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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MLB+] Dear 케빈 타워스, 당신이 옳았습니다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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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9 (목) 08:44

수정 1

수정일 2018.04.19 (목) 09:56

                           


 


[엠스플뉴스]


 


"과거 나는 운이 좋게도 미시간 고등학교 재학 시절의 데릭 지터를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마치 젊은 시절 지터를 연상케 한다. 그는 넓은 수비 범위를 지녔고, 스피드도 빠르며,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날리는 유형의 타자이기도 하다. 내 생각엔 타석에서의 참을성(선구안)만 갖춘다면 지금보다 많은 홈런을 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2년 12월에 있었던 추신수 3각 트레이드 당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단장이었던 故 케빈 타워스가 팀 내 최고의 유망주였던 트레버 바우어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보내는 대가로 한 유격수를 받아오면서 한 말이다. 


 


그날 이후 이 유격수의 별명은 '검은 지터'가 됐다. 하지만 칭찬의 의미가 담긴 별명은 아니었다. 타워스에게 극찬을 받은 이 유격수는 애리조나에서 2년간 평균 92경기 6홈런 타율 .241 OPS .682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검은 지터' 또는 '제2의 지터'는 지터와 비교하기에는 팀도, 개인 성적도 크게 부족했던 그를 비웃는 별명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 후 이 선수는 뉴욕 양키스의 유격수로 뛰며, 1999년 지터가 세웠던 구단 유격수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24개)을 경신했다. 바로 양키스 주전 유격수 디디 그레고리우스(28)의 얘기다. 18일(이하 한국시간) 열린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경기에서도 비록 팀은 큰 점수 차이로 패했지만, 그레고리우스는 2타수 1안타 2볼넷을 기록했다. 


 


이날 활약으로 그레고리우스의 2018시즌 성적은 타율 .333 5홈런 16타점 OPS 1.268 WAR 1.5승이 됐다. WAR(대체선수 대비 기여승수) 1.5승은 시즌 초 메이저리그 전체 야수 1위(1.5승)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2016년에 있었던 타구 발사각도의 상승, 그리고...


 








 


 


 


그레고리우스는 색다른 이력을 지녔다. 그는 대다수의 네덜란드 국적 선수가 그렇듯이 카리브 해에 위치한 네덜란드령 퀴라소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레고리우스는 네덜란드 본토에 있는 암스테르담 출신이다. 어릴 적 퀴라소로 이주해 야구를 시작하긴 했지만, 출생지만 놓고 보면 보기 드문 유럽 본토 출신 메이저리거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색다른 이력을 지난 그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민 팀은 신시내티 레즈였다. 하지만 그레고리우스는 마이너리그에서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빅리그 데뷔 시즌이었던 2012년 겨울 앞서 말한 트레이드를 통해 애리조나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2년간 부진한 성적을 기록한 끝에 다시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양키스로 자리를 옮겼다.


 


2015시즌을 앞두고 그레고리우스를 영입했을 때, 양키스가 그에게 원했던 것은 넓은 수비 범위를 지닌 운동능력이 뛰어난 젊은 유격수로서의 역할이었다. 영입 첫해 타율 .265 9홈런 56타점을 기록한 그레고리우스는 그런 목적에 최적화된 선수였다. 그런데 그레고리우스는 2016년 갑자기 20홈런을 기록하는 유격수로 성장했고, 2017년에는 25홈런을 쳐냈다.


 




 


비결은 단순했다. 바로 타구 발사각도(launch angle)의 상승이다. 2015년 그레고리우스의 뜬공 비율은 34.1%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6년에는 40.3%로, 2017년에는 43.8%로 늘어났다. 이는 최근 메이저리그에 불고 있는 '뜬공 혁명(Air Ball Revolution, 발사 각도를 높임으로써 타격성적이 향상될 수 있다는 이론)'과 궤를 같이하는 변화다.


 


단, 타율과 홈런이 동반 증가했음에도 지난 2년간 그레고리우스의 wRC+(조정 득점창출력)은 102점으로 평균(100)을 살짝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지나치게 낮은 볼넷 비율, 그리고 그로 인해 2할 후반대 타율에도 불구하고 3할을 간신히 넘는 출루율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8년이 되자, 반전이 일어났다.


 


예언이 된 케빈 타워스의 디디 그레고리우스 평가


 




 


그레고리우스는 18일까지 타석당 볼넷 비율 20.3%를 기록 중이다. 이는 지난해 4.4% 대비 15.9% 포인트 증가한 수치이자, 메이저리그 전체 8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그 덕분에 그레고리우스의 출루율은 무려 .464(ML 9위)에 달한다. 하지만 선구안이 좋아지면서 생긴 효과는 그 뿐이 아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장타율 부문에서 전체 1위(.804)를 달리고 있다.


 


잠시 글의 서두 부분으로 돌아가 보자. 타워스 전 단장은 그레고리우스를 평가하면서 "내 생각엔 타석에서의 참을성(선구안)만 갖춘다면 지금보다 많은 홈런을 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베이스볼아메리카 선정 14위였던 바우어와 같은 기관지 선정 80위였던 그레고리우스를 바꾼 것은 명 스카우트 출신으로서의 이런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 물론 '괴짜' 바우어와 구단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트레이드 당시 많은 현지 기자와 팬은 타워스의 판단을 비난했다. 그리고 그레고리우스의 부진이 이어지자 비판은 어느새 비웃음으로 바뀌었다. 이제 와 고백하거니와 필자 역시 그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레고리우스는 타워스가 말했던 그대로 진화하고 있다. 스카우트의 감각이 세이버메트릭스의 예측력을 이긴 것이다.


 




 


사실 이러한 사례는 세이버메트릭스가 본격적으로 구단 운영에 도입된 2000년대 초반부터 비일비재했다. 마이클 루이스가 저서 <머니볼>에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머니볼 드래프트'가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은 더는 비밀이 아니다. 오히려 2000년대 초반 오클랜드를 지탱했던 선수들은 모두 영화 <머니볼>에서 한심하게 나오는 나이 든 스카우트들이 뽑았다.


 


그 외에도 수차례나 숫자에 기반을 둔 드래프트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최근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팀을 운영함에 있어 세이버메트릭스와 현장 경험을 조화롭게 활용하려는 추세로 돌아섰다. 이제는 말하고 싶다. "타워스 단장님 당신이 옳았습니다"라고. 하지만 정작 사과를 받아야 할 그는 올해 1월 갑상선 암으로 투병하던 끝에 세상을 떠났다.


 


 


 


 


2012년 겨울, 우리는 한 스카우트 출신 단장의 안목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이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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