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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MLB+] 류현진의 '운수 없는 날' 그리고 DIPS 이론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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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6 (목) 21:22

                           
[이현우의 MLB+] 류현진의 '운수 없는 날' 그리고 DIPS 이론

 
[엠스플뉴스]
 
"땅볼 타구를 유도했는데 안타가 되는 것은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2005년 6월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얼핏 들으면 변명 같지만, 이 말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야구 분석가 보로스 맥크라켄이 주창한 DIPS 이론(Defense Independent Pitching Stats, 수비 무관 투수 지표)에 따르면, 투수가 던진 공이 방망이에 맞아 일단 인플레이가 되고 나면 해당 타구가 안타 또는 범타가 되는 건 대부분 '수비'와 '운'에 달려있다.
 
아무리 잘 맞은 타구라도 야수의 정면으로 가거나, 호수비에 걸리면 아웃이 된다. 반대로 약한 타구라도 수비수 사이로 절묘하게 떨어지거나, 수비수가 실책성 플레이를 하면 안타가 된다. 이런 DIPS 이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지표가 BABIP(인플레이된 공이 안타가 되는 비율)이다. 실제로 몇몇 예외 사례를 제외한 대부분의 MLB 투수는 '통산' BABIP가 .300에 수렴한다.
 
이런 사실이 밝혀진 이후 세이버메트리션들 사이에선 인플레이 타구에 의한 결과를 중립화시킨 다음 투수가 통제할 수 있는 요소인 탈삼진, 볼넷, 피홈런을 바탕으로 구해지는 FIP(수비 무관 평균자책점)이 투수 평가 지표로 각광을 받았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DIPS 이론은 지금도 존중받고 있다. 하지만 미시적으로 접근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잘 맞은 타구와 빗맞은 타구의 안타 확률은 절대 같을 수 없다. 실제로 2018시즌 90마일 이상인 타구의 타율은 .465, 90마일 이하 타구의 타율은 .198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한 투수가 그날 경기에서 허용한 타구의 속도가 낮았다면, BABIP도 낮아야 정상이다. 
 
따라서 박찬호의 말을 2015년부터 시작된 <스탯캐스트> 시대에 맞게 고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약한 타구를 유도했는데 안타가 되는 것은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6일(한국시간) 뉴욕 메츠전에서 류현진의 상황이 그랬다.
 
실책과 실책성 플레이가 만든 류현진의 5실점
 
[이현우의 MLB+] 류현진의 '운수 없는 날' 그리고 DIPS 이론

 
6일 메츠전에 등판한 류현진은 6이닝 11피안타 5실점(3자책) 무볼넷 8탈삼진을 기록하며, 올 시즌 두 번째로 패전 투수가 됐다. 표면적인 기록만 놓고 보면 11피안타를 허용한 류현진은 마치 오늘 경기에서 상대 메츠 타선에게 난타를 당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류현진이 허용한 타구의 속도를 살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날 류현진이 허용한 타구의 평균 속도는 76.2마일(122.6km/h)로 MLB 평균인 87.7마일(141.1km/h)을 크게 밑돌았다. 심지어 이날 피안타 11개 중 6개는 타구 속도가 채 75마일(120.7km/h)도 되지 않았다. 올 시즌 MLB에서 75마일 이하인 타구의 안타 확률은 .233이다. 즉, 원래대로라면 76.7%의 확률로 아웃이 되었어야 할 타구 6개가 안타로 둔갑한 것이다.
 
이는 류현진에게 운이 따르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리고 6일 류현진이 겪은 불운은 사실 상당 부분 다저스의 수비에서 기인한다.
 
[이현우의 MLB+] 류현진의 '운수 없는 날' 그리고 DIPS 이론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수비 장면은 4회초에 있었다. 4회초 1아웃 1, 3루 상황에서 다저스의 좌익수 작 피더슨은 마이클 콘포토가 친 뜬공을 잡아 재빨리 홈으로 송구했다. 피더슨의 송구는 3루에서 태그-업한 주자인 제프 맥네일보다 먼저 포수 야스마니 그랜달의 미트에 도달했다. 하지만 맥네일을 태그하는 과정에서 그랜달의 미트에서 공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공이 도달한 시점부터 태그할 때까지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 두 손 태그를 하지 않은 그랜달의 잘못이 컸다. 영상을 자세히 보면 주자에게 닿기 전에 이미 포수 미트에서 공이 반쯤 빠져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닝이 끝날 수 있는 상황에서 끝내지 못한 대가는 다음 타석에서 오스틴 잭슨에게 적시타(타구속도 65.1마일)를 허용하는 것으로 돌아왔다.
 
