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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헌의 브러시백] 단죄하되 단죄받지 않는다, 괴물이 된 심판권력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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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3 (금)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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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2018.04.13 (금) 15:57

                           
| 두산 베어스 양의지가 '고의 볼 패싱' 논란 끝에 KBO 상벌위원회의 징계를 받았다. 증거 없이 정황만으로 징계를 받은 양의지 사례를 두고 논란이 거세다. 양의지 사건을 계기로 단죄받지 않는 심판 권력의 문제를 들여다봤다.


 




 


[엠스플뉴스]


 


한 가지는 분명히 하자. 누구든 야구장에서 고의로 다른 이를 공에 맞아 다치게 하려 했다면, 이건 대단히 큰 잘못이다. 징계를 받아야 마땅하다. 경우에 따라선 형사적 처벌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두산 베어스 양의지가 4월 12일 KBO 상벌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제재금 300만 원에 봉사활동 80시간. 10일 삼성전에서 연습구를 뒤로 빠뜨려 정종수 구심이 맞을 뻔한 사건이 발단이다.


 


양의지는 그에 앞서 7회초 타석 때 구심이 바깥쪽 크게 벗어난 공에 스트라이크 판정을 하자 세상의 모든 짜증과 불만을 얼굴 근육에 전부 끌어모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볼 판정에 불만을 품고 고의로 심판을 공에 맞추려 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생겼고, 상벌위 개최로 이어졌다.


 


증거는 없다. 어디까지나 ‘관심법’의 영역이다. 양의지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그 이후 ‘볼 패싱’이 발생했으니 둘 사이에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논리다. 곽빈의 연습구는 낮게 떨어져 구심 앞에서 바운드됐다. 편하게 잡을 수 있는 공은 아니었다. 고의로 공을 잡지 않고 빠뜨렸는지 아닌지는 양의지 본인만 안다.


 


심판은 공에 맞지 않고 피했다. '맞을 뻔 했다' 뿐이지 실제 피해를 본 대상이 없다. 의도를 알 수 없고, 증거도 없다. 그런데도 벌은 줘야 한단다. 감히 심판을 해꼬지하려는 듯한 '정황'을 보인데 따른 벌이다.


 


벌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벌을 주려다 보니 무리수가 따른다. 상벌위는 평소의 두 배 가까운 2시간 동안 양의지 징계 수위를 논의했다. 1시간 논의해 결론을 냈다가 정운찬 KBO 총재의 주문으로 재논의를 거쳤다. 


 


KBO의 설명은 이렇다. “고의성 여부를 떠나 그라운드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해 KBO리그 규정 벌칙내규 7항에 의거 징계를 내린다”고 설명했다. 


 


‘궁예질을 한다’는 비판이 부담스러웠는지 고의성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 대신 ‘일어나서는 안 될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 것’을 단죄했다. 어쩌면 앞으로 KBO 선수들은 고의가 아니어도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른다.


 


김풍기 심판위원장은 사건 직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의 말에선 양의지의 행위가 고의였다는 뉘앙스가 묻어난다. 미리 ‘유죄’ 판결을 내린 셈이다. 하지만 정말 참담한 건 따로 있다. 어떤 잘못을 해도 제대로 단죄받지도 반성하지도 않는, 자신들 스스로 권위를 무너뜨리고서 위력으로 권위를 세우려는 심판들의 행태다. 


 


심판 관련 사건은 증거-정황에도 ‘면죄부’ 줬던 상벌위


 




 


양의지는 증거 없이 정황만으로 상벌위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과거 KBO 상벌위의 결정 중에는 의심스러운 정황은 물론 뚜렷한 증거까지 있는데도 제대로 단죄하지 않고 넘어간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지난해 큰 파문을 빚은 ‘최규순 사건’이 대표적이다. 2013년 10월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최규순 전 KBO 심판위원이 두산 당시 대표이사에게 300만 원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힘 있는 심판, 구단 대표이사, 한국시리즈 1차전 하루 전날, 돈 받은 심판은 돈 준 구단의 1차전 주심. 


 


정황도 증거도 완벽했다. 최규순은 돈을 받았다고 인정했고 구단 대표이사는 돈을 줬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상벌위는 이 사건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덮었다. 당시 상벌위엔 현 KBO 사무총장도 속해 있었다. 두산에 서면으로 ‘엄중경고’를 보낸 게 전부다. 


 


‘문제 심판’ 최규순은 조용히 심판위원회에서 내보냈다. 이런 사실을 엠스플뉴스 보도가 나가기 전까지 철저히 숨겼다. 참담한 심정이다.


