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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MLB+] 단신 1번 타자들의 반란, 그리고 무키 베츠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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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7 (목) 21:22

                           
[이현우의 MLB+] 단신 1번 타자들의 반란, 그리고 무키 베츠

 
[엠스플뉴스]
 
오랫동안 야구란 스포츠에서 리드오프는 홈런을 많이 쳐내진 못해도 발이 빠른 선수들이 맡았던 자리였다. 이는 전통적으로 1, 2번 타순을 일컫는 말인 테이블세터(Table Setter)라는 표현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문자 그대로 팀이 바라는 그들의 역할은 나중에 나올 클린업(Cleanup, 3, 4, 5번 타자)를 위해 밥상을 차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올해 홈런 순위표는 그동안 1번 타자에게 갖고 있었던 편견을 없애기에 충분하다.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1번 타자로서 출전한 경기에서 홈런을 10개 이상 친 타자는 모두 18명이다. 그중 8명은 15개 이상의 홈런을 쳐냈다. 심지어 프란시스코 린도어(37홈런), 맷 카펜터(36홈런, *이 선수는 키가 크지만 그냥 넘어가자...), 무키 베츠(32홈런)은 30홈런을 넘겼다.
 
더이상 메이저리그에서 1번 타자는 '발만 빠른 선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현우의 MLB+] 단신 1번 타자들의 반란, 그리고 무키 베츠

 
물론 메이저리그 1번 타자들의 장타력 상승은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다. 지난해 필자는 [이현우의 MLB+] 새로운 유형의 1번 타자, 그리고 이치로란 칼럼을 통해 거포형 타자들의 1번 타자 배치에 대해 다룬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조금 다르다. 당시에 주목받았던 '새로운 유형의 1번타자'는 카를로스 산타나를 비롯한 전형적인 거포 타입을 말한다.
 
하지만 올해 주목받는 1번 타자들은 클린업 못지않은 장타력과 전통적인 1번 타자의 덕목인 빠른 발을 동시에 갖춘 올라운드 플레이어(Allround Player, 만능형 선수)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선수는 역시 무키 베츠(25·보스턴 레드삭스)다.
 
단일 시즌 역대 최고의 1번 타자, 무키 베츠
 
 
 
베츠는 27일(한국시간) 열린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 시즌 30번째 도루에 성공하면서 올 시즌 두 번째이자, 메이저리그 역사상 62번째로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2018시즌 성적은 134경기 타율 .346 32홈런 126득점 80타점 30도루 WAR(대체선수 대비 기여승수) 10.0승. 이는 타율과 WAR 부문 올 시즌 MLB 전체 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베츠가 2018시즌 1번 타자로서 달성한 기록은 단일 시즌 한정 MLB 역사상 최고의 리드오프 시즌 중 하나로 평가받을 만 하다. 우선 26일을 기준으로 올 시즌 베츠는 1번 타자로 선발 출전한 129경기에서 OPS(출루율+장타율) 1.078을 기록 중이다. 이는 단일 시즌 1번 타자로 10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 가운데 역사상 가장 높은 OPS다.
 
시대와 구장을 고려한 조정 OPS로 살펴보더라도 베츠의 OPS+ 184는 단일 시즌 역대 1위다. 여기에 그나마 근접한 성적은 'MLB 역사상 최고의 리드오프' 리키 핸더슨이 1990시즌 기록한 OPS+ 177이다. 이해 핸더슨은 1번 타자로 132경기에 나서 타율 .326 28홈런 119득점 61타점 63도루 WAR 10.2승을 기록했다.
 
이해 핸더슨이 기록한 WAR 10.2승은 순수 1번 타자가 단일 시즌에 기록한 WAR로는 역대 1위에 해당한다(야구 통계사이트 팬그래프닷컴 기준). 만약 남은 4경기에서 WAR을 0.2승 이상 적립한다면 베츠는 28년 만에 대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베츠는 2018시즌 아메리칸리그 MVP 수상이 유력시된다.
 
