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한의 골든크로스] “의지 형이 없었다면 ‘백업’ 박세혁도 없었다”
-양의지 떠난 두산 안방, 박세혁이 도전장 내민다
-박세혁 “기회? 양의지와 이별의 아쉬움이 더 컸다.”
-“‘주전 포수’ 박세혁의 색깔은 그라운드 위 땀으로 보여드리겠다.”
-“포수가 내 체질,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고 후회할 일 역시 없다.”
-“두산 팬들의 우려와 걱정 다 이해, 1년 뒤 성적으로 보여드리겠다.”
[엠스플뉴스]
포수는 세대교체가 가장 느린 포지션이다. 한 팀의 주전 포수로 자리 잡는 순간 최소 5년 이상은 팀 내 입지가 확고해진다. 반대로 가장 마음이 답답한 포지션도 포수다. 자신의 위치가 ‘백업’이라면 말이다.
두산 베어스 박세혁은 백업 포수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선수다. 최근 3년 동안 리그 최고의 포수 양의지와 함께 뛴 까닭이다. 양의지(1987년생)와 박세혁(1990년생)은 불과 세 살 차이다. 두산에서 주전 양의지·백업 박세혁의 구도는 확고했다. 그사이 또 다른 백업 포수 최재훈은 주전 자리를 위해 한화 이글스로 떠났다.
예전부터 박세혁에게도 ‘다른 팀으로 가면 주전’이라는 얘기가 주위에서 쏟아졌다. 하지만, 박세혁은 귀를 막았다. 그리고 묵묵하게 양의지의 뒤를 받치는 역할에만 충실했다. 동시에 어깨너머로 양의지의 모든 면을 배우고자 노력했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에게 알찬 시간이 됐다.
행운은 예상치 못한 순간 찾아오기 마련이다. 양의지의 NC 다이노스 FA(자유계약선수) 이적으로 갑작스럽게 ‘박세혁의 시간’이 다가왔다. 물론 박세혁은 주전 기회의 기쁨보단 양의지와 이별한 아쉬움이 더 컸다. 양의지가 없었다면 ‘백업’ 박세혁도 없었기 때문이다. 박세혁은 그 어느 자리보다 큰 양의지의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 이젠 ‘주전 포수’가 돼야 할 박세혁의 각오와 진심을 들어봤다.
‘세혁아 네가 먼저 생각났다’는 양의지의 진심
먼저 양의지 선수 얘길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적 소식을 들었을 때 심정이 어땠나요.
주위에선 모두 ‘이제 너는 좋겠다’는 반응이 많았죠. 그런데 저는 솔직히 같은 팀 선·후배로서 쌓은 정이 컸어요. 이적 소식을 듣자마자 ‘이렇게 헤어지는구나’라는 아쉬움을 더 느꼈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의지 선수의 이적 금액(4년 총액 125억 원)이었습니다.
물론 (양)의지 형이 좋은 대우를 받고 떠난 건 기분이 좋았어요. 의지 형이 포수의 가치를 높은 셈이죠. 많이 의지하고 배울 수 있는 형이었습니다. ‘축하드린다’고 바로 연락드렸어요.
양의지 선수는 뭐라고 하던가요.
(양)의지 형이 덕담을 많이 해주셨죠. ‘이적 확정 뒤에 네 생각이 가장 먼저 났다. 그동안 뒤에서 묵묵히 받쳐준 게 정말 고마웠다. 너와 같이 야구해서 좋았다. 이제 네가 두산에서 잘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떠나는 양의지 선수의 ‘감사 메시지’였군요.
반대로 제가 감사할 게 더 많죠. 상무야구단 복무(2014~2015년) 뒤 1군에서 (양)의지 형을 보고 정말 많은 걸 배웠으니까요. 3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함께하고 우승도 해봤습니다. 언제 의지 형과 다시 함께할지 모르겠지만, 같이 뛴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했던 시간이었어요.
옆에서 본 양의지는 어떤 포수였는지 궁금합니다.
겉으로 (양)의지 형을 지켜본 사람들은 야구를 대충하는 게 아니냐고 하잖아요. 그런데 옆에서 본 의지 형은 연구를 정말 많이 하는 포수였습니다. 상대 타자들의 모든 걸 파악하고 경기에 들어가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판단이 나오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타석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양의지 선수도 자신이 ‘무심(無心) 타법’이 아니라고 항변했습니다(웃음).
대충하는데 잘한다? 이건 절대 아니죠. (양)의지 형만큼 승리에 대한 열망이 큰 형이 없어요. 리그 최고의 포수인 만큼 책임감도 대단했습니다. 의지 형이니까 저런 결과가 나오는 거죠.
옆에서 보고 배운 게 정말 많았겠습니다.
