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윤희상 "공만 잡았던 오른팔…이젠 가족 위해 쓰겠습니다"

일병 news1

조회 270

추천 0

2020.11.03 (화) 08:03

                           


윤희상 "공만 잡았던 오른팔…이젠 가족 위해 쓰겠습니다"

10월 30일 팀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은퇴식

두 차례 어깨 수술…"마운드 위에서 선수 생활 끝내 영광"



윤희상 공만 잡았던 오른팔…이젠 가족 위해 쓰겠습니다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아빠 야구 선수' 윤희상(35)은 누구보다 귀한 딸 희서와 아들 희찬을 왼팔로만 들었다.

윤희상은 올 시즌 한국프로야구 KBO리그 SK 와이번스의 마지막 경기가 열린 10월 30일까지 야구를 위해서만 오른팔을 썼다.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다정한 아빠였지만, 두 팔로 아이를 안지 않았다. 아이를 안을 때는 왼팔만 사용했다.

그러던 그가 10월 31일 아침에 희서와 희찬이를 오른팔로 번쩍 들었다.

은퇴식 다음 날 윤희상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제가 부상도 많이 당했고, 재활도 많이 해서 오른팔을 더 조심스럽게 썼어요. 제 오른팔은 야구, 재활을 지원해 준 SK의 것이었죠"라며 "이제야 제 오른팔을 가족을 위해 쓰네요"라고 웃었다.

윤희상은 10월 30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은퇴식을 치렀다.

LG 트윈스와의 홈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1회초 첫 타자 홍창기와 풀 카운트(3볼-2스트라이크) 승부를 펼쳤다. 7구째 시속 140㎞ 직구는 조금 낮았고, 결국 볼넷을 허용했다.

'우완 투수' 윤희상의 마지막 기록은 그렇게 볼넷이 됐다.

윤희상은 "잠시 스트라이크 판정을 기대했지만, 조금 낮긴 했더라고요"라고 그의 현역 마지막 투구를 떠올렸다.

이제 윤희상은 '은퇴 선수'다.

꽤 오래전부터 은퇴를 결심한 터라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깜짝 방문해 포옹할 때도 관중석에 있는 아내 이슬비 씨의 얼굴이 보일 때도 눈물은 잘 참았다.

그래도 마운드와의 이별은 쉽지 않다.

윤희상은 "10월 31일 오전에 일찍 눈을 떴는데, 나도 모르게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10월 30일 영상을 봤다"며 "내가 뭐라고 이렇게 많은 분의 응원을 받으며 마지막 경기를 치른 걸까. 다시 태어나도 야구를 하고, 투수로 뛰고 싶다"고 했다.





윤희상 공만 잡았던 오른팔…이젠 가족 위해 쓰겠습니다



◇ 야구 인생의 출발은 '제2의 이종범'

윤희상은 구리초등학교 5학년이던 1996년 '구리 리틀야구단'에 입단하며 야구를 시작했다.

출발은 내야수였다. '증거 자료'가 화면으로 남았다.

윤희상은 1997년 방영한 TV 프로그램 '제2의 이종범을 찾아라'라는 방송에 출연했다. 재능 있는 '어린 내야수'를 찾는 프로그램이었다.

윤희상은 "당시 대스타였던 이종범 선배님의 손도 잡았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소년' 윤희상은 '던지는 것'에 더 흥미를 느꼈다. 선린인터넷고에 진학하면서 투수에 전념했고, 2004년 신인지명회의에서 2차 1라운드(전체 3번)로 SK에 지명됐다.

SK는 윤희상에게 계약금 2억원을 안겼다. 기대치는 그만큼 높았다.

하지만, 프로 무대는 녹록지 않았다.

윤희상은 "뭔가 하려고 하면 아프고, 기회가 오면 못 잡았다"고 프로 생활 초반을 떠올렸다.

윤희상은 자주 어깨가 아팠다. 2004년 11경기, 2005년 3경기에만 구원투수로 등판했을 뿐 대부분의 시간을 재활군과 2군에서 보냈다.

무책임한 악성 댓글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윤희상은 "내 가족과 나를 스카우트한 분들까지 비난한 글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래도 지나고 보니, 그만큼 팬들도 나를 기대하셨던 것 같다"고 했다.