결과적으로 두 실점은 모두 비자책점으로 처리가 됐지만(그랜달이 실책을 하지 않았다면 이닝이 끝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안 내줘도 될 점수를 내주면서 이후 경기가 어렵게 흘러가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런 다저스의 실책성 플레이는 5회에도 이어졌다.
 
[이현우의 MLB+] 류현진의 '운수 없는 날' 그리고 DIPS 이론

 
5회초 1사 1, 3루 상황에서 아메드 로사리오가 친 우익수 방면 타구는 69.4마일(111.7km/h)에 불과했고, 방향 역시 정상적이라면 거의 우익수 정면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수비 위치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던 버두고의 타구 판단이 늦는 바람에 그대로 안타가 됐다. 2아웃 이후에는 윌머 플로레스가 친 타구가 유격수 키케 에르난데스를 살짝 넘겨 떨어지는 불운도 있었다.
 
이날 4회부터 5회까지 류현진이 허용한 실점 5점 가운데 4점은 이런 식으로 실책 또는 실책성 플레이 상황에서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6이닝 3자책점으로 버티며,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한 것은 류현진이 얼마나 노련한 투수인지를 말해준다.
 
류현진 "전체적으로 안 되는 날이었다. 빨리 잊어버릴 생각이다"
 
[이현우의 MLB+] 류현진의 '운수 없는 날' 그리고 DIPS 이론

 
물론 이날 류현진의 실점이 전적으로 다저스 수비진의 탓이라는 것은 아니다. 4회부터 6회까지 류현진은 선두 타자를 안타로 출루시켰다. 4회(로사리오), 5회(플라웨키), 6회(콘포토) 세 선두타자에게 맞은 안타는 모두 94마일(151.3km/h)를 넘는 강한 타구였다. 따라서 선두 타자를 출루시킨 것만큼은 전적으로 류현진의 책임이었다.
 
애초에 류현진이 그들을 출루시키지 않았더라면 실책 또는 실책성 플레이가 나오더라도 실점할 상황 자체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그랜달의 실책과 버두고의 타구판단 미스는 홈으로 들어오는 주자를 의식하느라 나온 것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류현진 역시 "3회까지 제구가 좋았는데 4회부터 조금씩 안 좋은 코스로 간 것이 장타로 연결됐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류현진이 이날 경기에서 수비로 인해 손해를 본 만큼, 올 시즌 수비수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난 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모든 아웃카운트를 삼진으로 잡아내지 않는 이상 투수는 야수의 도움을 받아 아웃카운트를 쌓는다. 그러다 보면 어떤 날에는 호수비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다른 날에는 실책에 무너지기도 한다.
 
한 경기에 너무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그런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대로 한 투수의 BABIP는 메이저리그 평균인 .300으로 수렴해간다. 이는 류현진 역시 다르지 않다. 류현진의 통산 BABIP는 .300보다 딱 .001 높은 .301이다. 그런데 이날 경기 전까지 류현진의 2018시즌 BABIP는 .250이었다. 이날 경기로 류현진의 시즌 BABIP는 .293이 됐다.
 
 
 
즉,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날 경기의 '불운'은 DIPS 이론에 따라 시즌 BABIP가 통산 성적, 그리고 MLB 평균에 수렴해가는 과정으로 볼 여지도 있다는 것이다. DIPS 이론이 탄생한 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야구는 '운'에 많은 영향을 받는 종목이다. 한 경기 일희일비하다 보면 선수도, 팬도 한 시즌을 온전히 버티지 못한다. 안 좋은 경기는 빨리 잊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류현진의 경기 후 인터뷰는 모범 답안에 가깝다. 경기가 끝난 후 류현진은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야수들이 그런 플레이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그쪽으로 공을 보내지 않았으면 그런 상황도 안 일어났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안 되는 날이었다. 빨리 잊어버릴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이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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