올 시즌에도 출전(89경기·170타석)이 많진 않았지만, (양)의지 형을 옆에서 보면서 많은 걸 배웠죠. 다들 백업 포수로 뛰니까 힘들겠다고 생각하는데 프로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봐요. 오히려 의지 형이 없었다면 ‘백업’ 박세혁도 없었습니다. 최근 3년간 의지 형과 함께한 시간은 정말 소중했어요.
이제 동료로서 추억은 잊고 내년 시즌부터 양의지와 적으로 마주해야 합니다.
제가 타석에 들어갔을 때 (양)의지 형이 다른 유니폼을 입고 포수로 나온다? 제가 포수로 나갔을 때 의지 형이 타석에 들어선다? (고갤 갸우뚱거리며) 단 한 번도 상상 못 했던 그림이네요. 그런 상황은 자체 팀 청백전밖에 없었는데. 그 순간이 오면 많은 생각이 들면서 감회가 새로울 듯싶어요. 그래도 두산이 승리하도록 제가 최대한 집중해야죠(웃음).
“‘주전 포수’ 박세혁의 색깔은 그라운드 위 땀으로 보여드리겠다.”
이제 박세혁 선수 얘길 해보겠습니다. 주전 포수를 차지할 기회가 왔어요.
저는 항상 출전을 기다리는 처지였어요. 솔직히 내년 시즌을 향한 동기부여가 많이 되는 건 사실이죠. 이젠 저만의 야구를 제대로 할 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이 상황에 안주하면 안 돼요. 제가 당연히 ‘주전 포수’라는 자만은 없습니다. 스프링 캠프부터 경쟁해야죠. 철저하게 준비하겠습니다.
비장함이 느껴집니다.
(입술을 굳게 깨물며) 20대 10년 동안 프로 무대에서 배웠던 걸 30대부터 제대로 보여줘야 할 때가 온 거죠.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먼저 주전 포수로서 투수와 신뢰를 쌓는 게 가장 중요할 듯싶습니다.
(양)의지 형이 투수들과 소통하면서 믿음을 느끼도록 하는 능력이 좋았어요. 당장 의지 형처럼은 못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투수들과 호흡을 잘 맞출 거로 생각해요. 그만큼 저도 우리 팀 투수들의 공을 많이 받아봤죠. 이제 투수들에게 더 다가가야 합니다. 함께 시간을 더 많이 보내야죠.
볼 배합 고민도 더 깊어질 가능성이 커요.
지금까진 상대 타자만 생각하고 볼 배합을 연구했다면 이젠 우리 투수진 상태까지 다 파악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타자와 투수 어느 한쪽만 보고 볼 배합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종합적으로 봐야 하고 임기응변해야 할 상황도 많죠. (양)의지 형이 순간 대처와 위기를 넘어가는 기지가 빛났어요. 옆에서 보고 배운 만큼 저도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첫 풀타임 시즌 도전과 타격에 대한 고민도 있겠습니다.(박세혁은 올 시즌 타율 0.282/ 48안타/ 3홈런/ 22타점/ 출루율 0.356/ 장타율 0.406를 기록했다)
올 시즌을 소화하면서 방망이가 아쉬운 부분은 분명히 있었죠. 비시즌 때 타구에 힘을 싣고자 더 노력하고 있습니다. 풀타임 시즌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도 주위 형들에게 많이 물어보고 있어요. 또 제가 풀타임 시즌을 해본 적이 없기에 결과도 모르는 거잖아요. 이 악물고 끝까지 버틸 자신 하나는 분명합니다(웃음).
‘주전 포수’ 박세혁은 어떤 색깔을 보여주고 싶나요.
저만의 색깔이라. 그런 건 말보단 그라운드 위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듯싶어요. 제가 이런 포수가 되고 싶다고 해도 경기에 들어가면 상황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냥 야구장에서 열정적으로 뛰면서 ‘이게 포수 박세혁이구나’라는 말이 나오게 하려고요.
물론 시행착오의 시간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제가 ‘이렇게 해야지’라고 한다고 그렇게 다 될 수 있는 게 아니죠. (양)의지 형도 ‘한국 최고의 포수’라는 수식어가 바로 나온 게 아니잖아요. 그만큼 시행착오의 시간이 당연히 필요한데 저는 최대한 그 시간을 줄여야 하는 상황입니다. 제 생각엔 ‘허슬두’라는 팀 컬러에 맞게 헌신하고 희생하는 수밖에 없어요.
KBO리그에서 양의지의 빈자리만큼 큰 구멍은 없을 듯싶습니다. 그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은 어느 정도 느끼나요.
지금은 그런 부담감 자체를 최대한 생각 안 하려고 노력하죠. 팬들의 큰 우려와 걱정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한국 최고의 포수가 앉았던 자리에 백업 포수였던 제가 나갈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죠(웃음). 제가 그런 우려와 걱정을 점점 줄어들게 하고 싶습니다.