 


비슷한 일은 지난해 8월에도 터졌다. 이른바 ‘투 터치’가 비디오판독 대상이 되는지를 놓고 논란이 생겼다. KIA 김민식의 번트 파울 타구에 넥센 측이 항의하자 심판진은 비디오 판독을 허용했다. 리그 규정 어디에도 ‘투 터치’가 비디오 판독 대상이란 언급은 없다. 


 


나광남 대기심은 엉터리 해명으로 일관했다. “시즌 전 심판끼리 합의된 부분”이라 둘러댔다. 김풍기 위원장도 “비시즌 기간에 심판진과 관계자들이 모여 합의했다”고 변명했다.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다른 심판들도, 규칙위원들도, 야구 관계자들도 입을 모아 ‘그런 합의는 없었다’고 증언했다. 


 


심판위원장과 고참 심판이 비난을 모면하려고 수없는 거짓말로 혼란을 야기하고, 야구팬을 기만하고, 심판에 대한 신뢰를 바닥까지 떨어뜨린 사건. 정황도 증언도 모두 갖춰진 이 사건을 KBO에선 어떻게 다루었을까. 놀랍게도 KBO는 ‘관리 책임을 물어 심판위원장에게 엄중경고’ 조치하는 데 그쳤다. 


 


단죄는 없었다. 김풍기 심판위원장은 지난해 심판진을 둘러싼 숱한 논란과 문제에도 올해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반성도 사과도 단죄도 없다. 이러니 심판의 권위가 제대로 설리가 없다. 


 


심판진은 바닥으로 떨어진 권위의 책임을 자신들 스스로가 아닌 외부에서 찾았다. 올해부터 KBO 선수들은 볼/스트라이크 판정에 대해 심판에게 물어보기만 해도 퇴장이다. 이미 두산 오재원이 볼 판정 한번 물어봤다가 곧장 퇴장 철퇴를 맞았다. 


 


이제는 볼 판정에 의문이 생겨도 물어보지도 못한다. 심판이 형편없는 판정을 해도 어디 하소연할 길이 없다. 그렇다고 심판진이 수준 이하 판정에 대해 책임을 지거나 제재를 받느냐? 그렇지도 않다는 게 문제다. 지난해 비디오판독 번복률이 50%에 달했던 문00 심판은 올해도 변함없이 1군 심판이다. 철밥통도 이런 철밥통이 없다. 


 


언론과의 직접 접촉도 차단했다. 올해부터 KBO 심판들은 기자들과 직접 대면하지 않고 홍보팀을 거쳐 답변한다. 홍보팀을 통해 '마사지된' 메시지만 내놓겠다는 얘기다. 쏟아지는 언론 비판을 피하려고 홍보팀 뒤에 숨은 꼴이다. 


 


물론 김 심판위원장이 모든 취재진과 연락을 차단한 건 아니다. 일부 취재진의 연락만 골라서 받는다. 엠스플뉴스가 오재원 퇴장, 양의지 사건에 대해 김 위원장에게 직접 연락을 취했지만, 김 위원장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심판 권위 하락, 심판들 자신이 자초했다


 












 


 


심판의 권위가 떨어진 건 선수들이 판정에 항의하고 자꾸 물어봐서가 아니다. 양의지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어 보였기 때문도 아니다. 언론이 심판들을 비판해서도 아니다. 비디오판독이나 중계화면 S존 때문도 아니다. 심판 권위를 떨어뜨린 건 김풍기 심판위원장을 비롯한 심판들 자신이다.


 


만일 심판이 공정하고 사심없이 판정하고, 모범적인 행동을 하면 자연히 현장 선수들도 팬들도 심판을 존중하고 신뢰할 것이다. 누군가 심판을 비판하면 오히려 선수들이나 여론이 앞장서서 심판을 감쌀지 모른다. 포수가 고의든 실수든 볼을 뒤로 빠뜨리면, 심판을 맞힐 뻔한 포수를 탓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KBO 심판진은 그렇게 신뢰와 사랑을 받는 조직이 아니다. 반성할 줄 모르는 집단, 공정하지 않은 집단이란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팬들과 선수들은 일부 심판의 판정에서 특정 팀과 선수에 대한 악의를, 심판에게 도전한 데 대한 복수심을 읽는다. 감독들은 심판 판정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길 꺼린다. 말했다간 바로 보복 판정으로 돌아온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역시 관심법의 영역이다. 양의지는 바로 그 관심법에 따라 징계를 받았다. 차라리 솔직하게 '감히 심판에게 불만을 표한 죄'를 묻지 그랬나. '누구인가? 누가 심판 콜에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어?'라며 철퇴를 휘두르는 폭군과 뭐가 다른가. 


 


견제받지 않고 단죄되지 않는 권력은 맷집만 강해져 나중엔 괴물이 된다. 지금 KBO 심판들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배지헌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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