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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공작소] '핵심선원' 모두 떠난 피츠버그호, 그들의 '원피스'는 어디에?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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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화) 17:22

                           


 
[엠스플뉴스]
 
2018년 1월 16일. ‘해적네’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선장 ‘맥 스패로우’가 거인족의 부름을 받고 새로운 여정을 위해 떠났다. 사실 그보다 이틀 앞선 1월 14일에는 유능한 항해사였던 ‘세일러 콜’이 바다를 넘어 우주여행의 꿈을 이루기 위해 휴스턴으로 떠났다. 그 와중에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부지런한 수석 선원 스탈링마저 부치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금단의 약에 손을 댄 후로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한때 ‘국츠버그’라고까지 불리며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피츠버그. 그 팀을 이끈 앤드류 맥커친, 게릿 콜, 스탈링 마르테가 각자 다른 이유로 피츠버그를 떠나거나, 끔찍한 한 해를 보내거나, 다시는 ‘해적선’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렇게 지난 1년에 걸쳐 여러 명의 핵심 선원을 모두 잃어버린 해적들은 결국 험난한 메이저리그 바다의 한가운데서 정처 없이 표류하고 말았다. 피츠버그의 2017년 최종 성적은 75승 87패, 5할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었다. 잠깐이지만 화려했던 제2의 전성기를 4년 만에 마무리한 것이다.
 
올스타급 선수들이 모두 떠나버린 지금, 2018년 시즌 개막을 눈앞에 둔 피츠버그의 로스터를 살펴보게 되면 아쉬움이 섞인 한숨부터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상대의 함선에 확실한 포탄 한 방을 박아넣을 임팩트를 가진 선수, 즉 리그를 대표할만한 선수가 없다. 지금의 로스터를 보고 (5할 승률을 한 번도 기록하지 못한) 1993년부터 2012년까지 이어졌던 무려 20년의 침체기가 다시 도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느끼는 팬들도 있을 것이다. 팬의 시선에서 보면 오히려 잠깐의 중흥기를 맛본 것이 더욱 큰 고통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마저 들 수도 있다. 따스한 빛과 달콤한 영광을 잠깐이나마 느껴본 사람들이야말로 차가운 어둠과 쓰라린 절망을 더욱 절실히 체감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 글은 팬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물론 필자가 보기에도 피츠버그에는 당장 그들을 밝은 빛으로 인도할 ‘맥 스패로우’나 ‘세일러 콜’은 없다. 하지만 그들에 못지않은 멋진 캡틴, 항해사, 조타수로 자라날 만한 새싹들로 가득한 멋진 팀이 지금의 피츠버그다. 현재 리그에서 가장 저평가 받는 선수들이 많은 팀을 꼽으라 한다면 한 손 안에 꼽을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메이저리그를 정말로 꼬박꼬박 챙겨보는 분이 아니라면, 심지어 즐겨보는 분이라 하더라도 이런 질문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맴돌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그렇게 가능성으로 충만하다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다. 허풍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해적선을 이끌만한 차기 ‘우수 선원’, 나아가 ‘캡틴’감들을 하나씩 짚어보도록 하자.
  
건실한 타선의 축 : 조쉬 벨
 


 
지난해 메이저리그는 유난히 ‘괴물 신인’들이 많이 나타나 리그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당장 떠오르는 이름들만 해도 애런 저지, 코디 벨린저, 리스 호스킨스. 트레이 만시니까지.
 
‘조쉬 벨’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도 메인으로 등장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시즌이 끝난 후 벨이 기록한 성적표를 천천히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놀랄 것이 분명하다. 벨린저나 저지 같은 괴물과 비교하는 것은 너무한 일이다. 사실상 저 둘을 제외하면 지난 시즌 벨만큼 꾸준했던 신인은 폴 데용 정도 뿐이었다. 지난해 벨은 .255/.334/.466의 슬래시라인으로 OPS .800을 기록했다. 26홈런을 기록하며 준수한 장타 생산 능력을, 66볼넷 117삼진에서 볼 수 있듯이 준수한 볼넷/삼진 비율까지 보여주었다. 한 가지 더 고무적인 부분은 빅리그 첫 시즌을 맞이한 루키가 1년 내내 꾸준한 생산력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전반/후반기, 월별 스플릿, 홈/원정 스플릿 etc.)
 
전반기: .239/.322/.472 16홈런 36볼넷 65삼진
후반기: .274/.349/.460 10홈런 30볼넷 52삼진
 
물론 벨에게도 개선해야 할 부분은 분명 존재한다. 벨이 지난 시즌 기록했던 51%의 땅볼 타구 비율은 리그 1루수들 중 3위에 해당했을 정도로 높았다.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보여줬던 11%의 볼넷 비율과 19%의 삼진 비율 역시 마이너리그에서 보여줬던 수치에 비하면 다소 퇴보한 것이다(퇴보했음에도 준수하다!). 더 나아가 실제로 때려냈던 타구들의 평균 속도와 배럴(일정 각도의 발사각+일정 수준 이상의 타구속도를 기록한 장타 확률이 매우 높은 타구)의 개수 역시 리그 평균 수준에 걸치는 정도다.
 
