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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섭의 하드아웃] 전설의 ‘보살 팬’을 찾아서…“한화팬에겐 끈기와 여유가 있다”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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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1 (월) 11:22

                           
10년 동안 '가을야구'는 남의 집 잔치였다. 한화 이글스의 슬픈 역사다. 하지만, 한화 팬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독수리 군단에 더 열성적인 응원을 보냈다. 극기의 인내심으로 무장한 한화 팬. 우리는 그들을 '보살 팬'이라고 부른다.
 


 
[엠스플뉴스] 
 
보살(菩薩). ‘지혜를 가진 자’란 불교 용어다. 흔히 보살은 ‘법명을 받은 여성 불교 신자’를 뜻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보살 팬'이란 무엇일까. 바로 한화 이글스 팬을 일컫는 말이다.
 
한화는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그 암흑의 10년 동안 한화는 팬들에게 숱한 좌절을 안겼고, 야구계로부터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며, 환희의 순간보단 논란의 중심에 서는 일이 더 잦았다. 한화 팬들이 해탈의 경지에 올라선 ‘보살’ 소릴 듣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올 시즌 한화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 5월 21일 기준 한화는 리그 2위를 달리고 있다. 시즌 초반 일시적인 상승세로 평가절하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올 시즌 한화는 모든 면에서 달라져 있다.
 
엠스플뉴스가 2,562번째 석가탄신일을 맞아 '전설의 한화 보살 팬'을 찾아 나섰다. 한화의 비상을 가장 기뻐할 이들이 바로 '이글스 보살 팬'이라 판단한 까닭이다.
 
조계사에서 시작한 '보살 팬 찾기', 난관의 연속이었다.
 


 
엠스플뉴스가 찾는 ‘한화 보살 팬’의 기준은 간명했다. '불교 종단으로부터 법명을 부여받은 여성 신자 가운데, 한화를 응원하는 팬'이 주인공이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라' 했던가. 엠스플뉴스는 ‘한화 보살 팬’을 수소문하기 위해 서울시 종로구 조계사를 찾았다.
 
잔뜩 기대하고 찾은 조계사였지만, 경건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사찰에서 한화 팬은 고사하고, 야구팬을 찾는다는 것도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찰의 신자 대부분은 야구를 잘 몰랐다.
 
조계사에서 만난 한 보살은 “한화 이글스라면, 한화그룹에서 운영하는, 매일 꼴등만 하는 야구팀 아니냐? 그것 말고는 아는 게 없다"며 “보살 대부분이 열심히 기도만 하느라 야구 볼 시간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엠스플뉴스 취재에 응한 스님들 역시 입을 모아 “우리도 야구를 잘 모른다”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스님들은 어떻게든 취재를 도와주려 했으나, 스님들에게도 '한화 보살 팬' 찾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사찰은 ‘야구’가 인기인 속세와는 확실히 다른 차원의 세계인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발품만 팔다가 취재를 포기할 즈음. 기자는 어렵사리 ‘야구팬 보살’을 만날 수 있었다. 주인공은 바로 불교박물관에서 자원봉사하는 '무량지 보살' 김연지 씨였다. 
 
김 씨는 인자한 표정으로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OB 베어스 박철순을 좋아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 씨의 야구시계는 1980년대에 멈춰 있었다.
 
“프로야구 출범 초반엔 야구장을 몇 번 갔어요. 하지만, 그 이후 야구는 제겐 ‘딴 세상 이야기’가 돼버렸어요. 그런데 한화 팬이 ‘보살 팬’으로 불린다고요? 그러면 이제부터 한화를 응원해야겠네요(웃음).” 김 씨의 입가에 연꽃처럼 화사한 미소가 번졌다.
 
비록 한화 팬은 아니지만, '과거 야구팬' 보살을 만난 건 그나마 큰 수확이었다. 엠스플뉴스는 ‘보살 팬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서 취재를 속개했다. 하지만, 희망도 잠시. 2시간 동안 조계사 구석구석을 살폈지만, ‘한화 보살 팬’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그때였다. 2시간 전 인연을 맺은 '무량지 보살' 김연지 씨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기자를 불렀다. 
 
