간도 훨씬 길었고, 전지훈련도 많이 가면서 경험을 쌓을 시간이 있었죠. 미국 전지훈련을 두 번이나 갔다 온 게 특이했어요. 서머리그에서 미국선수들과 부딪히는 경험도 했죠.

Q. 대표팀 경력 중에 가장 아쉬운 대회가 2012년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최종 예선일 거 같아요.

그 때는 아파서 못 뛰었으니까요. 대회 직전 베네수엘라와 연습경기를 하다 상대 선수 팔꿈치에 손목을 부딪혔어요. 너무 아파서 이상범 감독님께 말씀 드리고 병원에 갔더니 뼈에 금이 갔더라고요. 감독님께 “죄송하다”고 했더니 “네가 왜 죄송하냐? 다치고 싶어서 다친 것도 아닌데”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다른 부분에서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했어요. 그 때가 제일 아쉬워요(이상범 감독은 양동근의 부상이 아니었다면 경기흐름상 역전패 한 도미니카 공화국에게 이겼을 거라고 했다).

Q. 2013년 필리핀에서 열린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16년 만에 농구월드컵 진출권을 따서 의미있는 대회였어요.

너무 좋았죠. 또 첫 경기에서 만난 중국을 이겨서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Q. 2012년 대표팀에서 아쉬움을 남겼기에 각오가 남달랐던 대회이지 않나요?

선수들이 뭔가 더 하려던 의지가 강했던 대회였던 것 같아요. 유재학 감독님과 같이 다시 나간 대회인데 그 때도 준비를 엄청 많이 했죠. 중국에 대한 대비도 하고, 비디오를 보면서 어떤 식으로 운영할 거니까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등 준비를 진짜 많이 했어요.

Q. 2014년 스페인에서 열린 FIBA 농구월드컵에 나갔어요. 유일하게 참가한 세계 대회예요. 

2006년(WBC)과 느낌이 똑같았어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아무 것도….

Q. 일정이 비슷했던 인천 아시안게임에 맞춰서 준비했기 때문이 아닌가요?

그건 아니에요. 뉴질랜드와 평가전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준비를 했는데 농구월드컵은 또 달랐어요. 너무 달랐어요. 뉴질랜드와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그 때 상대했던 팀들을 다 기억에서 지워버렸어요. 그래도 그 와중에 이런 선수들과 더 많이 경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리고 후배들도 그런 경험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뉴질랜드 같은 팀과 언제 경기를 해보겠어요? 우리보다 신체 조건부터 월등히 앞서는 팀이잖아요. 처음(2014년) 뉴질랜드와 붙었을 때 우리가 30~40점 가까이 졌거든요. 그런데 계속 붙다보니 어떤 스타일인지 알게 되고, 덕분에 대등한 경기를 하는 경험을 쌓았어요. 그렇게 탈아시아권 팀들과 경기를 해봤으면 하는 마음이 컸죠.

[매거진] 국가대표팀의 영원한 캡틴 양동근

Q. 대표팀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금메달일까요?

그럼요. 그때 카자흐스탄이 이란과 준결승에서 1분 남기고 5점 앞서다 뒤집어져서 졌을 거예요. 우리는 일본에게 이겨서 결승에 올라갔고요. 카자흐스탄은 우리가 예선에서 쉽게 이긴 상대였어요. 그런데 (유재학) 감독님께서 선수대기실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아쉽긴 한데 어쩌겠냐? 이란을 이기고 우승하면 기분이 더 좋지 않겠냐?”고요. 선수들도 이란보다 쉬운 상대가 올라왔으면 어땠을까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란을 이기고 우승해서 기분이 좋았죠. 

Q. 필리핀에도 힘들게 이겼어요.

필리핀과의 경기는 저 빼고 다 잘 했던 날이었어요. 너무 좋았어요. 필리핀에게 졌으면 이란과 4강에서 만날 수도 있었거든요. 제가 못했지만, 다른 선수들이 잘 한 덕분에 이겨서 너무 좋았어요.

