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본머스전 멀티골 넣으며 4-1 역전승 견인. 케인 이른 부상 속에서도 원톱으로 2골을 넣었고, 동점골과 마지막 골의 기점 역할 담당. 슈팅 6회 중 유효 슈팅 4회(최다), 패스 성공률 83.9%, 드리블 돌파 3회(팀 내 1위)
[골닷컴] 김현민 기자 = 손흥민이 본머스와의 경기에서 해리 케인의 이른 부상으로 급작스럽게 원톱 역할을 수행했으나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며 4-1 대역전승을 견인했다.
토트넘이 딘 코트에서 열린 본머스와의 2017/18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이하 EPL) 30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4-1 대승을 거두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대승이었으나 내용 면에선 토트넘이 상당히 고전한 경기였다. 주중 유벤투스와의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에서 1-2로 역전패를 당하면서 탈락했던 여파 때문인지 토트넘 선수들은 다소 몸이 무거운 인상이 역력했다. 반면 치열한 잔류 경쟁을 펼치고 있는 본머스는 시작부터 공세적으로 나서며 승리에 대한 열의를 내비쳤다.
본머스는 경기 시작 4분 만에 역습 과정에서 완벽한 득점 찬스를 맞이했으나 골문 앞에서 시도한 주니어 스타니슬라스의 골키퍼 키 넘기는 로빙 슈팅이 골대를 맞으면서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하지만 곧바로 2분 뒤, 아담 스미스의 크로스를 받은 스타니슬라스가 왼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넣는 데 성공했다. 두 번은 실수하지 않은 스타니슬라스였다.
이후에도 본머스의 공세가 이어졌다. 전반 15분경만 하더라도 본머스가 무려 6회의 슈팅을 기록하는 동안 단 한 번의 슈팅조차 시도하지 못한 토트넘이었다. 적어도 15분까지는 본머스가 일방적으로 토트넘을 두들긴 경기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토트넘은 28분경 간판 공격수 케인이 발목 부상을 당하는 악재마저 발생했다. 이래저래 되는 일이 없었던 토트넘이었다.
이에 마우리치오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은 33분경 이미 부상 치료를 받으러 경기장을 떠난 케인을 대신해 측면 미드필더 에릭 라멜라를 교체 투입했다. 이와 함께 손흥민은 자연스럽게 원톱으로 올라섰다.
손흥민 원톱 효과는 교체 투입 2분 만에 효과를 발휘했다. 라멜라가 손흥민에게 패스를 연결하자 본머스 수비수 나단 아케가 가로채기 위해 태클을 감행했다. 하지만 손흥민은 아케의 태클보다 반박자 빠르게 오버래핑해서 올라오는 오른쪽 측면 수비수 세르지 오리에에게 전진 패스를 찔러주었고, 이를 오리에가 지체없이 크로스로 올리자 먼 포스트로 쇄도해 들어온 델리 알리가 논스톱 슈팅으로 선제골을 성공시켰다. 손흥민의 패스가 골의 기점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이후 경기는 다소 소강 상태에 이르렀다.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중거리 슈팅 외엔 이렇다할 공격 찬스를 만들어내지 못한 토트넘이었다. 결국 전반전은 1-1로 마무리됐고, 후반 15분경까지도 팽팽한 흐름이 이어졌다.
여기에 균열을 가져온 것이 바로 손흥민이었다. 후반 17분경 에릭센의 롱패스를 오버래핑해 올라온 오리에가 간신히 잡아냈고, 이를 손흥민이 컷백 형태로 내주었다. 에릭센의 방향 전환 패스를 왼쪽 측면 수비수 데니 로즈가 전진 패스로 연결했고, 알리의 크로스를 반대편 골포스트에서 자리잡고 있었던 손흥민이 논스톱 슈팅으로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손흥민의 패스를 시작으로 손흥민이 마무리한 골로 다소 빗맞은 슈팅이긴 했으나 워낙 좋은 위치(골문 앞 골키퍼와 먼 지역)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골이었다.
