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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취재] ‘레이커스 전설’ 엘진 베일러, 동상 공개되던 날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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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6 (월)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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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2018.04.16 (월) 03:25

                           



[점프볼=로스엔젤레스/이호민 통신원]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카피는 비단 한국사회에만 적용되는 이치는 아니다.  NBA 스타라고 예외는 아니다. 찰스 바클리, 칼 말론, 패트릭 유잉, 존 스탁턴, 레지 밀러, 스티브 내쉬와 같이 화려한 커리어를 남겼지만 우승반지를 끼지 못한 스타들 앞에 ‘2인자’라는 수식어가 지워지지 않는 이유다.



 



그렇지만 이러한 ‘무관의 제왕’들도 LA 레이커스 엘진 베일러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지 않을까.



 



1934년생인 엘진 베일러는 줄리어스 ‘Dr. J’ 어빙, 마이클 조던, 코비 브라이언트와 같은 ‘무한 체공시간’을 자랑하는 스윙맨의 시조새이기도 하다. 1958년에 1순위로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에 지명된 후 루키시즌부터 새내기답지 않은 걸출한 실력을 뽐내며 평균 24.9득점 (리그 4위), 15.0 리바운드 (리그 3위), 4.1 어시스트 (8위)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겼다. 이견의 여지없이 신인왕을 차지했음은 물론이다.



 



오늘날 벤 시몬스의 경기 지배력에 도노반 미첼의 득점력이 합쳐진 모습을 상상해보면 무리일까. 그 이후 올 NBA 퍼스트 팀에 10차례 오르고 ,올스타 팀에 무려 11회 선정되었으며, 커리어 평균 27.4득점 13.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역대 파이널 경기 최다득점 기록 역시 베일러가 보유하고 있는데, 질긴 악연의 보스턴 셀틱스와의 1962년 5차전 경기에서 무려 61득점을 기록했다. 영화배우와 같이 훤칠한 외모도 그의 스타성을 배가시켜주었다.



 



이와 같은 상상초월의 실력자가 왜 2인자 취급을 받아왔을까.



 



바로 보스턴 셀틱스 왕조에 번번이 앞길을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1962년 파이널에서는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패배했고, 이듬해인 1963년뿐 아니라 1965년, 1966년, 1968년, 1969년, 모두 6차례나 보스턴 셀틱스에게 파이널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이외에도 베일러는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971-1972시즌을 9경기 뛰고 고질적인 무릎 부상 때문에 은퇴를 결정했는데, 은퇴 이후 레이커스가 전무후무한 33연승 기록을 세우며, 파이널에서 뉴욕 닉스를 4-1로 꺾으며 마침내 LA 연고지 이전 후 첫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1960-1961시즌부터 레이커스가 미네아폴리스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연고지를 이전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프랜차이즈 스타 자격으로 ‘랄(LAL)’시대를 열고 이끈 개척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구단으로부터 홀대를 받았다는 인상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면,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레이커스의 홈 경기장인 스테이플스 센터 광장 앞에 베일러의 동상이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레이커스에서 8시즌만을 뛴 까마득한 후배 샤킬오닐도 동상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레전드에 대한 예우가 부족했음을 알 수 있다 (베일러는 레이커스 ‘원 팀맨’으로 14시즌을 뛰었다). 함께 뛰었던 팀 동료 제리 웨스트를 비롯해서 카림 압둘-자바와 매직 존슨의 동상도 전시되어 있다는 점이 베일러의 부재를 더욱 부각시켰다. 같은 스테이플스 센터를 홈구장으로 사용하며 ‘셋집살이’를 하는 LA 클리퍼스의 경영자를 22년간 맡아서 피해를 입은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의아한 일이었다.



 



 



이와 같은 실수를 바로잡고, 비록 1등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훌륭했던 레전드를 기념하고자 레이커스 구단은 지난 4월 6일에 엘진 베일러의 동상을 공개하는 개막식 행사를 주최했다.



 



개막식에는 앞서 언급한 스테이플스 센터 “기념동상 동창 멤버”인 제리 웨스트, 압둘-자바, 매직, 샤크를 비롯해서 자말 윌크스, 마이클 쿠퍼, 미치 컵책, 제임스 워디와 같은 다수의 레이커스 전설들이 하늘같은 선배님의 자리를 빛내주었다. 



 



동상 개막식 행사가 시작되자 매직 존슨이 레이커스 구단을 대표해서 레전드를 소개했다. 매직 존슨에 이어 샤킬 오닐의 유쾌한 축사가 있었다. 닥터 J나 마이클 조던 같은 영웅들이 베일러를 우상으로 언급하는 게 궁금해서 본인도 구글 검색을 해봤는데, 알고보니 당신 참 대단한 선수 (‘bad man’)이었다고 말하자 청중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선배님 아직 너무 젊어보이시고 사모님도 아직 25살 같아 보이시는데 도둑놈 아니시냐”면서 귀여운 아부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어서 제리 웨스트가 단상에 오르며 12시즌을 함께 뛴 팀 동료에 대한 감동적인 연설을 담담하게 전했다. 베일러의 레이커스 2년 후배인 웨스트는 자신이 처음 팀에 입단했을 때를 회상하며 환하고 따뜻하게 자신을 반겨준 이날의 주인공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베일러를 친형제처럼 아꼈고 지금도 사랑하다고 말하며 울먹거리는 로고맨의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객석 첫줄에 앉아있던 빌 러셀을 가리키며 “(웃으며) 이 XX에게 번번이 가로막히면서 우리가 나눴던 가슴 아팠던 추억”이 그 어떤 것보다도 가치 있었다고 말하자 러셀이 환한 건치 미소를 드러냈다. 농담이었지만 6차례나 쓰디쓴 고배를 함께 들이키며 피보다도 진한 전우애가 쌓였음을 알 수 있었다.



 



베일러는 후배들의 축하 메시지에 화답하며 레이커스에서 자신과 함께 뛰었던 팀 동료들, 팬들, 구단 관계자, 아내와 세 자녀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황금색 커튼에 가려져 있던 동상이 공개되자 모두 기립하며 박수를 보냈는데, 골대를 향해 돌진하며 호쾌한 덩크를 내리꽂으려는 찰나의 베일러를 형상화한 멋진 작품이었다. 시기는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스테이플스 센터를 찾는 팬들은 엘진 베일러를 ‘준우승의 상징’이 아닌 LA 레이커스의 ‘1호 스타’로 추억할 수 있게 된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사진=이호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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