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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한의 골든크로스] 후랭코프 “나는 경쟁심이 강한 아이였다.”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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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월) 07:44

                           
올 시즌 초반 가장 주목받는 외국인 투수는 바로 두산 베어스 세스 후랭코프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시즌 초반 후랭코프의 활약에 "캠프 때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잘 던져준다"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미국에서의 긴 무명 생활을 거쳐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후랭코프의 과거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엠스플뉴스]
 
공격적이다. 강하다. 화끈하다. 시원하다. 압도적이다.
 
두산 베어스 외국인 투수 세스 후랭코프를 수식하는 표현들이다. 195cm의 신장에서 내리꽂는 후랭코프의 구위는 상대 타자들에게 위압감을 준다. 마운드 위에만 올라가면 투사(鬪士)의 눈빛으로 돌변하는 후랭코프다.
 
스프링 캠프 때부터 뛰어난 공을 보여준 후랭코프에 대한 두산의 기대는 컸다. 그리고 그 기대대로 후랭코프는 정규시즌 시작부터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후랭코프는 4월 23일 기준 5경기(29이닝)에 선발 등판해 4승 평균자책 1.55 29탈삼진 13볼넷 WHIP(이닝당 평균 출루 허용률) 0.93을 기록했다. LG 트윈스 투수 헨리 소사(1.06)에 이어 리그 평균자책 2위에 오른 후랭코프다.
 
후랭코프의 힘은 속구·커터·투심·체인지업·커브 등 다양한 구종을 평균 이상으로 활용하는 데서 온다. 특히 140km/h를 훌쩍 넘는 후랭코프의 날카로운 커터는 좌타자(피안타율 0.059)를 상대로 강력한 면모를 보여주는 무기다. 두산 권명철 투수코치는 “상대 타자 입장에선 후랭코프와 맞붙을 때 머리가 복잡할 거다. 다양한 구종을 항상 염두 하기에 수 싸움이 절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KBO리그 무대와 적응과 관련한 후랭코프의 인터뷰는 이미 꽤 나왔다. ‘엠스플뉴스’는 ‘코리안 드림’의 성공적인 첫 발걸음을 뗀 후랭코프의 유년 시절과 성장 과정이 궁금해졌다. 어린 시절 가족 모두가 보스턴 레드삭스 팬이었다며 환하게 웃는 후랭코프의 얼굴은 마운드 위에서 보여주는 표정과 달랐다. 또 다른 후랭코프의 매력이었다.
 
‘레드삭스 팬’ 후랭코프 “2004년 WS 우승 잊을 수 없다.”
 


 
야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정확한 나이는 기억이 안 난다(웃음). 어렸을 때 아버지와 집 뒤뜰에서 캐치볼로 야구를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야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가 됐다.
 
보통 미국에선 어릴 때 다른 스포츠도 많이 하는데 오로지 야구만 한 건가.
 
풋볼을 조금 했는데 항상 야구에만 집중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게 야구밖에 없었다. 골프는 취미로 했다. 가끔 사냥도 하고(웃음).
 
부모님은 아들의 야구 인생을 응원해줬나.
 
물론이다. 예전엔 부모님이 그랬다면 이젠 내 아내가 야구 인생의 최고 ‘서포터’다. 야구 인생은 좋을 때도 있었고 나쁠 때도 있었다. 그래도 항상 가족들이 나를 응원했기에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야구팀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환하게 웃으며) 나와 부모님은 예전부터 굉장히 열렬한 보스턴 레드삭스 팬이었다. 프로야구 선수가 된 뒤엔 다소 느낌은 다르지만, 여전히 레드삭스는 나에게 특별한 팀이다. 여기서도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레드삭스 팬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04년 월드시리즈 우승이겠다.(보스턴은 2004년 월드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시리즈 전적 4-0으로 꺾고 86년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고갤 끄덕이며) 아직도 안 잊히는 순간이다. 커트 실링의 역투는 어제처럼 생생하다(웃음). 레드삭스 팬으로서는 최고의 기억이다.
 
직접 경기장에서 우승의 순간을 봤나.
 
아니다. TV로 보고 있었다. 내 고향인 노스캐롤라이나와 보스턴은 매우 멀다(웃음). 그래도 경기를 다 챙겨 봤다.
 
그렇게 프로야구 선수로서 꿈을 조금씩 키워나갔겠다.
 
솔직히 언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야구를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프로 무대에서 성공하고픈 꿈이 생겼다. 앞으로도 야구를 오랫동안 하면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픈 마음이다.
 
마운드 위에서 항상 공격적인 투구가 인상적이다. 어렸을 적부터 그런 자세를 길렀나.
 
어릴 때부터 나는 경쟁심이 강한 아이였다. (목소릴 높이며) 항상 이기고 싶었고, 지금도 역시 그렇다. 나는 여기에 다른 팀 선수들과 친해지려고 온 게 아니다. 승리라는 프로의 목적이 있기에 항상 공격적인 자세를 보여주고자 한다.
 
후랭코프의 끝없는 욕심 “여기서 만족하지 않겠다.”
 


 
2010년 메이저리그 지명(오클랜드 어슬레틱스 27라운드 전체 815번째) 당시 기분은 어땠나. 아쉽게도 레드삭스는 아니었다.
 
전체 순번이 낮긴 했지만, 나에겐 굉장히 특별한 날이었다. 메이저리그라는 꿈의 무대로부터 선택받은 건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하지만, 6년간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버텨야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맞다. 분명히 쉬운 일은 아니다. 굉장히 힘든 길을 걸어왔다. 하나만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많은 어려운 순간이 스쳐 지나간다. 그래도 지금은 한국에서 잘 되라는 뜻의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6월 10일 콜로라도 로키스 원정 경기(2이닝 4피안타 2탈삼진 2실점)가 지금까진 유일한 메이저리그 등판 기록이다.
 
메이저리그 콜업은 나에겐 오랜 꿈이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순간이 다가와서 믿기지 않았다. 비록 짧았지만, 그 순간도 내 야구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다시 새로운 도전이다. 두산에서 또 다른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KBO리그도 내 야구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경험이다. 시즌 초반 팀이 정말 잘하고 있다. 두산에서 야구하는 건 아무 데서나 경험할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이다. 내 뒤에선 든든한 팀 동료들이 멋진 수비로 나를 지켜준다. 그래서 더 편안하게 공을 던진다.
 
다양한 구종을 평균 이상으로 구사하는 게 큰 장점으로 꼽힌다.
 
특별한 한 가지 구종이 있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구종을 평균 이상으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래야 타자들이 나를 상대할 때 어려움을 겪을 거로 본다. 5년여 전부터 커터도 던지기 시작했는데 나름 잘 통하는 것 같다.
 
아직 5경기 등판 기록이지만, 바깥의 평가는 굉장히 좋다.
 
(고갤 내저으며) 여기서 만족하지 않겠다. 좋은 흐름을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중간에 위기가 찾아와도 연구해서 좋은 흐름으로 다시 바꾸겠다. 어떻게든 공격적으로 팀 승리를 이끌고 싶다.
 
최근 외모에 대한 팬들의 칭찬도 점점 많아진다(웃음).
 
나는 이미 결혼했기에 외모에 대한 평가에 신경 쓰지 않는다(웃음). 그래도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다. 나에겐 야구로 더 좋은 칭찬을 받는 게 더 중요하다.
 
김근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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