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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한의 골든크로스] 꾹 참던 봉중근을 끝내 울린 한 단어 ‘아버지’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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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9 (토) 08:22

                           
51번이 새겨진 줄무늬 유니폼이 반납됐다. LG 트윈스 투수 봉중근의 은퇴를 의미했다. 그런 아들의 은퇴를 하늘에서 지켜본 아버지가 있었다. 은퇴식에서 울지 않겠다던 그의 다짐은 아버지라는 단어 하나에 무너졌다.
 
[김근한의 골든크로스] 꾹 참던 봉중근을 끝내 울린 한 단어 ‘아버지’

 
[엠스플뉴스]
 
9월의 어느 하루. 야구공을 손에서 놓기로 한 봉중근은 LG 트윈스 2군 이천 챔피언스파크에서 자신의 모든 짐을 싸고 나왔다. 싱숭생숭하면서도 후련한 마음으로 주차장까지 나온 그의 얼굴엔 갑작스럽게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순간 봉중근의 머릿속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혹시 아버지가 슬퍼하시는 게 아닐까?’ 그 생각이 떠오르자 꾹 참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버지’라는 단어는 끝내 봉중근을 울렸다.
 
유쾌했던 시구, 봉의사를 재현하다
 
[김근한의 골든크로스] 꾹 참던 봉중근을 끝내 울린 한 단어 ‘아버지’

 
9월 28일 잠실구장에서 ‘봉의사’ 봉중근을 떠나보내는 은퇴식이 열렸다. 앞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봉중근은 “은퇴식 때 울지 않겠다”며 특유의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은퇴 기념 시구 때부터 흔들렸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아들의 시구를 시포로 받아준 뒤 자신이 직접 시구를 하고 현역 시절 호흡을 맞춘 김정민 배터리코치가 시포를 하는 순서였다.
 
하지만, 쑥스러움이 많았던 아들이 시구를 고사하면서 봉중근이 곧바로 시구에 나섰다. 시구를 위해 마운드로 오르기 전 봉중근은 불과 몇 년 전 그랬듯 불펜에서 자신이 뛰어 올라갈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사이렌이 울렸다. 자신의 우상 ‘야생마’ 이상훈처럼 봉중근은 씩씩하게 마운드로 달려갔다.
 
[김근한의 골든크로스] 꾹 참던 봉중근을 끝내 울린 한 단어 ‘아버지’

 
시구 전 봉중근은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보여준 스즈키 이치로를 향한 견제 속임 동작을 보여주면서 환호성을 일으켰다. 이치로 역할은 팀 후배 김용의가 맡았다. 숨을 크게 내쉬고 던진 봉중근의 시구는 현역 시절보단 다소 힘없이 김정민 코치의 미트 속으로 들어갔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어깨가) 아팠다”는 봉중근의 고백이 떠올라 안타까움이 저절로 차올랐다.
 
[김근한의 골든크로스] 꾹 참던 봉중근을 끝내 울린 한 단어 ‘아버지’

 
봉중근에게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아버지
 
[김근한의 골든크로스] 꾹 참던 봉중근을 끝내 울린 한 단어 ‘아버지’

 
이날 경기는 LG의 2대 6 패배로 끝났다. 하지만, 야구장을 찾은 대다수 팬은 봉중근의 은퇴식을 보기 위해 자리를 뜨지 않았다. 오랫동안 함께 한 팀 동료 박용택과 이동현에게 감사패와 축하를 받은 봉중근은 어머니 김숙자 씨의 꽃다발을 건네받았다. 그 순간부터 봉중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들의 은퇴식을 지켜보며 울먹인 김숙자 씨는 “은퇴하는 아들을 보니까 속상하다. 30년 넘게 야구하면서 고생만 했는데 몸이 이렇게 아파서 떠나니까 마음이 너무 아프다. 아들아 정말 수고 많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은퇴 기념 영상을 지켜보던 봉중근은 암 투병 도중 2012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 고(故) 봉동식 씨의 얘기가 나오자 끝내 고갤 떨구고 눈물을 훔쳤다. “울지 않겠다”던 봉중근의 다짐은 ‘아버지’라는 한 단어에 결국 무너졌다. 겨우 마음을 추스른 봉중근은 마이크를 잡고 팬들의 앞에 섰다.
 
[김근한의 골든크로스] 꾹 참던 봉중근을 끝내 울린 한 단어 ‘아버지’

 
안녕하십니까. 자랑스러운 LG 트윈스 투수 봉중근입니다. 끝까지 남아주셔서 감사드리고, 아깝게 오늘 패했지만, 우리 LG가 가을야구를 갈 거로 믿습니다. 이렇게 은퇴를 결정해서 팬 여러분과 코치진과 선·후배들에게 죄송합니다. 솔직히 마운드로 꼭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조금이라도 팀에 도움이 되고 싶었고, 팬들에게 공을 던질 수 있단 걸 진심으로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 전 한 가지 다짐을 했습니다. 무리해서 복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진 말자. 후배들에게 깨끗하게 자리를 물려주자는 결심이 섰습니다. 2년 가까이 저 자신과 싸움하면서 팬들에게 얼마나 과분한 사랑을 받았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등판할 때마다 잠실구장을 메워주신 여러분이 제 이름을 뜨겁게 외칠 때 느낀 전율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돌이켜 보면 전 정말 행복한 선수였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야구공을 잡았던 코흘리개가 메이저리그 무대에 서봤고, 어릴 때부터 가장 좋아했던 LG 유니폼을 입고 팬들과 신나게 야구했습니다. 영광스러운 태극마크를 달았던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찡합니다. 야구에 청춘을 바쳤고, LG에 제 모든 걸 쏟아부었습니다. 아쉽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이제 마운드에서 공을 던질 수 없지만 언제 어디서나 항상 야구와 함께하겠습니다. 우승하겠단 약속을 못 지키고 떠난 점이 정말 아쉽지만, 후배들이 그 염원을 이뤄줄 거라 믿습니다. 팬들의 넘치는 사랑과 응원의 목소리를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근한의 골든크로스] 꾹 참던 봉중근을 끝내 울린 한 단어 ‘아버지’

 
봉중근은 그간 정들었던 잠실 마운드에 키스하면서 깨끗하게 남은 미련을 정리했다. 팀 동료들과도 한 명씩 인사를 건넨 뒤 은퇴 기념사진을 찍었다. 마지막으로 잠실구장을 한 바퀴 돌면서 자필 사인 공을 팬들에게 던진 뒤 봉중근의 공식 은퇴 행사가 종료됐다.
 
언제나 밝은 웃음이 가득했던 봉중근이었기에 이별의 순간 가득 보였던 슬픔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하늘에서 지켜보던 아버지가 그런 아들을 담담하게 위로하고 싶었던 까닭일까. 은퇴 결정 뒤 짐을 싸고 나갔던 그 날과는 달리 은퇴식의 밤하늘은 맑고 선선했다. 그토록 LG만 바라보고, LG만 사랑했던 ‘51번’은 그렇게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김근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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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중위 멀티히트박용택

2018.09.29 09:43:41

고생했어 뽕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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