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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 아마야구] ‘대학감독행’ 거절한 고교감독 “강원도의 기적이 우선”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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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4 (목) 13:00

                           
모든 사람은 ‘천국’에 가길 바라지만, 그렇다고 죽고 싶어하진 않는다. 모든 야구 감독 역시 ‘기적’을 꿈꾸나, 기적을 위해 고행을 선택하진 않는다. 강릉고 야구부 감독은 기적을 꿈꾸는 야구인이다. 그리고 그 기적을 위해 고행을 마다하지 않는 이다. 요즘 세상이 흔치 않은 사람이다. 
 
 
[엠스플 아마야구] ‘대학감독행’ 거절한 고교감독 “강원도의 기적이 우선”

 
 
[엠스플뉴스=강릉] 
 
강릉고 최재호 야구부 감독의 별명은 ‘우승 청부사’다. 한 번도 쉽지 않은 ‘고교 전국대회 우승’을 다섯 번이나 경험한 까닭이다.  
 
그런 최 감독이 2016년 서울을 벗어나 ‘고교야구계의 험지’인 강릉으로 떠났을 때 주변에선 “서울에 있을 때나 ‘우승 청부사’지, 강원도에 가면 ‘최재호도 별수 없구나’하는 말만 들을 것”이라며 그의 강릉행을 만류했다.
 
하지만, 최 감독은 단호했다. 최 감독은 서울 고교팀들만 강해지면 결국 지방 고교팀들이 고사해 야구 저변이 대폭 축소될 것이라며 지금까지의 감독 경험을 강릉고에 모두 쏟아부어 ‘지방 고교팀도 강팀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선언했다.
 
최 감독의 선언은 허언이 아니었다. 
 
최 감독이 이끄는 강릉고는 올 시즌 고교 강팀들이 부담스러워하는 ‘다크호스’로 변모했다. 5월 21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황금사자기 전국 고교야구대회 32강전은 달라진 강릉고를 단번에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이날 열린 32강전에서 강릉고는 ‘전통의 강호’ 충암고를 11대 2, 7회 콜드게임승으로 제압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16강전에서도 강릉고는 덕수고를 상대로 비록 역전을 허용해 패하긴 했지만, 탄탄한 전력을 과시했다.
 
1, 2학년 어린 학생선수들이 주축인 강릉고의 성장은 주목할 만하다. ‘강원도의 힘’을 믿는 최 감독은 올 시즌 강릉고가 큰일을 한번 낼 것이라며 강릉고 야구부를 목소리 높여 응원하는 학교와 동문을 위해서도 꼭 기적을 연출하겠다고 다짐했다.  
 
우승청부사의 ‘발품’에서 시작한 강릉고의 진화
 
[엠스플 아마야구] ‘대학감독행’ 거절한 고교감독 “강원도의 기적이 우선”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에서 강릉고의 활약, 인상 깊게 봤습니다. 강릉고 전력이 점점 탄탄해지는 게 눈에 보입니다.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웃음). 전 그저 ‘강원도의 힘’을 믿을 뿐이에요.
 
강원도의 힘이요?  
 
서울에서 신일고, 덕수고 등 여러 학교 감독을 맡으면서, ‘우승 청부사’란 과분한 칭찬을 받았어요. 처음 강릉고 감독으로 올 때 주변에서 다들 만류했지만, 전 ‘야구는 어디 가서 하나 똑같다’는 자신감 같은 게 있었어요. 생각보다 힘들긴 했지만, ‘강원도의 저력’은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어요. 그 힘을 믿고,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웃음). 
 
강릉고 감독으로 가장 힘든 게 있다면 그게 뭘지 궁금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적 자원’이 풍부하지 않아요. 좋은 선수를 데려오기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감독’이란 사람이 계속 투덜거리기만 할 순 없는 노릇이잖아요. 없으면 만들고, 좋은 선수 있으면 제주도까지 찾아가야죠.
 
실제로 강릉고 감독 부임 후, 좋은 학생선수를 스카우트하려고 전국을 누빈 것으로 압니다. 
 
(길게 한숨을 내쉬며) 아이고, 발품 많이 팔았죠. 잠재력 있는 학생선수들을 데려오려면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황금사자기에서 수원북중 출신 투수 김진욱이 ‘깜짝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김진욱이야말로 ‘발품의 결과’ 아닙니까. 
 
(김)진욱이는 수원에 있을 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투수예요. 하지만, 제가 봤을 땐 눈에 띄는 무언가가 있는 아이였어요. 3년 동안 고교에서 제대로 지도받고, 노력한다면 좋은 투수로 성장할 거로 판단했죠. 잠재력이 생각보다 일찍 나와 뿌듯합니다(웃음). 사실.
 
네.
 
사실 수도권에서 학교 다니다가 강원도로 터전을 옮겨서 야구한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에요. 특히 이제 막 고교생이 된 어린 학생선수들에겐 더 어려운 일이에요. 그런데도 묵묵히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대견할 뿐이에요. 야구선배로서 고맙기도 하고.  
 