그러나 벨이 마이너리그 시절 코디 벨린저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과(2016년 베이스볼아메리카(BA) 유망주 순위 벨 38위, 코디 벨린저 54위) 실제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보여준 타석에서의 어프로치를 보면 발전의 여지는 여전히 존재한다. 물론 벨이 지난 시즌의 코디 벨린저처럼 40홈런 가까이 기록하며 MVP급 성적을 기록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안정적인 선구안을 바탕으로 타선의 중심을 든든히 지켜주는 리그 탑 10 1루수로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히 높다.
 
저평가 甲 ‘선발 3인방’ : 제임슨 타이욘, 조 머스그로브, 채드 쿨
 
많은 사람들은 게릿 콜이 떠난 피츠버그의 로테이션을 보면서 마치 귀엽기만 할 뿐 위협적이지 않은 동네 똥강아지 3마리를 보듯이 대하고 있다. 하지만 약간의 각성과 이른바 ‘시라지 매직’이 더해진다면 이들 3명은 그리스 신화 속 ‘케르베로스’(머리 3개 달린 개의 형태를 한 괴물)가 되어 해적선에 접근하는 적들을 사정없이 물어뜯을 수도 있다. 잘 살펴보면 이들 셋 모두 장단점이 나름 뚜렷하고, 시즌이 흐를수록 분명한 발전을 이뤄내며 기대치를 높이는 선수들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1. 첫번째 머리 - 제임슨 타이욘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많은 기대를 받으며 상위 선발감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타이욘은 지난해에 무려 ‘고환암’ 진단을 받으며 최악의 시즌 스타트를 끊었다. 다행히도 성공적인 항암치료 끝에 완치 판정을 받고 마운드에 돌아온 타이욘은 시즌을 건강하게 마무리했다. 시즌 성적은 133.2이닝에서 4.44의 평균자책점과 8승 7패. 겉만 놓고 보면 그다지 인상적인 성적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 투구 내용과 세부 지표를 살펴보면 이미 지난해에도 타이욘은 웬만한 팀의 2선발 수준의 준수한 투구를 펼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90마일대 중반에 육박하는 싱커성 무브먼트를 가진 속구와 플러스급으로 평가받는 커브의 조합은 평균 이상의 땅볼 생산력을 보여줬으며, 볼넷 역시 9이닝당 3.1개로 적정선에서 억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세부 지표상으로 고르게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타이욘은 무려 .352의 BABIP를 기록하며 행운의 여신에게 버림을 받았다. (타이욘 2017년 FIP 3.48) 다소 성급한 결론일수도 있으나, 타이욘에게 2017년은 불운으로 점철된 한 해였다고 말해도 큰 무리는 없지 않을까.
 
2. 두번째 머리 - 채드 쿨
 


 
채드 쿨은 지난 시즌 중에 아주 큰 발전을 이뤄내며 후반기에 성적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전반기: 18경기 85.1이닝 4.96ERA 69삼진 35볼넷
후반기: 13경기 72이닝 3.63ERA 73삼진 37볼넷
 
변곡점은 바로 커브의 구사였다. 2016년 데뷔 이후 줄곧 좌타자를 상대로 약한 모습을 보이던 쿨은 2017년 6월을 기점으로 커브를 레퍼토리에 추가했다. 전체 투구 중 커브의 구사율은 겨우 6%에 불과했지만 이 작은 변화 하나만으로 쿨의 투구 내용은 완전히 달라졌다. 데뷔 후 첫 26번의 등판에서 좌타자를 상대로 무려 .953의 피OPS를 기록했던 쿨은 커브를 장착한 이후 등판한 19경기에서 좌타자를 상대로 .791의 피OPS를 기록했다. 물론 여전히 다소 아쉬운 수치긴 하지만 장족의 발전임에는 분명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바로 큰 폭으로 증가한 삼진율. 2017년에 치른 첫 12번의 등판에서의 9이닝당 탈삼진(K/9)은 겨우 7.29개. 이후 19번의 등판에서는 8.50까지 치솟았다.
 
2017년 시즌 도중에 일어난 변화를 제외하고 보더라도, 쿨은 2016년에 비해 많은 부분에서 발전했다. 특히 구속의 증가가 눈에 띄는데, 속구와 슬라이더의 평균 구속이 2016년에 비해 2017년에 2마일씩 상승한 모습을 보여줬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 쿨은 2018년 시즌에 26살이 된다. 언제 훌쩍 성장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3. 세번째 머리 - 조 머스그로브 
 



조 머스그로브는 부동의 에이스였던 게릿 콜 트레이드를 통해 받아온 선수다. 그만큼 피츠버그의 입장에서는 큰 기대를 가지고 영입한 선수라는 뜻이다. 일단 여태까지의 빅리그 성적만 놓고 보면 환호보다는 한숨이 먼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이제 더 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셈이다.
 
