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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선수들은 어떻게 트레이드 될까? 선수 이적 과정 들여다보기!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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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7 (화) 13:44

                           

[매거진] 선수들은 어떻게 트레이드 될까? 선수 이적 과정 들여다보기!



[점프볼=편집부] 시즌을 앞두고 이적 선수들을 만날 때면 그들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새로운 기회라고 여긴다”, “내 가치를 확인하고 싶었다”라고 심심하게 소감을 말하곤 한다. FA 이적을 포함해 트레이드 된 선수들의 더 깊은 속내가 궁금했다. 이적 배경부터 적응까지 선수들의 고민과 심정을 들어보았다. (실명을 밝히지 않는 전제 하에 인터뷰를 했기에 많이 알려진 내용이 아니라면 선수 이름을 무기명 처리합니다.)

▲챔피언으로 이끈 트레이드 

현대모비스는 KBL 최초로 2012-2013시즌부터 세 시즌 연속 챔피언에 등극했다. 현대모비스가 새 역사를 만든 원동력은 LG에게 김시래(+커티스 위더스)를 내주고 로드 벤슨을 영입한 덕분이다. 더구나 벤슨은 2013-2014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LG의 첫 챔피언 등극도 저지했다. 

현대모비스처럼 트레이드 효과로 챔피언에 등극한 사례는 많다. 현대(현 KCC)는 통합우승 2연패를 달성한 뒤 1999-2000시즌을 앞두고 재키 존스를 SK에 내주고 로렌조 홀을 데려왔다. 현대는 KBL 유일한 정규리그 3연패를 이뤘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SK에게 무릎을 꿇었다. 현대가 1999-2000시즌에도 존스와 함께했다면 통합우승 3연패를 달성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SK는 트레이드 덕을 보며 첫 번째 챔피언의 기쁨을 누렸다. 

현대를 이어받은 KCC는 2003-2004시즌 세 번째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1999-2000시즌의 아픔을 씻어냈다. KCC가 무스타파 호프(+양동근)를 모비스(현 현대모비스)로 보내고 R.F 바셋을 영입해 골밑을 보강하지 않았다면 챔피언결정전에서 TG삼보(현 DB)를 꺾기 힘들었을 것이다. 모비스도 이 트레이드의 수혜자였다. KCC가 국내선수 드래프트 1순위로 뽑은 양동근을 데려와 ‘모비스 왕조’의 초석을 다졌다. 양동근과 함께 다섯 번이나 우승했다.

KCC는 2008년에도 트레이드로 재미를 봤다. 2대3 트레이드(서장훈+김태환↔강병현+조우현+정선규)를 단행한 뒤 두 번(2009, 2011년) 더 챔피언에 등극했다. 서장훈을 내보내며 하승진 중심의 팀을 만들었고, 강병현이 전성기를 보내며 큰 경기와 승부처에서 강한 플레이를 펼쳤다. KGC인삼공사는 나이젤 딕슨을 KT에 보내는 대신 도널드 리틀과 신인선수 지명권을 받았다. 이때 받은 신인선수 지명권으로 이정현을 선발했다. 박찬희와 오세근까지 뽑은 KGC인삼공사는 2012년과 2017년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정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우승이었다. 

[매거진] 선수들은 어떻게 트레이드 될까? 선수 이적 과정 들여다보기!

트레이드가 챔피언만 만드는 건 아니다. 때로는 트레이드를 통해 선수가 날개를 달 때도 있다. 조성원은 2인자 또는 3인자에 머물던 현대를 떠나 LG에서 활약한 2000-2001시즌 정규리그 MVP에 선정되었다. 이외에도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는 트레이드 이면에는 KBL 규정부터 소속팀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연과 새로운 팀에 적응 과정의 힘겨움이 포함되어 있다. 

▲KBL 트레이드 규정 

매년 5월 말 FA(자유계약 선수) 시장이 문을 닫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FA 선수들의 사인&트레이드가 발표되는 6월 1일이 FA 시장 종료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차기 시즌 구상과 구단 이해관계에 따른 트레이드도 이날 많이 발표된다. FA 협상 기간(보통 5월 1일부터 28일까지)에는 트레이드가 금지된다. 또한 선수 계약 기간이 6월 1일부터 다음해 5월 31일까지라서 연봉 계산의 편리성(5월 29일이나 30일에 트레이드를 한다면 5월 31일까지 2~3일치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을 위해 6월 1일 트레이드를 한다. 

