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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 인터뷰] 중학야구 감독 된 '괴물타자'의 역설 "실패하라"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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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9 (목) 11:22

                           
건국대학교 1루수 추성건은 대학야구를 대표하는 ‘슬러거’였다. ‘괴물타자’ 추성건과 ‘바람의 아들’ 이종범을 필두로 한 건국대 야구부는 1992년 전·후기 대학리그를 석권했다.
 


 
[엠스플뉴스] 
 
‘당장의 성과보다, 선수의 미래를 우선하는 지도자.’
 
모든 지도자의 ‘이상향’이지만, 행동으로 옮기긴 쉽지 않다. 그런데, 한국 중학야구엔 선수의 미래를 팀 성적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지도자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자양중학교 추성건 감독이다. 
 
대학시절 ‘괴물타자’로 이름을 날렸던 추 감독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후진양성에 정성을 쏟는 중이다. 추 감독은 '스스로 학습법'과 '건강'을 강조하며, 후배들의 미래를 함께 그린다. "우승보다, 실패를 먼저 해보라"고 제자들을 다독이는 자양중 야구부 추성건 감독을 엠스플뉴스가 만났다. 
 
중학야구 감독 된 '건국대 괴물타자' 
 


 
대학시절 ‘바람의 아들’ 이종범(현 MBC SPORTS+ 해설위원)과 건국대학교 전성기를 이끈 주역이었습니다. 
 
(이)종범이와는 대학 4년 내내 룸메이트였어요. 이종범은 정확도와 빠른 발을 겸비한 타자였습니다. 저는 ‘파워히터’란 평가를 받았지요. 대학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1993년 KBO 신인지명회의에서 OB 베어스에 1차지명을 받아 입단했습니다. 그때는 나름 기대주였죠(웃음). 
 
1993년 신인들은 한국 프로야구사에 길이남을 ‘황금세대’로 불립니다. 하지만, 유독 추성건만큼은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활약을 보였는데요. 
 
프로에 적응할만 하면,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프로 입단 후 손목과 발목을 크게 다쳤죠. 결국, ‘유망주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접었습니다. 대학 동기 이종범과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 거죠.
 
‘초특급 유망주’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되돌아보면, 저는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없던 선수였어요. 중학교 3학년에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또래 동료들보다 상당히 늦게 야구공을 잡은 거죠. 그러다 보니, 코치가 시키는 대로 야구를 하기 급급했어요. 혼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프로에서 그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거죠.
 


 
이종범을 비롯한 프로 입단 동기들이 ‘선수 생활 전성기’를 구가할 즈음, 지도자로 변신했습니다. 
 
2001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결정했어요. 2000년 SK 와이번스 창단멤버로 합류해 프로 첫 3할 타율(시즌타율 0.302)을 기록한 다음 해죠. ‘선수는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빠르게 지도자 생활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지도자 추성건'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궁금합니다.
 
은퇴 후 모교인 서울고 수석코치로 부임했습니다. 2004년엔 중국으로 건너갔어요. 2006년까지 중국 세미프로리그 광둥 레오파스 기술감독으로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엔 서울고-청원고에서 수석코치 역할을 맡았어요. 그리고 2013년 자양중학교 감독으로 부임했어요. 지도자 생활 중 마음이 가장 편한 건 지금입니다(웃음).
 
마음이 편하다?
 
고교야구는 ‘전쟁터’에요. 패배가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고교 지도자로 있을 땐 ‘노르망디 상륙작전 최전방 부대원’이 된 느낌이었어요(웃음). 하지만, 중학야구는 달라요. 중학교에선 승·패보다 ‘기초의 완성’이 더 중요합니다. ‘결과의 달콤함’보다 ‘과정의 중요함’을 배워야 하는 시기기도 하죠. 
 
후배들을 향한 추성건 감독의 뼈 있는 조언 “실패하라”
 


 
‘과정의 중요함’이란 말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선수 스스로가 마음 깊은 곳에서 ‘과정의 중요함’을 깨닫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선수로 실패한 건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제가 범한 과오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해요. 자양중 야구부가 ‘자율 야구’를 추구하는 건 이 때문이죠.
 
자율야구?
 
자양중 야구부는 모든 걸 선수 스스로 합니다. 경기나 훈련 전 몸풀기 역시 선수들 자율에 맡겨요. 시합 중엔 감독이 사인을 내지 않습니다. 선수가 도루나 번트를 하고 싶으면, 감독에게  직접 사인을 줘요. 저는 선수들이 주는 사인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에요. 
 
지도자의 간섭을 최소화한 거군요. 그렇다면, 감독 추성건이 생각하는 중학야구 감독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선수들이 원하는 야구를 하는 가운데, 방향을 잡아주는 게 제 역할입니다. 선수들이 스스로 자신의 숙제를 풀 수 있게 도와주는 거지요.  
 
‘스스로 학습법’이 좋은 성적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시 소년체전 선발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는데요. 하지만,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한 아쉬움 역시 진할 듯합니다.
 
중학야구에서 우승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물론 우승을 하는 게 큰 경험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학야구에서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건강'이에요. 
 
‘결과보다, 선수의 건강이 우선이다.’ 현실에서 행동으로 옮기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두산 베어스 신인 투수 곽 빈이 자양중 출신이에요. (곽)빈이는 아마 제게 서운한 게 많을 거예요. 제가 곽 빈을 투수로 기용하지 않았거든요. 중학교 시절 빈이는 당시 몸이 갑자기 성장한 상태였습니다. 전력으로 공을 던지면, 부상이 오기 쉬운 몸 상태였죠. 곽 빈은 좋은 공을 던질 수 있는 재목이었어요.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무리할 경우 부상 위험이 크다고 판단했죠. 
 
‘좋은 재목을 아낀다.’ 지도자로선 쉽지 않은 결정인데요. 
 
선수의 잠재력이 보인다 해도, 꽃을 피울 시기는 따로 있어요. 자양중 야구부는 시즌 시작 전 투수들의 한계 투구수와 투구 후 휴식일을 미리 정합니다. 그 계획에 따라, 시즌을 치르지요. ‘에이스’를 더 많이 기용하면, 우승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선수의 미래는 망가져요. 저는 중학교 선수들에게 그런 야구를 가르치고 싶진 않아요. 
 


 
정말 인상깊은 말입니다. '자율'과 '건강' 그 가운데, 추성건 감독이 제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강조하는 메시지는 따로 있어요. “실패하라” 말을 가장 많이 합니다(웃음). 
 
실패하라?
 
고교야구나 프로에선 실패가 용납되지 않아요. 하지만, 중학야구는 다릅니다. 중학야구는 선수들이 실패해도 아무렇지 않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마지막 무대’에요. 제자들이 실패를 통해 많은 걸 배운 뒤 더 큰 무대에서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있잖아요. 중학교에서의 실패는 선수들에게 무엇보다 큰 자양분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이동섭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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