[이현우의 MLB+] 단신 1번 타자들의 반란, 그리고 무키 베츠

 
베츠는 21세기 들어 보스턴 스카우트 팀이 올린 최고의 성과란 평가를 받는 선수다. 보스턴은 2011 신인드래프트 당시 5피트 9인치(약 175cm) 68kg이라는 작은 체구를 지닌 베츠를 뽑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2011 신인드래프트에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투구 인식 능력 테스트'에서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보스턴의 기대대로 베츠는 빅리그에 데뷔해서도 타고난 핸드-아이 코디네이션(hand-eye coordination, 눈과 손의 협응능력)을 바탕으로 통산 .302에 달하는 타율과 통산 12.4%에 불과한 타석당 삼진 비율을 기록 중이다. 한편, 뛰어난 운동 신경을 기반으로 한 수비 실력과 주루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하지만 그가 홈런 30개를 넘게 치리라는 것은 보스턴 스카우트 진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베츠는 어떻게 파워를 겸비한 강타자가 될 수 있었을까?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최근 1번 타자들의 홈런이 늘어난 원인에 대해 짐작해볼 수 있다.
 
단신 홈런 타자가 늘어난 원인: 히팅 포인트와 당겨치기
 
[이현우의 MLB+] 단신 1번 타자들의 반란, 그리고 무키 베츠

 
베츠가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홈런을 많이 치고 있는 비결은 뛰어난 핸드-아이 코디네이션을 바탕으로 히팅 포인트를 앞에 두고 강하게 당겨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증거가 '타구 방향별 타격성적'이다. 올 시즌 베츠가 당겨친 타구의 타율은 .530 장타율은 1.064다. 올 시즌 베츠는 당겨쳐서 26개의 홈런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전체 홈런 32개 가운데 81.3%에 해당한다.
 
한편, 올해 작은 체구를 뛰어난 핸드-아이 코디네이션을 바탕으로 히팅 포인트를 앞에 두고 강하게 당겨침으로써 극복한 사례는 베츠뿐이 아니다. 올 시즌 30-30을 달성한 또다른 선수인 호세 라미레즈의 키는 5피트 9인치(175cm)에 불과하다. 그의 팀동료인 린도어 역시 5피트 11인치(180cm)라는 키로 인해 유망주 시절 연평균 15홈런 이상은 무리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은 지난 8월 22일 통계 전문 미디어 <파이브서티에잇>과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장타자로 거듭난 이유로 "히팅 포인트를 앞에 두고 당겨치는 것"을 꼽았다. 실제로 라미레즈가 친 홈런 38개 가운데 32개(84.2%)는 당겨쳐서 나왔다. 린도어 역시 홈런 37개 가운데 26개(70.3%)를 당겨쳐서 만들어냈다. 지난해 8월경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도 나왔다.
 
<스포트비전>의 분석가 그레이엄 골드백은 홈플레이트 앞 10인치 부근 지점에서 공과 배트가 만났을 때, 홈런 확률이 극대화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 지점에서 히팅포인트가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당겨친 타구가 나온다. 이런 타격 이론의 발전은 과거라면 뛰어난 교타자 겸 발 빠른 주자로서 전통적인 1번 타자였을 선수들을 장타력을 겸비한 선수로 만들어주고 있다.
 
[이현우의 MLB+] 단신 1번 타자들의 반란, 그리고 무키 베츠

 
따라서 최근 들어 올라운드 플레이어형 1번 타자들이 유독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확률이 높다(물론 공인구의 항력 변화에 따라 최근 몇 년간 홈런 수 자체가 급증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AL MVP인 '작은 거인' 호세 알투베(168cm) 역시 앞서 설명한 3명과 유사한 올라운드형 단신 선수다.
 
올해 베츠가 MVP에 선정될 경우 아메리칸리그는 2년 연속으로 '유망주 시절에는 뛰어난 콘택트 능력과 빠른 발만 주목을 받았으나(전통적인 1번 타자 유형), 의외로 장타력까지 좋아진 선수'가 MVP를 수상하게 된다. 한편, 최근 들어 나타나고 있는 이런 '1번 유형 타자들의 진화'는 이미 메이저리그의 스카우트 기준을 바꿔놓고 있다.
 
이제 단순히 체격만 가지고 한 선수의 파워 잠재력을 평가하는 시대는 지났다.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흐름에 주목해보자.
 
이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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