KBL은 FA 협상 기간을 포함해 따로 트레이드 금지 기간을 두고 있다. 5라운드 시작일부터 FA 협상 종료까지 트레이드를 할 수 없다. 이는 시즌 막판 성적이 좋지 않은 팀이 특정팀을 밀어주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플레이오프 종료 후에도 트레이드를 금지한 건 무엇 때문일까. 2006년에 있었던 ‘시간차 트레이드’ 같은 편법을 막기 위해서다.

당시 LG는 4월 30일, 3억을 받고 조우현, 정선규, 정종선을 전자랜드로 이적시켰다. 5월 FA 협상 기간에 보상 FA였던 조상현을 영입한 LG는 KTF(현 KT)에 보상선수로 임영훈을 내줬다. KTF 입장에서는 임영훈 외에는 데려올 만한 마땅한 선수가 없었다. 그런데 LG는 FA 협상 기간이 끝나자 황성인과 3억을 전자랜드로 보내면서 박지현과 박훈근, 박규현, 임효성 등 4명을 한 번에 영입했다. 만약 시간차 트레이드가 없었거나 먼저 일어났다면, KTF는 임영훈이 아닌 다른 선수를 보상선수를 데려갈 수 있었을 것이다. 

▲트레이드를 하는 이유 

KBL 규정 내에서 얼마든지 트레이드가 가능하다. 트레이드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전력 보강을 위해서이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트레이드가 이뤄진다. A구단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부족한 포지션과 남는 포지션의 교환이 트레이드의 교과서”라며 “요즘은 FA 선수를 잡기에는 연봉 온도차가 크고, 그냥 놓치기 아쉬워서 트레이드하는 경향도 많다. 또 구단이나 선수가 요청하는 경우, 현재와 미래를 교환하는 트레이드가 보편적”이라고 트레이드 이유를 설명했다. 간혹 팀과 선수가 맞지 않아 트레이드 되는 경우에는 한 팀이 손해를 보더라도 성사될 때가 있다. 

B구단 관계자는 “전력 보강을 위해서 감독이 구단에 요청할 때도 있고, 프런트에서 반대로 감독에게 제안할 때도 있다. 감독과 프런트 의견이 일치한다면 금상첨화”라며 “선수 수급을 위해서 우리 팀이 가진 여유 있는 포지션 선수나 드래프트 지명권이란 불확실성을 내주고, 확실한 선수 또는 측정 가능한 기대치 있는 선수를 데려오려고 한다”고 트레이드 하는 이유를 들려줬다. 이어 “당장 우승을 위해 급하게 트레이드를 추진하면 성공하기 힘들다. 3년 구애 끝에 영입한 선수도 있다. 그를 위해서 등 번호도 미리 비워놓았던 적도 있다”며 장기적인 계획 속에 트레이드를 할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C구단 관계자는 “선수단 구성을 비시즌 훈련 시작할 때 딱 맞추기 위해서 6월에 트레이드가 많이 이뤄진다”며 “시즌 개막 후 3~4라운드 즈음에도 트레이드 논의가 많다. 변화를 주기 위해서다”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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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트레이드 통보 방식

구단에서 선수에게 트레이드 사실을 알리는 창구는 보통 감독이다. D선수는 “감독님께서 따로 불러서 다른 구단과 이렇게 트레이드 된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며 “두 번 트레이드가 되었는데 그 때 모두 감독님께 트레이드 통보를 받았다. 주위에서 듣거나 기사를 보고 안 건 아니다”고 했다. E선수 역시 “트레이드 당일까지 몰랐는데 감독님께서 저를 따로 불러서 트레이드 되었다고 알려주셨다”고 돌아봤다. 다만, F선수는 “경기를 위해서 홈구장에 내려가 있었는데 단장님께서 전화를 주셨다”고 말했다.

한 구단 관계자는 “트레이드 사실을 알리는 건 선수 관리 최고 책임자인 감독이다. 트레이드 소식은 어려운 이야기이기에 감독이 선수를 불러 트레이드 배경 등을 주로 설명하시고, 상대 감독과 했던 이야기도 해주시는 것 같다”며 “선수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건 트레이드 상대 선수인데, 이런 부분과 트레이드 조건 등에 대해선 사무국장 등 프런트가 해주는 편”이라고 했다. 