윤희상은 2006년 7월 오른 어깨 수술을 받았다. 2007∼2008년에는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이 기간 "타자로 전향해 볼까"라는 고민도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윤희상 공만 잡았던 오른팔…이젠 가족 위해 쓰겠습니다



◇ "포기하지 않게 해주신 김성근 감독님, 열정을 가르쳐주신 이만수 감독님"

수술 뒤에도 윤희상은 수술 후유증을 겪었다. '또 아플 것 같은 두려움'이 가장 큰 후유증이었다.

윤희상은 2009년과 2010년을 또 2군 선수로 보냈다.

윤희상은 "어깨 수술을 받기 전 병원에서는 '6∼8개월 정도면 회복한다'고 했다. 그런데 수술 뒤에 의사가 '재기할 확률은 20% 미만이다'라고 하더라"라며 "그런 말을 들으니, 원래 많지 않았던 의욕마저 사라졌다"고 했다.

하지만, 윤희상의 반등을 믿은 사람도 있었다.

2010년 가을 마무리 캠프, 유희상은 "내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만남이 있었다"고 떠올렸다.

김성근 당시 SK 감독은 "아픈 것을 두려워해서 던지지 못하면, 존재 이유가 있는가. 던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했다.

윤희상은 "머리를 뭔가로 맞은 기분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어떻게 던져야 할까'를 고민하기보다 '또 아프면 어쩌지'라고 걱정만 했다"며 "김성근 감독님 말씀을 들은 뒤에야 '어떻게 던질까'를 고민했다. 한·미·일 투수들의 '투구 동영상'을 찾아보고 응용했다. 점점 자신에게 어울리는 투구 동작을 찾아갔다"고 떠올렸다.

당시 2군 감독이자, 2011년 8월부터 1군을 지휘한 이만수 전 감독은 "희상아, 자신 있게 던져. 내가 책임질게"라고 그를 독려했다.

윤희상은 "은퇴를 결심하고서 두 감독님의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어서 전화드렸다. 예전 생각이 나서 가슴이 찡했다. 평생 두 분께 감사한 마음을 안고 살겠다"고 했다.





윤희상 공만 잡았던 오른팔…이젠 가족 위해 쓰겠습니다



◇ "KS 1차전 나섰던 2012년보다, 우승했던 2018년이 더 좋아"

윤희상은 몇 번이나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선수였다"고 자신을 낮췄다.

하지만 2011시즌 막판부터 그는 SK 선발의 한 축을 이뤘고, 2012년에는 10승(9패)을 챙겼다.

키 193㎝의 높은 타점에서 찍어 누르는 시속 150㎞ 직구와 날카로운 포크볼은 KBO리그에서도 손꼽히는 구종으로 평가받았다.

윤희상은 2012년 한국시리즈(KS) 1차전 선발로 등판해, 8이닝 5피안타 3실점으로 호투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완투패를 당했다.

윤희상은 그해 5차전에서도 선발로 등판했다. 그는 이날도 7이닝 5피안타 2실점(1자책)으로 잘 던졌지만, 패전 투수가 됐다.

6년 뒤인 2018년, 윤희상은 다시 KS에 출전했다. 그해 윤희상은 선발이 아닌 구원 투수였다.

윤희상은 "구단에서 불펜 이동을 권유했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응했다. 냉정하게 내가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포함되려면 중간계투로 이동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고 떠올렸다.

2018년 KS에서 윤희상은 2경기에 구원 등판해 2⅓이닝 2피안타 1실점으로 잘 던졌다. 그러나 주역은 아니었다.

윤희상은 "내가 야구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2018년 가을이다. 2012년에 주목받는 자리에 서긴 했지만, SK가 KS에서 패했다. 2018년에는 더그아웃에서 응원만 하고 있어도 좋았다. 정말 행복했다"고 떠올렸다.





윤희상 공만 잡았던 오른팔…이젠 가족 위해 쓰겠습니다



◇ "코치할 능력은 없어요…그래도 유소년 선수들의 연락은 환영합니다"

2019년 SK가 KS를 치를 때, 윤희상은 재활 중이었다.