Q. 중국에서 열렸던 2015년 FIBA 아시아선수권대회가 국가대표로서 마지막이었어요. 지금 돌아보면 어떤가요?

아쉽죠. 중국을 이겼어야 하는데, 중국을 이겼으면 또 몰랐거든요. 조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 너무 아쉽죠.

Q. 중국과 경기 때 출전시간이 좀 길었다는 의견이 있어요. 그 이전 두 대회에선 출전시간을  고르게 나눠가졌거든요.

맞아요. 그 전에는 10분에서 15분, 20분 내외로 뛰었어요. 그래도 체력 때문에 역전 당한 건 아니에요. 분위기에 진 거죠. 중국 홈이었는데도 초반 기세를 잘 잡아 나갔어요. 중국은 따라가는 입장에서 홈 팬들 응원 덕분에 ‘와’ 하고 올라가는데, 우리는 툭 가라앉았어요. 아쉬울 뿐이죠. 그 때도 생각을 해보면 제가 최고참이고, 어린 선수들(최준용, 문성곤, 강상재 등)이 많았어요. 그 선수들이 그런 경기를 통해서 좋은 경험을 했어요. 이 선수들이 계속 대표팀을 하면 좋지만, 어쨌든 경쟁이라서 또 치고 올라오는 선수들도 많을 거예요. 새로 경쟁을 넘어선 선수들은 또 다른 경험을 해야 해요. 제 개인적으로는 2010년이나 2014년 아시안게임 준비 과정에서 선수들을 되게 많이 뽑아서 경험을 쌓게 했어요. 선수들이 끝까지 경쟁하다 바뀌었어요. 운동할 때 사람이 많으면 한 명이 아프거나 잠깐 빠져 하루 쉬어도 운동이 돼요. 12명을 뽑았을 때, 1~2명이 빠지면 5대5조차 안될 경우가 생겨요. 그래서 준비하는 과정부터 더 좋은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양동근, 국가대표팀의 영원한 주장

2019년 FIBA 농구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이 홈앤드어웨이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 두 경기를 치르기 위해 모인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주장 양희종은 2006년 WBC부터 오랜 시간 양동근과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양희종은 “(양)동근이 형은 주장으로서 선수들을 잘 이끌고 맏형으로서 솔선수범해왔다. 보이는 이미지 그대로 장난도 많이 지고, 할 때는 정확하게 하는 선수였다”라며 “주위에서 ‘영원한 캡틴 양동근’ 이라고 그러는데 정말로 부족한 면이 없었다”라고 양동근을 평가했다.

양동근을 뒤에서 지원사격 했던 김주성은 “(양)동근이는 지금도, 옛날에도 열심히 하는 선수였다. 몸이 좋든 안 좋든 꾸준하게 하는 선수”라며 “그런 모습을 좋아하고, 그런 친구가 들어와서 대표팀에서 잘해줘 보기 좋았다”고 양동근을 아끼는 마음을 내보였다.

선후배 동료 선수들만 인정하는 게 아니다. 감독과 코치로서 ‘국가대표’ 양동근을 지켜본 이상범 감독은 “(양)동근이는 나뿐 아니라 모든 감독들이 좋아한다. 왜냐하면 솔선수범해서 팀을 끌고가주기 때문이다. 감독으로서 정말 고마운 일이다”라고 양동근을 치켜세웠다. 2011년과 2015년 대표팀 코치로 양동근과 인연이 있는 김상식 코치는 “고참이나 어린 선수나 다들 훈련을 열심히 한다. 그 중에 (양)동근이는 팀을 아우르는 역할을 많이 했다. 감독과 코치가 언급한 것 외에도 선수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했다”며 “시대가 변하면서 팀 분위기를 강하게 잡아도 안 되고, 너무 풀어줘도 안 되는데 그런 강약 조절을 잘 했다”고 회고했다.