KBL 최초의 트레이드는 1997년 6월 20일 LG와 SBS 사이에서 일어났다. LG가 박수호(+1억 2000만원)를 내주고 SBS(현 KGC인삼공사)의 오성식을 영입한 것이다. 오성식은 당시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전 소속팀 SBS가 LG와의 트레이드 합의를 발표하기 전까지 전혀 이 사실을 몰랐다.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오성식처럼 다른 방법으로 트레이드 사실을 인지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트레이드 금지 기간인 5월에는 소문이 많이 난다. KGC인삼공사에서 LG로 이적한 강병현은 “소문이 너무 많이 났었다. 그 소문을 믿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전화해서 ‘어떻게 되냐’고 물어왔다”며 “‘뭔가 이뤄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강병현과 반대로 LG에서 KGC인삼공사로 이적한 배병준은 “5월 말 즈음에 팬들이 먼저 연락을 주셨다. ‘이적한다는데 맞나?’라고 물어서 ‘들은 게 없다’고 했다”며 팬을 통해 트레이드 사실을 알아챘다. 군 복무 기간에 이적한 G선수는 “팀에서 친하게 지내던 형에게 연락했더니 ‘우리가 친한 사이니까 내가 이야기를 해주는 게 맞다’며 트레이드 사실을 알려줬다”며 팀 내 선수를 통해 소속팀이 바뀐 걸 들었다. 

KBL은 최근 트레이드를 승인 받은 뒤 각 구단에서 보도자료를 배포하라고 주문한다. 이 때문에 공식 보도자료 배포 전 날 KBL의 양도계약서 승인을 받는다. 이때 구단에서 선수들에게 트레이드 사실을 미리 알려주는 편이다. 

▲이적 팀으로 이동 방식 

그렇다면 이적한 선수가 새 팀에 합류할 때는 어떻게 움직일까. 보통은 영입하는 구단에서 새 식구를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다. 비시즌에야 여유가 되는 만큼 선수가 직접 찾아갈 때도 있지만 시즌 중에는 영입하는 팀에서 선수를 데려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2013년 10월 7일, 2013-2014시즌 개막을 5일 앞두고 삼성은 박병우를 동부(현 DB)에 내주고, 김명훈을 데려왔다. 당시에는 박병우가 군 복무 후 삼성으로 돌아오는 임대 트레이드였다. 삼성은 임대 트레이드임에도 박병우의 이적을 상당히 아쉬워했다. 삼성은 동부에서 찾아와 박병우를 데려가야 하지만 이례적으로 박병우를 원주까지 데려다 주고, 김명훈을 삼성 숙소로 데려왔다. 

박병우는 “어렸을 때였기에 마음이 아팠다. 감독님께 트레이드 소속을 들은 뒤 농구화와 개인물품을 챙길 때였다. 그 때 이상민 코치님께서 격려 말씀을 해주시는데 눈물이 났다. 김승현 형과 황진원이 형도 ‘괜찮아, 다시 돌아올 거니까’라고 하는데 거기서 눈물이 터졌다”며 “군대 다녀온 뒤 다시 삼성으로 오면 된다고 했지만, 충격이 정말 컸다. (동부로 이동하는) 차를 타기 전까지 눈물을 흘린 기억이 난다”고 트레이드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사무국 형들 세 명(신흥수, 한치영, 유진우)이 저를 원주까지 데려다 줬다. 그 때는 트레이드가 처음이라서 원래 형들이 이렇게 데려다 주는구나 싶었다”며 “형들이 일부러 시간을 내서 저를 데려다 주고 저녁 식사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고맙다”고 덧붙였다. 박병우는 마이클 더니건과 허버트 힐의 트레이드 때 임대 트레이드에서 완전 이적으로 바뀌었다. 

▲이적을 결심한 이유 

감독이나 프런트에서 트레이드를 추진하는 경우가 많지만, 때론 선수들이 트레이드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 선수들이 그나마 이적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FA다. H선수는 “모든 선수들이 비슷할 거라고 본다. 터닝포인트로 삼고 싶었다. 기회를 더 받고 싶고, 다른 곳에 가서 좀 더 잘 할 수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싶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그 당시 그대로 있으면 힘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상황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더 할 수 있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서 이적을 결심했다”고 돌아봤다.