머스그로브가 성공하기 위해선 마운드 위에서의 완급조절 부재 능력이 우선 개선해야 할 첫번째 과제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원-심 패스트볼’은 패스트볼이라 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상하 움직임을 통해 수많은 땅볼을 양산하지만, 반대로 이 공을 과하게 존 안으로 욱여넣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머스그로브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건 통계가 증명하고 있다. 머스그로브가 서드/4th 구종으로 던지는 체인지업과 커브볼은 지난 시즌 무려 16%를 넘어가는 헛스윙률을 기록했다. 선발 로테이션으로의 합류가 확실해진 이상, 조금 더 폭넓은 레퍼토리를 이용해 완급조절을 해가며 투구한다면 2018년의 머스그로브는 피츠버그의 수많은 ‘히트상품’ 중 하나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해적선의 후미를 지킨다 : 펠리페 바스케즈
 


 
무슨 말이 필요할까? 2016년 7월 31일, 당시 피츠버그 부동의 마무리였던 마크 멜란슨을 워싱턴으로 보낸 대가로 받아온 펠리페 리베로는 1년 반이 지난 지금 당시의 멜란슨만큼이나 압도적인 투수로 성장해버렸다. 2017년에 리베로가 보여준 모습은 그야말로 리베’라’와 한 끗 차이에 불과했다. 시속 98.5마일에 달하는 평균 구속을 지닌 속구와 함께 구사하는 체인지업의 조합은 그 어떤 타자들도 몸을 휘청이게 만드는 최강의 조합이었다. 물론 8월 이후 다소 폼이 저하되며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적어도 시즌 중반까지 리베로가 보여줬던 모습은 말 그대로 ‘언터처블’에 가까웠다. 한가운데 속구가 꽂힐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타자들은 16%에 가까운 공에 헛스윙을 연발했다.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던 7~8월로 한정할 경우 타자들은 리베로의 체인지업에 무려 20%가 넘는 헛스윙률을 기록했다. 이는 리그 최고의 마구 중 하나로 꼽히는 앤드류 밀러의 슬라이더와 비견되는 수준이다. 피츠버그 역시 이런 리베로의 활약에 고무되어 이번 오프시즌에 그에게 4년간 2,200만 달러의 계약을 안겨줬다. 8월 이후의 ‘삐끗’이 잠깐의 ‘실수’에 불과했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이후 4년간 해적선의 후방 장갑은 웬만한 핵어뢰로도 뚫지 못할 강철 장갑이 될 가능성이 크다.
 
*'리베로' 시절 기간별 성적
2017년 개막~7월 31일: 53.2이닝 0.67ERA, 13볼넷, 62삼진
2017년 8월 1일~시즌 종료: 21.2이닝 4.15ERA, 7볼넷, 26삼진
 
(한국 시간 4월 9일을 기준으로 평소에 각별한 사이를 자랑하던 누이 프리실라 바스케즈의 성을 따라 ‘펠리페 바스케즈’로 개명을 했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마리아노 리베라’와 비교하는 유치한 말장난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여기까지 가장 주목할만한 5명의 선수를 살펴봤으나, 사실 해적선에 숨겨진 원석들은 이들뿐만이 아니다. 당장 불법적인 약물 사용으로 80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던 중견수 스탈링 마르테 역시 과거의 폼을 찾는다면 충분히 좋은 활약을 기대해볼 수 있다. 뛰어난 툴로 큰 기대를 받았던 외야수 그레고리 폴랑코 역시 아직 20대 중반에 불과한 어린 선수기에 반등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여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타격 재능을 보유한 콜린 모란, 완성형 투수 유망주로 불리는 미치 켈러의 존재는 피츠버그의 미래를 더욱 밝게 한다. 그리고 맥커친의 뒤를 이어 피츠버그의 간판이 될 것으로 기대받고 있는 오스틴 메도우스는 제대로 터져주기만 한다면 언제든 리그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올 만한 좋은 재능을 갖춘 선수다.
 
물론 소위 ‘하이프’라 불리는 이런 예측들은 시즌이 진행됨에 따라 언제든 ‘거품’으로 바뀌어 침몰하는 해적선과 함께 바닷속으로 쓸쓸히 가라앉을 수도 있다. 냉정히 말하면 당장 수많은 금은보화를 손에 쥐고 있는 내로라하는 강팀들과 비교해 피츠버그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자원들을 갈고 닦아서 써야 하는 처지에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시즌이 10% 가량 지난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해적선은 무명 선원들의 손 아래에서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전진하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스포츠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가 무엇인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소위 언더독이라 평가받던 이들의 분전이야말로 많은 팬들의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띵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니었던가? 특히 흔히 말하는 ‘빅 마켓’ 도 아닌, 수십년의 암흑기를 거치며 많은 팬들의 관심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던 피츠버그 같은 팀들이 날리는 묵직한 카운터펀치 한 방이야말로 모든 스포츠 팬들의 피를 뜨겁게 끓어오르게 하는 요소임에 분명하다. 그렇기에 필자는 이 기회에 수많은 야구팬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해본다. 당신! 해적들의 동료가 되지 않겠는가?
 
야구공작소
송준형 칼럼니스트
 
기록 출처: MLB.com, Fangraphs, Baseball Sav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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