‘포수 마스크’를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는 박세혁
갑자기 생뚱맞은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포수 마스크를 쓴 적을 단 한 번이라도 후회한 적이 있나요.
(고갤 내저으며) 전혀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후회했다면 수비 포지션을 더 빨리 바꿨겠죠.
포수 마스크에 애착이 크군요.
저는 포수가 정말 좋아요. 포수를 하면서 인생에서 배운 점도 많고요. 좋은 지도자에게 좋은 가르침을 받았죠. 포수를 한다는 게 행복할 뿐입니다.
어릴 적부터 포수를 시작한 된 계기가 있었나요.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이)두환이 형이랑 같은 초등학교(서울 수유초)를 나왔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두환이 형이 포수를 하는 걸 봤어요. 두환이 형이 포수를 멋있게 잘했죠. ‘포수가 정말 멋있는 포지션이구나’라고 느끼고 포수로 야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故 이두환은 2007년 두산에 입단해 포수로 활약하다 골육종(뼈암) 투병 도중 2012년 12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어린 나이에 힘들진 않았나요.
포수는 항상 보호 장비를 차고 무릎과 허리도 아프죠. 게다가 어릴 땐 포수 전문 지도자도 안 계시니까 어렵게 야구를 배웠어요. 그래서 학생 선수들이 포수가 고생길이라고 잘 안 하려고 하잖아요. 저도 중학교 때가 고비였는데 실내 연습에서 눈물 나게 혼나면서 훈련했죠.
프로 무대에서도 고된 훈련이 계속됐습니다.
두산에서도 강인권 코치님과 조인성 코치님께 정말 많은 걸 배웠습니다. 정말 강도 높은 훈련으로요(웃음). 그래도 저는 그런 힘든 훈련을 모두 해내면 행복감을 느껴요.
정말 ‘포수 체질’이군요(웃음).
저번에 저 타자를 못 잡았는데 오늘은 그 타자를 잡아서 팀이 이기면 기분이 정말 좋아요. 그게 포수 마스크를 쓰는 즐거움이 아닐까요(웃음). 포수를 안 하고 싶다는 소리는 단 한 번도 안 했고,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직업의 재미까지 잡은 셈입니다.
저는 야구가 ‘재미없다’고 느끼는 순간 관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반 직장인들도 일이 재미가 없으면 하루하루 끌려 나오는 느낌이잖아요. 제가 선택한 거니까 뭘 해도 기쁘고 뭘 해도 행복합니다. 제가 야구와 포수 마스크를 싫어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두산은 여전히 강팀, 내년 시즌 KS 우승 재도전할 수 있다.”
다시 팀 얘기로 돌아오자면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아쉬움이 내년 시즌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저는 우리 두산이 항상 우승권에 있는 강팀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엔 정규시즌 1위로 올라가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했기에 더 독한 마음을 먹을 거로 봐요. 비시즌 때 팀 동료들이 운동하는 것만 봐도 동기부여가 확 느껴집니다.
해마다 선수가 이탈했지만, ‘두산은 역시 두산’이라는 평가도 같이 따라왔습니다.
한 선수의 빈자리는 남은 선수들의 시너지 효과로 채울 수 있다고 봅니다. 시작도 안 했는데 걱정할 필요는 없죠. 우리 팀엔 좋은 선수들이 여전히 많아요. 뚜껑은 열어봐야 알죠. 내년에도 우리 팀은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할 겁니다.
이제 박세혁 선수를 포함해 허경민·정수빈·박건우 등 ‘90년생’ 선수들이 주축이 됐어요. 내년 시즌 리더십이 더 필요한 시기입니다.
30대가 됐으면 어린 애가 아니잖아요. 다들 무언가 책임감을 느끼는 성숙한 나이가 됐죠. 내년 시즌에 ‘90년생’들이 다 같이 뜨거운 바람을 일으키고 싶어요. 후배들이 즐겁게 야구할 수 있도록 이제 앞에서 끌어줘야 할 때입니다.
양의지와 이별로 복잡한 심경인 두산 팬들에게 할 말이 있을 듯싶습니다.
두산 팬들의 우려와 걱정 다 이해가 갑니다. 그 자리가 굉장히 힘든 곳이라는 것도 잘 압니다. 제가 더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응원과 격려로 지켜봐 주시면 1년 뒤에 좋은 성적으로 꼭 보답해드리겠습니다. 내년 시즌엔 경기마다 좋은 말만 듣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년 시즌 개막전 포수 마스크는 당연히 박세혁의 몫일까요.
물론 제 자리가 보장된 건 아닙니다. 스프링 캠프부터 경쟁해야죠. 하지만, 내년 시즌 개막전 포수 마스크를 쓰고 싶은 욕심 하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 정도 욕심은 있어야 두산 주전 포수에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김근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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