최근엔 스카우트가 아니라 자진해 강릉고 야구부로 찾아오는 학생선수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강릉고가 입소문을 많이 탔어요. 예전 같으면 학생선수들을 모셔와야 했는데 지금은 학생선수들 골라서 받을 수 있는 입장까지 됐어요(웃음). 학교가 많이 도와주고, 동문이 큰 힘을 보태준 덕분입니다. 
 
'강원도 최강'을 넘어 '전국제패'를 꿈꾸는 최재호의 강릉고
 
[엠스플 아마야구] ‘대학감독행’ 거절한 고교감독 “강원도의 기적이 우선”

 
인터뷰에 앞서 “강원야구가 항구적으로 발전하려면 강원 초교-중학교-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선수 육성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제 궁극적인 목표가 그거예요. ‘지역 학생선수 육성 연계 시스템’ 구축입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강원도에 초교, 리틀야구, 중학교 야구부가 좀 더 늘어나야 해요. 강원도 아이들이 야구를 접할 기회도 많아져야 하고. 야구가 강원도 같은 멋진 곳에서 더 번창했으면 하는 게 제 솔직한 바람이에요. 
 
강원도에 대한 상당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혹시 강원도가 고향이신지.
 
아니요. 제 고향은 충청도에요(웃음). 강원도는 제2의 고향입니다(웃음). 
 
그렇군요.
 
2015년까지 서울지역 고교팀 감독을 맡으면서 우승도 여러 번하고, 좋은 경력을 많이 쌓았어요. 제게도 강원도는 모험이었습니다. 하지만, 강릉고 감독 부임 때나 지금이나 강원도 고교팀이 전국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봐요. ‘강원도도 꼭 할 수 있다’는 걸 많은 야구팬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강원도에 대한 제 애정을 말이 아닌 성적으로 보여드리는 게 제 임무가 아닐까 싶어요.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에서 ‘전통의 강호’ 충암고를 7회 콜드게임으로 이기며 파란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지금 강릉고 선수들에겐 ‘경험’이란 무기가 생겼어요. 경험을 다른 말로 하면 ‘승리하는 법을 터득했다’가 될 겁니다. 지난해 우리 선수들이 인천고, 동산고, 제물포고 등 인천의 뛰어난 고교야구팀들을 상대로 이기는 경험을 맛봤어요. 그 경험이 올 시즌 우리 강릉고 학생선수들을 휘감고 있던 ‘두려움’을 사라지게 한 원동력이 됐다고 봐요.
 
두려움이 사라졌다? 
 
강팀과 상대할 때마다, 경기 전 제가 꼭 강조하는 게 있어요.
 
뭡니까. 
 
“결과는 감독이 책임질 테니, 여러분은 배우는 자세로 부딪혀보라”는 말이에요. 황금사자기에서 충암고를 11대 2로 꺾은 건 기적 같은 일이었어요. 하지만, 전 그 기적이 단순히 ‘운’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부딪혀보자’는 우리 학선수들의 의지가 한데 뭉쳤기에 가능한 ‘준비된 기적’이었다고 봅니다.  
 
“대학 감독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기적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엠스플 아마야구] ‘대학감독행’ 거절한 고교감독 “강원도의 기적이 우선”

 
주목할 만한 건 충암고 상대로 콜드게임승을 거둘 때 강릉고 주축 선수들이 모두 1·2학년이었다는 점입니다. 강릉고의 미래가 더 밝은 이유인데요. 
 
경기마다 1·2학년 선수가 7, 8명 정도 주전으로 출전하고 있어요. 올해보다 다음 해가 더 기대되는 게 사실이에요. 
 
현재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강릉고 야구부, 목표는 역시 강원도 최강팀인가요? 
 
전혀요. 
 
네?
 
‘강원도 최강팀’을 넘어 전국대회 우승팀이 되는 게 목표에요. 주변에서 ‘꿈도 꾸지 마라’는 소릴 할 때마다 저와 우리 학생선수들은 꿈이 더 가까이 다가오는 걸 느낍니다. 쉽게 이뤄진다면 그건 꿈이 아니잖아요(웃음). ‘강원도의 힘’이 얼마나 센지 우리 강릉고가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
 
여담입니다. 모 대학으로부터 감독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아는데요. 초, 중, 고교 감독을 두루 역임하면서 지금껏 대학 감독만 맡지 못했던 것으로 압니다. 감독님의 마지막 꿈도 ‘대학 감독을 맡아보는 것’으로 아는데요. 왜 제안을 뿌리친 겁니까.
 
기자님이 잘못 아셨네(웃음). 
 
뭘 잘못 알았다는 건지….
 
제 마지막 꿈은 더는 대학 감독이 아니에요. 제 마지막 꿈은 강릉고 야구부가 전국대회에서 우승하는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대학 감독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강릉고 야구부가 전국대회에서 우승하는 기적은 아무나 경험할 수는 일이 아니에요. 경기마다 구장을 찾아 ‘강릉고 파이팅!’을 외치는 동문을 봐서라도 꼭 기적을 맛보고 싶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제 50년 야구인생도 헛되지 않을 거예요. 
 
이동섭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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