J선수는 FA 시장에 나갈 때 은퇴까지 각오했다고 말했다. “선수라면 1분이든 10분이든 뛰어야 한다. 농구선수로서 살아있다는 걸 느끼고 싶었다. 그렇지만, FA 시장에 나가는 게 두려웠다. 이적을 하니까 학교 다닐 때 전학간 느낌이었다. 그 기분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편안했다.” 그는 “감독님께서 ‘많이 배고팠을 거 같다. 내 말 잘 들으면 많이 뛸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심적으로 힘들었기에 (새로운 팀에서) 재미있게 즐겁게 농구를 했다. 살아 숨 쉰다는 느낌, 파닥파닥 거린다는 느낌이 더 컸다”고 새로운 팀에 옮긴 순간을 떠올렸다. 

구단과의 조건 차이, 협상과정에서의 서운함이 이적에 대한 마음을 굳히는 요인이 될 때도 있다. K선수는 “FA 협상하기 전에는 딱히 팀을 떠날 생각은 없었다. 그렇지만, 협상을 할 때 구단 제시 금액이 너무 낮아서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다”며 “구단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를 영입할 구단이 없을 줄 알았다. 협상 과정에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FA 협상 과정에서 팀을 떠날 생각을 굳혔다고 전했다. 

L선수도 비슷했다. “팀 프랜차이즈 선수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팀이 많이 바뀌며 서운함을 느꼈다. 또 트레이드 당시 말 못할 이야기도 많다. 저에게 관심을 주고 손을 더 내미는 팀에 마음이 흔들렸다. 정성을 쏟아주면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 또 보수도 맞아야 한다. 최근에는 보수에 따라 이적을 많이 하는 듯하다”고 기억을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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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하고 싶은 순간 

KCC 추승균 감독, 오리온 김병철 코치, 2017-2018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김주성 등은 이적 한 번 없이 한 팀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다. 이런 경우 선수 생활 내내 이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한 팀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거나, 한 팀에서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다 이적한 선수들에게 이적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는지 물었다. 

M선수는 “트레이드는 다른 세상 이야기인줄 알았다. 년차가 쌓이는 동안 새로운 선수들의 가세로 제 역할을 못 찾고, 제 비중이 작아져서 관심 밖 선수로 밀릴 때 이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저 대신 뛰는 선수가 잘 하는 게 보인다. 저는 그 선수의 장점뿐 아니라 그 선수가 안 가지고 있는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슛이 정확하고, 리바운드 가담이 좋다면 저는 거기에 2대2 플레이까지 잘하려고 했다. 처음엔 많이 밀려서 못 뛰다가 다른 플레이를 보여주니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고 예전 기억을 꺼냈다. 

N선수는 “군대에 다녀왔는데 감독님이 바뀌어 있었다. 새로 오신 감독님은 타협이 없는 분이셔서 적응하기 힘들었다. 더구나 식스맨으로 뛰며 욕까지 먹으니까 짜증이 나더라. 다른 팀에 가고 싶었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그는 이적을 요구하지 않았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때 ‘새로운 팀에서는 경쟁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다른 구단에 가서 잘 되는 경우도 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마음을 바꿔먹었다고 했다. 이어 “사실 트레이드 소문도 돌았다. 밀려난 느낌도 있고, 또 주위에서 ‘감독이랑 안 맞는 게 아니냐?’며 흔들기도 했다”며 “힘들고 원망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감독님 탓이 아니라 적응 못한 제 탓이 더 컸다고 여기며 이겨냈다. 그렇게 딱 중심을 잡으니까 팀 성적까지 덩달아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O선수는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두 번 정도 팀을 옮기고 싶었던 적이 있다. 다른 팀에 가서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다른 팀에 가서 제가 지금 속해있는 이 팀을 무찌르고 싶었다”고 웃은 뒤 “어렸을 때라 선수로서 욕심을 내고 싶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기회도 적고, 소외되는 부분이 있었다. 코칭스태프와 면담도 했는데, 코트에서 의욕이나 영혼이 없었다”고 그 시절을 돌아봤다. 그러나 그 역시 이적을 하지는 않았다. 선배들의 조언이 큰 역할을 했다고 했다. “고참들은 딱 알아보더라. 한 고참이 따로 불러서 ‘가고 싶은 팀이 있나?’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도 ‘무조건 나갈 거’라고 했다. 그랬더니 ‘넌 여기 있어도, 다른 팀에 가도 주축으로 뛸 수 있을 거다. 그렇지만, 여기서 놔 버리고 다른 팀에 갔을 땐 거기서 힘든 시기가 와도 못 이겨낸다. 이적하고 싶으면 여기서 잘 하고 난 뒤 떳떳하게 말하고 가라’고 했다. 그 때 생각을 다시 잡고 집중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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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은 다른 세상 이야기