코트 안에서의 양동근은 이처럼 진지하고 최고의 선수로 통했다. 그런데 코트 밖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하승진은 “너무 재미있는 사람이다. 진짜 재미있고, 웃긴 형”이라며 “(양)동근이 형이 이야기만 하면 배꼽 잡고 웃기만 한다. 사람들 흉내도 잘 내고 웃기는 포인트를 잘 안다. 사람들을 즐겁고 재미있게 해줄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대학 시절부터 양동근을 알고 지낸 조성민은 “평소 수다쟁이다. 그 때 제가 희생을 많이 했다. 농담으로 저를 많이 놀리고 장난도 많이 쳤다”며 “어린 선수들과 잘 지내고 워낙 티타임을 많이 가지고 사우나도 자주 했다”고 양동근을 설명했다.

그런 양동근이 대표팀 분위기를 이끈 덕분에 어린 선수들도 대표팀 분위기에 편안하게 적응했다는 후문이다. 대표팀에 이어 현대모비스 후배가 된 이종현은 “(양)동근이 형이 워낙 장난을 많이 친다. 어린 선수들에겐 어려울 법한 나이이지만, 형이 먼저 다가오니까 분위기도 좋았다”며 “고 3 때(2012년) 대표팀에 뽑혀서 동근이 형, (오)세근이 형과 같은 방을 썼다. 그 때부터 친해져서 잘 지냈다. 그 때 좋은 추억이 있다보니 현대모비스에 와서도 원정에서 같은 방을 쓰고 있다”고 양동근과 대표팀 일화를 꺼냈다.

대표팀에서 끝없는 추락을 맛봤던 양동근은 코트 안팎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고, 하나로 단단하게 뭉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대한민국 남자농구 대표팀은 그 토대 속에 다시 최고의 자리까지 섰다.

Q.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이후 “기량이 늘었는지는 몰라도 아시안게임 이후 확실히 자신감이 붙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어요. 당시 프로 무대에서 신인상을 수상 후 서장훈 선수와 공동 MVP까지 받은 뒤입니다.

국제대회에서는 상대가 압박하는 느낌 자체가 달라요. 아시아권이라고 해도 중동 선수들이 신장도 크고 힘도 좋아요.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경기를 뛰어보면 그 선수들만큼 힘을 줘서 운동하는 선수들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좀 더 자신감을 얻었어요. 그런 선수와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됐던 거죠. 몸은 그걸 느끼는 거 같아요. 국제대회 경험이 심적으로, 신체적으로 굉장히 많이 도움이 되었죠. 어린 선수들이 그런 농구를 다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이 선수, 저 선수 다 만나보고, 외국 나가서 다른 템포의 농구와 부딪혀봐야 해요.

Q. 이상범 감독이 2012년 감독을 맡은 뒤 양동근 선수가 무조건 주장이라고 했어요. 그때 저는 양동근 선수가 대표팀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은 선수라고 생각했어요.

그 전까지 이상범 감독님과 경기를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무한신뢰를 주셨어요. 보통 (대표팀 감독들이)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는데 깜짝 놀랐어요.

Q. 양동근, 조성민 선수가 고참이 되면서 대표팀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해요.

뭐가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떤 분위기인지는 중간에 있는 선수들이 잘 알겠죠. 예의를 지켜야 하니까 선후배 규율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지만, 그런 걸 좋아하진 않아요. 본인이 책임질 수 있는 행동을 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선을 넘지 않으면 좋은 거죠. 누구나 마찬가지니까.

Q. 대표팀 분위기를 밝게 하려고 농담이나 성대모사 등 웃긴 말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고요.

어린 선수들이 거부감 없이 지내게 하려는 게 목적이었어요. (이)종현이와 12살 차이가 나는데, 종현이가 저를 불편해하면 경기를 어떻게 뛰겠어요. (최)준용이도, (문)성곤이도, (이)승현이도 어린 선수들인데 딱딱하게 한다고 잘 될 것도 아니고…. 최대한 편하게 지킬 것만 지킨다면 저에게 반말해도 아무 상관없거든요. 욕만 하지 않으면 저는 얼마든지 반말해도 편하게 친하게 지낼 수 있다는 마인드예요. “하이, 형” 그러면서 편하게 지내는 게 좋아요.

