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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한의 골든크로스] 버나디나의 ‘전쟁통 헬멧’, 루틴이 숨겨져 있다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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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2 (월) 08:22

                           
KIA 타이거즈 외국인 타자 로저 버나디나의 헬멧을 보면 마치 전쟁통에 새까맣게 그을려진 전투 헬멧이 떠오른다. 이런 버나디나의 전쟁통 헬멧엔 야구를 더 잘하고픈 루틴이 숨겨져 있다.
 


 
[엠스플뉴스]
 
한반도는 휴전 상태다. 여전히 남·북한은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다행히 최근 들어 평화 무드가 조성되면서 긴장이 다소 완화된 분위기다. 하지만, 한국에 살지 않았던 외국인들에겐 한반도는 전쟁이 금방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지역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안보 문제는 KBO리그에 도전하는 외국인 선수들에게 중요한 확인 사항이다.
 
물론 대다수의 외국인 선수는 직접 한국 생활을 시작하면 안보에 대한 걱정을 덜어낸다. 두산 베어스 새 외국인 투수인 세스 후랭코프는 안보 문제와 관련해 “내가 미국에 있다 해도 미사일이 날아온다면 위험한 일이다. 직접 한국에 와 보니 평온한 분위기”라며 ‘쿨’한 반응을 보였다.
 
이 가운데 한국을 처음 찾은 외국인들이 KIA 타이거즈 외국인 타자 로저 버나디나의 헬멧을 본다면 더 깜짝 놀랄 수도 있다. 마치 전쟁을 치른 듯한 시꺼먼 헬멧이 버나디나의 머리에 씌워진 까닭이다. 전쟁통에 볼 수 있는 헬멧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새다. 팀 로고와 광고 문구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까맣다.
 
LA 다저스 류현진의 입단 초기 경기를 지켜본 야구팬들은 이런 헬멧이 익숙할 수도 있다. 다저스에서 활약했던 보스턴 레드삭스 내야수 헨리 라미레즈가 버나디나와 같은 헬멧을 사용한 까닭이다. 물론 헬멧을 뒤덮은 새까만 면적(?)은 버나디나가 더 넓다.
 


 
버나디나의 헬멧을 뒤덮은 새까만 정체불명의 물질은 바로 파인타르(송진액)다. 보통 타자들이 타격 전 스프레이로 방망이에 뿌리는 액체가 바로 파인타르다. 끈끈한 액체로 방망이 미끄럼 방지용이라 볼 수 있다. 파인타르로 뒤덮인 헬멧은 그간 KBO리그에서도 몇몇 선수에게서 종종 볼 수 있었다. 버나디나의 팀 동료인 김주찬과 이범호도 이와 같은 헬멧을 사용했다.
 
다만, 버나디나의 헬멧의 새까만 정도는 기존에 봐왔던 헬멧과는 비교 불가다. 버나디나는 자신이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헬멧을 다듬는다. 파인타르를 바르고 말리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리지만, 버나디나는 꼼꼼하게 ‘커스텀 헬멧’을 완성했다.
 
파인타르를 헬멧에 바르는 행위에 문제는 없다. KBO 야구규칙에 따르면 투수 글러브엔 다른 색깔의 이물질을 붙여선 안 되지만, 헬멧과 관련해선 이물질 관련 규정이 없다.
 
끝없는 버나디나의 욕심 “타격을 더 잘하고 싶다.”
 


 
버나디나의 ‘전쟁통 헬멧’에는 루틴이 숨겨져 있다. 버나디나는 보통 타석에 들어선 뒤 타격 전 헬멧을 한 차례 만지고 방망이를 다시 잡는다. 최대한 장갑과 방망이 사이의 접착력을 높인 뒤 타격에 임하는 것이다. 버나디나는 “장갑을 끈끈하게 만들어서 방망이를 더 꽉 잡을 수 있도록 헬멧에 파인타르를 발랐다. 특별한 의미보단 타격을 조금 더 잘하고픈 마음에 만든 일종의 루틴”이라고 설명했다.
 
징크스 요소도 포함됐다. 버나디나는 타격이 잘 풀리는 날 쓴 방망이나 장갑 등을 계속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버나디나는 올 시즌 개막전에서 소위 말하는 ‘검투사 헬멧’을 처음 썼다. 하지만, 이날 잘 맞은 타구가 상대 외야수에 잡힌 뒤 팀이 패하자 다음날 곧바로 ‘검투사 헬멧’을 벗고 기존 헬멧을 다시 쓰기 시작한 버나디나였다.
 
다행히 헬멧을 다시 바꾸지 않아도 될 정도로 버나디나의 시즌 초반 타격감이 좋다. 버나디나는 4월 2일 기준 타율 0.394/ 13안타/ 2홈런/ 7타점/ 4도루/ 출루율 0.444/ 장타율 0.606의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버나디나는 2번 타순과 3번 타순을 오가면서 팀의 주축 타자로 완벽하게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시즌 초와 같은 부진은 이제 버나디나에게 없다. KBO리그 2년 차 외국인 타자로서 더 즐기는 마음이 생겼단 게 KIA 관계자의 말이다. 버나디나를 가까이서 지켜본 KIA 관계자는 “지난해 시즌 초 부진을 이겨낸 반등을 보여주면서 버나디나에게 자신감이 더 생긴 것 같다. 확실한 건 지난해보단 더 즐기는 마음가짐이 보인단 거다.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자신만의 야구를 하는 게 보기 좋다”라며 미소 지었다.
 
KIA 쇼다 코우지 타격코치도 버나디나의 배우려는 자세에 큰 점수를 매겼다. 쇼다 코치는 “훌륭한 타자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버나디나는 자신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항상 고민하고 변화를 주려고 노력한다. 어떤 걸 가르쳐주면 그걸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대단한 타자”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타격뿐만 아니라 ‘야구 센스’ 자체도 물이 올랐다. KIA 김기태 감독의 칭찬을 이끈 장면은 바로 3월 30일 잠실 LG 트윈스전이었다. 이날 버나디나는 KIA가 3-2로 앞선 7회 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절묘한 1루 방면 기습 번트로 출루에 성공했다. 이어 2루 도루에 성공한 버나디나는 상대의 두 차례 폭투가 이어지면서 소중한 추가 득점을 기록했다. 이 득점으로 KIA는 4-3 한 점 차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상대 마운드와 수비를 흔든 버나디나의 ‘야구 센스’가 빛난 장면이었다.
 
김 감독은 “당시 접전 상황에서 버나디나의 기습 번트와 주루가 팀 승리에 큰 도움이 됐다. 정말 야구를 잘한다고 느꼈다. 다른 선수들도 보고 배워야 할 장면”이라며 고갤 끄덕였다.
 
이렇게 KBO리그 2년 차 버나디나는 모든 방면에서 더 무서운 타자가 됐다. 야구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열정은 팀 내에서 최고로 꼽힌다. 직접 세심하게 관리하는 ‘전쟁통 헬멧’에서도 야구를 더 잘하고픈 버나디나의 마음이 엿보인다.
 
김근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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