삼성은 2016년 FA였던 이관희를 다른 팀으로 보내려고 했지만, 이관희가 삼성에 남길 원했다.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이관희는 1년 만에 다시 찾아온 FA 계약에서 삼성과 기분 좋게 도장을 찍었다. 이관희는 왜 삼성에 남으려고 하는지 묻자 “다른 팀에 갈 생각 자체를 안 했다. 제가 드래프트에서 뽑혔을 때 아버지와 ‘삼성에서 농구 선수로 성공한 뒤 (드래프트에서 입었던) 이 유니폼을 꺼내보자’고 약속했었다”며 “그 때 '꼭 삼성에서 성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삼성에 남아서 잘 된 거다”고 답했다. 이관희처럼 트레이드 생각 없이 줄곧 한 팀에서만 생활하길 원하는 선수도 있다. 

P선수는 “횟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다른 팀에서 트레이드 제의가 있었다고 들었다. 한 번은 감독님께서 저에게 ‘보내기 싫은데 혹시 가고 싶은 팀이 있으면 이야기를 하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다”며 “다른 팀에서 뛰는 건 생각도 안 해봤고, 다른 팀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고 소속팀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그는 “지나고 나니까 한 번 즈음 옮겨봤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조금 더 의미 있는 활약을 펼쳤다면 그렇지 않겠지만, 선수 생활을 돌아볼 때 아쉬움이 들어서 그런 거 같다”며 “정말 잘 했던 선수들이 좋지 않게 은퇴하는 걸 봐서인지 저는 한 팀에서만 생활하며 보기 좋게 은퇴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또 집도 숙소 근처라서 다른 팀에 가는 게 상상이 안 되었다”고 덧붙였다. 

Q선수는 “다른 팀에 가고 싶어도 놔주지를 않았다(이 선수가 FA였을 때 한 팀에서 영입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음)”며 “다른 구단에서 어떤 지원을 해주고, 어떻게 훈련한다는 걸 들으니까 그 구단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더구나 선수들은 학창시절 운동만 하다 프로 선수가 되면 보수를 받으니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럼 사춘기가 뒤늦게 온다. 그럴 때 이적 등에 대한 생각이 생긴다”고 경험담을 들려줬다. 

이어 “지나고 나니까 한 구단에서 선수 생활만 한 게 자부심도 생기고, 더 좋다. 이적했던 동기를 보면 어떤 미래가 있는지 모르니까 다른 팀으로 옮겼는데 막상 나중에 후회하더라”며 “이적을 자주 해서 좋은 건 딱 하나 있다. 결혼식이나 돌잔치 등 경조사 때 한 구단에 있었던 것보다 사람들이 훨씬 많이 온다”고 웃었다. 

반면, R선수는 “10년가량 한 팀에만 있으니까 오히려 더 불안했다. 정작 구단이나 프런트, 지원스태프는 ‘이 선수는 어차피 팀에 계속 남을 거니까’라고 생각하더라. 한 팀에만 있으면 좋은 점도 있지만, ‘이 선수에겐 이 정도만 해줘도 돼’라고 여기는 단점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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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팀 적응 방법