역전골을 허용하면서 다급해진 본머스는 후반 22분경 측면 수비수 찰리 다니엘스 대신 측면 미드필더 조던 아이브를,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리스 무셰 대신 공격수 조슈아 킹을 동시에 투입하며 공격 강화에 나섰다. 심지어 후반 31분경엔 측면 미드필더 스타니슬라스를 빼고 베테랑 공격수 저메인 데포까지 교체 출전시키며 공격수만 3명을 가동한 본머스였다.
이를 토트넘은 영리하게 역습으로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토트넘의 추가 골이 나왔다. 경기 종료 3분을 남기고 본머스 필드 플레이어들이 전원 토트넘 진영으로 넘어온 틈을 타 에릭센이 상대 패스를 가로채고선 곧바로 장거리 스루 패스를 연결했다. 이를 잡은 손흥민이 페널티 박스까지 단독 돌파를 감행하다 차분하게 베고비치 골키퍼를 제치고 승부에 쐐기를 박는 골을 성공시켰다.
토트넘은 인저리 타임 골을 추가하며 4-1 승리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 골 역시 손흥민의 패스가 기점이었다. 91분경 에릭센의 전진 패스를 받은 손흥민이 경합 과정에서 반대편 측면으로 전환하는 패스를 연결했고, 교체 출전한 미드필더 무사 시소코의 전진 패스를 또다른 교체 출전 선수인 케빈 트리피어가 길게 크로스를 넘긴 걸 상대 골키퍼가 어렵게 쳐낸 걸 먼 포스트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오리에가 가볍게 헤딩 슈팅으로 밀어넣었다.
이렇듯 손흥민은 팀의 4골에 모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괴력을 과시하면서 케인의 부상 공백을 최소화했다. 원톱의 미덕인 멀티골을 넣었고, 출전 선수 중 가장 많은 6회의 슈팅을 시도해 4회를 유효 슈팅으로 가져갈 정도로 정교한 킥력을 자랑했다. 드리블 돌파 역시 토트넘 선수들 중 공동 1위에 해당하는 3회를 성공시켰다. 공격 전반에 걸쳐 높은 영향력을 행사한 손흥민이다. 이에 더해 그는 성실한 전방 압박을 통해 가로채기 2회와 태클 2회도 기록하며 수비적으로도 높은 공헌도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도 고무적인 부분은 손흥민이 원톱으로 연계 플레이에 있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료 선수들이 넣은 2골에 있어 기점 역할을 담당했다는 데에 있다. 패스 성공률도 83.9%로 원톱 공격수로는 상당히 준수한 수치를 기록했다(케인의 이번 시즌 EPL 평균 패스 성공률은 78.6%이고, 백업 공격수 페르난도 요렌테는 68.2%에 불과하다).
비록 손흥민은 경기가 끝나고 취재진들과의 인터뷰에서 겸손하게 "케인은 나보다 힘도 좋고 등지는 플레이도 잘한다. 난 케인보다 뒷공간을 파고 드는 걸 좋아하고 동료들도 그걸 잘 알고 있다. 뒷공간 침투로 동료들이 볼을 잡고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게 내 임무였다"라고 밝혔으나 실질적으로는 최전방에서 버티는 플레이를 통해 패스를 내주는 원톱 본연의 역할 역시도 충실히 수행한 손흥민이었다.
이에 영국 공영방송 'BBC'의 EPL 축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매치 오브 더 데이(MOTD)'에 출연한 아스널의 전설적인 수비수 마틴 키언은 손흥민에 대해 라이벌 구단 공격수임에도 "똑똑하고 움직임이 좋은 선수다. 두 골을 넣었고, 찬스를 만들어주었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현재 케인이 얼마나 오래 결장할 지는 정밀 진단 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 분명한 건 케인이 없을 때 이를 대체할 선수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토트넘에 요렌테라는 장신 백업 공격수가 있지만 그는 이번 시즌 EPL에서 단 217분 출전이 전부일 정도로 포체티노 감독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손흥민의 본머스전 성공적인 원톱 역할 수행은 치열한 EPL 4위 경쟁을 펼치고 있는 토트넘에게 있어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