“한화 팬 보살을 찾았어요!”
 
우여곡절 끝에 찾은 '한화 보살 팬', “한화 응원? 인고의 세월이었다”
 


 
'과거 야구팬' 김연지 씨가 엠스플뉴스에 소개한 이는 '지혜행 보살' 홍경숙 씨였다. 홍 씨는 엠스플뉴스가 그토록 찾아 해메던 ‘오리지널 한화 보살 팬’이었다. 홍 씨는 한화를 응원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남편이 충청도 출신이에유~.” 
 
홍 씨는 “남편과 함께 한화를 응원하면서 지금껏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며 환하게 웃었다. 
 
“정말 한화 팬들은 ‘보살 팬’으로 불릴 만해요. 저와 남편이 한화를 응원하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스포츠라지만, 응원하는 팀이 계속 경기에 지는데 어느 팬이 기분 좋을 수 있었겠어요(웃음).” 
 
홍 씨는 “TV를 틀었을 때 한화가 지고 있으면 답답한 마음이 들기 일쑤였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사실 ‘보살 팬’이라고 불리기엔 부끄러워요. 아직 끈기가 부족합니다. 지는 야구를 계속 본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더라고요. 하지만, 제 남편은 정말 한결같은 마음으로 한화를 응원해왔어요. 열정이 대단합니다. 야구팀 직원도 아닌데 다른 팀 경기를 보면서 전력분석까지 한다니까요(웃음). 올 시즌엔 한화가 정말 좋은 성적을 내서, 저와 우리 남편의 안타까움과 답답한 마음을 위로해줬으면 좋겠어요(웃음).” 한화 보살 팬 홍 씨의 간절한 바람이다. 
 
홍 씨는 '한화 팬이 보살처럼 깊은 인내심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를 연고지 특성에서 찾기도 했다. 
 
“한화 팬 대부분이 충청도 출신이잖아요. 충청도민에겐 정말 큰 장점이 두 가지 있어요. 첫 번째는 끈기에요. 또 하나는 여유죠. ‘언젠가는 이기겠지~’ 하는 마음가짐에 끈기와 여유가 녹아있는 거예요.” 
 
한화의 암흑기, '보살 팬'들의 인내와 성원으로 버틸 수 있었다
 


 
시즌 전까지만 해도 한화는 많은 야구전문가로부터 ‘하위권 전력’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올 시즌 한화는 '야구 전문가들의 시즌 예상은 일기예보나 주식 예측만큼이나 불확실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경기마다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로 차곡차곡 승수를 쌓고 있다.
 
물론 이처럼 한화가 고공비행을 하는 덴 10년의 암흑기를 견딘 '한화 보살 팬'들의 인내와 성원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리라. 
 
홍 씨는 최근 리그 공동 2위를 달리는 한화에 기대감을 감추지 않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한화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어 정말 기분이 좋아요. 올 시즌엔 꼭 유종의 미를 거두리라 믿어요. 한화 화이팅!(웃음)” 
 
부처님은 '가장 위대한 기도는 인내'라고 했다. 인내는 '가장 어려운 고행'이란 말도 했다. 한화 이글스 팬들은 프로야구 팬들 가운데 가장 오랜 고행의 시간을 보냈고, 그 고행을 '인내'란 기도로 버텨왔다. 과연 올 시즌 한화의 '보살 팬'들은 정규 시즌이 끝났을 때 입가에 환한 웃음을 머금을 수 있을까. 
 
결과는 나중에 알 일이지만, 분명한 건 한화 이글스 팬들이야말로 최고의 야구팬들이며 그들이야말로 프로야구계의 '부처'란 사실이다. 팀이 잘 할 때나 못할 때나 한결같은 목소리로 응원하는 한화 이글스 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동섭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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