Q. 농구월드컵 예선이 홈앤드어웨이 방식으로 바뀌어 국제대회 경기가 한국에서 한 번씩 열리는데요. 양동근 선수는 인천 아시안게임 때 대표팀 경기를 한국에서 해봐서 여한이 없을 거 같아요.

앞으로 홈앤드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되니까 성적과 재미와 감동이 중요해요. 그건 선수들이 짊어지고 가야죠. 설사 홈에서 결과가 안 좋더라도 내용에서 알차거나, 준비한 노력이 보여야 팬들께서 알아주시겠죠. 아무 준비 없이 인기만 바라면 욕심이에요.

Q. 예전에 인터뷰를 보면 “국가대표팀에서 부르면 무조건 가겠다”고 했어요. 반대로 지금은 “대표팀은 내가 갈 자리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생각이 바뀐 건가요?

이제는 제가 몸이 안 되잖아요. 저보다 잘 하는 선수들이 있고, 제가 해왔던 경험만으로 비빌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요.

Q.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 동안 대표팀에서 최악과 최고의 성적을 경험했는데요. 대표팀에서의 10년을 딱 돌아보신다면?

진짜 롤러코스터예요. 대표팀에서 위아래를 모두 경험한 선수도 많지 않을 거예요. 저희 또래 선수들은 해봤겠죠. (김)주성이 형도 있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인천 아시안게임보다 농구월드컵이에요. 경기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런 선수들과 한 번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Q. 또 다시 세대교체를 하면서 성적까지 내고 있는 대표팀 후배들에게 한 마디 전해주세요.

재미있게 했으면 좋겠어요. 자신들이 책임질 수 있는 행동을 했으면 좋겠어요. 본인이 책임질 수 있는 선에서, 까불 때 까불더라도 본인이 감수할 수 있는 정도로만요. 국가대표에 뽑히면 그에 맞는 행동을 하라는 거죠. 자유분방하고 즐거운 건 좋은데, 나라를 대표하는 자리인 만큼, 조심하고 또 조심해서 행동하면 좋겠습니다.

BONUS ONE SHOT |

양동근이 뽑은 대표팀 베스트 5

양동근은 2006년 월드바스켓볼챌린지부터 2015년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까지 10년 동안 국가대표팀에서 많은 선수들과 호흡을 맞췄다. 최고의 기량이 아닌, 자신과 가장 호흡이 잘 맞았던 선수 베스트 5를 뽑아달라고 부탁했다. 양동근은 고민하며 선수들 이름을 한 명씩 언급했다. “대표팀에선 김승현 선수가 무조건 1번(포인트가드)이에요. 2번(슈팅가드)은 저랑 가장 오래 뛴 조성민 선수이고. 3번(스몰포워드)은 문태종 선수죠. 임팩트가 너무 강했어요. 3번은 너무 바뀌었는데 (김)성철이 형, (이)규섭이 형, (양)희종이, (허)일영이 등 그 때마다 슛 감각에 따라 들어왔다가 나갔어요. 그 중에 제가 뛸 때 베스트를 뽑는다면 태종이 형이에요. 그리고 4번(파워포워드)은 김주성 선수. 5번(센터)은 서장훈 선수에요. 장훈이 형은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때 1년 같이 뛰었는데 누가 봐도 우리나라 최고의 5번이었어요. 그걸 또 받쳐줄 수 있는 선수가 주성이 형이고요. 주성이 형은 또 제가 대학 선발일 때부터 계속 봐왔어요. 만약 장훈이 형이 아니라면 세근이가 4번, 주성이 형이 5번이에요. 그런데 장훈이 형을 뺄 수 없어요.”

#사진=점프볼 DB

#본 기사는 2018년 점프볼 2월호에 게재된 기사로, 「바스켓코리아」 이재범 기자의 기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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