그는 2019년 또 어깨 수술을 받았다.

윤희상은 "수술을 하지 않으면 더는 공을 던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수술을 한다고 해도 재기할 가능성으 크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수술과 재활을 하는 게 구단에 큰 이익이 될 것 같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런데 손차훈 단장님이 '구단이 도울게. 하고 싶은 걸, 마지막까지 해봐라'라고 말씀하셨다"며 "은퇴하더라도 꼭 마운드에 한 번 더 오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단장님과 구단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꼭 다시 마운드에 올라야 했다"고 당시 심정을 전했다.

재활 기간에 윤희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개설했다.

예전부터 동료들의 캐리커처를 그리며 '그림 솜씨'를 뽐내던 그는 SNS에 그림을 곁들여 '투구 동작, 부상 방지 등'의 이론과 실제를 설명하는 적었다. 야구팬, 특히 유소년 야구 선수들에게는 화제가 됐다.

윤희상은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과 '투구 동작 등에 대해 소통보고 싶다'는 생각에 글을 올렸다. 그런데 SNS 메신저로 어린 야구선수들이 질문을 보내더라"라며 "덜컥 겁이 났다. 내가 대충 글을 올리면 어린 선수들에게 악영향을 줄 것 같았다. 이후 투구 폼, 재활 방법 등에 관해 글을 올릴 때는 코치님, 동료들에게 물은 뒤에 정말 신중하게 글을 올렸다"고 했다.

이렇게 윤희상은 신중하고, 바른 선수였다.

그는 SK와 팬에게 고마운 마음도 SNS를 통해 전했다. 윤희상이 진심을 담아 쓴 SNS 자필 편지는 내용과 고운 글씨체 때문에 또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사람들의 마음도 매만질 줄 아는 윤희상이지만, 당분간 정식 코치로는 뛰지 않을 생각이다.

윤희상은 "아직 누굴 가르칠 능력이 없다. 야구용품점을 하기로 이미 마음먹었다"면서도 "유소년 선수들의 질문은 늘 환영이다. 질문을 받으면 나도 함께 고민하고, 다른 전문가에게도 물어서 답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윤희상 공만 잡았던 오른팔…이젠 가족 위해 쓰겠습니다



◇ "SK 꼭 반등할 거예요…인창 리틀야구단 친구들도 힘내자"

윤희상은 "마흔 살까지 선수 생활을 하는 게 목표였는데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충분히 행복하다. 감사한 분들은 너무나 많다"고 했다.

아쉬운 점 하나는 팀 성적이었다.

윤희상은 "올해 팀 성적이 떨어지니까, SK 선배, 후배들이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 표정을 보고 와서 나도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SK는 분명히 반등한다"고 확신했다.

윤희상은 "SK 강화도 2군 훈련장에서 오래 머물렀다. 우리 2군에 좋은 유망주가 정말 많다"며 "박종훈, 문승원, 김태훈 등 현재 주축 투수들은 더 좋아질 거다. 이 선수들이 전성기 시절을 누릴 때, 젊은 선수들이 올라오면 정대현 선배, 정우람 선배, 송은범 선배, 김광현이 함께 뛰던 그 시절이 다시 온다"고 했다. 윤희상은 자신의 이름을 뺐지만, 그도 SK 전성기를 이끌던 멤버 중 한 명이었다.

은퇴할 때가 되니, 함께 꿈을 키웠던 선수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윤희상은 "인창 리틀야구단에서 나는 고집쟁이에다 울보였다. 좋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웃으며 "먼저 은퇴한 윤석민(전 KIA)은 지금처럼 잘 지냈으면 한다. 내 친구 윤석민(SK), 오재일(두산 베어스)은 더 오래 선수 생활을 해야 한다. 아프지 말고, 안타 한 개라도 더 쳤으면 좋겠다"고 창단 멤버들을 응원했다.

'야구 선수' 윤희상의 시간은 끝났다. 어깨가 자주 아팠고, 긴 재활은 참 힘들었지만 윤희상은 "수술받고, 재활하던 시간마저 행복했다"고 했다.

[email protected]

(끝)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체험!>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신고를 접수하시겠습니까?

이전 10 페이지다음 10 페이지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