이적한 선수들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한 단어를 꼽는다면 바로 ‘적응’이다. KGC인삼공사와 LG는 강병현과 이원대, 기승호와 배병준을 서로 맞바꿨다. 이들 4명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 이들 모두 적응이라는 단어를 빼놓지 않았다. 배병준은 “팀 분위기에 ‘적응’하는데 어렵지 않다”고 했고, 기승호는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적응’을 잘 해야 한다”고 했다. 강병현은 “저를 깨우치고 운동에 집중해서 LG에 ‘적응’하게 만들려는 의도였다”고 했고, 이원대는 “LG에 ‘적응’해서 제가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답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새로운 팀으로 옮긴 선수들은 어떻게 적응할까? 대다수 선수들은 ‘대화’가 답이라고 말했다. S선수는 “초반에 팀 운동할 때 스타일이 달라서 어려움이 있었다. 제가 조용하고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니라 두루두루 잘 지내는 성격이다. 학교 선후배들도 있어서 제가 먼저 다가가니까 적응에 어려움이 없었다. 낯을 가리지 않아서 동료들이 해주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쉽게 적응했다. 한 선수가 한 팀에 들어가는 거라서 녹아드는 게 중요하다”고 외향적인 성격 덕분에 쉽게 적응했다고 했다. 

T선수는 “휴식시간에 형들 방에 찾아가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선수단끼리 이야기도 많이 하니까 자연스럽게 친해졌다”며 “또 경기를 뛰니까 할 얘기가 더 많아서 더 빨리 친해졌다”고 적극성과 경기를 뛰며 호흡을 맞춰나갔다고 했다. 

U선수 역시 “같은 학교 출신들도 있고, 고참 형들이 잘 챙겨주셨는데, 혼자 방을 써서 밤마다 외로웠다. 하루 이틀 지나니까 적응을 하게 되더라. 친분 있던 선수들이 있어서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많이 해줘서 더 빨리 적응했다”고 했다. 

이어 “이적했을 당시 나는 운동에 빠져있을 때였다. 생각이 많으면 힘드니까 야간이나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자서 운동을 많이 했다. 또 곧바로 연습경기를 했는데 그 때 생각보다 잘 했다”며 “그 모습을 보고 감독님, 코치님, 고참 형들이 절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저도 놀랄 정도로, 손발을 맞춰본 것도 아닌데 잘 하니까 더 잘 해줬던 거 같다”고 노력하는 자세와 예상을 뛰어넘는 기량 덕분에 팀에 쉽게 녹아들었다고 했다.

▲이적생의 못 다한 이야기 

이적은 새로운 팀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V선수는 “이적했을 때 신세계였다. 이렇게 든든하게 지원을 받으면서 훈련할 수 있고, 또 전술이라는 걸 제대로 느꼈다”라며 “팀 문화도 달랐다. 그 전에는 고참 선수들 야식이나 뒷바라지를 많이 했는데, 그런 것도 없어서 훈련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아주 오래 전 일을 기억했다. 

W선수도 “새로운 팀에 오니까 패턴이 많아서 외울 게 많았다. 생각 없이 움직여도 이뤄지는 팀 패턴 같은, 딱딱 맞아떨어지는 수비가 있어서 그걸 외우고 익히는데 힘들었지만, 다른 팀에는 이런 게 없다”며 이적 후 이전 팀에 없었던 전술에 놀랐다. 

X선수는 “고위 관계자 분들께서 빈말인지 모르겠지만, ‘이 팀에 뼈를 묻어야지’라고 하셨다. 저도 너무 좋아하고 있었기에 ‘네’라고 했다. 선수 구성도 좋았고, 우승도 하는 등 농구를 하며 해볼 수 없는 것들까지 많이 경험했다”며 “당연한 건 없지만, 트레이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몇 년 뒤에 다른 팀으로 옮겼다. 영원한 건 없더라”고 웃었다. 

이적 된 선수는 새로운 팀에서 적응을 하지만, 반대로 한 팀에 오래 있는 선수는 많은 이적 선수를 만나고, 다시 떠나보내는 걸 반복한다. Y선수는 “모든 선수들이 떠날 때 아쉬웠다. 특히 Z선수는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도 때로는 기댈 수 있는 사이였다”며 “Z선수가 떠날 때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울컥해서 별 말을 하지 못했다. ‘고생했다. 가서 잘 해라’, ‘너도 잘 해라’고 간단하게 말했던 거 같다”고 했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7월호에 게재된 글로, 바스켓코리아 이재범 기자의 기고로 이루어졌습니다.

 

# 사진_문복주, 유용우 기자



  2018-08-07   김용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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